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014] 2022년 3월 18일 금요일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요즘 코로나가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정말 조심해야겠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올가’라는 여자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전투 당시, 부대원은 이미 다 전사한 상태였는데, ‘올가’는 홀로 전투를 계속하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한 겁니다. ‘올가’는 12명의 자녀가 있는데, 그 중 6명은 입양한 자녀랍니다. 사망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지금도 전투 중이라 시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답니다.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제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경리였고, 본처인 우리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친할머니와 큰고모는 엄마를 찾아와 ‘아들도 아닌데 낳지 마라. 아기는 다시 가지면 된다.’고 헛소리하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채 쫓겨났다고 합니다.
입맛이 없어진 엄마는 ‘족발과 찐빵이 먹고 싶어’ 집 앞에 있는 시장을 누볐답니다. 진통이 오자,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택시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홀로 저를 낳았습니다. 제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산부인과 옆 여관에 그 여자를 데려다 놓고 저를 보러왔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 개씩 다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선 아버지는, 다시 우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엄마는 결국 이혼했습니다.
제가 4살 무렵, 아버지와 재혼한 그 여자가 엄마를 찾아왔습니다. 딸 하나를 낳고 아들을 임신 중이던 여자는 ‘기저귀 살 돈도 없다’면서 하소연했습니다. 그 말에, 엄마는 분유와 기저귀를 사다 주었습니다. 매일 돈을 버느라 바쁜 엄마는 저를 외할머니께 맡겼습니다. 외할머니는 아침마다 유치원 가는 제게 당부했습니다. “어디 가서 아비 없단 소리 듣지 않게 해야 한다.”
제 나이 27세 때,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딸인데 장례식에는 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큰고모의 전화를 받고, 엄마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친할머니는 저를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이고, 내 새끼야!”할 때는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10년 전에 이혼했다는 그 여자는 오지 않고, 그의 자식인 남매만 한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둘째고모부가 남매에게 저를 소개할 말을 찾지 못해서 헤매자, 저는 직접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 엄마는 본처, 그리고 나는 본처의 자식’이라고. 이 한마디로, 저는 아버지 없이 자란 ‘평생의 한’을 풀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무덤에 성묘를 갔습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습니다. ‘내게 무슨 아버지가 있냐?’는 말에, 엄마는 ‘떠난 사람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마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네가 존재하지 않냐?’며, ‘엄마에게 너를 주고 간 고마운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엄마의 뒤에 서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아빠!’하고 불러봤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어른이 된 듯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오륜영/경기 가평)
이 세상에는 ‘정말 기막히고 슬픈 사연을 가진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은 남자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요즘에 와서는, 남녀 할 것 없이 ‘가엾은 인생’을 만들어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낳아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낳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물맷돌)
[자기 아버지에게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낳았느냐?”고 항의하는 자식과, 자기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원망하는 자식은 화가 있으리라(사45: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19:9,쉬운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