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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대항해 시대를 이끌며 전 세계를 연결한 포르투갈 제국
기이한 미스터리, 그리고 충돌하며 뒤엉킨 두 개의 세계관
유럽 대륙 서쪽 변방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발판으로 삼아 전 세계에 서양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1497-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경로(카헤이라 다 인디아)를 개척한 이후로 눈부시게 꽃피기 시작하여 전 세계의 온갖 상품들이 수도 리스보아(리스본)의 광장을 가득 메우던 포르투갈의 시대, 세계가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한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포르투갈의 왕립 기록물 보관소의 소장으로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다미앙 드 고이스이다. 두 번째 인물은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해기를 노래한 서사시 『루지아다스』로 국민 시인에 등극한 문인이자 방랑자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이다. 이 책은 이 두 남자를 중심으로, 서로 너무 다른 세계들이 끝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이해와 수용의 과정을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담아낸다. 그리고 전 세계가 촘촘하게 연결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낯선 것들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이 왜 중요한지 느끼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대항해 시대를 열다
모험심으로 시대를 이끈 포르투갈인들의 모습
1550년대, 포르투갈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한 시대의 문을 연 바다의 강국이었다. 인간 중심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유럽이 사상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을 때, 포르투갈인들은 먼바다로 과감히 배를 띄우며 대항해 시대를 열어젖혔다.
대항해 시대 리스보아에는 아프리카와 동방에서 온 이국적인 상품들을 들이는 거대한 세관들이 가득했고, 포르투갈 국왕들은 세계를 가로지른 선단이 도착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 탑을 세웠다. 오만의 샤이크(왕), 서아프리카의 국왕, 중국의 황제를 만난 최초의 유럽인 역시 포르투갈인들이었다. 이 책은 유럽과 나머지 세계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서 세계의 패권을 쥐락펴락했던 포르투갈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또한 낯선 사람과 사상들이 교차하며 발생한, 당대 유럽을 뒤덮은 폭발할 듯한 긴장감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리는 최고의 역사서에 수여되는 헤셀-틸트먼 상 수상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대항해 시대의 모습을 꼼꼼하게 그리면서 다소 낯선 포르투갈을 깊이 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한 남자는 숨진 채 발견되고, 한 남자는 세계를 방랑하다……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두 남자의 흥미로운 이야기
주요 인물 2명 중의 한 사람인 다미앙 드 고이스가 벽난로 옆에서 반쯤 타다 만 문서 조각을 쥔 채로 사망한, 미스터리하고 흥미로운 장면으로 이 책은 서두를 연다. 이 수상쩍은 살인 사건에 대해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기록들을 보면 그 시신에 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가 불에 타 죽었는지 교살당했는지, 당시 여인숙에 있었는지 집에 있었는지 등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린다. 이 책은 다미앙이 왜 이렇게 기묘한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로부터 20년 전으로 넘어가 진실을 추적해나간다.
포르투갈의 왕립 기록물 보관소장 다미앙은 호기심이 많으며 낯선 것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나 사상이라도 편견 없이 받아들였으며, 새로운 형식의 음악인 다성음악을 즐겨 듣는 것을 넘어 직접 작곡까지 했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이자 유명인사인 에라스뮈스와 깊이 교류했으며,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최전선에 있던 마르틴 루터를 만나기도 했다. 이처럼 다채로운 인생을 살았던 다미앙은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당대의 또다른 한 남자의 삶을 살펴봐야 한다. 바로 포르투갈 국민 시인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이다. 그런데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폭행을 일삼는 길거리의 건달이었으며, 감옥에 갇힌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는 유죄 선고를 받고 인도와 중국 등 동방의 낯선 땅으로 추방당하며 결국 부랑자가 되었다. 그러나 카몽이스는 세계를 방랑하며 겪은 경험을 살려서 바스쿠 다 가마와 그의 선원들의 항해 이야기를, 기적의 보물을 찾아 동방을 탐험하는 영웅인 이아손과 아르고 호 원정대 이야기로 변모시켰고, 자신이 마주한 경이로움을 활용하여 포르투갈인을, 그리고 유럽인을 세계의 중심에 세웠다. 이 서사시는 처음에는 소박하게 출간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가장 완벽한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으며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카몽이스는 이상적인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카몽이스의 이러한 삶 곳곳에 왕립 기록물 보관소장 살인 사건의 비밀을 풀 실마리가 숨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건 이후부터 300년이 훌쩍 지난 1903년에 포르투갈의 한 애서가가 리스보아 국립 도서관에 매도한 문서들 사이에 있던 카몽이스의 편지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편지들은 거의 밝혀진 바가 없던 카몽이스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 속에는 그가 암흑가와 연관이 있었던 사실 등 다미앙 사건의 진범을 파헤칠 만한 단서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미앙과 카몽이스의 삶의 궤적과 더불어 당시 포르투갈과 유럽을 휩쓸던, 새 시대를 맞이한 세계의 흥분과 갈등, 특히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이 책은 훌륭한 추리소설처럼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 세계가 이어지기 시작하던 물의 시대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저자는 전 세계가 연결되며 근대의 문이 막 열리기 시작할 즈음을 살았던 두 인물의 너무나도 다른 삶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한 인물은 유럽 대륙에서 온갖 기록물에 파묻혀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넓은 시야로 변화하는 세상을 면밀히 살폈다. 다른 인물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으나,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시각을 고집했다. 두 남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서사를 선사하는데, 동시에 저자는 세계의 구석구석이 연결된 현재에도 왜 사람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질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문화들을 접할수록 오히려 불안해하고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편협한 태도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극단적으로 분열되어가는 이 시대에 모든 생각에 열려 있던 다미앙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타임스」, 「프로스펙트」,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등 유수의 언론들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데 이어, 바다와 바다에 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가장 훌륭하게 전달한 작품 및 작가를 기념하는 상인 프레미오 마레티카(Premio MARetica) 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로 사람과 물건, 사상과 갈등을 실어 나르는, 끝없이 이어진 바다와 강, 즉 “물의 시대”가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명징하게 증명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르투갈은 일찍이 동서양의 종교적 일치를 희망했으나, 이 희망은 곧 동방의 종교에 자신들이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인도의 종교와 기독교의 근본적 차이를 점차 깨닫게 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가장 심오한 차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있었다.
[루지아다스]는 인도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과 어울려 사는 동물을 숭상한다는 것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잔인하게도 소의 피를 종교적 장소에 뿌리는 방식으로 이들을 조롱했다. 신성한 장소를 훼손하여 그곳을 슬픔과 오염의 장소로 만들어서 더는 예배 장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로의 연결과 확장은 곧, 낯선 사상과 신념이 교차하면서 수많은 갈등과 충돌을 촉발시켰다. 동방에서 만난 문명들이 정교하고 세련된 문화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탓에, 세계 역사의 중심이 예루살렘과 로마라는 단순한 생각이 무너졌다. 동방의 수많은 다양한 종교들을 접하면서 기독교라는 빛과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어둠 사이의 이분법적 투쟁이라는 서사 역시 흔들렸다. 지구가 움직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들의 사고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포르투갈은 이들 지역 대부분(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해안 곳곳)과 유럽 사이의 무역에 첫 단추를 끼웠을 뿐만 아니라, 거의 16세기 내내 유럽과 더 큰 세상을 연결하는 주요 관문 역할을 했다. 이는 포르투갈 기록물 보관소가 포르투갈 국내용 서면 기억 저장소에만 그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유럽이 유럽 너머에 있는 세계를 알게 되는 데에 필요한 중앙 정보처리 센터-당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국의 기록-역할도 했다는 의미였다. (…) 이 탑으로 보내지고, 이 탑 안에 소장되고, 이 탑에서 방출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유럽의 상상력이 크게 좌우되었다. / 20p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탐험에 뛰어들면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할 전 세계적, 심지어 보편적 제국의 건설을 꿈꾸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꿈을 꾸는 것이 그들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몽골과 중국, 무굴, 남인도, 그리고 당연히 오스만 문화권에서도 그들과 유사한 야심을 품고 있었다. / 151p
어느 철학자의 적절한 표현처럼, 과학적 발견이 자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발견이 가능해진다. 유럽 사회는 세계와 조우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유럽만이 예외적이고 유일한 지위에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 249p
포르투갈인도 그들이 일본 땅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 나름의 깜짝 선물을 가져왔다. 세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유럽인이 처음으로 소개한 것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측정하는 특정한 방법이었다. 1551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스오 국의 다이묘인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선물한 시계가 바로 일본 최초의 기계식 시계였다. (…) 선교사들은 그들 고유의 시간 개념을 비기독교 국가들이 도입하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과 같은 세계관을 가지도록 준비시키려는 의도였다. / 206p
다른 목소리들을 역사에 포함했더니, 포르투갈과 유럽의 역사 이야기에 담긴 우월적 승리주의를 가라앉히고 싶은 욕심이 뒤따랐다. 다미앙은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에 관한 기록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문을 뗀다. 많은 포르투갈인이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이 항로를 항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뱃길은 그저 오랫동안 인류에게 잊혔던 길일 뿐이다. / 274p
편지에서 카몽이스는 리스보아의 매춘부와 자신이 가담했던 깡패단에 관한 잡담만 더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이 리스보아 지하세계의 배후 인물이 누구인지 그 이름까지 거명했다.
주변에 있는 최정예 암살자들은 시망 호드리게스에게 고용된 자들일세. 이들은 한때는 그를 괴롭혔지만 지금은 그의 금고에서 사례비를 지불받고 있지. 마멀레이드 사탕과 찬물이 담긴 주전자로 말이야. 여기에 그의 귀부인 누이의 시선은 덤이지. 요새의 대장이 이런 식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런 중국행 항해에서는 급료보다는 도둑질로 돈을 더 번다네.
암살자들이 금고에서 마멀레이드 사탕과 찬물이 든 주전자로 사례비를 받는 다고 언급한 부분은 그로부터 4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진 도둑들의 은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여기에서 거명된 시망 호드리게스가 포르투갈 예수회 창립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보기보다 명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광신적인 수련 수사들의 우두머리이자 사반세기에 걸쳐 지치지도 않고 다미앙 드 고이스를 박해했던 시망 호드리게스는 공식적인 처벌 수단이 미치지 못한 자들에게 폭력의 응징을 가하도록 의뢰한 뒤 대가를 지불했을 수도 있다. 이들 예수회는 엄격하게 식단을 제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예외는 주요 축제일을 위해서 준비한 몇몇 당과였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마멀레이드 사탕이다.
어쩌면 과거를 특정한 방식으로만 생각하려는 우리 자신의 완고한 고집이 때로는 우리가 풀어야 할 단 하나의 암호일 수 있다.
수백 년간 유럽 문화는 다미앙의 다성음악과 같은, 한계를 두지 않는 역사관 대신에 카몽이스의 획일적인 유럽 중심 역사관 을 주류로 삼았다. 그렇더라도 16세기 초 새로운 문화 교류에 열린 마음으로 파고들며 탐구했던 몇몇 사람들의 노력이 완전히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었다. 미셸 몽테뉴는 다미앙의 저서에는 그저 함축적으로만 표현되었던 것을 수상록에 훨씬 더 노골적이고 명백하게 표현했다. 지구 저편의 문화들이 식습관과 단식에서부터 의복,시간,천체,성별과 성차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많은 삶의 측면에서 다르게 느껴지지만,이런 문화들의 교류는 유럽의 많은 사상과 신념들 가운데 불가피하거나 필요하거나 선천적으로 우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썼다.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유럽 중심주의를 허물어버린 다음에는 인간 중심주의라는 억측에 공격을 가했다.그는 우리를 속이고 우리에게 문화적 우월감을 심었던 바로 그 관행들이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는 잘못된 관념도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나머지 그들보다 위에 있지도 아래에 있지도 않다. 차이가 있고 순서와 정도가 있다하지만, 본질은 모두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