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강경'젓갈시장
곰삭음의 미학
참기 힘든 자극이다.
도대체가 배겨 낼 재간 없는 강렬한 식욕이다.
깊고 풍성한 '곰삭음'의 진미가 눈,코,입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을 괴롭힌다.
예부터 '밥도둑'이라는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주체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풍미를 낼 줄은 몰랐다.
김치와 더불어 우리 민족 전통음식의 하나인 젓갈.
발효식품의 진수이자 우리 식단의 간판음식.
이 수십 가지의 갖은 젓갈 앞에서 속수무책 매가리 없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사람들이 젓갈 맛을 보기위해 이 곳에 다 모이는 것이다.
충남 논산시 '강경젓갈시장.'
'강경'하면 '젓갈','젓갈'하면 '강경'이 생각날 정도로
전국 최대 규모의 젓갈 생산,유통시장.
한마디로 젓갈의 고향이자 메카이다.
전국 젓갈 유통량의 절반을 차지하고,읍 전체가 젓갈상점인 강경.
읍내에만 100여 개가 훨씬 넘는 젓갈상점이 있고,하루에도 관광버스 수백 대가 몰려드는 곳.
'젓갈축제' 때는 하루 200여t의 젓갈이 거래되는 시장이 '강경젓갈시장'이다.
평양,대구와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이었던 강경은,예부터 수산물과 젓갈시장으로 유명했다.
일제시대 때는 하루 100여 척의 배들이 온갖 수산물을 강경포구에 부렸으며,
전국 각처의 상인들이 매일 2만여 명 이상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팔고 남은 수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자체 염장법이 발달했는데,그 시절의 젓갈 담는 비법이
오늘날에 이어져 전국 제일의 젓갈시장 명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강경읍내의'젓갈타운'을 어슬렁거려 본다.
온 마을이 곰삭은 젓갈냄새로 구수하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타지 사람들로 넘쳐난다.
대형젓갈백화점에는 젓갈 전시대 앞에 '맛보기용 젓갈'을 이쑤시개로 찍어먹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맛을 보고 사 가라'는 나름의 '맛의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자체 '토굴'에서 고유의 숙성발효법으로 직접 젓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강경젓갈'은 천편일률적인 맛이 없고,저온 숙성방식이라 짜지 않아 좋다.
주로 서해 특산의 새우젓과 황석어젓,갈치젓,조개젓이'강경 대표 젓갈'로 손꼽을 수 있겠다.
젓갈타운을 식전에 돌아본다는 건 숫제 고문이다.
얼른 근처 '젓갈정식집'을 찾아간다.
당연히 젓갈정식을 시킨다.
큰 접시에 갖가지 젓갈들이 다 나온다.
얼핏 봐도 10여 가지는 돼 보인다.
새우젓,조개젓(바지락)은 물론이고 명란젓,창란젓,낙지젓,꼴뚜기젓,가리비젓,아가미젓….
구수하게 곰삭은 냄새가 깊고 그윽하다.
이렇게도 향기로울까?
온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따뜻한 흰 쌀밥 위에 먼저 조개젓을 올린다.
한 입 큼지막이 떠먹는다.
음~ 바지락살이 탱글탱글 씹힌다.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조갯살의 육즙이'양반 갓끈을 풀게 하는'맛이다.
연이어 낙지젓,가리비젓 다른 젓갈들을 차례대로 밥에 얹어 먹는다.
각각의 젓갈들이 나름의 향취와 풍미를 내고 있어,한 술 한 술이 즐겁고도 재미난다.
살강살강,쫀득쫀득,꼬들꼬들….
다양하게 씹히는 맛에 홀딱 정신이 팔려,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두 공기 째 쥐고 앉는다.
'밥도둑'도 이 정도면'큰 도둑'이다.
이제 곧 김장철이다.
이 시기에 맞춰 강경에서는 '강경젓갈축제(19일~25일)'가 열린다.
김장용 젓갈도 구입할 겸,젓갈축제의 다양한 풍물거리도 즐길 겸해서,한 번쯤은 다녀올만한 장이다.
특히 '젓갈정식'은 꼭 먹어보길 권한다.
입맛 없을 때 '입맛 찾아주는 특효약'으로 더 이상 가는 것이 없을 듯하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