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 주일 (자선주일)
요한1,6-8.19-28 ;테살로니카5,16-24
《자선은 미룰 수 없는 사랑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3,16).
이 시간 내어주는 삶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사랑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자선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한 방법입니다.
가난한 사람, 고통받고 소외당한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체성사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바로 그 내어주는 사랑을 사는 것이 자선입니다.
신명기 24장19절에서는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 묶음을 잊어버리더라도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손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2절을 보면 “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25,4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라면 자선은 꼭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신명15,10).
기쁜 마음으로 (로마12,8)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고린13,3).
그러므로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2코린9,10).
그러나 만약 이만큼 도우면 나에게 그만한 대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그것은 자선이 아니라 장사입니다.
자선은 셈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베풀 수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19,21).
“내 눈썹이 내 눈 가까이 있는데도 보지 못합니다.
내 코가 눈 가까이 있는데도 또한 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주 가까이 있는데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들은 보는데 내가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은 나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입니다.
” 이기심을 버리고 나를 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선은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많은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 죽었습니다.
천사가 그의 영혼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저승으로 떠납니다.
갖고 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그가 대뜸 말했습니다.
‘돈을 가져가겠습니다.’
천사가 ‘그것은 안 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권력을 갖고 가겠습니다.’
그것도 안 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아름다운 여자라도 데려가고 싶습니다.’
그것도 안 된다고 하자,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그럼 내 몸에 있는 보석이라도 가져가게 해 주십시오.’
그것도 안 된다고 하자, 그가 화가 나서 물었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을 갖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 남에게 베풀어 준 것은 모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너희 가운데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1,26).고
요한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지만 여전히 그분을 몰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유한준)고 했습니다.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고, 또 아는 만큼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사람은 금방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옆에 있어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십시오(이사61,10).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7-18).
복음에서는 요한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요한은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훌륭한 분이 오시는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위대한 분이 오실 거라는 요한의 답변입니다.
대림 첫 주일의 주제는 ‘깨어 기다림’이었습니다.
둘째 주일은 ‘회개’였고, 셋째 주일은 ‘희망’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모습입니다.
기다림의 목표를 ‘소유하는 것’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힘겨운 인생에서 사랑과 감사를 ‘희망하는 것’의 첫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신앙인은 세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신덕과 망덕과 애덕입니다.
희망은 당당하게 세 덕목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희망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희망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 셋째 주일의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칭찬하시며 은총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받는 우리가 실망하며 살고 있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은혜로 주심에도, 감사하며 받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의 숙제입니다.
예수님은 어디 계실까요? 1)천당 2)지옥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계신답니다.
온갖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하시고자 지옥에 계십니다.
험하고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시며 어둡고 더럽다고 생각되는 곳,
괄시받고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 나서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협력을 바라고 계십니다.
자선을 베풀어 그분의 사랑에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송두리째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성 마더데레사).
첫댓글 세상에 있을 때 베풀어 준 것은 모두 가져갈 수 있다
감사합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