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수교 15년 호황기를 맞은 교류와 합작
여기가 연길?
서울 동대문구역에 있는 어느 골목. 《연길랭면》, 《연길동방양고기꼬치》 등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마치 연길에 온듯한 착각을 준다. 단지 《도심공동재개발추진위원회》라는 간판만이 이 곳이 서울임을 알려준다.
북경의 코리아타운 망경(望京)에는 현재 6만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집거해 있다.
2007년 중한수교 15주년, 중한교류년의 해를 맞으며 앞으로 량국의 경제무역합작과 문화교류가 계속 활발해질것으로 밝게 전망되고있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두 나라 정부 해당 부서와 기업들에서는 량국 정상이 확정한 돌아오는 2012년까지 쌍변무역액을 2천억딸라에 도달시킨다는 확고한 목표하에 적극적인 노력을 추진하고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중한 쌍변무역
중국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6년 량국 쌍변수출입총액은 1343.1억딸라에 달해 2005년보다 20%증가세를 보였으며 수교년인 1992년의 50여억딸라보다 26배에 이르는 거족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수교전 향항을 거슬러 시작한 두 나라 소규모의 무역은 현재 일약 한국을 중국의 제6대무역파트너로, 3번째에 속하는 수입원산지로 급부상시켰다. 그리고 중국은 계속하여 한국의 제일 큰 무역상대국과 수출시장 자리를 굳히고있으며 제2대 수입국가로 자리매김하고있다.
2007년 량국 쌍변무역액은 지난해에 이어서 계속 20%의 고속성장을 보여 1500억딸라를 무난히 초과할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이 속도대로 나간다면 돌아오는 2012년 수교 20주년을 맞는 때에는 2000억딸라의 목표를 가히 실현할수 있으며 심지어 앞당길수도 있다고 락관적으로 내다보고있다.
서울 명동거리의 《연변코신부대》
민간무역과 합작도 국가무역에 짝지지 않게 성황을 보이고있다. 서울의 명동거리와 동대문 그리고 남대문시장을 샅샅이 누비는 연변상가의 다정하고 억척스러운 자매―《연변코신부대》들, 한국상품 도매와 소매로 소문난 연변《성보백화》에는 지금 200여호에 달하는 업자들이 하늘길과 배길을 타고 한국을 넘나들며 국제장사에 열을 쏟아붓고있다. 서울시내 번화가에서 꾸준히 한국돈을 벌고있는 《연변식당》과 《연변풍무양꼬치》, 한국 곳곳의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있는 우리 조선족과 기타 중국 산업연수생들, 가히 두 나라 합작과 발전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겠다.
중국에서 노다지를 캐는 한국기업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은 수교전인 1986년 한스물산, 조선무역 등 봉제완구업종을 중심으로, 향항을 우회한 심수경제특구 진출이 그 시작이 된다.
목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이미 3만개선을 훨씬 넘어섰으며 투자금액도 루계로 360억딸라이상에 달하고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집계자료에 따르면 2007년 3월말 현재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신고건수와 신고금액은 1만 8352건에 268억 1268만딸라, 투자건수와 투자금액은 1만 6426건에 178억 1500만딸라에 이르고있는것으로 보고됐다.
한국내에서 기업공동화가 생길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로 중국의 제일 서부 신강을 포함한 거의 전역에 한국기업이 진출해있는데 그중 산동, 료녕, 천진, 강소, 북경, 길림, 상해가 앞 7위를 차지하고있으며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동성에는 1만 8000개에 달하는 한국기업이 자리잡아 중국진출 전체 한국기업의 반천하를 차지하고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종도 농림어업으로부터 광산, 제조, 건설, 부동산, 금융, 통신, 교통, 숙박음식, 써비스, 컨설팅 등 제반 령역으로 뻗치고있으며 투자령역도 조기의 로동집약형으로부터 자본집약형과 기술집약형으로 발전하고있다. 한편 한국 조사기구의 다항조사보고에 따르면 금후 비교적 긴 시일동안 중국은 여전히 한국기업가들이 첫번째로 지목하는 해외투자지로 선정받게 될것으로 나타났다.
북경의 코리아타운―망경(望京)
중한수교이후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인 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올림픽을 맞는 2008년에는 백만명시대를 넘겨다보고있는 상황이다. 목전 중국에 장기적으로 체류하고있는 한국인은 70만명으로 짐작하고있는데 단기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자가 엄청날것으로 본다. 재중 한인회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북경에 장기체류하고있는 한국인은 10만명, 그리고 청도에 7만명, 상해에 5만여명 정도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자희태후가 당년에 8국련합군에게 쫓기워 북경성을 빠져나가며 착잡한 심정으로 되돌아봤다고 해서 이름지어졌다는 망경(望京), 도처에 한국말로 간판을 단 형형색색의 상호는 여기가 한국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하나 둘씩 모여서 살기 시작하던 한국인들이 지금은 6만명이나 집거하여 북경속의 작은 서울로, 여기서는 중국말을 몰라도 쇼핑이 가능하며 한국상품도 없는것이 없다.
어학과 류학열로 달아오른 두 나라
한국에서는 지금 유치원어린이로부터 환갑을 훨씬 넘긴 로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어의 인기도가 높아져서 영어버금으로 가는 외국어로 부상하였다. 공항으로부터 지하철, 백화점, 식당, 체육관에 이르기까지 중국어로 씌여진 길안내표식, 간판 등을 어렵잖게 찾아볼수 있으며 적잖은 한국 사업가들은 류창한 중국말로 중국바이어들과 직접 비즈니스를 진행할수 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한국어열풍으로 끓고있는 중국의 대학들과 어학원들, 현재 국내 60여개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돼 있다. 장춘에만도 길림대학, 동북사범대학, 장춘세무학원, 화교외국어학원 등 10개가 넘는 대학들에서 한국어학과를 설치하고 한국어를 가르치기에 열을 부쩍 올리고있다.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고있는 중국류학생은 2만명이상으로 이는 한국에 있는 전체 외국류학생 총수의 60%이상을 차지하고있는 셈이며 그 수자는 앞으로 계속 꾸준히 늘어날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상무부 안민부부장은 중한 량국 경제무역합작과 발전이 빠르기를 세계에서 전대미문이라고 지적하고있다. 수교 불과 15년만에 이룩한 거창한 발전과 거대한 성과, 세계사에 한획으로 남을 교류와 합작 실로 전대미문으로밖에 해석할수 없을상 싶다.
길림신문
만남의광장 중국연변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