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함양서 수나라 왕사오 가족묘원 발견 陕西:咸阳发现隋代王韶家族墓园
출처: WeChina WeChannel 작성자: 李明 赵占锐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2019년 1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산시성 고고학 연구소는 시셴 신구 공항의 새로운 도시인 디장거리 한자촌에서 수나라 가족 묘원인 수왕사오 가족 묘원을 완전히 발굴했습니다.
이 묘원은 사각형 도랑과 7개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랑으로 형성된 조역은 남북 길이 147.7m, 동서 너비 138.5m, 면적 21,360제곱미터로 현재 볼 수 있는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된 수나라 묘역입니다.
묘원에는 왕사오, 왕사오의 적장손 왕홍, 북주 원주 자사 왕카이(王楷·왕사오의 조부)의 장남 왕셴(王顯), 왕해 장손 왕스통(王仕通) 등 수대 7명이 묻혀 있습니다. 왕사오 묘는 가장 규모가 크며 땅에 흙이 덮인 7천정 쌍실토굴묘로 전체 길이 60m, 깊이 13.6m로 동관세촌 수나라 벽화묘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발견된 일반 수묘보다 훨씬 높습니다.
▲ 그림 1 수왕사오 가족 묘원의 분포도는 주변 도랑이 입구가 크고 바닥이 작은 도랑 모양이며 남쪽 도랑의 중앙 부분이 남쪽으로 돌출되어 묘원 입구를 시뮬레이션합니다. 수조 지역에 7개의 묘지(번호 2019XDHM1-M7)가 있으며 모두 경사 묘지의 여러 우물의 토굴묘로 북쪽과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북주-수나라 묘지 형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림 2 웨이거우 지역 묘지 중 M1 왕사오 묘지가 가장 규모가 크고 등급이 가장 높습니다. M1 표면의 원래 덮인 토양은 초기에 평평하게 밀렸으며 지금은 바닥 두께 약 0.3m만 남아 있습니다.
토양 덮개의 평면은 거의 사각형이며 바닥의 남북 길이는 19.48m, 동서 너비는 15.56m입니다. 장지는 조역내 최동쪽 경사면 묘도인 7천정의 쌍실토동묘로, 천정의 폭은 묘도와 같고 길이는 북쪽으로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묘실은 거의 사각형에 가깝고 돔 지붕이 있으며 동쪽 벽 중앙에 한쪽 방이 뚫려 있고 문 밖 양쪽에 각각 벽이 있습니다.
이 무덤은 심각하게 도난당했으며, 묘실 내에서 총 67개의 부장품(그룹)이 출토되었으며, 묘실과 벽감 내에 흩어져 있으며, 기형은 무사용, 진묘수, 기마용, 입용, 도돼지, 도계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 소량의 묘지 잔해는 복원할 수 없습니다.
▲ 그림 3 M1 왕사오 묘 전경(북-남)
▲ 그림 4 M1 왕사오 묘실(서-동) M7은 M1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조역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사묘로 3천정의 앞뒤 실토동묘로 수평 총길이 25.2m, 묘저(墓底)는 현존 지표면 깊이 7.84m입니다.
무덤실에서는 무사용, 기마용, 입용, 항아리, 도자기 병, 구리 비녀, 구리 거울, 구리 장신구 등 총 59점(조)의 부장품이 출토되었습니다.
▲ 그림 5 M7 전실(동-서) M3 왕스톰 묘는 M2와 M6 묘역의 형태와 일치하며 경사 묘도 2천정의 전후 실토동 묘로 수평 총길이 22.12m, 묘실 바닥은 지표면 깊이 7.6m입니다. 묘지는 약간 작은 입과 큰 바닥을 가지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 벽의 바닥에 붉은색 난간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묘실에서는 각종 도자기 항아리, 동전, 묘지 등 부장품 4점(조)이 출토되었는데, 지문에 따르면 묘주는 북주 원주 자사(原州刺史)이며, 우승후 왕해(王楷)의 장손 왕스퉁(王士通)으로 마침내 북주 보정(保定) 연간에 수개황(隋皇)이 9년 선영을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 그림 6 M3 왕스톰 묘 전경(북-남) M6 왕현 묘는 모든 묘지 중 부장품이 가장 풍부하며 총 66점(조)이 출토되었으며 주로 기마용과 입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왕현(王顯)은 왕카이(王楷)의 장남으로, 마침내 북주(北周)에 왕사통과 같은 날 이장되었습니다.
▲ 그림 7 M6 왕현묘실 M4 왕홍묘는 M5와 유사한 형태로 단실토굴묘로 수평 총길이 23.68m, 묘실 바닥은 지표면 깊이 7.32m, 묘실은 북쪽의 너비, 남쪽의 좁은 사다리꼴입니다.
묘실에서는 도자기 항아리, 구리 거울, 띠고리, 묘지 등 부장품 7점(조)이 출토되었습니다.
수항성공 왕소(王韶)의 세손이자 대흥성 건설을 주관한 수공부 상서, 안평공 우문개(宇文恺)의 외손자로 11세에 요절하였고, 개황 15년에 일찍 요절한 북주 광성공 단영(尔永)의 손녀 단영(段永)과 명혼하여 선영을 합장하고 왕소(王韶)와 함께 하관하였습니다.
▲ 그림 8 M4 왕홍의 묘실(서-동) 왕소(王韶)의 자는 자상(子相), 《수서(隋書)》는 세거경조(世居京兆), 북주(北周)에서 수(隋)에 이르러 군공을 세웠으며, 수(隋)에서 장사, 항성공을 병기하여 진왕광과 진왕준진 병주를 차례로 보조하여 수문제의 신망이 두텁습니다.
양제가 즉위하고 사도, 상서령, 영 豳 등 십주자사와 위나라 공에게 추증되었습니다.
왕사오와 위원카이(宇文恺)가 혼인을 하고, 그 망손자가 북주의 명장 단융(段永)의 손녀와 명혼한 것은 관룽그룹이 가문의 지위를 유지하고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왕소 가족 묘원 내 7개의 묘지는 분포가 규칙적이고 형태가 통일되어 있으며 부장 기물은 수나라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북주의 특징이 없으며 수나라에서 계획한 묘원임이 분명합니다.
출토된 4합 묘지에는 왕사오 가족묘원이 적어도 수 개황 9년(589)과 개황 15년(595)에 두 차례 하관되었으며, 두 묘는 북주 시대에 죽은 가족들의 이장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셴과 왕스통의 묘지에는 祔가 우승후의 묘역으로 옮겨졌다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묘지의 규모와 위치로 볼 때 M7은 수나라 초기에 묻힌 북주의 우승후 왕카이 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림 9 출토도용 수왕소 가족묘원은 규모가 크고 구조가 완전하며 주인의 신원이 명확하고 출토물이 비교적 풍부하여 북주에서 수나라까지의 고고학의 중요한 발견이며 북주에서 수나라까지의 가족묘지의 특징과 구성원의 매장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실물자료를 제공합니다.
분류:고고학 프론티어
본문 라벨: 수나라 왕소 가족 묘원 산시 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