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과 에스테르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저희는 유관순 누나의 노래를 불렀지요. 그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면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던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면
유관순 누나를 불러 봅니다.
지금도 그 목소리 들릴 듯 하여
푸른 하늘 우러러 불러 봅니다.
오늘 독서는 요나 예언서이지만, 전례적으로 다른 해는 에스테르기 말씀이었습니다. 에스테르기는 구약 성경의 역사서의 하나로, 에스테르라는 여인이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어 유대 민족을 큰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아주 극적인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해 썼던 글을 토대로 삼일절 아침에 유관순 누나와 에스테르의 관계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은 성경에 담겨 있는 기도문 중에 가장 절절하고 아름다운 기도라고 할 수 있는 에스테르의 기도 부분입니다. 오늘 삼일절 아침에 에스테르의 기도를 들으며 저는 유관순 누나를 떠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민족을 위해, 몸 바치려 했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유관순 누나는 실제로 몸을 바쳤고, 에스테르는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에게 나아갔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똑같았습니다.
에스테르기는 페르시아 왕국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 중의 한 사람이던 주연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 그리고 조연으로 페르시아 왕과 페르시아의 제2 인자가 하만 등의 등장인물이 연기를 펼치는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극적인 묘미를 지니고 있는 드라마에서 에스테르가 역할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는 지에 대한 과정, 모르도카이의 꿈을 통한 하느님의 역사하심, 즉 그 과정에서 모르도카이가 어떻게 임금의 목숨을 노리는 역적모의를 알아내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르도카이와 페르시아의 제 2 인자가 된 하만과의 관계,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과 암투, 음모 등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에스테르기를 직접 읽어 보시기를 권하며, 이곳에서는 간략하게 그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이 극적인 이야기는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에서 일어납니다.
제1 장은 모르도카이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꿈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역사를 알게 된 그는 내시들이 임금을 해치려는 계획을 알게 되고 그것을 임금에게 보고하여 임금은 화를 면하게 되고, 그 사실을 기억하려고 기록하여 두게 하고, 나중에 반전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왕비 폐위와 새 왕비 선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은 그의 재위 3년이 되던 해에 나라의 중요 인물들을 초대하여 큰 연회를 베푸는데, 그 자리에서 왕비 와스티의 미모를 과시하려고 그녀를 부릅니다. 그런데 그녀가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습니다. 격분한 임금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심하며 현인들에게 문의를 하게 되지요. 이런 면에서 에스테르기가 지혜 문학서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인의 한 사람인 므무칸이 왕비의 처사가 다른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면서 그녀를 폐위시킬 것을 주장하게 되고, 결국 새로운 왕비를 뽑게 되는데, 모르도카이라는 유다인의 사촌동생이자, 양녀인 처녀 에스테르가 뽑히게 됩니다. 모르도카이는 그녀에게 자신의 출신, 즉 민족과 인척 관계 등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에스테르는 자신의 출신에 대해 일체 함구합니다.
역적 모의를 밝혀낸 모르도카이는 궁궐 대문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임금은 하만이라는 자를 중용하여, 하만은 페르시아의 제2 인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당시 최고의 권력을 지닌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만 모르도카이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만은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모르도카이를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는 모르도카이 하나만을 해치우는 것으로는 눈에 차지 않아, 모르도카이가 유다 민족인것을 알고 유다인들을 모두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유다인 몰살의 날이 주사위로 결정되는데 아다르 달 13일이었습니다.
그 음모를 알게 된 모르도카이는 왕비 에스테르에게 임금이 유다인들 암살 계획을 철회하도록 해 주라고 요청하지요. 처음에는 부름을 받지 않은 채, 임금에게 나가면 사형이라는 법 때문에 망설이지만, 결국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닌 그녀는 하느님께 절절한 기도로서 도움을 청하고, 용기를 내어 임금에게 나아갑니다.
그녀의 기도가 바로 오늘 독서의 내용인 4장에 있습니다. 에스테르가 임금에게 나아가기 전에 절절한 기도를 드린 대목에 깊이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에스테르의 기도 앞에 모르도카이가 드린 기도도 있고, 그 기도도 에스테르의 기도와 함께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지닌 전형적인 아름다운 기도의 표본입니다.
먼저 모르도카이의 기도의 일부를 듣겠습니다.
“주님, 주님, 만물을 다스리시는 임금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으며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구하고자 하시면 당신을 거스를 자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방자한 하만에게 무릎 꿇고 절하지 않음은 제가 교만해서도 오만해서도 명예를 좋아해서도 아님을 주님,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의 발바닥에라도 기꺼이 입 맞추었으리다. 제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인간의 영광을 하느님의 영광 위에 두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주님이신 당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무릎 꿇고 절하지 않으오리이다. 이제 주 하느님, 임금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당신의 백성을 돌보아 주소서!
에스테르가 모르도카이에게 말합니다.
“가서 수사에 살고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모아 저를 위하여 함께 단식해 주십시오. 사흘 동안 밤이고 낮이고 먹지도 마시지도 마십시오. 저도 마찬가지로 저의 시녀들과 함께 단식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법을 거스르는 것이긴 하지만, 임금님께 나아가렵니다. 그러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에스테르의 민족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는 결의는 유관순 누나의 결의에 결코 못지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음은 오늘 독서인 에스테르의 기도의 일부입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는 당신 앞에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저희를 원수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저희가 그들의 신들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주 아브라함의 하느님! 만물 위에 권능을 떨치시는 하느님 절망에 빠진 이들의 소리를 귀여겨들으시어 악인들의 손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또한 이 두려움에서 저를 구하소서.”
민족을 구하기 위한 그녀의 절절한 기도는 모든 하느님의 역사하심 앞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먼저 있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에스테르가 하만이 꾸민 유다인을 몰살하려는 음모에서 민족을 구해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하느님의 도우심을 비는 절절한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에 이어지는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단지 아름다운 용모를 지녀 왕비가 되었지만 평범하던 유다인 여인, 에스테르가 어떻게 해서 목숨을 걸고 자기 민족을 구해 낼 만큼 강하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변모되는 지를 보게 됩니다. 에스테르는 자기 민족의 몰살이라는 엄청난 음모를 알게 되고, 자기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그 음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과 민족을 지키는 길을 향해 모험의 여정을 걷게 됩니다.
에스테르기는 일반적으로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저에게는 지혜문학서로 느껴집니다. 에스테르가 지닌 지혜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묵상하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에스테르기를 ‘미드라쉬 문학’으로 보기도 합니다.
‘미드라쉬’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설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일종의 성경해석 방법론이지요. 에스테르기를 ‘미드라쉬’로 보는 학자들은 에스테르기가 창세기 37-50장에 등장하고 있는 요셉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줄거리로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 이야기에 대한 해설을 위한 또 다른 이야기로 보는 것이지요.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저는 이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와는 또 다른 정통성을 지니고 있고, 아름다운 기도문과 함께 휠씬 더 극적인 반전이 들어 있는 탁월한 지혜문학서라고 생각합니다. 유관순 누나가 지녔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용기, 예스테르가 지녔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민족을 구하려고 목숨을 내 건 사랑과 용기. 저에 게 오늘을 위한 묵상거리입니다.
오늘 삼일절을 보내며 저도 진정 나라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며 기도하렵니다.
첫댓글 민족을 구하기 위한 에스테르의 절절한 기도는
유관순의 나라와 민족의 구하기 위한 간절함과 다름이 없음을
신부님의 글을 통해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모든 하느님의 역사하심 앞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우선이라는 것을
삼일절인 오늘 신부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닫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굳건한 신뢰..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