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의 경고음
전홍구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1도를 가볍게 여겨왔다.
“바닷물 온도가 고작 1도쯤 올라간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겠는가.”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했다.
온도계 눈금 하나의 작은 변화처럼 보이는 1도는 우리의 일상에서 별것 아닌 숫자였다. 뜨거운 국에 물 한 컵을 더 붓거나 추운 날 외투를 한 겹 더 걸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에서의 1도는 달랐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바다의 열을 바꾸고 빙하를 녹이고 대기의 흐름을 흔들며 비와 바람의 양상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최근 네팔과 티베트 접경지역에서 일어난 참혹한 재난을 접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1도’라는 숫자를 생각하게 되었다.
2026년 8월 26일, 히말라야 지역에서 빙하와 암석이 무너져 내리면서 엄청난 양의 물과 토사와 바위가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광경을 뉴스로 보았다. 순식간에 마을과 도로와 다리가 사라졌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8월 31일 현재 네팔에서만 1,016명이 숨지고 5,047명이 실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이 무너지고 계곡이 할퀴어지고 흙탕물이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한 편의 재난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이 참사를 단순히 “바닷물 1도 상승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빙하 붕괴에는 기온 상승뿐 아니라 지질 조건 암석의 불안정성 강우와 지형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고산 지역의 빙하와 영구동토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러한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날의 네팔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 주변의 바다를 생각했다.
히말라야의 눈과 얼음이 우리나라의 바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지구는 하나의 몸이다. 산에서 일어난 변화와 바다에서 일어난 변화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여도 결국 하나의 기후 시스템 안에서 움직인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물 온도의 변화이다.
기상청은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7℃ 높았으며 해양 열파도 심하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연평균 해수면 온도가 높았던 상위 4개 연도가 2021년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는 분석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바다가 따뜻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여름 바닷물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열 저장고다. 바다가 더 많은 열을 품으면 바다 생태계가 변하고 어종의 이동이 달라지고 해양 열파가 잦아지며 폭우와 태풍 같은 극한 현상의 위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가 식탁에서 만나는 생선 한 마리도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파도 한 줄기도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기후의 그물망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는 괴물이 아니다.
아주 조금씩 다가온다.
겨울이 예전보다 따뜻해지고 봄꽃이 일찍 피고 여름이 길어지고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한동안 비가 오지 않다가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린다. 바다에서는 익숙했던 물고기가 사라지고 낯선 생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모두 작은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은 변화가 오랫동안 쌓이면 결국 큰 변화가 된다.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바위를 뚫듯이 기후의 작은 변화도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쌓이면 인간의 삶을 뒤흔드는 힘이 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역시 기후변화가 이미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산불 등 극한기후의 위험과 피해를 증가시키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과 해양의 변화가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지속적인 위험을 불러오고 있다고 평가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설마’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까지야 아직은 괜찮겠지.”
“내가 사는 동안에는 별일 없겠지.”
이런 생각이야말로 기후변화를 키우는 가장 무서운 태도인지 모른다.
기후변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에너지 생산과 산업 구조를 바꾸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며 도시와 농촌의 재난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바다와 산림과 습지를 보호하는 일은 정부와 기업과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재난이 닥치기 전에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하다.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위험지역을 살피고 빙하가 무너지기 전에 변화를 관측하고 홍수가 오기 전에 경보를 울려야 한다. 기상과 수문 자료를 공유하고 위험지역에 조기경보 체계를 갖추며 주민들이 실제로 대피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훈련도 해야 한다.
네팔 참사는 우리에게 바로 그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번 재난에서도 조기경보와 위험 정보 공유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가장 근본적인 해답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줄이는 데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더 심고 전기를 조금 더 아껴 쓰고 가까운 거리는 걷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작은 실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에너지와 산업, 교통과 소비의 구조 자체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에너지가 내일 누군가의 삶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네팔의 참사를 바라보면서 산을 무너뜨린 것은 단지 물과 얼음과 바위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인간의 무관심도 함께 흘러내린 것은 아닐까.
‘고작 1도’라고 말했던 우리의 안일함.
‘아직은 괜찮다’라고 외면했던 시간.
‘다음 세대의 문제’라고 미루어 두었던 책임.
그 모든 것이 어느 날 거대한 흙탕물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덮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1도는 작다.
하지만 지구에는 1도는 작지 않다.
바닷물 온도가 조금 오르고 얼음이 조금 녹고 대기의 온도가 조금 달라지는 동안 지구는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나 우리가 그 신호를 듣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들어야 한다.
산이 무너지기 전에 강이 넘치기 전에 바다가 마을을 삼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멈추어 서서 지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형편을 보자
전국이 가뭄으로 해갈을 바랐건만 3일째 내린 비로 인해 흙탕물이 범람하여 농작물을 덮치고 토사가 민가를 덮쳐 가옥이 붕괴하고 물이 넘쳐 비닐하우스가 부서지고 잠겨 1년 농사를 망치지 않았던가?
그 비를 전국에 골고루 내리지 않고 어느 지역은 비가 오지도 않았고 어느 지역은 지나가 버리고 어느 지역은 시간당 80mm가 넘는 물 폭탄으로 퍼붓는 불공평한 일이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닌 걸 보면 이 또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아니겠는가.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다.
우리의 밥상이며 우리의 집이며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 아이들의 내일이다.
우리는 이제 ‘1도’를 더 이상 작은 숫자로 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지구가 보내는 경고음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는 그 경고음을 듣고 행동할 시간이 남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지금이 어쩌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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