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충돌소리를 듣고 도로변 상가에 있던 차주인이 뛰어나왔다. 머리가 벗겨지고 안경을 쓴 50대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찌그러진 자신의 차 앞부분을 확인하고는 윤지의 차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윤지는 차에서 내려 다급함을 호소한다.
“제가요 지금 급하게 가 봐야 될 곳이 있거든요. 우선 제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학생이구만. 이거 학생 차 맞아?”
“예, 제 차예요.”
“차주가 학생이냐구?”
“맞다니까요.”
“있는 집 자식인가보네. 지금 여기서 유턴하다 이런 거지? 이거 어쩔 거야?”
“그니까 전화번호 알려 드린다구요. 아저씨도 명함 있으면 주세요.”
“내가 학생들은 잘 믿지를 못하겠어서 말이지.”
윤지는 휴대폰으로 아저씨의 차 번호판을 찍는다.
“아저씨도 제 차번호 휴대폰으로 찍으세요. 그럼 됐죠?”
“학생증 좀 보여줘.”
“학생증요?”
윤지는 속으로 치사하다 느끼면서 차 문을 열고 가방에서 학생증을 꺼내 아저씨에게 보여준다. 아저씨는 학생증을 낚아채더니
“해결 될 때까지 이거 내가 갖고 있어야겠어.”
“뭐라구요? 아저씨, 이게 그럴 상황은 아니잖아요. 제 차 번호판 찍어놓으시면 되잖아요. 제가 어디 도망갈 것도 아니고.”
“그럼 경찰 부를까?”
“경찰요? 맘대로 하세요. 나는 불법유턴하고 아저씨도 불법주차한 거니까 같이 딱지 떼이자구요. 그리고 아저씨가 내 학생증 뺏은 것까지 다 말할 거예요.”
“어허, 이 학생이 본인이 잘못해놓고 어디서 큰소리야?”
“그니까 내 학생증부터 달라구요. 왜 남의 학생증은 뺏어요?”
윤지가 만만치 않게 나오자, 아저씨는 학생증을 돌려주고 연락처 교환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꽤 시간을 허비한 윤지는 보험회사에 전화해 사고접수를 시킨 후
다시 차에 올라 성우와 여자가 있는 찻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찻집 앞까진 왔는데 도로변에 차를 세우자마자 뒤에서 차 한 대가 급정거하더니 경적을 길게 울려댄다.
백미러를 보니 자신의 뒤쪽으로 차들이 연달아 정차하고 있었다.
주정차 금지구역인 걸 떠나 통행차량들이 워낙 많아 잠시라도 정차해 있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윤지는 다시 차를 움직여 첫 골목으로 우회전하여 꺾어 들어간다.
골목은 주차된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차 세울 데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한 음식점 앞에 좁은 공간이 있어 윤지는 거기로 차를 갖다 댄다.
차키를 빼고 내리려는데 음식점 문이 열리면서 남자 주인이 나온다.
“차 여기다 대면 안 돼요.”
“잠시만요 아저씨. 금방 올게요.”
“글쎄 금방이건 어쩌건 차 빨리 빼요.”
윤지는 다시 차에 올라 차를 움직인다.
양쪽 모두 차들이 빽빽이 주차돼 있는 좁은 골목을 혹시나 빈자리가 있나 좌우를 계속 살피며 서행으로
가고 있는데 앞 쪽에서 승용차 하나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차 한 대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이 길에 무턱대로 들어오는 저 차는 뭐지 하며 윤지는 그대로 전진했다.
좁은 길에 두 차가 마주보고 정지했다. 상대쪽 차의 앞유리가 짙은 선팅이 돼 있어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잘 안 보였다.
윤지는 차에서 내려 상대쪽 차로 갔다. 창문이 내려지면서 윤지를 쳐다보는 한 아줌마에게 윤지는 짜증을 억누르며 말했다.
“제 차가 먼저 진입했는데 저 쪽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냥 들어오면 어떡해요. 조금만 후진해 주세요.”
“무슨 소리야, 나 저쪽부터 다 보고 들어온 건데. 그쪽에서 빼야지.”
“아줌마가 조금만 후진하면 저 쪽에서 두 차 다 빠질 수 있어요.”
“나 참 이 아가씨 경우가 없네. 내가 어디로 후진을 해. 큰길까지 후진해서 가라고?”
그 사이 다른 차가 저만치서 오더니 아줌마 차의 뒤에 선다. 그리고 그 뒤로 또 한 대가 와서 또 붙어선다.
윤지는 아줌마와의 실랑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차에 다시 오른다. 이미 골목 한가운데로 많이 진행한 차를 다시 그만큼 후진시켜야 한다. 윤지는 양쪽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보며 후진을 시작한다. 윤지가 후진한 만큼 아줌마 차는 윤지의 차 앞으로 슬금슬금 전진해 붙는다. 한참을 후진한 것 같은데 아직도 까마득하다. 언제까지 후진해야 하는지. 양쪽으로 빽빽이 주차된 차들 하나하나가 섬뜩한 흉기처럼 보인다. 갑자기 윤지는 붙들고 있는 운전대에서 한 손을 떼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가슴이 답답하면서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윤지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가 극심한 현기증이 덮치면서 의식을 그대로 잃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응급실이었다. 간호사가 의식이 든 윤지에게 다가와 쳐다본다.
“깨나셨네요.”
윤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영문을 몰라 간호사를 본다.
“어떻게 된 거예요?”
“119구급차에 실려 왔어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시구요,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쌓여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은 거예요.
일단 안정제 놓아드렸구요, 하루 정도 안정 취하면 돼요. 병실로 가서 링거 놓아드릴게요.
보호자분 필요하시면 연락하시구요.”
간호사는 가지고 있던 윤지의 휴대폰을 윤지에게 건네주었다.
“제 차는요?”
“경찰에서 견인해 갔으니까 걱정 마시구요, 일단 안정 취하세요.”
윤지는 일반병실로 옮겨져 링거를 꽂은 채 누웠다. 가족한테는 안 알려도 될 것 같았다.
안정만 취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연락해 봤자 걱정만 끼치는 일이고, 또 멀리 있는 가족을 굳이
먼 걸음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신경안정제 때문인지 기분이 많이 차분해졌다. 윤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가족에겐 안 알리더라도 학교 친구 누군가에겐 자신이 병원에 있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의식을 잃어 구급차로 실려 온 상황에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있다 병원을 나온다는 것이 스스로가 청승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병원에 있는 것을 알릴 만한 친구가 없다. 성우하고만 붙어 다니느라 지금처럼 아플 때 연락할 친구가 없는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진심 이럴 땐 성우 밖에 없는데. 근데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도무지...
아니지, 성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아까처럼 자신의 심박 수를 빠르게 해선 안 된다.
그 자식은 싸가지도 없어서 보고 싶지도 않고.
아니지, 그래도 어떻게 연락을 안 해? 지금까지 그 긴 시간 동안 그렇게 가깝게 잘 지내왔는데 이럴 때 연락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 애 여친이 생겼다고 달라져야 할 이유가 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닌가.
윤지는 갈등을 거듭한 끝에 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입원했어 >
첫댓글 윤지가 성우 말고 딴 사람 찾았으면 좋겠네여...
ㅎㅎ 최대한 바람직한 결말이 되도록 해볼게요~~~
성우대신에 누가 오면 좋을텐데
저도 이대로 성우가 온다면 스토리상 맥이 좀 빠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