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행사 전
예산에서 출발해 청양가서 어머님 모시고 양평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그러나 한 차 안에 내 아이들과 아이들의 할머니가 같이 있으니, 마음이 가까워진 듯 푸근하고 꽉 찼다.
콘도에 도착해 행사장으로 가 보았다.
행사장은 넓고 화려했다.
더구나 고급스런 부페가 차려져있어 잔치 장소로는 손색이 없다.
무대 앞에 현수막이 걸려져 있다.
시골에 가서 사진을 구하고 문구를 만들어 아는 분께 맡겼더니 공짜로 해 준 기분좋은 현수막.
그런데 덜컥 걱정이 된다.
이 넓은 장소에 초청된 사람이 많지 않고, 또 전문사회자의 말을 들으니 진행순서에 선물, 꽃, 돈봉투등이 필요한 것이다.
우린 이런 준비없이 왔기에 뭔가 슬몃 불안했다.
애초 장소를 오커빌리지에서 하려다 더운 날씨 때문에 이 곳 실내로 바꾼 것인데...
장소를 바꾸면서 장소에 맞는 격식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걸 간과해버린 것이다.
이 곳에서 행사를 치른 다른 사람들과 많이 비교되겠구나.
우리들의 소박한 잔치가 형식적인 틀에 의해 굳어지고 재미없어질까 걱정이 된다.
형식에 짜 맞춰지는 건 별로 재미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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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흥겹고 눈물나는 한 판
걱정이 기우라더니.
손주의 편지 읽어드리기,
뒤 늦게 글씨를 배운 늙은 올케의 편지 읽어드리기,
손녀들의 댄스,
어린 손주의 쌍절봉 시범,
하모니카에 맞춰 <어머니 마음> 제창하기,
자작시 읽기등을 미리 준비한 것이 잔치의 취지에 적중했다.
특히나 어머님에 대한 80년 세월의 동영상을 자손이 직접 만들어 틀어놓고 다 같이 볼 때는 엄숙한 시간도 만들었다.
그리고 '윤 훈 여사의 80년의 씨앗들 여기 모이다'라는 문구를 새긴 단체티를 입고 있으니, 우리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그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왜, 몇번의 순간에 울컥 했을까.
자손들의 절을 받으며 우시는 어머님을 보고 울컥.
행사진행팀 밴드에 맞춰 노래부르는 발음이 부정확한 조카의 흥겨운 <무조건>을 들으며 울컥...
삶의 애환때문이리라.
또 인연을 맺은 친지들이 때론 힘겹게 살았음에도 여기까지 같이 살아온 시간이 감사해서.
지나온 희노애락의 시간을 흥겨운 밴드소리에 맞춰 노래부르며 다 날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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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외의 놀잇꾼들
부페음식이 남아 콘도방으로 가져와 저녁 잔치를 했다.
대식구가 먹을 음식을 며느리와 딸들이 장만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니 좋은 세상이긴 하구나.
술이 한 차례 돌고, 술안주로 삶과 사람에 대한 불평불만이 끼어들자, 바깥 바람이 쐬고 싶었다.
마침, 야외에선 필리핀 가수의 공연이 있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공연장을 지나쳐 잔디밭으로 갔다.
잔디밭에는 한 꼬마아이가 할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좋아하는 운동이라 옆에서 지켜보며 박수해주며 추임새를 넣어줬더니, 이 꼬마, 더 신났다.
할아버지 말씀에 벌써 세 시간째 이러구 있단다.
그래서 "제 이의 이용대선수가 될라나봐요. 얼굴도 잘 생겼구." 하고 말해주었다.
다섯 살 아이의 집념이 대단하다.
목이 아파서 야외공연장 맥주 마시는 의자에 앉았다.
마침 두 형님과 식구들이 나와 앉았는데, 옆자리 변호사 모임팀원 중 한 사람이 우리의 티셔츠에 새긴 문구에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다.
상황을 말해주자, 축하한다며 축배를 크게 들어주셨다.
이 모습을 보았는지 공연팀에서 생일축하 팡파레를 울려주고, 넓은 공간에 있는 많은 테이블의 낯선 사람들도 다 같이 박수해주었다.
여러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익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그 순간에 축하해주는 건 더욱 기분좋다.
때는 밤이고,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고, 분위기는 올라 있는지라 흥겨운 팝송을 부르는 가수 앞에 한 관중이 나가 춤을 춘다.
이걸 본 옆지기가 내 손을 잡아끈다.
얼씨구나 좋아서 무대앞으로 나가 여기저기 모여든 사람들과 춤을 추었다.
아, 그런데 가족 한 팀이 전부 나와 춤을 춘다.
그 중에 초등학교 3학년쯤 된 남자아이가 옆으로 비스듬히 발차기 춤을 추고 있다.
얼마나 귀엽고 좋아보였는지...
내 아이들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행사 끝나고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 아쉬운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 나의 아이들.
그 아이옆에서 발차기 춤을 지켜보며 손뼉 쳐 주었다.
테이블에 앉아 맥주마시며 손뼉치는 사람들.
길 옆에 서서 손뼉치며 웃는 사람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갑자기 흥겨운 춤놀이판에 어울어진 것이다.
공연이 10시에 끝나는데, 30분간 연장이 되어 끝났고, 그래도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분위기가 멈춘다는 게 아쉬웠다.
정말 못 잊을 분위기였다.
이 일체감을 뭐라고 표현할까.
충만한 해탈의 시간이랄까.
우리는 모두 자유롭게 풀어져서 기쁨을 누렸다.
게다가 초등학생과 아이의 엄마가 같이 춤자리에 있어서 건전한 분위기도 한 몱을 해주니, 행복감이 배가된 듯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의 충일감을 누렸다.
첫댓글 문정숙샘!!! 큰일 치루셨군요.
언제나 밝은 모습일것같아 큰일도 즐겁게 웃으며
기쁘게 해내셨을것 같아요.
뜻깊은 팔순잔치. 어머님을 울렸다 웃겼다 했지요?
어머님이 뿌리신 많은 자손들의 효심에 감동하시면서요.
행복한 어머님 이시군요. 아름다운 정경이었을것 같네요.
근데.... 왜 협회엔 안나오시는거예요? 보고픈데요.......
우리 어머님,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지금도 농사지으신답니다.
혼자 몸으로...
어느 날 시댁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몸조심하시라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
'까짓꺼 죽으면 말지 뭐.' ...
그것도 웃으면서...
가끔 놀래요. 나이 드신분께 배울 게 얼마나 많으지 모르겠어요.
제 눈이 어둡고, 귀가 밝지 못해서 못 배우죠^^
어머님이 그 날 행복하셔서 기분 좋았어요^^
팔순 어머님께 커다란 행복을 안겨드렸군요
그날의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네^^ 어머님이 모두들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그러셨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 글을 올린 건,
혹 우리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이 보고 응용할 수도 있겠다 싶어 올린것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