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빈안씨 묘역(昌嬪安氏 墓域,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호)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9-10 국립서울현충원 경내에 위치한다.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후궁이며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안씨(昌嬪安氏, 1499∼1547)의 석물 1基, 분묘 1基, 토지 414.3㎡에 조선시대에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와 묘소이다.
묘역(墓域)의 봉분(封墳)에는 호석(虎石)을 둘렀고 봉분 뒤에는 곡장(曲墻)을 설치하였다. 신도비를 비롯하여 묘표(墓標),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장명등(長命燈)을 세웠다.
창빈 안씨(昌嬪 安氏)는 중종 2년(1507) 9살의 나이에 궁녀로 들어갔으며, 풍모가 단정하고 행동이 정숙하여 20세에 중종의 총애를 입게 되어 22세에 상궁(尙宮)이 되었고 31세에 숙원(淑媛), 이어 숙용(淑容)까지 품계가 올랐다. 중종과의 사이에서 영양군과 덕흥대원군, 정신옹주(2남 1녀)를 두었다. 둘째 아들이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다.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河城君)이 후손이 없는 명종을 이어 제14대 임금(선조)으로 등극하자 1577년(선조 10)에 창빈(昌嬪)으로 추존되었다.
창빈안씨 묘(昌嬪安氏 墓)는 처음에 1550년(명종 5) 3월 경기도 양주 장흥 땅에 있었으나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다음해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묘 왼쪽으로는 숙종 9년(1683)에 세운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그녀의 자손이 왕위를 계승하였기에 후궁으로는 드물게 묘역에 신도비를 세웠다. 비문은 신정이 지었고 글씨는 이정영이 썼다. 이곳은 조선시대 후궁의 묘역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문화재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