오늘은 6. 25 전쟁 기념일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서울에 계신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 대통령실에서 우편이 왔는데 아버지 국가 유공자 서훈 안내라고 왔네"
"네.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보세요"
조모님, 부모님 산소가 파주 용미리 공원 묘역에 계신 까닭에
서울에 계신 누님 주소로 관리자 등재했더니 그리로 연락이 간 것 같았다.
6. 25 참전 용사로 국가 유공자로 선정되었으니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서류 준비는 여러 가지였지만 안내에 따라
병무청에 질의하여 서류받고 동사무소에 증명서 발급받고 지방 보훈부에 신청하여 미비된 서류 첨가하고
그리하여 작년에 국가 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아니 그래도 나이 들어가니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잦아지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애틋했다.
증서가 나오자마자 부모님과 할머니 산소를 찾아 증서를 펼쳐놓고 참배를 했다.
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안은 국가유공자 집이 된 것이다.
지난 4월 큰아이 결혼 전에 우리 형제들과 조카들이 다 모여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 사는 조카내외와 지방에서 약국 하는 조카사위 빼고 다 모였다.
국가유공자 증서를 여러 장 복사해서 가져갔다.
한 장씩 나눠주고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할 테니 집중해서 경청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가 되셨다.
국가유공자라 함은 나라를 위하여 공헌하고 희생한 사람을 뜻한다.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국가유공자 집안이 된 것이다.
국가유공자 후손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각자 맡은 바 일에 충실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법과 사회 질서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어기는 사람은 할아버지에게 큰 불효하는 사람이 되고 국가유공자 집안의 망신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녹색등이 점멸하면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지 중간쯤에 빨간불로 바뀌는 행동도 하면 안된다"
갓 결혼한 여동생 딸이 손을 들더니
"큰삼촌, 엄마가 그러는데요?"
한바탕 큰 웃음이 일어나고 동생이
"야, 내가 언제 그랬냐?"
"엄마, 지난번에 그랬잖아"
"그땐 워낙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지"
"아버지 생각해서 앞으로는 그래서는 안돼, 어서 식사하자"
"오빠, 알았어요"
아버지.
내 아버지여서 고맙습니다.
첫댓글 국가유공자 증서
고 조 00
1930,12, 24 생
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龜鑑)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25년 8월 20일
대통령 이 재 명
이 증서를 국가유공자증부에 기재합니다
국가보훈부장관 권 오 을
6.25 한국전쟁이 1950-1953년이었으니 70년도 넘은 이 시점에 쌩뚱맞게 6.25참전 국가유공자라니... 아무리 그동안 행정적으로 미비했다고 해도 70년이 넘도록 조부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불편햐셨을까요. 주위에보면 특히 학도병으로 자진해서 참전했던 고등학생들은 정식 군인이 아니라서 군에 기록에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분들이 아직도 많이 계시다고 합니다. 이제라도 조부님이 편하게 눈을 감으실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쩌면 조부님은 그런 것 자체를 염두에 두지도 않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바라고 6.25에 참전하시지 않았을테니까요. 자기 목숨을 조극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신 분들에게 국가유공자라는 이름조차 부족한 보상이니까요. 오늘날 후손들 특히 정치인들이 이념을 앞세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들을 조롱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유공자 조부님의 영생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국가유공자의 집안이라는 자랑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