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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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 코올터 장군 동상
6·25 전쟁이 끝난 후 초토화된 우리나라의 재건에 힘쓴 공로로 1959년 10월 이태원에 동상을 건립했다. 이후
1977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전하였다. 6.25전쟁에서 위기일발의 포항 전투에서 미 제8군 부사령관이었던
존 비 코올터 장군(1891~1983)은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제1군단의 지휘를 맡아 8군의 일부로 활동을 재개하여
북한의 전진을 정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9월 북한에 대해 반격을 위한 지원부대를 통솔했다. 1952년부터
1958년까지 퇴역 이후 국제 유엔 한국 재건단장으로 한국의 재건을 위한 2억 달러 이상의 지출에 대한 감독했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서울어린이대공원 자리는 본래 골프장이었고, 그 전에는 순종의 첫번째 아내로 황태자비일 때 세상을 떠난 순명효황후 민씨가
안장된 유강원(裕康園)이 있었던 곳이다. 유강원은 일제시대인 1926년 순종 사망 후 유릉으로 이장하였고, 이에 따라 옛 유강원
자리가 토지가 공지로 남게 되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는 최상류층을 중심으로 골프가 도입되어 서울 주변 곳곳에 골프장이 생기고 있었다. 1927년 일본에서 골프를
배운 영친왕은 새로운 골프장을 짓고자 옛 유강원 자리인 대한제국 황실 소유의 토지 30만평을 경성골프구락부[2]에 무상 기증하고,
공사비로 쓰라고 하사금 2만엔을 지원하여 1930년 경성골프구락부 군자리 코스가 완공되었다. 이 골프장은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정규 18홀 골프장이었다.
군자리 골프장은 태평양 전쟁 와중에 파괴되었고,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컨트리구락부골프장'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자리 서울컨트리구락부를 자주 애용했는데, 서울이 확장 및 개발되면서 군자리 골프장에 출입하는 모습이 일반
대중들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당리(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한양컨트리클럽에 추가로 18홀 골프장을 신설하여 군자리 골프장을 이전했고,[3] 골프장 부지는 서울특별시가 인수하여 어린이 놀이공원을
조성하고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개장했으며, 하이랜드(주)가 놀이동산 위탁운영을 맡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굳이 옛 골프장을 어린이대공원으로 조성한 건 부인 육영수 여사의 조언이 있어서였다. 그는 이곳을 만들 때 1975년[4] 옆에
위치한 어린이회관도 함께
만들었으며, 1977년에 학교법인 선화학원에 일부 부지가 넘어간 후 서울시 독자 운영체제로 전환했다가 1986년에 서울특별시시설
관리공단으로 넘겼다. 반면 놀이동산은 1983년부터 하이랜드 측이 동마기업[5]에 위탁운영권을 넘겼으나 2002년부터 신설법인 어린이
대공원아이랜드(현 로봇파크)[6]로 넘겼다.
대한민국에서 테마공원이 많이 없었던 시절에 개장했기 때문에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들에게는 창경원(현 창경궁)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기도 한다.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생기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테마공원이었다.
이 당시까지 창경원과 함께 서울특별시의 대표 유원지로 손꼽혔다. 자연 환경을 그대로 살려 동식물원, 어린이종합유희장, 분수대,
야외수영장, 야외
음악당, 식당 등을 갖추었다. 1988년부터 사직공원에 있던 금동 김동인의 흉상과 문학비가 이곳에 이전되기도 했다.
1983년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는 것이 결정되고 이듬해인 1984년 경기도 과천(당시 시흥군 과천면)에서 같은 시립대공원인 서울대공원이
개장함에 따라 서울대공원과 함께 서울특별시의 대표 유원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1976년 경기도 용인(당시 용인군)에서 용인자연농원
(현 에버랜드)과 1987년 강북구(당시 도봉구)에 있는 드림랜드[7]와 1988년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과천 서울랜드, 1989년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롯데월드 어드벤처 등이 잇따라 개장하게 되면서 한때 방문객 수요가 감소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들어 과거사 청산 움직임 속에서
어린이대공원 안내문 속 박정희 대통령 찬양 글귀와 휘호, 김동인 문학비 등에 대해 독재찬양 및 친일반민족행위라며 민족문제연구소 등지에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운영기관인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은 2004년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답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며 "관리자들이 역사적 시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거나 존치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편 김동인 문학비는
2021년 2월에 그의 식민지 체제 협력 행위까지 언급한 QR코드 형태의 안내판을 세웠고, 9월 20일에 공단 측은 비석의 이전을
검토중이라고 했다.
2006년 9월까지만 해도 경로, 국가유공자, 장애인을 제외하면 오로지 유료로만 입장하는 공원이었지만, 2006년 10월부터 돔아트홀이나
놀이공원 등 영리 시설을 제외한 공원 전역(동물원 포함)을 무료로 개방했다. 공원의 무료화와 함께 주변 구의동, 능동, 중곡동 주민의
동네 공원으로서의 역할로도 활용되게 되었다.[8] 새벽 시간에 들어가보면 운동복을 차려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을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의 노후화가 계속 지적되자 순차적으로 시설 보강과 재시공 공사를 시작했고, 2009년에 완료했다. 동물원의 동물 우리도
신식[9]으로 바꾸고 장식들도 새로 꾸미는 등 크게 개수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무료 개방인 데다가 예전보다 시설도 좋아져서,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 덕에 상당히 북적이는 편이다.
2012년 하반기에 놀이공원이 재개장을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2014년 8월 재개장했다. 사실 그보다 더 일찍 재개장할 예정이었으나,
공사 지연으로 늦춰져서 한 때 다른 곳에 간단한 놀이기구 몇 개를 들여놓아 일종의 임시 놀이공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물론 이쪽은
본 놀이공원의 재개장 이후 당연히 다시 폐쇄되었다. 참고로 놀이공원은 그 드물디 드문 파파이스 매장이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2015년에는 에어로타운을 이용한 실사판 타요 버스를 전시하고 있었지만 2017년에 철수되었다.
한동안 놀이동산의 위탁운영사 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주)가 서울시설공단에 사용료를 내지 않았음에도 법원은 강제조정으로 운영계약을
연장했으나, 2020년 들어 공단 측은 위탁운영사 측의 은행계좌 및 신용카드를 가압류하며 시설 문을 닫았고(서울시 해명자료), 계약까지
해지하며 12월 18일에 기존 시설물을 철거했다. 이에 전 위탁운영사 측은 일방적 폐쇄라고 반발했으나 동년 8월 서울행정법원에서
기각되었고, 현재 미납 사용료 및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다른 한편 2021년 초부터 공단은 공개입찰을 통해 새 위탁운영사로
금오랜드를 운영하는 구미산업개발을 선정했고, 4월 1일부터 16개 놀이기구만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1년 8월 22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서울어린이대공원 메타파크'가 문을 열었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순종황제의 첫번째 아내로 황태자비일 때 세상을 떠난 순명효황후 민씨가 안장된 유강원(裕康園)이 있던 곳이기에
공원 내부에는 당시의 석물들이 남아 있다. 능동(陵洞)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서울컨트리구락부의 흔적으로는 공원 방문자센터인 '꿈마루'가 있다. 본래 이곳은 골프장의 클럽 하우스 건물이었다.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서면서 '교양관'이란 이름으로 사용하다가, 대공원 리모델링 때 철거후 새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이 건물은 근대건축가 중 한명인
나상진의 작품이어서 보존 가치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원형을 보존하고 개축하였다.// 출처:나무위키
▲ 고당 조만식 동상
고당 조만식님은...
조만식(曺晩植, 1883년 2월 1일 ~ 1950년 10월 18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종교인·
언론인·시민사회단체인·정치인이다. 22세 이후 상업과 종교활동에 종사하다가 1919년 3.1만세운동과 중국 출국
실패 등으로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일제강점기하에 교육활동
과 물산장려운동·국내민간 자본으로 대학설립 추진 운동인 민립대학 기성회 운동, YMCA 평양지회 설립,
신간회 등을 주도하였다. 1946년 1월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된 뒤 한국 전쟁 중 공산군의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1] 국산 물산장려운동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조선의 간디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호는 고당(古堂), 본관은 창녕(昌寧)이다./위키백과
▼ 동물원
▲ 바나나로 즐거운 간식 중. 황토비비님이 건네 주었던가?
▼ 식물원
1968년 12월9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무감리에서 북한 무장공비가 이승복(9세)를 비롯 일가족을 사살헸다.
공산군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저항하자 무참하게 일가족을 사살한 사건이다.
이승복을 기리는 추모탑 앞에서 잠시 머물며 고개를 숙였다.
기념탑 위로 비둘기가 날아 온다. 동상의 이승복 왼팔 위의 비둘기상과 대비된다.
나도 모르게 찰칵~
▲ 당시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 건국대 일감호
▲ 홍예교
홍예교(虹霓橋)는 무지개다리라고도 하는데, 좁은 구간에 교각을 세우지 않고 양측에서 미는 압축력으로 다리
중간의 하중을 버티는 공법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그리스 등지에서 이 공법이 활용되었고, 우리
나라에도 경복궁, 불국사 등에서 홍예교 양식을 볼수 있다.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常虛) 유석창(1900~1972) 박사는 일감호의 설계와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그는 학생
들이 일감호를 통해 우리나라의 화합 정신을 깨닫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일감호를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었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위치에 '홍예교'를 만들어 당시 갈등이 적지 않았던 두 지역의 화합을 상징했다. 또,
고구려 수도인 평양에 '와우도'를 만들어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했다. 와우도(臥牛島)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띄고 있다.
▲일감호.1992년 조성된 호수. 자연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성된 호수로, 국내에서는 제일 큰 호수이다.
가운데 섬(?)에는 한때는 철새들의 낙원이였는데...지금은 새들의 분비물로 오지 못하세 약품을 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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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네 유지(?)이신 이령님의 안내로 자양동 맛집 소해피식당에서 양질의 쇠고기로 점심 식사.
착한가격에 가역 대비 가성비가 굿굿~
식사 후 길건너 커피숍 이디아에서 커피타임~육식 후엔 역쉬~ 커피.
올 가을 단풍 곱게 물들 때 어린이공원 둘러 보고(이번에 가지 못한 명소도 걷고)
물론 이령님이 앞장 서시고.
상호 소해피 식당으로 So Happy 어떨지요? 소(牛)해피^^
▼내친김에 한강으로 고고씽~이령님의 안내로 따스한 햇볕과 햇빛 속 소화를 겸해 산책.
자벌레까지...
▲ 와우~ 촬영 포즈 베리 굿~뉘 시드라?
▼ 자벌레
함께하신 님들~ 안전귀가 하셨겠지여?
올 가을에도 어린이공원 같이해용~
첫댓글 어린이대공원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셔
다시
공부하게 됩니다
겨울답지 않은 높고 푸른하늘
눈부신 햇살 받으며
동네 한바퀴 ~~
구경 잘 하고왔어요
로따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