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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자의 여유(1)
비참한 흡연시대의 나는 담배 없이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담배로 죽어버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담배를 끊은 지금도 "종종 피우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아니요, 전혀!" 그렇다. 정말로 전혀 피우고 싶지 않다.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과학적 이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게다가 33년 동안 담배를 피워왔던 나로서도 믿어지지 않는, 내가 담배를 끊었다는 이 마법과 같은 사건은 정말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전에는 몇 주 간이나 캄캄한 어둠의 고통 끝에서도 결국 끊을 수 없었던 담배를 어느 한 순간 이렇게 너무도 간단 하게 끊게 되었다는 불가사의한 체험. 최면술이나 금연에 관한 많은 책들을 찾아 읽어보았지만 납득이 가는 설명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과연 어떻게 담배를 끊을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나는 좀처럼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뒷문에서 앞문에 걸린 문패를 찾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즉, 단편적으로 '어떻게, 왜, 간단히 끊어버릴 수 있었는가? 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어떻게 끊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왜 금연이 어려운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를 끊으려고 하면 지독한 금단현상이 생긴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나의 경우 육체적 금단현상은 '제로'였다. 괴로운 것은 몸이 아니다. 금연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끊을 수 있다
현재 나의 직업은 금연 컨설턴트이다. 나의 테라피는 대단히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고 지금까지 몇천 명의 금연을 도와줘 왔다. 이제부터 나의 방법에 따른 금연법을 시작하려 한다. 잠깐!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놓아야할 문장. 언제라도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전제. 이 문장을 단단히 마음에 새겨 놓아라.
누구라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기본적으로 사람은 '두렵기'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두렵기'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한다. 담배가 없으면 인생이 재미 없어지지 않을까? 손해를 보지는 않을까? 이런 불안감을 흡연자는 항상 안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불안은 의미가 없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즐겁다. 그것도 피우고 있는 사람보다도 안 피우는 사람이 몇십 배, 몇천 배나 훨씬 즐겁다. 건강이나 생활의 활력, 금전적인 이득 등은 금연으로 얻게 되는 당연한 수확이지만, 금연에는 그 이상으로 멋진 것이 많이 있다. 누구나 간단히 담배를 끊을 수 있다. 당신도 그렇다!
마음을 열고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면 할수록 그만큼 금연도 쉽게 할 수 있다. 설사 충분히 이해할수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간단히 끊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의 방법대로 금연법을 실천했는데도 실패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아래 사항들 중 하나가 원인일 것이다.
첫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이 책의 지시가 때로는 마치 강요하는 것 같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담배를 억지로 줄이려고 하지 말라든지, 과자나 껌과 같은 대용품(특히 니코틴을 함유한 것)을 사용하지 말라든지..... 이 책의 방법은 사실 독단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담배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담배 맛을 내는 대용품 등을 사용하여 담배를 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용품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 그 대용품 때문에 끊을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하나 하나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금연을 보다 간단히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며 금연 성공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한 지침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둘째,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생각과 이야기에 대해 하나라도 의심해서는 곤란하며, 그저 안이하게 당연하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대면하기 바란다. 덮어놓고 나의 이야기를 의심하기 전에, 먼저 담배에 대한 지금까지의 당신 자신의 생각이나 담배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에 대해 의심을 품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담배는 단순한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고 생각하는 당신. 자 그럼, 당신의 생각대로 담배를 습관이라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다른 습관들은(아무리 즐거운 습관이라 할지라도) 별 어려움 없이 끊을 수 있지 않은가? 다리를 흔들어 대는 습관, 코를 만지는 습관, 시도 때도 없이 잘 웃는 습관..... 고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다지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지 않고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맛도 좋지 않고 돈만 공중에 날리고 당신을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습관' 하나 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울까? 그리고 '담배가 맛있다' 고 생각하는 당신. 정말 담배가 맛있을까?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평생 아무 일도 안하고 맛있는 음식만을 먹는다 해도 다 못 먹고 세상을 마감할 만큼..... 다가 그런 음식을 못 먹는다 해도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왜 당신은 담배만은 언제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담배가 없으면 패닉 상태에 빠져버리는가? 정말 담배가 너무 맛있어서?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이토록 쉽게 금연할 수 있는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담배를 끊지 말라. 지금까지의 금연법은 시작할 때는 에베레스트에라도 올라가는 기분이지만 2∼3주 정도가 지난 후에는 저도 모르게 무작정 담배 생각이 나고 피우고 있는 사람이 마냥 부러워지는, 그런 대책 없는 방법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신이 나쁜 병을 극복했을 때처럼 '의기양양하게 지금 바로 금연하고 싶은 기분이 들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금연법으로 담배를 끊은 다음에는 담배가 생각날 때마다 '그 때는 왜 그 따위 것을 피웠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리라.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부럽기는커녕 측은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담배를 끊지 말기 바란다. 이런 지시는 모순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단 그냥 받아들이기 바란다.
나는 이제부터 담배에는 아무런 이점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 피우고 있는 당신자신도 손가락 사이의 담배를 바라보면서 '왜 이런 것을 피울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이것은 담배의 수많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멀쩡한 새 담배를 그냥 내버리면 아깝다고 생각한다. 또 흡연자인 당신은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고 있으므로, 그렇게 믿고있는 한 담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절대 편안한 상태에 도달할 수도 어떤 일에 집중을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피워 온 담배를 지금 바로 끊으려고 조급해 하지 말고, 우선 이 책을 다 읽어 마음의 자세부터 충분히 갖추기를 바란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담배에 대한 당신의 욕망은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단, 어떤 때는 지시를 따르고, 어떤때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둥, 엉거주춤하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결단성 없는 행동은 반드시 실패를 초래한다. 따라서 당신은 이 책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내가 금연에 성공했을 때, 친구나 친척 중의 몇 사람도 나와 께제 깨끗이 금연에 성공했다. 그들은 단지 내가 담배를 끊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금연을 시도했다. '저 헤비스모커였던 알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물론 할 수 있다' 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때 나와 함께 금연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후 2∼3년 동안 조금씩 어드바이스를 하여 결국 금연의 쾌감을 체험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후 이 책이 출판되기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여전히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강적들에게는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할지라도 친구가 쓴 책이니 만큼 한번은 읽어 줄 테지.....'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나는 그들이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을 알고 놀라는 한편,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미 담배의 노예가 된 흡연자의 공포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배는 우정보다 강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부부 사이에서도 역시 그러했다."얘야, 담배를 끊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알렌에게 말해 보는 것이 어떻겠니?"나의 어머니가 아내에게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아내는 놀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머님, 알렌이 그런 말에 충격이라도 받을 것 같아 그러세요? 그런 말을 하면 알렌이 먼저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하고 이혼하자고 그럴 걸요!" 흡연자는 이만큼 담배를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흡연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이유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담배를 끊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 때문이다. 담배를 끊어야만 한다는 최악의 날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의해 하루에 한 줄밖에 읽지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당신이 만약 이런 부류에 속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 당장 당신에게 손해가 생기는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잃게 되는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금연을 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지금과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만약 이 책을 다 읽고 금연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당신이 잃어버리거나 손해를 볼 것은 없다(책값이 조금 들었나?). 한 마디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연에 성공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당신도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금연에 성공할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만약, 하루에 몇 개비씩 꼭꼭 피우는 지속적인 흡연자가 아니라 수일 간 별 생각 없이 피우고 있지 않거나 자신이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일부러 담배를 피울 필요는 없다. 며칠에 한 개비씩 피운다 할지라도 이미 흡연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은 '중독증세' 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흡연자로서의 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읽고 나면 확실하게 자기가 흡연자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확실하게 비흡연자가 될 것이다.
흡연의 해독만을 강조한다면 결코 끊지 못한다 이 책의 금연법은 보통의 금연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의 금연법은 우선 담배의 결점과 해독을 길게 늘어놓은 다음 '만일 담배 없이 일정기간만 지낼 수 있다면 피우고 싶은 욕망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담배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논리적인 방법이고 매일 이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금연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금연에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첫째, 지금 피우고 있는 담배를 끄는 순간 당신은 일단 담배를 끊은 셈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금연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많은 담배의 해독과 결점을 생각하여 금연 첫째 날에는 '이제 결코 피우지 않을 테야'라고 다짐한다. 남겨진 인생을 떠올리면 담배는 상상 이상으로 겁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금연 바로 그 다음날인 이틀 째이고 십일 째 이며 백일 째이다. 의지가 약하게 된 순간, 술마시는 김에, 마음이 산란해서, 화가 나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등등 이유를 대며 '잠깐 한 모금'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흡연은 일종의 마약 중독이다. 일단 한 개비 입에 대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반드시 또 한 모금이 그리워진다. 이렇게 해서 다시 흡연자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둘째, 건강을 생각하면 담배는 절대 피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긴장했을 때 담배를 피우고 싶어진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아, 어떻게 하지..... 담배 때문에 몸이 너무 나빠지는 것 같아. 아, 담배를 끊어야 할 텐데..... 아, 너무 걱정을 하니까 긴장이 되는군!' 이러는 사이에 손가락 사이에는 어느새 한 개비의 담배가 들려져 있다. 흡연자에게 '당신, 그렇게 계속 담배를 피우면 머지않아 죽게 돼' 라고 말하면 그 흡연자는 바로 그 순간 담배에 불을 붙일 것이다. 마스덴 병원(역자 주 : 영국의 유명한 암 전문 치료센터)의 앞길에는 다른 어떤 병원보다도 많은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셋째, '담배를 끊으면 왜 좋은가? 를 생각하면 오히려 금연이 어렵다. 왜냐하면,
1)담배는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오랜 옛 친구,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의 의지가 되는 존재이다. 삶의 기쁨이기도 하고 즐거운 취미이기도 하다. 담배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이든 간에 '담배는 결점이 많은 물건이다' 라는 생각을 무리하게 스스로 에게 강요하여 금연하려 한다면 마음 속에 심한 거부감이 일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과 친했던 어떤 존재를 부정한다는 사실에 대한 희생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2)끊어야 할 이유만을 생각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끊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왜 피우고 싶어지는가? 꼭 피울 필요가 있는가?' 를 생각하는 쪽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책의 간단한 방법은 이러하다. 우선 담배를 끊고 싶은 이유, 끊어야만 하는 이유는 모두 잊어버리기 바란다. 담배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에 만들어져 이미 존재하는 이상, 담배는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단지 담배를 피우는, '흡연' 이라는 행동-결과적으로 사람의 건강과 일상생환에 커다란 피해를 일으키는-이 문제인 것이다. 자, 그러면 흡연 문제를 직시하고 다음의 질문들을 스스로에 게 던져보자.
·나는 담배를 무엇 때문에 피우는가?
·나는 정말로 흡연을 즐기고 있는가?
·많은 돈을 들여 이따위 것을 입에 물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잦은 기침으로 목을 아프게 할 만큼!
담배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것은 실로 명확한 사실이다. 담배는 이점보다 해로운 점이 많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흡연의 이점은 없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담배를 손에들고 있는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찾아본다면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된다고 하는 정도일까? 그러나 최근에는 흡연자들 사이에서조차 담배는 비사교적인, 오히려 '사교에 방해가 되는 물품' 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담배에 필요성과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심지어 자신의 흡연에 대해 정당성과 합리적인 이유를 붙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허구이고 환상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되면 우선 이런 허구나 환상을 깨뜨리게 될 것이며, 금연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담배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환상도..... 담배를 끊어버림으로써 얻는 건강이나 금전 같은 사항들은 좋은 점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담배를 끊으면 인생은 재미없어진다'는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인생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희망을 성취하는 데 커다란 뒷받침이 될 것이다. 희망..... 즉, 당신의 남은 인생을 담배의 노예가 되는 일 없이 마음껏 즐기는 것 말이다!
왜 담배를 피우는지 그 이유를 대답할 수 있는가?
'끊는다' 수백 번 다짐하면 무엇하랴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흡연 문제에 부딪치기로 했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금연 시도에서는 정말이지 몇 주간이나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을 견뎌 내야 했다. 때때로 기분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다시 우울한 기분으로 되돌아왔다. 마치 밑바닥이 없는 한없이 깊은 함정에 빠진 것처럼, 헤매어 겨우 출구를 찾아 태양을 보게 되었나 싶으면 다시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결국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이렇게 맛없는 것을 왜 피우지 않으면 안 될까? 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다. 나는 나의 테라피에 온 금연 희망자에게 우선 이렇게 질문 한다. "담배를 끊고 싶습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하면 바보 같은 질문일 수도 있다. 흡연자라면 누구나 담배를 끊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상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물어 보라.
"당신은 이미 담배에 중독됐지만 만일 흡연을 시작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다시 담배를 피우겠습니까?" 아무리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이라도 대답은 "천만에!"일 것이다.
확실한 흡연자-즉, '담배가 건강을 해치고 있다' 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 사람, 사회적 오명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 담배를 살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갖춘 사람(최근 이런 사람들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지만)-에게 질문해 보기 바란다. "당신의 자녀에게도 흡연을 권합니까?" 대답은 역시 "천만에!"일 것이다.
흡연자는 모두 어떤 악령과 같은 것이 자신의 몸에 덧씌워졌다고 느끼고 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담배를 끊어야지. 그런데 오늘은 아니고 내일부터 끊자'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나는 자제심이 없어', '난 선천적으로 흡연이 필요할 지도 몰라', '내 몸은 담배에 강한 체질이야' ,'인생을 즐기는 데 담배가 빠져서는 안 되지' 등의 갖가지 이유를 생각해 흡연을 정당화하게 된다.
흡연이란 정말 불가사의한 행위이다. 단지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거리낌없이 피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따위는 시간과 금전의 낭비일 뿐이다. 애당초 흡연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 하면서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이다.흡연자가 흡연을 즐기고 있지 못하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 가? 그런데도 젊었을 때에는 누구나 '흡연은 어른이 된 증거'라고 믿고 필사적으로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은 다음자신의 자녀에게는 '담배를 절대 피우지마라' 고 타이르면서 자신도 필사적으로 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흡연자는 일생을 통해 담배에 거금을 탕진한다. 영국 흡연자의 우 평균 3만 파운드(역자 주 : 약 5,500만원)를 평생 동안 담배값으로 털어 넣는다. 당신에게 지금 그만큼의 돈이 있다면 당신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흡연자는 그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일부러 자신의 폐를 유해한 발암성 화학물질로 가득 채우고 혈관을 독성으로 물들여 고통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고 몸 속으로 들어간 그 화학물질은 매일 온 몸의 세포와 장기로부터 산소를 갈취하므로 몸은 점점 약해져 간다. 불결함, 입 냄새, 담뱃재에 절어 갈색으로 물든 치아, 담배 냄새가 구석구석 밴 옷, 담뱃재와 내뱉은 가래,그리고 침으로 더러워진 재떨이, 버려진 꽁초에서 풍겨 나오는 역겨운 냄새..... 마치 노예생활에 평생 얽매인 몸이 된 것 같은 꼴이다. 흡연자의 인생의 반은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성당이나 교회와 같은 종교 시설, 병원, 학교, 지하철, 극장 등 흡연이 허용되지 않는 장소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그 때마다 담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
다. 게다가 담배를 줄이거나 금연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으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없다. 나머지 인생의 절반은 다행히도 흡연을 허용하는 장소에서 보낸다고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 때도 역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마음 속으로 갈등하고 있으므로 결국 마음의 안식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는 피우지 않고 지낼 수 있기를 바라고, 피우지 않고 있을 때는 본인도 모르게 피우고 싶어진다. 도대체 이래도 '담배는 기호품이다' 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일까? 흡연자는 사회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병균인 것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아무리 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로부터 경멸을 당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 속에서 자기 혼자만이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담배 광고에 곁들여진 경고문을 읽을 때, 암 예방이나 공중위생 캠페인에서 우연히 담배의 해로움을 강조하는 내용을 봤을 때, 어느 날 문득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을 때, 폐가 고통스럽게 됐을 때..... 이럴 때 흡연자는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다. 기쁨, 즐거움, 여유, 마음의 의지, 진정 ,안식, 집중..... 담배가 가져다 준다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전부 환상임을 당신은 깨달아야 한다. 벗었을 때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발에 꽉끼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몇 번이고 말하지만 금연이 왜 어려운가를 설명하기보다, 사람들은 왜 담배를 피우는가를 설명하는 편이 오히려 더 어렵다. 틀림없이 당신은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사실 말하는 그대로야. 그렇지만 흡연이 습관으로 되어버리면 좀처럼 끊을 수없어"라고. 습관이 되었다 하더라도 습관을 바꾸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담배는 끊을 수 없을까? 왜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근거가 애매한)담배를 끊을 수 없는 이유 '금연이 어려운 이유는 니코틴의 금단현상 때문이다'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지만, 사실 금단현상이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이 이를 거의 깨닫지 못하고 일생을 보낼 정도이다. '담배는 맛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담배는 불결하고 달갑지 않은 물건일 뿐이다. 진심으로 한번 물어볼까? 당신은 정말 담배가 맛있어서 피우는가? 흡연자로서 담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기 바란다. 만일 당신이 항상 애용하는 브랜드의 담배를 손에 넣을 수 없고 평소 맛없다고 생각했거나 맛을 모르는 브랜드의 담배밖에 구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대답은 물론 '아니오' 일 것이다. 흡연자라는 존재는 담배를 손에 넣지 못하게 되면 브랜드에 관계없이 남이 피우다 버린 꽁초라도 뒤져서(그것도 없으면 낡은 신문 조각을 말아서라도) 피우고 싶어한다. 맛있다, 없다에 전혀 상관없이..그러니까 담배는 맛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맛'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본질로 들어가면 흡연과 담배의 맛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흡연 행동에 대해 까다로운 심리학적 근거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프로이드 신드롬.' 즉,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던 버릇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보통 우리는 성숙한 어른임을 만천하에 증명하고 싶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만일 다른 사람 앞에서 젖꼭지를 빨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와는 반대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다든지 코로 연기를내뿜는 행동은 남자다운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근거가 모자란다. 만일 귀에서 연기를 내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주 바보처럼 보일것이 자명하다. 하물며 발암성의 유독한 화학물질을 폐로 들이마신다고 한다면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이런 핑계도 있다. '손이 허전해서.' 그렇다면 손에 다른 무엇인가를 쥐고 있으면 되지, 왜 불까지 붙이고 또 입으로 가져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하는 담배를 꼭 쥐고 있는가? '입이 심심해서.' 마찬가지로 입에 무엇을 물었거나 넣었다고 하자.왜 거기에 더해 불까지 붙여야 하는가? '연기가 폐로 스며드는 감촉이 좋기 때문에.' 어쩌면 질식에 이를지도 모르는 길이 '좋은감촉' 이라니?
'따분함을 잊기위해.' 이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따분함이란 단지 기분이 어떤상태인가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몸에 나쁘다, 돈이 든다' 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가 33년 간이나 담배를 피워댄 이유는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이완되고 자신감과 용기가 솟아오르기 때문(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이었다.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는 대신 왜 의사에게 가서 기분이 이완되고 자신감과 용기를 주는 약을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의사가 담배의 대용품을 권하는 것말고는 내릴 수 있는 처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장 완화 어쩌구∼" 하는 것은 흡연의 이유가 아니라 단지 핑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가 피우니까 나도 피운다' 라고? 당신은 정말 그 정도로 바보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기껏 친구가 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을 자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준인가? 친구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 따라할 것인가? 흡연자에게 담배를 피우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습관 때문에.....'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 이것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진부한 여러 가지 핑계를 늘어놓고 소거법을 써서 하나씩 지워나가면 결국 이것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흡연을 '습관' 으로 보는 것은 매우 비논리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매일 습관을 바꾸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아주 즐거운 습관조차 아주 쉽게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식생활은 흡연 중이던 과거부터 금연을 한 지금까지 똑같다. 아침과 점심은 거르고 저녁 식사만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그러나 휴가 중일 때만큼은 아침 식사를 매우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면 아무 고통도 없이 원래의 습관으로 돌아간다. 대단히 맛없고 자칫하면 죽음의 원인이 되며, 돈이 들고 불결하여 속을 메슥거리게 만드는, 당장이라도 끊고 싶은 습관이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끊어버리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데 끊을 수 없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왜 어려운 것인가?
아니다, 전혀 어렵지 않다. 어쩌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주 간단하다. '당신은 왜 담배를 피우는가?' 이 물음에 대한 진짜 이유를 알면 금방 끊을 수 있다. 아무리 길어도 3주 정도면 담배를 완전히 끊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을까?' 라는 불가사의한 의문만이 남을 것이다. 자, 계속 읽어볼까?
당신은 올가미에 걸려 있다
교묘하게 설치된 미끼 없는 올가미 담배의 정체는 교활하고 사악한 올가미이다. 이처럼 정교한 올가미는 인류의 능력으로는 절대 간파할 수 없다. 그러면 과연 누가 젊은이들을 이 올가미로 끌어들이는가? 그것은 바로 이미 올가미에 걸려버린 어른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른들은 '흡연은 불결하고 안 좋은 습관이다. 많은 돈을 말아먹고 나아가 인간을 파괴한다' 고 충고까지 한다.
올가미라도 미끼가 전혀 필요 없는 올가미, 당근을 매달아 놓을 필요가 전혀 없는 올가미가 바로 담배가 아닐까?
이 올가미의 속임수는 '맛있다'는 데 있지 않고 '맛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명한 동물이다. 만일 담배 맛이 달콤하다면 한 대 피운 것만으로도 마음의 경보 벨이 울려 '아! 이렇게 달콤해서 그 많은 어른들이 자기 몸이 파괴될 때까지 많은 돈을 들여 담배를 피우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첫 담배는 지독하게 맛이 없기 때문에 "이래서는 담배에 중독될 리가 없지. 이렇게 맛없는 건 언제라도 끊을 수 있어"라고 누구나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담배라는 마약은 흡연자의 본래의 목적을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게 해주지는 않는다. 남자아이는 강한 남자로 보여지고 싶다거나,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드나 크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되고 싶다' 라는 목적 하에 담배에 손을 댄다. 그러나 처음 한 모금 피워 보면 자신은 남자의 강인함 따위와는 인연이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담배 연기를 한번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한 바탕 큰 고생을 하고,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나면 현기증이 나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나온다. 반면 여자아이는 광고에 등장하는 모던하고 세련된 여성을 동경하여 담배에 손을 댄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여튼 남자아이의 터프가이 흉내가, 여자아이의 세련된 모습이 제대로 틀에 잡힐 무렵, 그들은 '이따위 물건은 애당초 손대지 말았어야 했는데..... '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 내내 흡연이라는 행동에 대해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때로는 금연을 시도하기도 하면서 자녀들에게는 "얘야, 너만큼은 절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라고 부드럽게 타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올가미의 교활한 측면은 스트레스가 가득 차 올랐을 때에만 '금연해 볼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걱정스러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라든가, 경제 사정이 나빠졌을 때라든가 또는 자신이 마치 병균(못난이)처럼 느껴졌을 때이든가 할 때 말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담배를 끊어도, 니코틴의 겁나는 금단현상 때문에 더욱 더 스트레스가 쌓인다. 2∼3일은 고문과 같은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담배를 끊은 시기가 좋지 않았어. 스트레스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자'라는 판단을 내리고 담배를 다시 입에 댄다.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금연할 이유도 당연히 없어지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시기 따위는 물론 오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일은 있어도 줄어드는 일은 없다. 우리들은 부모님의 비호로부터 벗어나자마자 '집을 얻어야 하고, 차입금을 갚고, 자녀를 낳고 출세를 생각한다.....' 고 하는 정해진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사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현대사회가 그렇게 믿도록 조장하고 있을 뿐, 니코틴은 더욱 겁쟁이가 되어 초조해 하는 인간을 만들어 낼뿐이다.
한번 들어서면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미로
흡연은 거대한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단 한 걸음이라도 그곳에 들어서면, 아무리 올바른 정신을 지녔다 하더라도 흐릿한 안개가 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게 되어 죽을 때까지 길을 찾아 헤매야 한다. 다행히 그 미로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던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흘러 자칫하면 다시 빠져들어 헤매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 미로에 자진해서 들어가 스스로 벗어나는 데 33년이 란 세월이 걸렸다. 몇 번 간신히 벗어났을 때에도 어떻게 하여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담배를 어떻게 끊었든, 끊었다는 사실 자체만 기뻐하며 건강하게 경제적으로 만족한 생활을 구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엇인가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담배를 끊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금연은 아주 어렵다고 여겼었는데 쉽게 끊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간단하고 멋지게, 나는 그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알고 싶었다.
담배를 끊고 나자 이 답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취미가 되었고, 결국 회계사라는 훌륭한 직업을 버리고 평생을 걸게 된 지금의 나의 직업이 되어버렸다. 담배의 수수께끼는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인 퍼즐이다. 루빅 큐브(Rubik's Cube)와 같이 풀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있지만 좀처럼 풀기 어려운 퍼즐. 그러나 퍼즐이라는 것은 당신도 알다시피 일단 방법만 알면 아주 간단히 풀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바로 그 퍼즐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당신을 흡연의 미로에서 끌어내고 두 번 다시 들어가 헤매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지시에 따라주기 바란다.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그 다음의 지시를 아무리 잘 따르더라도 전부 무효가 되어 버리므로 주의하면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금연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이 품고 있는 담배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담배의 해독에 관한 책이나 정보는 세상에 많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도 담배의 위험성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겁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서 담배를 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벌써 오래 전에 끊었을 것이다. '금연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먼저 '당신은 왜 담배를 피우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담배를 왜 피우는가?
누구나 사소한 이유 때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친구의 강요와 비슷한 권유나 꼬임, 그것도 아니면 교제상 마지못해. 그렇다면 담배 중독이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된 다음에도 계속 피우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중에 왜 자기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면 흡연과 같은 행동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 담배를 피웁니까?" 테라피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우선 금연 희망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대답은 하나밖에 없겠지만, 그들은 실로 여러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테라피 중에 내 마음이 가장 이상해지고 연민조차 느껴지는 때는 바로 그런 대답을 들을 때이다. 흡연자는 누구나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담배 같은 걸 피울 필요는 손톱만큼도 없다는 것을 중독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피운 담배는 아주 좋지 않은 맛이었으므로 거기에 익숙해지는 데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었다는 것도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가장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것은 비흡연자들이 여유 있게 웃으며 '담배를 안 피워도 우리는 손해 보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고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것처럼 느껴질 때이다.
흡연자도 본래는 현명하고 이지적인 사람들이므로 담배가 건강에 커다란 해를 끼치고 돈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흡연에 아주 그럴싸한 다른 이유를 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흡연자가 담배를 계속 피우는 진짜 이유는 다음의 두가지이다.
첫째, 니코틴 중독 둘째 , 세뇌당한 결과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담배는 습관이 아니라 마약 중독이다
금단현상의 악순환을 끊어라. 니코틴은 담배에 함유된 무색의 유성물질로 사람들에게 의존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이 담배에 의존하게 되기까지의 속도는 그 어떤 마약보다도 빨라서 담배를 한 개비만 피워도 바로 중독에 빠지게 된다. 담배를 한 개비 피울 때마다 니코틴이 폐에서 뇌로 운반되는 속도는 헤로인을 혈관에 주입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 한 개비의 담배로 20모금을 피우면 단 한 개비로 20회분의 마약을 먹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니코틴 성분이 혈액에 흡수되는 반응 속도는 매우 빨라서, 흡연 30분 후 혈액 내의 니코틴량은 절 반(50%)이 되고, 한시간 후에는 4분의 1(25%)로 떨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흡연자는 일정한 농도의 니코틴을 체내에 유지 하기 위해 하루 20개비 정도를 피우는 것이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면 체내의 니코틴은 재빠르게 감소하여 금단현상(이탈증상)을 일으킨다. 여기서 우선 거의 모든 흡연자가 안고 있는 금단현상에 관한 오해를 풀도록 하자. 담배를 끊으면 금단현상이라는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금단현상은 사실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이것은 즐거움이나 의지할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데에서 기인한다(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상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니코틴에서 비롯되는 육체적인 면의 금단현상은 아주 가벼우므로 자신이 니코틴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많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니코틴 중독' 은 틀림없는 '마약 중독' 이다. 니코틴은 다행히 끊기 쉬운 마약이지만 끊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중독상태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니코틴의 금단현상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다. 단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침착하지 못하고 불안한 느낌을 갖게 할 뿐이다. 많은 흡연자가 담배를 '손' 과 관련시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흡연자가 이처럼 정신적인 면에서 금단현상을 오랫동안 맛보게 되면, 긴장되고 불안한 감정상태에 빠지게 되고 자신감이 없어져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이 때는 공복감과 같은 상태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음식에 굶주린 것이 아니라 니코틴이라는 독물에 허기진 것이다. 바로 이 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가져가면 7초 후에는 니코틴이 몸 속에 완전히 공급되어 허기로 인한 불안감은 안도감과 자신감으로 변하게 된다.
흡연이란 정말 불가사의한 행위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모두 '나는 바보다, 나쁜 녀석의 노예가 되었다' 고 생각한다. 단지 담배를 피움으로써 얻어지는 평온이 자그마한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여 담배를 피우지만,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평온이나 자신감은 담배를 피우기 전부터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혹시 이런 경험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아주 작아서 특별히 주목되지는 않지만 왠지 신경이 쓰이는 것(예를 들어 가까운 곳에서 하루종일 울어대고 있는 경보기)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평온과 안식의 기분이 몸 가득히 차 오르는 것을..... 그러나 사실 이것은 진짜 안식이 아니다. 단지 계속 악화되고 있던 것이 일시적으로 진행을 멈춤으로써 오는 정지 효과 같은 것일 뿐이다. 깨끗하고 완벽한 몸에 니코틴을 주입하고 그 니코틴이 사라질 무렵에 금단현상이 나타난다(어디까지나 육체적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것은 몸에 물방울이 살짝 떨어지는 것과 같이 감지 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해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지면 불을 붙인다. 그러면 잠시 후 갈망감이 엷어지고(경보음이 들리지 않게 되고) 자신감이 살아난다(평 온을 느끼게 된다).니코틴 중독이 되기 전에는(경보음이 들리기 전에는) 언제나 늘 지니고 있던 바로 그 자신감(평온)이 말이다. 그러나 담배가 가져다 주는 만족감은 일시적이므로 갈망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니코틴을 몸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한 개비 피울 때마다 갈망감이 머리를 쳐드는데, 이악순환은 점점 계속된다. 일생 동안..... 자신이 스스로 끊어 버리지 않는 한은 흡연자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둘째, 담배는 효과가 역방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은 그 어떤 종류의 마약에도 해당된다. 즉, 피우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된다. 고통의 원인이 담배 탓이라고는 짐작도 못한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 안심한다. 따라서 담배가 기쁨이자 마음의 의지가 핀다고 오해한다. 셋째, 태어났을 때부터 담배가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나이에는 생활 습관이 거의 확립되어 있다. 그러나 한 번 담배를 배우면 담배가 마음의 의지나 기쁨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느껴져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이미 담배의 세뇌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 단계에서 그들은 이미 '즐거운 흡연자 무리' 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담배에 품고 있는 당신의 환상을 제거시키기로 하자. 담배는 '습관'이 아니다. '마약 중독'과 같은 것이다. 아니, '∼같은 것' 이 아니라 단정적으로 니코틴이라는 마약 중독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중독과 싸울 수 있는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은 담배를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것이다. 구입하지 않으면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구입하는 양도 점점 늘어난다. 이것은 다른 마약과 마찬가지로 몸 속에 니코틴에 대한 면역이 생겨 니코틴을 흡수해야만 하는 양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단현상은 당신이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마다 몸에 이완을 맛볼 수 있도록 담배 자체가 만들어 내는 환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 환상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이 상태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면 금단현상은 완전히 치유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네 가지 이유
담배를 계속 피움에 따라 더 많은 고통이 몸 속에 남게 되는데, 이것은 아주 꽉 끼는 구두를 일부러 신으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또 한 대를 다 피우고 나면 니코틴이 금방 몸 속에 흡수되므로, 특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상황에서의 체인 스모킹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담배는 습관이 아니다. 당신이 담배를 계속 피우는 건 당신 몸에 달라붙어 있는 작은 악마의 탓이다. 그 악마에게는 때때로 먹이가 필요하다. 언제 먹이를 줄 것인가는 흡연자 자신이 결정하지만 대개 다음의 네 가지 중 하나 이거나 또는 그것들이 서로 조합되었을 때이다.
첫째, 심심할 때
둘째, 집중이 필요할 때
셋째, 스트레스를 느낄 때
넷째, 몸에 편안함과 이완이 필요할 때
어떤 일정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피운 지 20분이 지난 후에는 완전히 역효과를 나타내는 마약같은 것이 담배말고 세상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게다가 인간의 삶 속에서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들어맞지 않은 상태란 잠잘 때를 제외하고 또 있을까? 사실 담배는 심심함이나 스트레스를 없애 주지도 않을 뿐더러 집중력을 높여주지도, 이완 상태로 만들어 주지도 못한다. 이것은 모두 환상일 뿐이다.
니코틴은 마약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독극물이기도 하므로 살충제에도 사용되고 있다. 담배 한 개비에 함유되어 있는 니코틴을 직접 혈관에 주사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바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또, 담배에는 일산화탄소를 비롯한 여러 가지 독극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 피우고 있는 보통 담배를 파이프 담배나 시거로 바꾸면 괜찮을까? 아니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담배 잎 (엽연초)을 사용한 것이라면 모두 적용된다. 음식물과 독극물을 구별하지 못하면 모든 생물은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아메바나 지렁이조차 먹이와 독극물을 가려서 먹는다. 그런데 유독 고등 생물인 인간만이 제대로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이 지나치게 똑똑하기 때문일까? 인류는 몇 만년이나 되는 역사를 통해 식료품과 독극물을 구분하여 후자는 제거, 배출하는 기술을 몸에 익혀왔다. 인간은 담배에 대한 의존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담배 냄새와 맛을 싫어한다. 담배 연기를 동물이나 어린이의 얼굴을 향해 불어보라.
담배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기침을 하면서 손을 내저을 것이다. 그들에게 담배를 피우게 해 보라. 곧 가래를 삼키거나 '퉤퉤' 하고 연기와 침을 뱉어낼 것이다. 당신도 처음 담배를 입에 댔을 때 연기를 들이마시자마자 '켁켁' 하고 기침을 했고, 그만 자기도 모르게 연기를 많이 들이마셨을 때에는 현기증이 난다든지 속이 메슥거려 기분이 나빠졌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몸이 "독극물을 몸 속에 집어넣는 짓 따위는 제발 하지 말아 줘!"라고 당신에게 비명을 지르며 외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바로 이 단계에서 흡연자가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된다.
생각해 보라. 이런 역경을 이기고 흡연자가 된 당신은 얼마나 '의지가 강한' 사람인가? 그리고 몸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것을 거스르기로 한 당신은 얼마나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는가? 그런데 그런 결단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의도로 당신은 몸의 애처로운 호소도 못 들은 척 하기로 한 것일까?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강하지 않으면 그런 무시무시한 것을 피우기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에 관한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중독 증상에 더욱 더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애써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실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10대의 흡연을 저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10대 흡연자는 흡연을 배우는, 몸에 익히는 과정에 있으므로 헤어나지 못할정도로 완전히 중독된 상태가 아니다.게다가 사실 담배는 맛이 없다고 정확히 느끼고 있다. 따라서 자기가 끊고싶을 때에는 언제라도 끊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흡연자의 대부분은 담배의 맛과 향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또한 환상이다. 담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그 이상한 맛과 냄새에 대한 면역을 스스로 만들어 니코틴을견뎌낼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헤로인 중독자가 헤로인 주사에 빠져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헤로인의 이탈 증상은 대단히 강하므로 중독자는 주사를 맞음으로써 이런 괴로운 증상이 완화되는 쾌감을 즐긴다.
흡연자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담배 맛이나 냄새로 코가 막히더라도 담배에 의존하려 든다.
시가든, 멘솔(박하)이든, 파이프 담배이든 처음에는 이상한 맛이라고 느껴도 조금 참으면 곧 익숙해지게 된다. 또, 흡연자는 감기에 걸려도, 목에 종양이 생겨도, 기관지염이나 폐기종을 앓게 되어도 마냥 담배를 피우려고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피우는 담배의 고약한 맛은 당신도 잘 알것이다. 어떤 사람은 감기 걸렸을 때 피운 담배 맛 때문에 금연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끊을 생각이 없는, 계속 피우려는 중독자에게 담배 맛 따위는 좋든 나쁘든 상관이 없다. 만일 담배의 맛이 흡연과 관계 있다면, 누구라도 호기심이나 기타 다른 이유에 의한 첫 모금 이후에는 두 번 다시 담배 따위는 절대 한 개비도 피우지 않을 것이다. 흡연자 중에는 의사에게서 니코틴이 함유된 껌과 같은 잔인한 대용품을 권유받아 담배대신 그것에 의존하게 되어버린 사람도 많이 있다. 또, 나의 테라피를 통해 자신이 마약중독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에 커다란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오히려 금연이 어렵게 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의 두 가지를 보면 더욱 더 그렇게 느낄 것이다.
첫째, 사람들은 대부분 흡연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담배를 통해 무언가 즐거움을 느낀다. 담배가 마음의 의지가 된다고 굳게 믿으면서 '담배를 끊으면 허무감이 엄습해 오지 않을까? 인생을 두 번 다시 지금과 같은 상태로 보낼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다. 담배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담배는 오히려 당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극히 일부만을 되돌려 환상을 만들어 낸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둘째, 의존하기까지의 속도 측면을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빠른 마약이 니코틴이다. 그런데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마약 중독자들과는 달리 그다지 비참하게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누적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상황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몸 속에 축적된 니코틴의 99%를 배출하는 데는 3주 밖에 걸리지 않는다. 또 육체적인 면에서의 금단현상도 대단히 약하므로 흡연자의 다수가 그 증상을 별반 느끼지 못한 채 지나칠 정도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금연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그리고 힘들여 끊었다 해도 때때로 한대 피우고 싶은 유혹을 참느라 몇 개월씩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 대답은 앞장에서 거론한 두 번째 이유 즉, 당신이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니코틴의 화학작용을 억제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수면중에는 단 한 대의 담배도 피우지 않고도 잠을 깨는 일은 없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첫 담배를 피우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한다. 직장에 출근할 때까지 피우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 밤중의 10시간 동안은 금단현상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비교적 편안하지만, 일과 중의 10시간 동안은 금단현상 때문에 고통스럽다.
흡연자 중에도 새 자동차를 사면 차내에서는 아무리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금연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금연을 강요하는 극장이나 슈퍼마켓, 종교시설 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어도 조금도 조급해 하는 기색이 없다. 지하철 구내가 금연장소라고 해서 흡연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울 수 없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것을 오히려 기뻐할 정도이다.
최근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든지 비흡연자와 함께 지낼 때에도 별로 큰 불만을 느끼지 않고 담배를 삼가는 흡연자도 많아졌다. 또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시간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 지만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담배의 화학작용을 해소(중독이 되어버린 다음에도)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렇지만 그 화학작용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소량을 일생 동안 계속 들이마셔야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들도 역시 헤비스모커와 같은 니코틴 의존증임에는 틀림없다. 또 헤비스모커로서 일단 금연에 대체적으로 성공했지만, 아직 완전히 끊지 못하고 때때로 한 대씩 피우는 사람도 역시 니코틴 의존증 환자이다.
절대로 '너무 늦었다' 는 경우는 없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니코틴의 화학작용 자체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니코틴이 할 수 있는 것은 '진실된 문제' 를 응시하려는 흡연자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짓궂은 장난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 '진실된 문제'란 무엇인가..... 바로 '세뇌'이다. 금연 자체는 오래 전부터 피워온 사람이나, 최근에 피우기 시작한 사람이나, 많이 피우는 헤비스모커나, 적게 피우는 사람이나 상관없이 아주 간단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당신은 마음속으로 위로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하여튼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금연은 담배를 피운지 오래된 헤비스모커일수록 간단하게 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피웠을수록 중독 증상은 무거울 것
이고 그럴수록 끊었을 때의 수확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는가? 몸 속에 찌들어 밴 니코틴의 더러움을 완전히 씻어내는 데에 7년이 걸린다든지, 담배 한대 피우는 데 수명이 5분 단축된다든지와 같은 말들을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올바르지도 않고 신빙성도 약하다. 그러나 이렇게 담배의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도 '공연히 허풍 떨고 있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담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줄여서 말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과장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 정확히 5분인지 어떤지는 그저 억측에 지나지 않고, 그것도 치명적인 병에 걸렸든가 몸 속이 지나치게 오염되어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
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몸 속의 더러움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더러움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면 피우지 않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몇 퍼센트 정도 간접적으로 흡수되어 비흡연자의 폐까지 오염된다.
그래도 우리의 몸은 아주 훌륭하게 잘 꾸며진 구조체이므로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대단한 회복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 담배를 끊고 수주 정도 지나면 당신의 몸은 틀림없이 원래의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 것이다. 몇 번이고 말한다. 지나치게 늦었다는 경우는 없다. 내 환자중에는 40∼50대에 금연에 성공한 사람도,70∼80대에 성공한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91세의 여성이 65세인 아들과 함께 나의 테라피 센터를 찾아왔었다. 왜 금연할 결심이 섰는지에 대해 물어보자,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운 사람일수록 끊었을 때의 안도감도 크다. 내 경우 단번에 하루 100개비에서 제로로 급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단현상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탈 기간 중에조차 아주 흡족한 기분이었다. 하여튼 당신은 '세뇌' 된 머리를 원래대로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담배회사의 강력한 세뇌력
조작되고 있는 당신의 잠재의식 도대체 사람들은 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까?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바로 인간의 '잠재의식' 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현명하다. 따라서 인생에서 나아가야만하는 길은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인간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이 옳든 그르든, 어쨌든 인간 성품의 99%는 나중에 만들어지는 후천적인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단지 이 사회의 제조물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 사는가와 같은 인간 생활의 모든 기본 패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또 어떤 것에 대해 개인마다 갖는 신념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가와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과 보수당이 있는데 노동자 계급이 전자를 지지하고 중, 상류 계급이 후자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잠재의식은 우리의 생활을 크게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신념뿐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서조차도 모든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콜럼버스가 당시의 서양이 인지하고 있던 세계를 넘어 세상의 끝 저편을 항해하기까지, 사람들은 모두 지구가 평면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누구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주를 날아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정말로 우주를 날아보든지 항해에 나서 봄으로써 평평하게 보이는 지구 위를 빙빙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 둥글다는 것을 알겠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잠재의식에 대한 세뇌의 결과인 것이다.
인간의 잠재의식이 암시에 의해 얼마나 잘 조작되기 쉬운지 광고업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자동차를 운전한다든지 잡지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암시를 걸기 위해 담배업자들이 준비해 둔 담배 광고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몇 개의 광고 때문에 담배를 살 마음이 생길까? 광고에 드는 돈 낭비 일 뿐이지"라고 생각하는 당신,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 광고 때문에 담배를 살 마음이 생기는지 어떤지 스스로 시험해 보기 바란다. 추운 날 술집이나 레스토랑에 친구와 함께 들어갔다고 하자. 같이 간 친구가 무엇을 마실 것인지 당신에게 묻는다. 그 때 그저 "브랜디 어때?"라고 묻는 대신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무엇이 좋겠어? 고급스럽고 화끈한 브랜디가 제격일 것 같아. 어때?"라고 말한다면 보통 브랜드를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사람들의 잠재의식은 철이 들 무렵부터 매일 이와 같은 메시지에 노출되어 있다. "담배를 피우면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자신감이 생기며 용기가 솟아오르거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이 바로 담배라는 거지,"
이 말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만화나 영화, 혹은 드라마 속에서 사형을 당하기 직전의 군인이 최후의 소원을 말할 때의 장면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총구를 향하여 마주선 그의 마지막 소원이란? 그렇다, 담배다. 사형수는 생의 마지막 순간 회한에 잠겨 깊이 음미하듯 마지막 한 개비를 맛있게 피우며 연기를 하늘에 날린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표층의식은 그냥 지나칠지 모르지만 잠재의식은 확실히 흡수한다. 그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죽기 직전의 마지막 소원은 바로 담배이다. 전쟁영화에서도 부상당한 병사는 담배 한 개비를 그토록 피우고 싶어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TV 담배 광고를 금지하고 있지만(역자 주 영국에서는 1965년부터 금지, 일본에서는 특정 시간대에 한하여 일부 허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완전 금지이다)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스누커(편집자 주 : 영국 문화권에서 인기 있는 당구 게임의 일종)나다트(편집자 주: 작은 화살을 손으로 던져 과녁에 맞추는 게임) 시합에서는 선수들이 항상 담배를 물고 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은 대개 담배회사가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스포츠를 이용하여 광고 아닌 광고를 하는 사업가들..... 오늘날 광고업계의 가장 더러운 짓거리 중의 하나이다. 그랑프리 레이스에 참가하는 자동차에도 특정 담배 업체의 C. I.와 같은 디자인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담배 브랜드와 똑같은 로고가 붙어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레이스 자동차와 같은 이름의 담배가 나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 정도이다. 최근의 TV 드라마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거의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런 장면이 빛어내는 암시 효과는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일반 담배의 TV 광고는 금지되어 있지만, 여송연의 광고는 인정되고 있다. 어느 여송연 브랜드 광고의 교묘함에 나는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그 광고에서는 어떤 남자가 갖가지 죽음의 위험에 빠져 있다. 남자가 타고 있는 열기구에 불이 붙어 추락하고 있다든지, 오토바이의 사이드카가 강에 빠지려고 한다든지, 콜럼버스로 분한 그 사람의 배가 당시 평면이라고 생각되었던 지구의 끝자락에서 막 수직으로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든지..... 내레이션은 단 한마디도 없이 부드러운 음악만이 흐르고 남자는 여송연에 불을 붙인다. 죽음에 직면한 위기의 순간에도 빛나는 듯한 기쁨의 미소가 남자의 얼굴 가득히 번진다..... 시청자가 특별히 주의집중하여 이 광고를 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때에도 시청자의 잠재의식만은 이 광고의 암시를 충분히 받아들여 소화하고 있다.
물론 금연 캠페인도 있다. 암은 두렵다든가, 다리를 잘라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든가, 입 냄새 때문에 주위에 불편을 끼친다든가..... 하지만 이런 위협 정도로 흡연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논리적으로 보면 흡연은 없어질 것이고 이미 흡연자는 단 한 명도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흡연을 시작하는 젊은이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내가 흡연자였을 때, "만일 흡연과 암의 관련성을 알고 있었다면, 흡연을 시작하지 않았을 텐데..... " 하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해도 그 때의 내가 담배를 끊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금연 캠페인은 흡연자들에게 혼란만을 제공할 뿐이다. '모두 피워 주세요' 라는 듯 번들번들 빛나는 포장지에는 친절하게도 경고문까지 쓰여져 있다. 그러나 어느 흡연자가 일부러 그런 문구를 읽겠는가? 하물며 거기에 쓰여져 있는 내용이 내 자신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할 리는..... 조금도 없다.
나는 한 때 담배회사가 포장지 위에 인쇄해 놓은 경고문조차 담배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회사의 광고에는 거미, 벌레 등을 잡아먹는 식물 등과 같이 두려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생물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담뱃갑 위의 경고문은 커다란 글씨와 강렬한 문체로 되어있기 때문에 일부러 읽지 않아도 자연히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광고 이미지나 경고문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공포심이 그 담배의 매끄럽고 빛나는 포장을 기억시켜 결과적으로 담배의 판매를 촉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세뇌' 작업에 점점 탄력을 붙여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흡연자 자신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약한 사람이다 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처럼 해로운 독극물을 스스로 들이마시는 것을 보더라도 강하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 동네 어떤 할아버지는 하루에 40개비씩 꼬박꼬박 피웠는데도 병 하나 걸리지 않고 80세까지 살았다"와 같은 이야기를 누구라도 한두 가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역자 주: 우리나라에서도 '백양' 담배를 즐겨 피운 공초 오상순 시인의 이야기가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흡연에
대한 구실과 방패막이로 곧잘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그 할아버지의 신화(?)아래에서 한창 일할 나이에 병으로 쓰러진 흡연자들이 100명도 넘는다는 사실은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담배 중독에 빠지기 쉬운 타입
당신의 친구나 동료 중 담배 피우는 사람을 관찰해 보기 바란다.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의지가 강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자영업, 회사원, 의사나 변호사 등의 전문직, 경찰관, 교사, 간호사, 가정주부 등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담배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담배를 책임감이나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시키기 쉽다. 담배 중독에 빠지기 쉬운 또 다른 타입은 단조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흡연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따분함(심심함)' 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세뇌는 실로 엄청나게 넓은 범위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는 신나나 헤로인 중독에는 눈썰미를 찌푸린다. 그러나 영국에서 실제 신나로 사망하는 사람은 일년에 10명 이하, 헤로인으로는 100명 이하이다. 그렇지만 '니코틴' 이라는 마약에는 영국 인구의 60%가 중독을 경험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일생 동안 계속 그것에 막대한 돈을 바치고 있다. 돈의 대부분이 그 마약을 사는 데 허비되고 몇십만 명이 니코틴에 중독되어 건강을 해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신나나 헤로인은 악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 싫어하고 기피하면서 돈을 갉아먹는 벌레이자 살인범이기 도 한 담배는 허용하고 인정하는 것일까?
최근에야 비로소 '담배는 비사교적이고 건강에 해로운 물
품' 이라는 사실이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담배는 합법적 기호품 취급을 받고 있고, 반들거리는 포장지에 싸여 담뱃 가게, 술집, 음식점, 슈퍼, 자판기 등 어디에서나 팔리고 있으며 그 이익의 대부분이 정부의 금고로 들어간다. 영국 정부의 경우, 연간 50억 파운드의 세입을 담배판매에서 얻고 있다. 또 담배회사는 광고비로 연간 1억 파운드를 투입하고 있다(역자 주 : 일본 정부가 담배세로 거둔 수입은 1993년도에 1조 190억 엔이고, 한국에서 올 들어 9월까지 서울에서만 징수된 담배소비세는 4015억원이다). 이런 세뇌행위를 통해 건강과 환경을 파괴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구매거부 운동을 일으켜야만 한다. 마치 중고차 딜러의 판매화술을 듣고 있을 때처럼,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는 주되 내용은 하나도 믿지 않는 것처럼. 반들거리는 포장지 안에 숨겨져 있는 독극물과 유해화학 물질을 잘 봐야 한다. 고급 크리스털로 만든 재떨이나 금박 라이터에, 감쪽같이 속고 있는 그 밖의 많은 사람들처럼 유혹 당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왜 담배를 피우는가?" "정말로 담배를 피울 필요가 있는가?"
물론 담배를 피울 필요는 전혀 없다!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총명한 사람들이 유독 담배에 대해서 만은 완전히 바보가 되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금연을 도와줘 왔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건대 바보 중의 바보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예전에 하루 100개비까지도 피운 나였지만, 나의 부친도 나 못지 않은 헤비스모커였다. 부친은 강한 남자였지만 장년기에 흡연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매일 아침 밭은 기침으로 가래를 뱉어내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흡연은 도저히 즐거운 일로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명확했다. "알렌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절대 못 피우도록 말려 줘"라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던 것이 지금도 두 귀에 생생하다.
열 다섯 살의 나는 스포츠에 푹 빠져 있었다. 스포츠가 생활의 전부인, 용기와 자신감이 넘쳤던 소년. 당시, 내가 미래에 하루 100개비나 피는 헤비스모커가 되리라고 감히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마흔이 되었을 때의 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담배에 찌들었고 매일의 일상생활은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게까지 되어버렸다. 흡연자는 보통 전화를 받든가, 사람을 만나든가와 같은 일들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담배 를 피우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TV 채널을 돌리든가 전기 스위치를 올리는 일조차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곧 죽게 된다..... 그것은 나 자신도 속일 수 없을 만큼 분명했다. 그러나 담배가 나의 정신까지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흡연자는 때때로 담배가 맛있다는 환각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환각을 한번도 맛보지 못했다. 내가 흡연을 하는 이유는 '담배가 집중력과 용기를 가져다 준다' 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담배를 끊은 지금, 예전에 내가 담배를 피웠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담배는 악몽이므로 잠에서 깨어나면 별것 아니다. 담배는 마약이다. 당신의 감각은 (미각도 후각도 모두) 그 마약에 침해당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배로 인한 최대의 폐해는 당신의 건강도, 금전도 아니다. 바로 당신의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흡연의 정당한 이유를 찾기에만 급급해, 다른 것을 쳐다볼 여유조차 상실하고 있다.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도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언젠가 시도했던 금연에 실패한 후, 보통 담배보다 연기의 흡입량이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이프 담배로 바꾼적이 있었다. 그러나 파이프용 담뱃잎은 진짜 더러운 것이다. 냄새는 마음에 들지 모르지만, 연기를 들이마시면 정말 비참해진다. 파이프 담배를 피운 처음 3개월 간은 혀끝이 갈라 터지는듯 얼얼했다.
파이프 담배에 익숙해지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지만, 왜 그 사이에 한번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독한 고문을 견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았는지 그건 나도 모른다. 파이프 담배에 익숙해진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한 듯 느긋한 포즈로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나는 파이프 담배를 즐기고 있다' 라고 스스로 무작정 믿게 된다. 그러나 파이프 담배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파이프 담배를 좋아하고 익숙해지기 위해 일부러 고심참담한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렇다. 한번 니코틴에 의존해 버리면 이미 세뇌되어 있는 당신의 뇌에 대한 세뇌 효과는 더욱 더 높아진다. 이미설명했지만 사람은 공포심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 니코틴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공허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심. 세뇌되어 있으므로 당신은 금연을 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서 받은 세뇌작용은 당신이 어른이 되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더욱 강화된다. 무엇보다 친구나 가족, 동료로부터 받은 세뇌는 그것을 더더욱 부채질한다. 당신이 담배를 피우게 되는 계기는 단 한 가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소외감을 맛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열심히 자기 신을 니코틴에 중독시킨다. 대신 무엇을 잃게 되는지는 생각 하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때마다 '담배에는 무엇인가 좋은 것이 들어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저 사람이 저렇게 담배를 피울 리가 없지' 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안심한다.
세뇌의 힘은 대단히 강력하다. 당신은 그 위력을 잘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영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방송된 인기라디오 프로그램으로 폴 템플의 탐정 시리즈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건 대마초 중독에 관한 이 야기이다.
비뚤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몰래 대마초로 만든 담배를 뒷거래한다. 몸에 치명적인 해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들은 서서히 중독되어 이 담배를 계속 사는 것이었다. 내가 이 방송 프로그램을 들은 것은 일곱 살 무렵이었는데 이것이 마약 중독에 관한 최초의 지식이었다. 나는 '중독=마약을 투여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상태' 라는 개념에 완전히 두려움으로 벌벌 떨었다. 요즘은 대마초에 대한 사람들의 의존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나의 테라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가 함유된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대마초 중독에 빠졌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대마초를 조금이라도 피워본다든지 할 용기는 없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담배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에 중독되어 버렸던 것이다! 폴 템플이 그 때 대마초만이 아니라 담배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경고해 주었더라면..... 더 이상야릇한 것은 4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막대한 돈을 암 치료 연구에 털어 넣는 동시에 건강한 소년, 소녀에게 달갑지 않은 마약 중독을 권하는 데 거액의 자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에서 각국 정부는 최대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슬슬 세뇌를 씻어 낼 때가 되었다.
건강, 활력, 부, 편안한 마음, 자신감, 용기, 자존심, 행복
이런 것들을 평생 갖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비흡연자가 아니라 불쌍하고 처량한 흡연자들이다.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면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정말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품고 있는 편안한 마음, 침착성, 용기를 담배로 되찾을 수 있다는 잘못된 환상 이외에는.....
담배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흡연자는 담배를 '맛있다, 릴랙스 할 수 있다. 활력을 북돋아 준다' 라고 믿고 피우지만 이것이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다. 흡연의 진짜 이유는 금단현상을 완화시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마음 편하게 피우는 정도이다. 이단계에서는 피워도 좋고 피우지 않아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벌써 당신의 잠재의식은 '때때로 담배를 피우는 건 괜찮을 거야' 라고 학습을 시작한다. 니코틴에 대한 의존이 강하면 강할수록 금단현상이 완화될때 얻게 되는 안도감은 크다. 따라서 실제로 몸은 점점 약해 가는데도 본인은 완전히 정반대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쇠약해지는 변화는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므로 좀처럼 알아차리기 어렵다. 문득 금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스스로가 니코틴 의존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완고한 사람은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스스로에게 '흡연은 즐겁다' 라고 끊임없이 들려준다. 내가 지금까지 몇백 명이나 되는 10대 학생들과 나눈 다음과같은 대화를 듣는다면,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나 : 담배는 마약의 일종이라 좀처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피우게 된다는 것쯤은 당신도 잘알고 있겠
지요?
학생 : 아닙니다 제가 담배를 피우는 건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좋아하지 않는다면 피우지도 않아요.
나 : 그렇다면 끊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주일정도 금연해 보는 건 어
때요?
학생 : 그럴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담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피우고, 끊고 싶어지면 그 때 끊을 겁니다"
나 : 일주일만이라도 좋아요. 담배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요?
학생 : 의미 없어요. 저는 담배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설명한 대로 흡연자는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따분할때, 집중이 필요할 때, 릴랙스 하고 싶을 때, 또는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금단현상을 완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 이런 각각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는 환상
마음의 안식을 담배에서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스트레스란 인생을 파괴할 정도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사람과 만난다든지, 전화를 받는다든지, 주부가 아기의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에 난처해 한다든지와 같은 정도
의 스트레스도 모두 포함한다. 전화를 예로 들어보자 누구라도 전화는 많든, 적든, 스트레스의 원흉이다. 비즈니스맨의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모든 전화가 아주 기분 좋은 손님이라든지 당신을 칭찬해 주는 상사 로부터 걸려온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곤란한 사정에 관한 하소연이라든지, 지불독촉이라든지, 비난, 공격에 대한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사람들은 우선 담배에 불을 붙이고 본다.
왜 불을 붙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왠지 담배가 이 상황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라는 것뿐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당신은 이미 니코틴의 금단현상인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보통 스트레스와 함께 초조함을 부분적으로라도 해소할 수 있으면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흡연자는 담배에 불을 붙임으로써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안식도 본질적으로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흡연으로 아무리 기분이 좋아졌다 해도, 비흡연자보다는 마음이 긴장되어 있고 담배에 빠져들면 들수록 금단현상은 늘어나며
담배로 완화시킬 수 있는 부분도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는 쇼크 요법 따위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로 당신에게 쇼크를 주려는 의도 같은 건 전혀 없다. 다만 담배는 당신의 신경을 파괴할 뿐, 결코 몸을 편안하게 이완 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천천히 확실하게 정신을 파괴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어느 날 의사가 당신에게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만일 지금 당장 담배를 끊지 않으면 당신의 두 다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
두 다리가 없는 생활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의사의 끔찍한 선고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계속 피운 탓으로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되는가? 이런 이야기는 나도 자주 들었다. 그런 말을 듣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때는 그 이야기를 흘려 버렸다. 나중에는 "의사가 그런 선고를 나에게 내렸다면 벌써 담배를 끊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 나도 언제 뇌출혈이 일어나 두 다리뿐 아니라, 목숨 자체를 잃는다 해도 할 말이 없는 바보 중의 바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은 스스로가 이처럼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무시무시한 담배라고 하는 마약이 만들어 내는 올가미이다. 담배는 당신에게서 용기와 자신감을 점점 빼앗아간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감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담배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흡연자가 야간에 외출을 하게 되면 담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패닉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역자 주 : 영국의 경우로 야간에 소매점이 일찍 문을 닫고 자판기도 흔하지 않았던 무렵의 이야기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그런 패닉과는 무관하다. 패닉은 담배 탓이기 때문이다. 또, 담배는 당신의 용기를 때려부숴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강력한 독극물이어서 당신의 몸까지 서서 히 파괴시킨다.
흡연자의 몸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흡연자는 담배가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활력을 주는 원천이라고 오히려 잘못 믿어버리게 되고, 결국 '담배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인생에서 이것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것' 이라고 하는 아주 커다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다음을 머릿속에 확실히 인식하기 바란다. 담배는 결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지 못한다. 담배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당신의 자신감을 상실시킨다. 금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탐스러운 수확 중 하나는 바로 잃어버린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게 해 준다는 것이다.
심심함을 없애준다는 환상
혹시 지금 당신은 담배를 피우면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내가 지금 지적하기 전까지 피우고 있는 당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흡연에 관련된 환상으로 '담배는 심심함을 없애준다'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라고 확실하게 의식하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실제 니코틴 중독인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상실감을 맛보게 된다. 무엇인가 즐거운 일에 마음이 쏠려 있을 때에는 담배 없이 오랫동안 지낼 수 있어 괜찮지만, 심심해지면 견디기 어렵다. 금연을 하거나 담배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도 무의식적이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피운 담배를 전부 기억해 보려고 해도 대개 아침의 첫 담배와 식후의 한 대 정토밖에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실은 담배가 심심함을 간접적으로 증폭시키고 있음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흡연을 하면 무기력감이 생겨 적극적인 활동을 피하게 되므로 심심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심심함을 느끼면 느끼는 채로 그저 지루하게 금단현상을 완화시키는 행위 즉, 흡연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심심해진다.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환상
흡연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생각은 작가나 예술가 등 정신적 활동에 종사하면서 영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많은것 같다. 그러나 이것 역시 어처구니없는 환상이다. 담배는 집중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한다. 왜냐하면 담배를 피우는 순간조차 금단현상을 완전히 치유할 수 없기 때문에 흡연자는 점점 피우는 양을 늘리게 되고 따라서 흡연 문제도 점점 심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혈액 순환이 잘 되면 집중력이나 영감은 한층 높아진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면 혈관이 서서히 독극물로 채워져 뇌로 공급되는 산소의 양이 줄어든다. 즉, 집중력이나 영감이 발휘될 가능성이 의학적 생리적으로 명백히 줄어드는 것이다. 내가 정신력을 이용하여 시도했던 금연이 실패한 이유는 이 집중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지만, 무엇인가 어려운 일에 집중하려고 할 때 담배 없이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계사 시험을 치르는 시간 중에는 금연이라는 말을 듣고 패닉 상태에 빠졌을 정도였으니까. 그 무렵의 나는 이미 '체인 스모커'가 되어 있었고, 3시간 정도라도 담배 없이 시험에 집중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시험 중에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고, 담배 없이도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다.
금연하면 집중력이 없어진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것은 니코틴에 의한 육체적 금단현상이 아니라 담배가 일으키는 즉, 담배를 못 피우게 되었다는 데서 생기는 불안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다시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뿐이다. 현재 상태와 타협하는 것.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져도 그 이유를 절대 담배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기침이 갑자기 많이 나와도 담배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감기가 오래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 금연하면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모두 담배를 끊은 탓이라고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럴 때 딱 한 대만 피우면 좋아질 텐데....." 그러면서 금연의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후회하기 시작한다. 당신 역시 '담배가 집중력을 높여준다' 고 믿고 있는 사람이 라면 잘 들어주기 바란다 '이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까? 하고 근심하고 있는 한 당신은 절대 그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은 육체상의 금단현상이 아니라 '의심' 이다. 항상 기억해 두기 바란다. 금단현상을 맛보는 것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피우는 사람' 이라는 것을. 나는 단번에 100개비에서 단 한 대도 손에 대지 않는 상태로까지 금연했지만 집중력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몸을 이완시켜 준다는 환상
공복감에서 해방될 수는 없다. 흡연자의 대부분은 담배가 사람의 몸을 이완시켜 준다, 즉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니코틴은 자극성이 있는 화학물질일 뿐이다. 맥박을 재면서 두 개비를 계속 피워보자. 맥박수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식사 후의 담배 한 모금은 마음을 여유롭게 가라앉히는 순간이라고 흡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사람은 식사시간만큼은 느긋한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허기와 갈증을 채우고 마음과 몸을 편안히 하면서 만족감을 맛본다. 그러나 흡연자에게는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허기가 있기 때문에 식사만으로는 아직 완전한 편안함을 느낄 수가 없다.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갈망. 이 갈망 때문에 니코틴 중독자는 단 한 순간도 마음의 긴장을 풀지 못하고 해를 거듭함에 따라 불안감은 점점 심해지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담배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는 환상처럼 어처구니없는 착각은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장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언제나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고, 고혈압으로 항상 초조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중 대부분은 체인 스모커로서 40∼50대 회사원들이다. 이 단계까지 오면 담배가 불러 일으키는 증상들을 부분적이나마 담배로 완화시키는 종래의 시도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내가 아직 젊은 회계사였을 무렵, 아이들도 아직 코흘리개였을 때 벌어졌던 그 당시의 사건(?)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이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 내가 히스테리를 일으켰는데, 그 히스테리가 결국에는 아이가 저지른 장난에 어울릴 만큼의 꾸지람 수준에서 멈추지 못하고 도를 넘어 엄청나게 폭발했다. 그 후 나는 내 성격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의심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담배 탓이었다. 당시의 나는 인생이란 괴로운 일의 연속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고민거리 따위가 정말 있었을까 하고 한심스럽다. 그 때도 나는 인생의 모든 것을 솜씨 있게 컨트롤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거꾸로 나를 컨트롤하고 있었던 담배를 제외하고는.
흡연자는 진정한 안식을 취할 수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금도 나의 아이들은 옛날에 내가 일으켰던 그 히스테리가 담배 때문이었다고는 믿어주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흡연 행위를 정당화하려 할 때마다 판에 박은 듯이 하는 바로 이 말 때문이다. "아,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편안해지는구나 정말 편안한 안식처 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좋아질 터인데 왜 히스테리가 생기겠느냐는 것이다.
수년 전 영국의 입양아 추진기관이 흡연자의 가정에 대해서는 입양을 거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남성이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건 터무니없이 잘못된 생각이에요.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반대할 만한 이야기를 드려야 할 때에는 반드시 어머니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했어요. 왜냐하면 담배를 피우는 동안의 어머니는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왜 이 남자는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지 않을 때 곤란한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까? 왜 흡연자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왜 비흡연자는 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완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흡연자를 한번 자세히 관찰해 보기 바란다(특히, 흡연이 허용되지 않는 장소에서). 그들은 손을 입에 댄다든지, 왔다갔다한다든지, 발로 바닥을 탁탁 구른다든지, 머리칼을 쓰다듬는다든지, 이빨을 간다든지 하는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절대로 릴랙스한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한 안식을 취한다는 것이 진짜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담배를 끊으면 그 안식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흡연이라는 행위는 마치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벌레가 그 식물의 꿀을 빨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레는 식물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이제 슬슬 그 무시무시한 식물 속에서 밖으로 기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콤비네이션 스모킹의 비참함
콤비네이션 스모킹은 담배를 2∼3개비씩 동시에 피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담배를 이미 피우고 있으면서도 새 담배를 또 피우려고 시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 때에는 애당초 무슨 까닭으로 첫 번째 담배를 피웠는 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나도 예전에 담배 한 대를 이미 피우고 있으면서 또 한 대를 입에 물려고 하다가 손등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실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무척 심각하다. 콤비네이션 스모킹이란 보통 사람들이 흡연을 하는 이유 중 2가지 이상이 중첩되었을 때의 흡연 즉, 축제, 파티, 결혼식, 레스토랑 등 스트레스와 편안함이 둘다 뒤섞여 느껴지는 장소에서 피울 때 많이 일어난다. 스트레스와 안정감..... 언뜻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사교장에서도(심지어 편한 친구와 함께 있을 때조차도) 스트레스는 존재하고 동시에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물론 흡연의 네 가지 이유(60p. 참조)가 모두 적용되는 상황도 있다.
체인 스모커가 되는 특별한 상황
자동차 운전이 그와 같은 특별한 상황 중의 하나이다. 병원 이나 치과와 같이 긴장을 강요당하는 장소에서 돌아올 때는 차 속에서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이라는 스트레스 요소도 수반한다. 또 운전에는 집중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교통 혼잡에 말려든다거나, 오랫동안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에는 무료함을 느끼게 된다. 또 하나의 전형적인 예는 트럼프나 화투를 이용하여 게임을 할 때이다. 포커나 브리지, 고스톱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게임에 졌을 때에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좋은 패를 얼마동안 쥐지 못하거나 좋은 패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 초조에 빠진다. 한편, 이것은 일종의 놀이이기도 하므로 편안한 마음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금단현상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도, 평소 그다지 많이 피우지 않는 사람이라도 흡연자라면 누구나 체인 스모커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재떨이는 눈 깜빡할 사이 에 가득 차게 되고 머리 위는 연기로 자욱하게 된다. 콤비네이션 스모킹에는 때로 특별한 원인이 있겠지만,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은 담배가 아니라 그 때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담배를 피울 필요성을 일단 제거해 버리면 어떤 곳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다음 장에서 이 점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담배를 끊어서 손해보는 것이 있는가?
전혀 아무것도 손해보는 것이 없다! 금연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불안' 때문이다. '위로를 받고 의지가 되는 것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즐거웠던 것도 즐겁지 않게 되지는 않을까?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 하는 불안. 바꿔 말하자면 흡연자들은 세뇌 덕분에 '나에게는 약점이있다'라든지 '담배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 금연하게 되면 공허한 기분이 든다' 라고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담배는 공허감을 채워주지 못한다. 담배야말로 공허감을 만들어 내는 원흉인 것이다! 인간처럼 정교한 몸을 가진 생물은 없다. 창조주를 믿든, 진화론(최근 들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정되고 있는 학설이지만)을 믿든,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 하느님이든, 진화의 과정이든, 어쨌든 그것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세포 하나는 물론, 시각 기관, 생식 기관, 순환 기관, 뇌 등 기적이라 할 만큼 경이로운 이 기관들과 시스템을 도저히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든 진화의 과정이든 간에 인간을 흡연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면, 담배에 함유된 독극물을 제거할 수 있는 필터나 연기가 자연스럽게 배출될 굴뚝 정도는 구비해 두셨을 것이다.
몸의 안전확보 장치로서 기침, 어지러움, 구토 등의 증상이 있지만, 인간은 이 안전 장치가 내는 경보를 제멋대로 무시해 버린다. 재앙은 바로 그 경보를 무시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담배를 끊으면 인생이 보다 즐거워진다
금연으로 손해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식사가 더욱 맛있어지지는 않는다. 담배가 미각과 후각을 파괴하기 때문에 오히려 맛없게 될 뿐이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들은 식사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식사가 빨리 끝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바로 식사가 흡연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피우는 담배가 주위의 비흡연자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흡연자라고 해서 모두 안면에 철판을 간 사람일 리는 없다. 단지 담배 없이는 어쩔 수가 없어 비참한 꼴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피울 수도 피우지 않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앞문에는 호랑이가 뒷문에는 늑대가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어 비참하게 되든지, 피워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죄의식과 자기 혐오감에 빠져 비참하게 되든지, 둘 중 어느 하나의 행동을 택해야 하지만, 비참해지는 건 무엇을 택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흡연자들은 보통 자기 연민에 대한 참함보다 담배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비참함을 더욱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일단 금연자로서의 의식을 갖게 되면 또 다르지만.
또 파티 등의 장소에서의 흡연자를 살펴보기 바란다.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건배를 기다리는 사이에도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그 자리를 슬쩍 빠져나와 숨어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 중 독자의 전형적인 모습, 바로 그것이다. 흡연자는 담배가 좋아서 피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서 즉, 담배 없이는 비참해지므로 그것을 모면하려 피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흡연자의 대부분은 젊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쉽게 부끄러움을 타던 나이 무렵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므로, 사람들과 사귈 때 담배가 없으면 원활하게 사귀지 못한다고 잘못 믿게 되었다.
흡연을 하는 여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여성은 사실 자신의 외모에 대단히 신경을 쓴다. 그렇지만 자신이 뱉는 숨(호흡)이 더러운 재떨이와 같은 냄새를 피운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녀들도 머리카락이나 옷에 담배 냄새가 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그래도 담배를 끊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불안 이 만들어 내는 수법이다. 최근에 흡연은 사교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한 손에는 마실 것을 다른 손에는 담배를 쥐고, 항상 재나 꽁초를 버릴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당신이 내뿜는 연기가 사람의 얼굴로 풍기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고 담배 냄새가 나는 역겨운 입냄새나 갈색으로 변한 이빨을 상대방이 눈치채지는 않을까도 걱정해야 한다.
담배를 끊으면 멋진 수확물이 생긴다. 금연하려는 사람은 건강이나 금전, 또는 사회적 평판 정도만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도 맞고 중요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면에서의 수확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째, 참된 자신감과 용기를 회복한다.
둘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다.
셋째, 세상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경멸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어두운 그림자를 더 이상 안고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편이 인생을 살아 가면서 훨씬 더 큰 충실감을 맛볼 수 있다. 건강과 금전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이 보다 즐겁게 되는 것이다(비흡연자가 누릴 수 있는 멋진 이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한다).
만일 '공허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당신의 얼굴에 작은 발진이 생겼다고 상상해 보자. 내가 당신에게 마법의 약을 내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을 발라 보시오." 당신이 그 약을 바르면 발진은 바로 그 자리에서 없어진다. 그러나 일주일 후, 다시 그 발진이 생긴다. 당신은 내게 묻는다. "그 약을 더 가지고 있습니까?"
"가지고 있고 말고. 또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 자, 여기 있소." 약을 바르면 신기하게도 또 다시 발진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 발진은 또 다시 생길 때마다 조금씩 커지고 통증도 늘어나는 반면, 발생 간격은 짧아진다. 결국에는 얼굴 전체가 발진 투성이가 되고 통증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지며, 발생 간격이 30분마다 나타나기까지 이르렀다.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발진은 없어지지만 너무나 걱정스럽다. 통증은 이제 몸 속까지 번져갈지도 모른다. 발진이 생기는 간격도 더 빨라지게 되어 이제는 늘 겹딱지로 눌러 붙게 될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아도 원인을 알지 못한다. 다른 치료도 시도해 보았지만 이 마법의 약 외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당신은 이미 이 마법의 약에 완전히 의존해 있는 것이다! 약을 지니지 않고는 외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에도 이 약을 몇 개씩 반드시 휴대한다. 이 약이 몸에 나쁘지는 않을까 하고 당신은 걱정하지만, 그래도 이 단계에 이르면 내가 이 마법의 약을 20만원에 팔아도 당신은 살 수밖에 없고 다른 선택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이 때 당신은 어느 신문의 건강 섹션에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똑같은 문제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그 마법의 약이 사실은 발진에 대해 아무런 치료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 거꾸로 이 약이 피부 심층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발진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약품회사가 밝혀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전문가가 그 병에서의 탈출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는 책을 읽게 된다. 발진을 없애기 위해서는 단지 이 약의 사용을 중지하면 되는 것이다! 최초로 발진이 났을 때 당황하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지 말고 그저 잠시 참고 지내면 발진은 자연히 없어진다는 것이 이 증상의 본질이었고 또 유일한 처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 약을 계속 사용할 것인가? 이 약의 사용을 중지하는 데 강한 의지가 필요한가? 신문 기사의 내용을 '과연 그럴까? 하고 곧이곧대로 믿지않는 사람도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일단은 그 처방을 받아들여 본다. 그래서 처음 2∼3일은 다소 근심스러워할 지도 모르지만, 일단 점차 발진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면 두 번 다시 이 마법의 약을 사용할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당신은 바르는 그 순간만 발진이 없어지는 그 약에 매달리면서 비참한 기분을 그대로 느낄 것인가?
자신의 바보짓에 눈을 가리는 짓은 이제 그만두자. 물론 대답은 '노' 일 것이다. 일생 동안 해결할 수 없는 괴로움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해결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예를 들어 발진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1년이 걸린다. 해도 증상이 서서히 개선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이제 죽을 위험은 없어졌구나. 아, 이제 살았다!'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마지막 한 대를 다 피우고 난 후 비벼 껐을 때 이 마법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잠깐, 이 발진과 마법의 약에 대한 우화에 대해 한 가지 확실히 해두기 바란다. 여기서 발진이란 반드시 폐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동맥경화도, 폐기종도, 협심증도, 천식도, 기관지염도, 간부전도 아무것도 아니다(이 모든 병은 모두 발진 자체의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 이 발진은 담배를 사는 데 허비되는 막대한 돈도, 불결한 입냄새나 갈색으로 물든 이빨도, 무기력감도, 간신히 나오는
가라앉은 목소리도, 기침도 아니며, 스스로를 질식시키면서 '피우기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도, 흡연 금지 장소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그리고 최악의 경우이지만 스스로를 경멸하는 것도 아니다(이런 것들도 모두 발진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발진이란 이런 모든 사실에 대해 마음을 닫게 하는 것 즉, '무조건 담배를 피우고 싶다' 고 하는 패닉과도 비슷한 기분이다. 피우지 않는 사람은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는다. 최악의 원인은 공포심인데 금연을 하면 이 공포심은 제거된다. 내가 이런 사실에 마음을 열었을 때, 마치 눈앞에 잔뜩 끼어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말끔히 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 패닉에 빠졌던 것은 나의 약점도 담배의 마력도 아닌, 한 개비의 담배가 만들어 낸 올가미였다. 거기에 더해 한 대, 또 한 대 피우게 되는 담배가 패닉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켜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또 주위에서 즐거운 듯이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흡연자들도 사실은 내가 맛본 것과 같은 악몽 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도 동시에 이해했다. 그들은 예전의 나만큼 지독한 중독자는 아닐지 모르지만 모두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쓸데 없는 이유를 늘어놓고 있다.
자진해서 노예 생활을 감수하다니 흡연자는 보통 건강, 금전, 사회적 평판 등을 고려해서 금연 하려고 한다. 그러나 애당초 피우게 된 동기가 무엇이든 흡연자의 실체는 가공할 마약으로 얼룩진 노예 생활 그 자체이다. 19세기 인류는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피 흘리는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진해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흡연자들이다. 흡연자는 흡연 가능한 장소에서는 '담배를 끊고 싶다'라는 평소의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흡연을 그다지 즐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잠시 피우지 않고 있을 때에 한해(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라든지, 식사를 막 끝냈을 때라든지) 흡연은 즐겁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담배가 소중하게 여겨질 때는 피울 양이 줄어들고 있을 때나 금연을 하고 있을 때, 또는 성당, 교회, 병원, 슈퍼마켓, 극장, 지하철 등 사회적으로 흡연을 허용하지 않는 장소에 있을 때뿐이다. 친구나 잘 모르는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 "담배 좀 피워도 되겠습니까?" 하고 양해를 얻던 시대는 이제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요즘에는 어떤 집을 방문하면 꽁초가 놓여 있는 재떨이가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필사적으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재떨이가 보이지 않으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꾹 참는다. 만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허락을 얻으려고 하면 "정 못 참으시겠다면....." 이라든가 "냄새가 집에 배기 때문에 조금만 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이미 벌써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불쌍한 흡연자는 이런 대답을 들으면 창피해져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어디라도 머리를 처박고 싶어질 것이다.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속이는 가엾은 사람들 되돌려 생각해 보면 성당은 나에게 있어 언제나 괴로운 장소
였다. 내 딸의 결혼식에서조차, 정말은 위엄 있는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내가 마음 속으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추측하는가?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그러면 밖으로 나가 한 대 피울 있겠지,'
성당과 같은 장소에서의 흡연자의 행동거지는 흡연자의 심리상태를 아는 데 대단히 참고가 된다. 그들은 대체로 한 곳에 무리지어 있고 나누는 이야기도 언제나 비슷하다.
"어이구, 참느라 혼났네 ."
"예, 정말로. 이제 마음놓고 한 대 피웁시다"
"자, 담배가 없으면 제걸 피우시죠. 불 여기 있습니다. "
그들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길게 들이마시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에게는 이런 즐거움이 있는데,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사람들은 이런 맛을 모르겠지요? 정말, 불쌍하게도..... "
그러나 '비흡연자' 라는 의미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피우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담배를 피워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런 즐거움 따위는 애당초 필요가 없다. 인간은 원래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몸에 독극물을 집어넣도록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피우지 않는 사람이 평생 유지하고 있는 평정, 자신감, 안정감을 흡연자는 흡연 중에 얻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담배를 피우고 난
후에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엾은 일이 아닌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성당에서 딴 생각을 하는 일도 없이 인생을 언제라도 즐길 수 있다.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기억이 있다. 어느 겨울날 한참 볼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을 하고는 숨어서 몰래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다(열네 살 소년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40세 중년 회계사의 한심스런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서 게임으로 돌아왔건만 볼링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시합이 얼른 끝나 담배를 여유있게 피울 수 있는 때가 빨리 왔으면 하고 무척이나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볼링은 내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최고의 취미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금연을 하게 되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담배를 찾는데 인생의 태반을 허비하는 비참한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내 삶 전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당신,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피우지 않는 사람의 집에 머물 때나 피우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불안해져 마음을 쥐어뜯는 것은 비흡연자도 아니요, 흡연자인 당신도 아니다. 다만 나쁜 것은 흡연자의 마음 속에 기생하는 '작은 악마'라는 사실을..... 당신이 이 '작은악마'가 마음속에 깃들기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흡연자가 된 것이다. 언제라도 이 '작은 악마' 를 냉엄하게 추방하라. 그 순간 당신은 비흡연자의 빛나는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그 '작은 악마(세뇌된 마음)' 가 그렇게 안쓰럽고 사랑스러운가? 버리기엔 너무나 미련이 남는가?
주당 만원을 절약하자
일생 동안 낭비하는 막대한 금전적 손해 몇 번이고 말하지만 금연이 어려운 것은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연을 시작하기 전에 이 세뇌를 말끔히 씻어내면 당신은 금연이라는 목표달성에 훨씬더 가까워질 수 있다.
'확고한 흡연자.' 내가 이름 지은 이 단어의 정의를 둘러싸고 때때로 격론이 벌어진다. 나의 정의로는 금전 낭비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사회의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아주 최근에는 이런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나의 테라피에 오는 젊은 남성에게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담배를 사는 데 쓰는 돈이 아깝지토 않습니까?"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이 질문에 눈동자를 빛낸다. 만약 질문의 내용이 건강이나 사회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었다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을 그들이, 그것과는 달리 금전에 관한 이야기이면,
"돈은 충분히 있어요. 게다가 일주일에 그저 만원에서 만오천원 정도뿐인 걸요. 담배는 저의 유일한 취미이자 좋은 친구이며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 정도 지불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요."
그가 하루에 20개비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돈 걱정을 안 하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일생에 수천만원이나 지불하게 되는 거예요. 게다가 담배로 인한 병원비와 약값까지 합한다면? 그만큼의 돈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어요? 무얼 해보고 싶어요? 게다가 그 돈을 들여 얻은 것이라고는 갈수록 나빠지는 건강과, 잃어버린 자신감이나 용기, 그리고 일생 동안 입냄새나 갈색으로 찌든 이빨에 괴로워하는 노예 생활을 보내는 것뿐인데..... 걱정스럽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
특히 젊은이들은 담배가 평생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대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담배 한 갑의 값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우선 일주일 분만 계산해 봐도 상당한 금액에 이른다. 드물게(특히 금연을 생각할 때) 일년 분을 계산해 보면 공중에 그냥 날려버리는 돈의 액수가 겁나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일생 동안 허비할 금액을 계산해 본다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확고한 흡연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금전 문제라면 걱정 없어요. 일주일 분이라고 해도 얼마 안되잖아요."
이것은 마치 고급 자동차나 고가 백과사전을 판매하려는 할부 세일즈맨의 말투가 아닌가? 여기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아주 중요하면서도 솔깃한, 당신에게 매우 이익이 되는 이야기를 해드리죠. 지금 나에게 200만원을 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죽을 때까지 매일 공짜로 담배를 한 갑씩 제공하도록 하죠."
만약 이것이 200만원으로 일생 동안 전기료를 대신 지불해 주겠다는 이야기라면, 그는 두말하지 않고 계약서에 본인 서명은 물론 나의 서명까지 그 자리에서 바로 받으려고 덤빌 것이다. 그렇지만 '확고한 흡연자(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사람은 지금의 당신처럼 금연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끊을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임을 전제로 한다)' 중 단 한 사람도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왜일까?
테라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도 같은 의견이라면 왜 돈 걱정을 하지 않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일상생활에서는 아주 사소한 금액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굉장히 애쓰면서 자기 몸을 더럽히는 데는 왜 수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허비하고 게다가 왜 그것을 걱정하지도 않는가?
사람은 보통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의 장점과 단점을 저울에 달아 그것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검토한 후, 결단을 내린다. 그 결단이 물론 결과적으로 잘못되거나 방향성 측면에서 어긋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은 논리적 추론의 결과로 내려진 결단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흡연의 장점과 단점을 저울에 달았을 때, 결론은 명확하다. "담배를 끊어라. 아니면 당신은 바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결론 때문에 오히려 모두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피우고 싶어서도 아니요, 피우려고 결단을 내렸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담배를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우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일은 흡연자끼리 금연을 시도할 때는 '한 대 피울 때마다 벌금 만원' 하는 식으로 약속을 하면서도, 진짜 금연으로 절약할 수 있는 수천만원에 대해서는 그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흡연자가 세뇌당한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 딱 한 개비의 값이 3천만원! 잠깐 한 가지 사실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 아주 질 나쁜 사슬인 흡연은 목숨과 연결되어 있다. 그 사슬을 끊지 않으면 일생동안 계속 담배를 피워야 된다. 남은 인생 동안 담배에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야 할지 한번 진지하게 계산해 보기 바란다. 금액은 개인별로 다를 테지만 여기서는 3천만원으로 잠정하기로 한다. 이제 곧 당신은 최후의 한 대를 피울 결심을 하게 될것이다(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이 책의 처음 지시를 잘 기억하기 바란다). 그 직후 앞으로 계속 비흡연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올가미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즉, 다시 딱 한 대만 피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만약 다시 그 딱 한 대를 피우게 되면 그 한 대의 값은 3천만원임을 명심하라. 만약 위의 사고방식이 사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직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나간 과거의 어느 때 일단 담배를 끊었었고 다시 딱 한 대를 피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얼마를 절약할 수 있었는지 계산해 보기 바란다.
만약 이 사고방식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상상해 보라. 내일 당신의 방에 3천만원의 상금을 받을 수 있는 당첨복권이 놓여 있을 것이다. 당신은 기쁨에 겨워 공중으로 '펄쩍' 뛰어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이 아니라 지금 바로 그 기쁜 마음으로 뛰어오르기 바란다. 이제 곧 날이 새면 당신은 그 상금을 얻게 될 것이고 그밖에도 엄청나게 크고 많은 특전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니. 니코틴이 몸에서 이탈하는 기간 중에 '딱 한 대만' 이라는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 때에는 그 한 대의 값이 3천만원(또는 당신이 계산한 금액)이나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200만원으로 담배를 매일 공짜로 공급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TV나 라디오에서 제안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흡연자' 중 어느 한 사람도 내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사의 한 일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골프 클럽에는 언제나 담뱃값 인상에 대해 바보 같은 불평을 하는 사람이 몇 있다. 그 바보 같은 불평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을 조롱하지만, 지나치게 그들의 화를 돋구면 그 중 한두 사람이 홧김에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싶어 사실 남몰래 근심하고 있기도 하다. 간단히 계산해 봐도 내가 그들에게서 받는 돈보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드는 돈이 엄청나게 더 많지 않은가? 그래도 당신 주위에 담배는 즐거움을 준다고 장담하면서 피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3년 분의 담배 대금을 선불해 주면 일생 동안 담배를 공짜로 공급해 주겠다는 바보 같은 녀석을 알고 있어요. 알려 드리죠" 하고 나를 소개해 주기 바란다. 어쩌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을 당신이 한 사람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담배의 해독은 이미 몸 속에 계속 퍼지고 있다.
경고를 무시하고 죽음을 선택하겠는가? 담배에 세뇌되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건강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력이다. 흡연자는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나 자신이 가장 좋은 예이다. 나의 흡연 습관은 머리가 언제 폭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렇게 되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할 상태에까지 이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몸은 괜찮아' 라고 계속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으니까. 그 무렵의 내가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었을 때, 빨간 경고등이 요란한 빛을 내며 꺼졌다 켜졌다 하고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런 경고가 울려 퍼졌다고 하자. "좋아, 알렌! 이번이 마지막이다. 경고를 받아들인 것을 기뻐 해라. 그러나 정말 최후의 한 개비이다. 너의 몸은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어려운 고비를 넘어왔다. 하지만 이 최후의 한 개비 이후에 다시 한 대를 더 피운다면, 그 때는 너의 머리가 폭발하고 말 것이다!"
자, 내가 그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하는가? 대답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다음 장면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교통량이 많은 큰 거리의 보도에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린 당신이 서 있다고 하자. 담배를 피우려면 차들이 다니는 길을 건너 맞은 편 보도로 가야 한다. 자, 당신은 그 자리에서 담배를 끊을 것인가, 아니면 눈을 가린 채로 길을 건너가 담배 한 대를 피울 것인가? 이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 신은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은 모든 흡연자가 선택했던 것과 같이 마음을 닫고 그 질문에 응답하기를 거부하고 현실을 회피하며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갑자기 담배가 싫어지게 해주소서 !" 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흡연자는 피상적으로는 건강에 대한 흡연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행으로 연결될 수 있을 만큼 진지한 검토 따위는 하지도 않는다. 혹 '담배는 즐거운 것이야'라는 환상이 사라져 버리는게 두려워서는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흡연자가 '매일 40개비씩 피우고도 80세까지 살았던 이웃집 아저씨' 의 이야기를 할 때, 그 그늘에서 한창 일할 나이에 담배가 원인이 되어 죽어간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나는 테라피를 통해 일주일에 여섯 번은 환자(특히 젊은 사람)들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나 : "왜 담배를 끊고 싶습니까?"
환자 : "돈이 없어서요."
나 : "몸은 걱정되지 않습니까"?
환자 "아니요, 당장 내일 버스에 치어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나 : "당신 스스로 버스에 뛰어 듭니까?"
환자 : "그따위 바보 같은 짓을 누가....."
나 : "길을 건널 때 좌우를 살피지 않습니까?"
환자 : "물론 살펴봅니다"
말 그대로이다. 흡연자도 버스에 치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운이 나빠 버스에 치이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하다 못해 이렇게 길을 하나 건널 때에도 조심을 하는데, 불치의 병에 걸릴 위험이나 확률이 매우 큰 담배를 조금도 거리낌 없이 걱정조차 하지 않고 피우는 것을 보면 모두 어느 정도 세뇌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유명한 영국인 골퍼로 이런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항공 사고에 대한 우려로 비행기를 극도로 꺼려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회는 포기할 정도였다. 그런 그도 골프 코스에서는 체인 스모커였다. 비행기는 뭔가 조금이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이륙을 금지 당하므로,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극히 적다. 그러나 담배의 경우 25%나 될 정도로 위험 발생 확률이 높은데도, 그는 그것을 감수하면서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담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전혀 아무것도 없다! 또 한 가지, 흡연자가 믿고 있는 신화, 기침만 나오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없다? 이런 판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기침은 폐에서 이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생리적인 안전 기능이다. 기침 그 자체는 병이 아닌 단순한 증상일 뿐인 것이다. 기침은 발암성 타르나 다른 독소를 폐로부터 배출해 내려는 증거이다. 기침으로 나오지 않으면 타르와 독소는 폐에 잔류하여 암의 원인이 된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자동차에 녹이 슬었는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게 내버려두는 동안 녹은 조금씩 번져나가 나중에는 자동차 전체가 녹슬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몸은 인생의 여정에서 당신을 태우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흡연이란 인생을 달리기 위한 자동차에 녹이 스는 것을 허용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자진하여 그 자동차를 파괴하는 행위와 같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자동차는 일생에 단 한 대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을 때 후회하면 너무 늦다
당신은 현명해야 한다. 담배를 피울 필요가 있기는 한 걸까? 게다가 담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사실들을 제발 잊지 말기 바란다. 극히 한 순간만이라도 좋으니 현실을 정확히 응시하기 바란다. 만일 다음에 피우는 담배 한 대로 확실하게 암에 걸린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한 대를 피우겠는가?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대신 암 센터에서 언제나 고통스러운 테스트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상상해 보기 바란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설계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당신의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건 오직 '죽음' 뿐이다. 테라피에는 이미 이런 상황에 빠진 사람들도 온다. 이런 사람들도 예전에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병에 걸리리라고
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괴로운 것은 병만이 아니다. 순전히 스스로의 책임으로, 100%자기 탓으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더욱 고통스럽다 '죽음을 향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들의 기분을 상상해 보라. 바로 이 시점에서 세뇌의 사명은 완수된 것이다. 흡연자는 이 때 비로소 흡연이란 무엇인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뼈저리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후회하면서 인생의 종말을 향하게 될 것이다. "왜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 스스로를 속여 왔을까? 한 번만 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러나 아직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 이 책을 보고 있는 당신만큼은 아직 기회가 있다. 자신을 속이는 짓은 이제 그만 두자. 흡연은 단지 연쇄 반응이다.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악순환 말이다. 다음의 한 대를 피우면 그것이 또 다음의 한 대로 연결 되고 그리고 또다시 한 대..... 이런 연쇄반응이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서두에 '나의 금연법은 쇼크 요법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결연히 금연을 결심한 사람에게는 이제부터의 이야기도 쇼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금연법에 여전히 의문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이 장은 여기서 인기를 멈추고, 나머지 다음 장을 다 읽은 다음 다시 돌아와 마저 읽기를 권한다.
이미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자.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해독에 대해서는 엄청난 데이터가 책이나 자료를 통해 나돌고 있다. 그러나 흡연자는 담배를 끊으려고 결심하기 전까지 그런 데이터는 아예 거들떠 보지 않는다. 흡연자는 담배로 인한 피해를 하늘에 운을 맡기는 지뢰를 밟을 확률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확실히 생각해 둬야 할 것은 담배의 해독은 이미 당신의 몸 속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담배를 한 모금 피울 때마다 발암성 타르가 폐로 스며든다. 그리고 암은 담배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사인 넘버원이다. 그밖에도 동맥 경화, 폐기종, 협심증, 혈전증, 만성기관지염, 천식 등도 담배가 원인인 질병이다.
흡연자들은 담배와 병의 관련성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담배가 서양에서 가장 많이 사인으로 거론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담배에 기인하는 병으로 사망하더라도 직접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통계처 리상 밝혀지지 않을 뿐이다. 또, 최근 통계를 보면 주택 화재의 44%가 담배가 원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교통사고도 운전을 하던 도중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한 순간 방심한 사이에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보통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신중한 편이지만, 지금까지 죽음에 가장 근접했던 적은(흡연하던 때를 제외하고) 운전하면서 씹는 잎담배를 둘둘 말려고 했을 때였다. 운전 중 기침을 하다가 불붙은 담배를 떨어뜨린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담배는 대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틈새로 떨어져 처치하기가 아주 곤란했었다.
또 자동차를 운전하는 흡연자라면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한손으로 운전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담뱃불을 붙이거나, 담배를 차내 재떨이에 내려놓거나,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고 꺼내는 행동은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100층 빌딩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50층을 지날 무렵 아직은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흡연자들의 정신상태이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어려움을 비켜올 수 있었기 때문에 '요것 한 개비 정도'면 괜찮다고 안심해 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흡연을 단지 '습관' 정도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 정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당신의 일생을 옥죄는 쇠사슬'과 같다. 이 한 개비는 다음의 한 개비를 부른다. 처음으로 피우는 담배는 마치 폭탄의 도화선과 같은 것이다. 도화선의 길이는 아무도 모른다. 담배를 한 개비씩 피울 때마다 당신은 한 걸음 한 걸음씩 곧 폭발할 폭탄에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다음의 한 개비가 마지막 한 개비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담배를 피우면 피울수록 피로감도 쌓인다
흡연자의 대부분은 담배가 폐를 망가뜨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까지는 잘 알지 못하는것 같다. 흡연을 하면 폐뿐만 아니라 몸 속의 혈관도 니코틴이나 일산화탄소 등의 독소로 가득 채워지므로 산소나 영양소가 온 몸에 골고루 흘러 퍼지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신체 기능은 저하되고 무기력감이 늘어나게 되며 병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대단히 완만하게 이루어지므로 흡연자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다. 나도 10대에는 대단히 건강한 소년이었지만, 그 이후 30여 년 간은 항상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때는 '활력이 넘치는 것은 10대까지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것이 금연한 결과 갑자기 활력이 돌아와, 지금은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나 가볍고 즐겁다. 담배로 몸을 학대하여 활력을 잃게 되면 스포츠나 오락의 기회를 피하게 되든지 폭음이나 폭식을 하게 되는 등,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담배 그 자체가 만들어 내는 지속적인 불안감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많은 흡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흡연에 관한 오해 중 가장 잘못된 오해이다. 금연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지속적으로 맛보는 불안감 때문에 더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밤늦은 시간,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맛보는 불안감은 담배 자체가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면 흡연자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우지 않는 사람은 그런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분명히 담배가 만들어 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담배를 끊기 전에는 누구나 금연의 이점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 자신도 담배를 끊고 몇 개월이나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금연 희망자와의 대화를 통해 금연에는 정말로 많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던 33년 간 나는 건강진단을 철저히 피했다. 담배 때문에 어떤 병의 조짐이 나타날 것은 자명했고 그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 두렵고 싫었기 때문이었다. 생명보험에 가입할때도 건강진단을 받지 않는 대신 높은 보험료를 내는 쪽을 선택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병원을 기피했고 의사는 물론 치과의사에게도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또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확 끼쳤다. 연금이나 그밖의 잡다한 문제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이와 같은 내 성격을 흡연과 연결해서는 생각 해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마침내 담배를 끊어보니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밝아졌다. 지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이 기다려질 정도이다.
물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불쾌한 일도 있을 것이고 일상적인 스트레스나 긴장도 느껴지겠지만,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자신감이 붙은 건 정말 멋진 수확이다. 또 건강, 에너지, 자신감과 같은 것은 즐거운 때를 보다 더 즐겁게 해준다. 자신감에 가득 찬 생활, 그것은 금연을 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흡연자일지라도 금연을 하는 순간부터 당신도 물론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불길한 그림자
흡연자는 모두 흡연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담배가 가지고 있는 나쁜 면에 대해서는 눈을 가리고 있다. 흡연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불길한 검은 그림자가 숨어 있다. 그러나 이 검은 그림자도 언제까지나 숨어 있지만은 않다. 의식의 표면에 갑자기 불쑥 얼굴을 내밀 때도 있다. 예를 들어 , 담배 광고에 곁들여진 경고문을 보았을 때, 기침이 멈추지 않을 때, 가슴에 통증이 스쳐갈 때, 자녀나 가족이나 친구가 담배 연기나 냄새, 담뱃재 등으로 불쾌한 얼굴을 할 때 등이다. 또 치
과에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나 연인과 키tm할 때, 피우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입냄새나 지저분한 이빨이 마음에 걸려 난처한 느낌이 머리를 쳐들게 된다. 그럴 때에는 자존심이 구겨지고 담배를 피우는 자신에게 자기 혐오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증오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느낌으로부터 해방되는 멋진 가분, 더 이상 담배를 피울 필요가 없음을 느낄 때의 기쁨은 이루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까지 나는 금연에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가를 설명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공평해야 하므로 다음 장에서는 흡연의 이점에 대해 거론해 보려고 한다.
흡연의 이점 : 무언가 기대를 했겠지만, 불행히도 흡연의 이점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정신력으로 끊으려 하지 말라
'금연은 참 힘들다 ' 이것이 금연에 대한 사회의 통설이다. 일반적인 금연 테라피
는 대개 금연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금연은 정말 바보스러울 정도로 간단하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일까?' 하고 의심할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잠깐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금연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담배를 피워야만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담배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막상 금연하려고 하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정신력으로는 절대 끊을 수 없다
금연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담배를 '정신력'으로 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신력에 의한 금연법이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도록 하여 담배를 끊게 하는 방법이다. 자, 그러면 이 '정신력에 의한 금연법'에 대해 상세하게 살펴 보자.
'담배를 피우자' 고 결심하여 흡연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 2∼3개비는 단지 시험삼아 피워봤을 정도이고, 그것도 너무나 지독한 맛 때문에 도저히 중독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에는 '나말고도 피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혹은 '교제상 필요할 것 같으니까' 한번 피워보자는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기적으로 담배를 사게 되고, 피우고 싶을 때만 피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피우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피우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어서 피우는 것이 아니라, 맛있으니까 피운다' 는 환상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중독에 빠져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누구라도 지독한 중독에 빠지기 전에 대체로 한두 번은 금연을 시도해 본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금연의 어려움을 눈치채게 된다. 그 계기는 보통 금전(여자 친구와 만나 앞으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며야 하는데 담배로 돈을 낭비하면 아까우니까)이나 건강(10대에는 스포츠를 많이 한다. 그 후 나이를 먹어도 운동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흡연의 영향으로 숨이 가빠진다) 때문이다. 하여튼 어떤 이유가 되든 흡연자는 우선 금전이나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스트레스가 쌓여 마침내 금연을 시도하면
이번에는 작은 악마가 참지 못하고 먹이를 요구한다. 여기서 딱 한 대만 피우고 싶다는 유혹과 부닥치게 되지만 단호하게 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흡연자는 '스트레스, 작은 악마의 유혹, 인내' 라는 3중의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지독한 고문자 같은 고통을 맛본 다음, '담배를 줄여보자'라든지 '금연을 도한 시기가 안 좋았다' 라든지 '스트레스가 일단 진정된 다음에 다시 금연을 시도하자' 라고 타협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스트레스가 진정되면 금연의 필요성도 사라져버려 흡연자는 다시 스트레스가 쌓일때까지 금연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다.
사람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스트레스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경우는 없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가정을 갖고, 주택 융자금을 갚고, 자녀가 태어나고, 직장에서 일에 대한 책임도 무겁게 되고..... 이런 일련의 커다란 일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므로 스트레스가 없는 금연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같은 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또 담배 자체가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므로 흡연자가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것은 더욱 더 무리한 일이다. 거기에 니코틴 섭취량까지 늘어나면 피로감도 늘고 결국 담배
가 마음의 의지가 된다는 환상도 더욱 강화된다. 몇 번인가 금연에 실패한 사람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다시는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게 되었으....." 하고 실현되기 어려운 헛된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이것은 "잠시 아주 심한 감기에 걸렸었는데 다 낫고 난 다음부터는 신기하게도 담배를 더 이상 피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어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때때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을 순진하게 믿어 속아넘어가서는 안 된다. 금연이 그 정도로 간단할 리 없다. 그 사람은 원래 금연하려고 결심하고 있었고 감기는 단지 그 발판이 되었을 뿐이다.
담배를 '너무나 간단하게' 끊을 수 있었다는 사람도 실제로는 어떤 커다란 쇼크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을 경우가 많다. 가까운 친척이 담배가 원인이 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든지, 스스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든지.....
"어느날 문득 담배를 끊어 볼까 하고 생각하자 바로 끊게 되었지요. 전 그런사람이에요"라고 으스대며 말하는 것은 누구나 간단하다. 그러나 절대 속아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진지하게 노력하는 자세없이는 절대 금연을 실현할수 없다.
'금연은 어렵다' 는 완고한 믿음
그렇다면 '정신력 금연법'이 왜 어려운가? 이유는 또 있다. 흡연자 대부분은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너무나 쉽게 '내일부터는 반드시 끊을 거야' 라고 다짐한다. 그리고는 일단 금연하지만 곧 실패한다. 그러니 당연히 금연은 어렵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래도 당신은 때때로 무엇인가가 계기가 되어 또다시 금연을 결의할 것이다. 그 계기는 건강, 금전, 사회적 평판일지도 모르고, 지독한 기침이 나와 '이번에는 정말 안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당신은 현실을 직시하고 흡연의 이점과 단점을 비교해 볼 것이다. 그러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간과했던 내용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냉정하게 비교하여 판단한 결과는 '금연'밖에 없다. 흡연의 이점 따위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기 때문에. 그런데 금연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그 때문에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기 쉽다. 여기서의 희생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환상의 힘은 거대하다. 왠지는 모르지만 일이 잘 풀릴 때나 아니거나 간에 담배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금연을 시작하기 전의 흡연자의 머리는 이미 사회에 세뇌되어 있고 니코틴 의존증이 그것을 더욱 다그치고 있다. 게다가 금연은 어렵다는 다른 사람의 경험담으로 인해 더욱 강력하게 세뇌되어 버린다. 몇 개월이나 금연하고 있지만 다시 피우고 싶어 죽겠다는 이야기, 금연에 성공해서 아직까지 참고는 있지만 그래도 계속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이야기, 몇 년 동안 담배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딱 한 대 다시 피우자마자 바로 중독이 되어 그 후로는 절대 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 흡연의 해독으로 병이 말기 상태까지 진행되어 몸이 완전히 피폐해 졌다는 환자의 이야기, 아무리 봐도 담배를 즐기는 모습이 아
닌 데도 계속 피우고 있는 흡연자의 이야기..... 당신도 이와 같은 경험들을 몇 번인가 겪은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거대한 에베레스트에 홀로 맞서는 것과 같은 아득하고 어두운 기분 때문에 위축감을 느끼며 금연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친구나 가족에게 "이제부터 금연 하기로 했어요. 몇 주정도 기분이 나쁘게 되어 엉뚱한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 잘 참아 주길 바래요'라고 말하며 뜬금 없이 머 리를 조아리는 사람도 있는 등, 아직 금연을 시작도 안 한 상태인데도 비장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금연 동기는 잊어버리고 피우는 이유만을 찾는다
'정신적 금연법' 으로 2∼3일 담배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하자. 폐의 오염도는 급속하게 개선될 것이며 담배를 안 사도 되므로 주머니에는 평상시보다 많은 돈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본래의 금연 동기도 머릿속에서 급속히 사라 져 간다. 마치 운전 중에 대형 사고를 목격하게 되면 잠시동안은 속도를 줄이지만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모든 것을 잊고 액셀러레이터를 마구 밟아대듯이. 정신력으로 금연하려는 동안에는 심리적인 초조감은 사라지지 않지만 신체적인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설사 느낀다 해도 대단치 않아서 만약 감기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도 일을 쉰다든지 실망한다든지 할 필요 없이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이다. 정신력 금연법을 하는 도중 끊임없이 느끼는 것은 바로 '담배를 피우고 싶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게 되면 끝장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 몸 속의 작은 악마가 마음에 커다란 악마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2∼3일 간 아니 ,2∼3시간 전만 해도 금연해야만 하는 이유를 늘어놓던 사람이 이번에는 다시 피워야만 하는 핑계를 찾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첫째, 인생은 짧고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 버스에 치어 죽을 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있는 병이있어 이미 손쓸 시기를 놓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최근에는 무엇이든 암의 원인이 된다고 온 세상이 떠들썩하기까지하다.
둘째 ,금연시기가 좋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까지, 휴가가 끝날때까지, 이 스트레스가 일단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자.
셋째,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집중할 수 없다(초조감이 생긴다, 기분이 나빠진다,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결국 친구나 가족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 안 된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다시 담배를 피워야 한다. 나 때문에 남에게 폐를 끼쳐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담배 애용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담배 없이 즐겁게 지내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나도 이렇게 말하면서 33년 동안이나 피워왔지만.....).
여기까지 오면 당신의 판정패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악마가 당당하게 먹이를 얻어먹게 되어 갈망이 충족된다. 한편 오랫동안의 금연 후에 피워보는 한 개비는 아주 지독한 맛이 나므로 왜 이런 것을 다시 피우려고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정신분열 증세가 높아진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를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력이 약할 리가 없다. 단지 담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은 '비참한 기분이 드는 인생이라면 건강하더라도, 돈이 많아도 의미가 없다. 비참한 긴 인생보다 짧고 즐거운 인생을 택하는 쪽이 훨씬 낫다' 라고 하는 최근의 사회풍조에 비춰보면 타당한 결심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신이 이 훌륭한말-비참한 긴 인생보다 짧고 즐거운 인생을 택하는 쪽이 훨씬 낫다-을 담배에 적용하는 한, 그것도 완전히 왜곡된 의미로. 여기서 나는 당당히 선언한다. 담배 없는 인생이 절대적으로 즐겁다고. 나는 33년 간이나 담배 없는 인생은 비참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고 담배를 피웠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아니,
벌써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금연했을 때 느끼는 비참함은 신체적 금단현상과는 전혀 관계없다. 진정한 고통은 마음 속에 있고 그것은 의심과 불안감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
즉, 희생심을 가지고 금연을 시작하므로 상실감을 맛보는 것이며, 그것이 일종의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이다. "한 대 피우고 싶지?"라고 누가 당신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때이다. 금연을 하자마자 피우고 싶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도 금연을 벌써 시작했으므로 그 한 개비를 피울 수는 없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우울해지고 이중으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영원히 담배의 저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
또 하나,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것; 이것도 금연을 어렵게 한다. 만일 당신의 목표가 자동차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험에 합격한 시점에서 목표는 달성된다. 그러나 '정신력 금연법'의 경우, 담배 없이 보내는 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피우고 싶은 기분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따라서 비로소 금연했다고 할 수 있다' 라고 하면서 금연을 시도한다. 이래서야 언제 목표를 달성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무엇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봐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다. 아니, 무엇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그래, 그동안 잘 참았다. 바로 지금부터 너는 금연자이다' 라고 선언하는 하느님의 음성이라도 들려오기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이 순간부터 너는 금연자이다' 라고 알려주는 어떤 빛나는 환시라도 기대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것으로 금연자임을 확인하노라' 하며 온 몸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내려지기를 바라는가?
마지막 한 개비를 피운 시점에서 당신은 이미 담배를 끊었으므로 아니, 금연 상태에 들어갔음으로 아니, 금연자가 되었으므로 당신은 금연자이다. 당신은 금연자의 의식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담배에 언제 굴복하는가 하는 일일뿐이다.
이미 설명한 대로 금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은 심리적인 불안감에 기인한다. 신체적 고통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불안감이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아, 금연한 후의 마음은 비참함으로 가득찬다. 담배를 잊어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담배에 종종 얽매여 구속받게 된다. 그리고 마음은 의심과 공포로 가득차게 된다.
"담배에 대한 이 갈망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다시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식사도 맛있게 할 수 있게 될까?"
"어떻게, 무엇으로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좋을까?"
"파티나 회식을 즐길 수 있을까?"
이렇게 현실을 한탄하고 있으면 오히려 담배는 점점 더 귀중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또 금연하면 실제로는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니코틴 없이 3주만 참을 수 있다면 신체적인 니코틴 의존증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니코틴이 일으키는 금단현상은 '아, 이 것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그렇게 3주가 지나면 사람들은 대개 '금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확인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한 개비 피워보는 것이다. 자, 이럴 경우 담배 한 개비로 그동안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된다. 설사 담배 맛이 최악으로 느껴질지라도 몸은 금단현상에서 풀려나 기쁨과 안식으로 가득 차게 된다. 물론 곧 비참함으로 바뀔 지극히 일시적인 기쁨과 안식으로. 담배 한 개비를 피우자마자 오래 참았던 탓에 신선한 느낌을 주는 니코틴이 몸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하고, 마음 속 깊은 곳 에서는 그 때까지의 금연으로 거의 빈사 상태에 있다가 기력을 회복한 작은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어때? 또 한 개비 피우고 싶지?" 보통은 그 유혹에 다시 빠지려는 마음을 그만 단념할 것이다. '다시 니코틴 중독에 빠지는 건 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다시 얼마 간의 안전기간을 둔다. 이 기간은 몇 시간일지, 며칠일지, 몇 년일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안전기간이 지나면 "좋아, 중독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졌지? 지금쯤이면 한 개비 정도 피워 보는 것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 빠져들었던 것과 똑같은 올가미에 다시 빠지는 꼴이 되는데, 이 때는 바로 니코틴 중독자의 함정으로 곧바로 빠져드는 미끄럼틀에 올라앉는 상태이다. 이미 가사 상
태로 쓰러져 있던 작은 악마는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가 당신이 다시 한 개비를 손에 들고 불을 붙이는 순간, 환호하면서 벌떡 일어나 당신의 목젖을 간질이며 큰 소리로 외친다.
"아주 잘 했어! 이 맛을 어찌 잊으랴! 이젠 나를 버리지마!"
'정신력 금연법' 으로 금연에 성공해도 그 과정은 길고 험난 하다. 왜냐하면 흡연의 주된 원인은 세뇌이므로 물리적인 의존증이 사라져도 담배가 계속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담배 없이 참고 지낼 수 있으면 다시는 금연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담배에 대한 그리움도 사라질 것이고 인생은 담배가 없는 편이 훨씬 좋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이처럼 정신력을 사용하여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 어렵고 수고스러우며 무엇보다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많다. 성공한 사람도 남은 인생 동안 상당히 위험한 상황 속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약간의 세뇌된 부분이 남아 있어, 담배가 정신적 고양이나 안정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채로 다만 피우는 행위만을 참고 있기 때문이다. 비흡연자는 이와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도 비록 사회에 세뇌되어 있기는 하지만 담배가 맛있는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며 담배의 나쁜 면을 똑바로 보고 '이런 것은 없어도 그만' 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금연하던 사람이 왜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는지 그이유를 이제 잘 알았을 것이다. 금연 중 괴로운 경험을 당했다든지 회식이나 친구 생일파티 등에 참석했을 경우, 그만 자기도 모르게 한 개비를 피우게 된다. 혹은 담배의 지독한 맛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일부러 피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 피워볼 테니 맛을 느껴 보아라. 이렇게 맛없는 것을 그래도 피우겠느냐? 라는 마음으로. 틀림없이 그 한 개비는 지독한 맛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니코틴이 몸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작은 악마가 소생하여 유혹의 목소리를 속삭인다.
"다시 한 개비 더 피우고 싶지?" 다시 한 개비 더 불을 붙여 봐도 역시 지독히 역겨운 맛이 난다. "좋았어! 이런 지독한 맛을 느끼는 한 다시는 중독에 빠지지 않겠지.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이 휴가가 끝나면, 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면 완전히 금연할거야." 이쯤 되면 이미 손쓸 방도가 없다. 당신은 벌써 다시 중독에 빠져버린 것이다. 맨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바로 그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몇 번이고 말했듯이 흡연은 '맛' 과 전혀 관계가 없다. 맛있다는 느낌 따위는 도저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맛있지도 않은 걸 피울 만큼 나는 바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맛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흡연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한 개비씩 피울 때마다 온갖 독성으로 가득한 불결한 연기가 폐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식하고 몸으로 느낀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런 물건에게 평생 3천만원씩이나 허비하고 있구나! 이 한 개비가 암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담배가 맛있다는 환상은 사라질 것이다. 담배의 나쁜 면에서 눈을 돌려 마음의 문을 닫으려고 하면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부딪치려 해도 두려워 도저히 참을 수가 언다. 사교모임 같은 곳에서 흡연자를 관찰해보자. 그들은 자신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한해 즐거운 것처럼 보인다.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의식할 때에는 기분이 나쁜 것처럼 보이고,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하고 있을 뿐이다.
담배를 줄이기가 완전히 끊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담배를 줄이 면 줄일수록 점점 더 피우고 싶어진다. 흡연량을 줄이는 것은 금연으로 향한 디딤돌로서 또는 작은악마의 활동을 컨트롤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많은 의사나 금연 어드바이서들도 금연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서 우선 흡연량을 줄이도록 권하고 있다.
피우는 개비 수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당신의 목표가 완전한 금연이라면 흡연량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절대 금연에 이르지 못한다. 혹은 담배를 줄이려다가 일생 그 수준에서 머물러 버리는 꼴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금연에 실패한 사람들이 완전한, 금연 대신 흡연량을 줄이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2∼3시간 또는 2∼3일 금연해 본 다음,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피우기 시작한다.
"담배 없이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려워. 그렇지, 이제부터는 아무 때나 담배를 피우기보다는 특별한 때만 피우도록 하자. 하루 10개비 정도로 줄이고..... 하루 10개비에 익숙해지면 그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든가 조금 더 줄여 보든가 하면 되겠지 ,"
그러나 이들에게는 확실히 불행이 깃들기 시작하고 있다. 즉,
첫째, 위와 같은 금연 방식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들은 이미 니코틴 의존증에 깊이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악마가 자신의 마음 속에 둥지를 틀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인생을 다음에 피울 담배에 마음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데 다 보내고 있다.
셋째, 담배를 줄이기 시작하기 전에는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마다 적어도 금단현상만큼은 완화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상으로부터의 스트레스에, 니코틴 금단현상에서 오는 스트레스
까지 더불어 견뎌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만 것이다.
넷째, 피우고 싶은 만큼 담배를 피웠던 때에는 맛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우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었다. 단지 기계적으로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담배를 줄이기 시작한 지금,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다음의 한 개비가 더 귀중하게 여겨지는 법. 한 개비 피우는 데 전보다 한시간씩이나 더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개비, 한 개비가 너무나 소중하고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은 흡연의 즐거움이 담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망에서부터 오는 불안을 해소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통이 클수록 즐거움도 늘어나는 셈이다.
흡연자라도 새 자동차를 사면 차 안에서 만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슈퍼나 극장, 병원 같은 곳에서도 흡연할 수 없는 불편(?)을 별로 느끼지 않는 흡연자도 많이 있다. 그들은 비흡연자와 동석할 때는 흡연을 삼가기까지 한다. 지하철이 금연지역 이라고 해서 흡연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이야기 따위는 들은 적이 없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주세요"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 흡연자로서는 오히려 기쁠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피우지 않아도 견딜 수 있었던 때에는 앞으로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고 남 몰래 기뻐하기도 했으니까.
피우는 개비 수를 줄이면 피우고 싶은 기분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여 피우는 개비 수를 줄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다. 피우는 빈도를 줄이면 줄일수록 담배와 담배 사이의 간격도(즉, 금단현상의 시간) 길어질뿐더러, 담배는 한층 더 귀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한편 맛은 점점 신통치 않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연하게 되기까지는 아니다. 맛은 금연과 관계없는 것이다. 담배 맛 때문에 흡연한다면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다. 믿을 수 없다고? 좋다, 어디까지가 되든 끝까지 파고들어 생각해 보자. 하루 중 가장 맛없다고 느껴지는 담배는 언제 피우는 담배인가? 그렇다, 아침 일찍 피우는 첫 담배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겨울 아침 같은 때에는 한없이 치밀어 오르는 기침으로 한동안 콜록거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장 귀중하게 생각되는 담배는? 그렇다, 역시 아침 일찍 피우는 첫 담배이다. 밤새 기다려왔던 만큼 얼마나 귀중한가? 이래도 맛과 냄새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고 생각하는가? 그 때의 담배는 밤중의 9시간 동안 가득 고여 터질 것 같은 금단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피운다고 말하는 편이 이치에 맞지 않은가?
니코힌 중독증에 흡연량의 감소는 효과가 없다. 흡연량을 줄이는 금연 방법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최악의 고문이다. 조금씩 줄여나가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기분도 줄어들 것이라는 식으로 담배를 줄이려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잘 될 턱이 없다. 흡연은 습관이 아니다. '중독'이다. 그리고 중독의 본질은 욕망이 점점 증가하면 증가했지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담배를 줄이려는 사람에게는 평생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정신력과 수련이 필요하게 된다.
금연의 어려움은 니코틴에 대한 화학적 의존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의존증을 이겨내는 것은 생각 외로 아주 간단하다. 금연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의존증 때문이 아니라 담배가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고 하는 잘못된 관념 때문이다. 이 잘못된 관념은 흡연을 시작하기 전부터 받아온 세뇌에 의해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의존증에 걸려 그 세뇌된 관념은 한층 더 강화된다. 바로 이 때 담배를 줄이게 되면 그 관념은 더욱 강화되고 인생은 완전히 담배에 의해 지배되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다음에 피울 담배 한 개비이다' 라고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흡연량을 줄이려고 시도한 사람들의 사례와 실태를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다. 틀림없이 담배를 줄여서 금연하게 된 사례도 조금은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담배를 단기간 동안 줄인 다음에 마치 마약 환자들이 금단현상을 치료하듯 참담한 고통 속에서 금연을 시도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담배를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금연에 성공했다는 것이지, 담배를 줄였기 때문에 금연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흡연량을 줄이는 것은 단지 고통의 시간을 늘릴 뿐이다. 더욱이 담배를 줄이는 데 실패하면 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평생을 담배에 의지해야 한다. 섣불리 시도하다가는 반드시 실패하고 어쩌면 다시 도전할 마음이 내킬 때까지 5년 동안이나 계속 피워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담배를 줄여보면 담배의 무익함을 잘 알게 된다. 왜냐하면 담배는 한동안 피우지 않다가 피웠을 때에만 맛있게 느껴진다'라는 사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계속 찧는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스스로 부딪치는(즉, 금단현상을 맛보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 오면 선택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밖에 없다.
첫째, 줄인 담배량을 평생 유지하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문 한다(어차피 이대로 참고 견딜 수가 없겠지만).
둘째, 지금 피우는 양 그대로 계속 담배를 피워 스스로를 질식시킨다(하지만 무엇을 위해?).
셋째,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 즉, 담배를 끊는다. 또 하나, 흡연이 당신에게 가르쳐 주는 소중한 진리는 '담배는 최소한 필요할 때에만 피운다' 라고 하는 발상은 그럴 듯 하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흡연은 평생 지속되는 연쇄 반응이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절대 명심해야 한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끊지 않는 한 끝이 없다. '담배를 줄이면 완전한 금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어렵게 된다' 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도록.
되돌릴 수 없는 '딱 한 개비'의 유혹
"딱 한 개비 정도는....." 이것도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거둬 치워야만 할 달콤한 유혹의 속삭임이다. 당신이 원래 흡연을 시작한 계기도 바로 이 단 한 개비 에서부터가 아니었던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든가,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며 피우는 바로 이 한 개비가 당신의 금연을 실패로 이끄는 길잡이가 된다. 가까스로 의존증에서 벗어난 사람도 이 단 한 개비 때문에 그 지긋지긋한 올가미로 다시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제 나에겐 담배가 필요 없겠지' 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 대 피워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담배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왜 다시 물고 피워 확인하는 수고까지 하려 하는가? '담배를 피워 내가 금연자임을 확인해 보겠다' 는 마음 자체가 작은 악마가 준비한 또 하나의 교묘한 트릭임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한 개비 피워보면 너무나 지독한 맛만 느끼게 되므로, 이제 두 번 다시 중독에 빠지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당신은 바로 그 때 또 다시 중독자가 되어 버린다.
자알, 정말 잘 머릿속에 새겨 넣어 두기 바란다 '딱 한 개비' 만 피우는 방법은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흡연이라도 모두 각각은 '딱 한 개비' 씩 이니까. 그러나 흡연은 당신도 잘 알다시피 연쇄 반응이므로 완전히 끊지 않으면 일생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게 된다. '딱 한 개비'의 간격이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년이든..... '딱 한 개비' 라든가 '특별한 경우니까 한 개비' 와 같은 터무니없는 신화를 믿기 때문에 일단 끊은 다음에도 피우고 싶어서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신화를 믿지 않는다고 확실히 의식한다면, 세뇌를 깨끗하게 씻어 버린다면, 당신은 비로소 담배를 미련 없이 결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에는 방안, 침대 주변 등 생활 공간이 불결한 일생, 큰 돈을 허비하여 몸과 마음을 스스로 깨부수는 일생, 노예와도 같은 일생, 내뱉는 숨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일생,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나 모두에게 기피당하는 일생,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일생, 피우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바보처럼 보이는(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일생을 보내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 보라.
담배에는 또 한 가지 별난 면이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기 바란다 "담배에 의존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담배를 피우겠습니까?" 대답은 예외 없이 이럴 것이다. "천만에,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러나 사실 누구에게나 '피우지 않겠다' 라고 할 수 있는 선택과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런데 왜 선택을 하지 않는가? 어째서 담배 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는가? 그건 바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지금 끊으면 일생을 지금 과 같이 즐겁게(?) 보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렇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짓은 이 정도로 그만해 두라. 당신도 금연할 수 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금연은 맥풀릴 정도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쉬운 금연을 하는 데 명심해야만 할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이 중에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도 있다.
첫째, 당신이 금연으로 잃어버릴 건 아무것도 없다. 멋진 이 득만이 있을뿐.
둘째, 아무리 '딱 한 개비만'이라도 절대 피우려고 하지 말자. 딱 한 개비만으로 그치는 흡연은 있을 수 없다. 딱 한 개비라도 피우게 되면 그것으로 다시 일생 동안 불결하고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
셋째, 당신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누구라도 아주 간단히 , 담배를 끊을 수 있다.
가끔 피우는 사람 10대 흡연자 / 피우지 않는 사람
흡연량이 적은사람을 부러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
헤비스모커는 담배를 조금씩 피우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사실은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적게 피우
는 사람이 헤비스모커보다 오히려 담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흡연 빈도가 적다면 확실히 무서운 병에 걸릴 확률도 낮고 허
비하는 돈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면을 비교해 볼
때, 적게 피우는 사람일수록 좋지 않다.
'흡연자는 사실 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라는 말을 기억하는
지? 즐기고 있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행위나 담배 자체 또는 담
배 맛이 아니라 금단현상이 완화되는 상태, 그 기분일 뿐이다.
애당초 마약의 본질은 그 금단현상의 완화에 있다. 흡연자는
금단현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인 스모킹에 빠지게 된
다. 그렇다면 체인 스모킹을 억제하는 요인을 세 가지 들어보
기로 한다.
첫째, '금전'
흡연자 중에 경제적으로 충분히 여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
지 않다.
둘째, '건강'
화학 독극물로부터의 금단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그 독
극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독극물을 어느 정도까지 섭
취할 수 있는지는 개인차가 있다. 또,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이것이 억제 작용으로서 기능한다.
셋째, '자제심'
사회적으로, 직업상 또는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강력하게 금
연을 강요받거나 흡연자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갈등의 결과,
마침내 스스로 금연을 결심한다.
여기서 몇 가지 용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두고자 한다.
Ⅰ. 비흡연자
1) 담배의 올가미에 빠진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사람. 그러나
자신이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담배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
다. 지금까지 비흡연자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다.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는 흡연자도 예전에는 절대
니코틴 중독 따위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
을 명심하라.
2) 흡연자였지만 금연을 시도한 후 지금까지 딱 한 대도 안
피운 사람 또 앞으로도 피울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즉, 금
연의 완전한 성공자.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당신과 같은 사람.
첫댓글 읽으란말이가 말란말이가...넘 긴 글...ㅠㅠ
읽다 지쳤는데...ㅋㅋ 끝까지 읽어볼께요 수고하셨어요^^
이 글 다 읽으면 담배 끊는건 문제도 아니겠당 ^^ / 좋은 글 감솨 ^^
이글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담배에 손이 가겠는데~... ^^*
금연합시다...
성님 짧게 간단하게 금연^^ 에고 복사 해오시느라 수고했고 읽느라 수고했십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