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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여우라고 알려져있는 2차세계대전 가장 유명한 독일 국방군 장군인 E.롬멜.
롬멜은 아내를 굉장히 사랑해서 2차세계대전 내내 매일같이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다.
달리는 장갑차에서, 탱크 위에서, 사막 모래폭풍이 부는 천막안에서도 한결같이 매일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1940년 프랑스를 공격하는 동안 롬멜의 모습과 아내와의 애뜻한 러브스토리를 정리했습니다.
◆ 롬멜과 아내 루시에
롬멜은 첫사랑인 루시에와 결혼을 합니다.
결혼 전 루시에의 집안은 보수적인 귀족출신의 카톨릭 집안이였습니다. 반면에 롬멜은 개신교였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카톨릭 집안에서는 개신교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기에 루시에 어머니는 루시에가 롬멜과 만나는 것을 절대 반대합니다.
또, 당시 군인은 결혼을 하려면 군부에 지참금을 내야했는데, 롬멜은 그 지참금도 없는 가난한 젊은 소위였다.
집안의 반대에도 1916년에 결혼을 했지만 결혼후 루시에는 집안에서 쫓겨나고 카톨릭 교회에서도 제명 당합니다.
1916년 1차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휴가나와서 결혼을 하고 신혼을 즐기기도 전에, 롬멜은 곧바로 전쟁터로 돌아갑니다.
◆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들 만프레트와 루시에, 그리고 롬멜이 집에서 찍은 사진.
1차세계대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롬멜은 일약 스타가 됩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롬멜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집에 두고 다시 전쟁터로 나갑니다.
1940년 프랑스 침공 전 날 롬멜이 아내에게 쓴 편지로 전쟁에 나가기 전의 기대감, 긴장감을 애써 감추며 쓰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드디어 우리는 짐을 꾸리고 있는 중이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빌고 있소. 내일부터 며칠 동안 일어나는 모든 소식은 신문을 통해 알게 될 것이오. 너무 염려 말아요. 모든 일이 잘 되리라 믿소.
1940.5.9 」
이 편지를 쓴 다음 날인 1940년 5월 10일
롬멜이 이끄는 제7기갑사단이 프랑스를 기습공격 합니다.
◆ 프랑스 공격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제7기갑사단의 차량 행렬
첫날 동안 프랑스, 벨기에 군의 장애물을 제거하며 전진하던 롬멜의 전쟁 초기 상황은 매우 좋아보였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오늘에야 겨우 한숨 돌리게 되어 편지를 쓸 여유가 생겼소. 지금까지 일은 모두 잘 진행되고 있소. 내 부대는 인접 부대보다 훨씬 앞서 전진하고 있소. 명령을 내리고 고함을 질렀더니 목이 쉬었소. 3시간 정도 잠도 잤고 식사도 했소. 오늘은 이것으로 펜을 놓겠소.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못쓰겠소.
1940.5.11 」
시간에 쫓기며 마스 강을 향해 진격하던 롬멜은 이틀간 잠도 못자고 미친듯이 병사들을 다그쳐서 진격합니다.
위의 편지는 진격 중 잠시 휴식을 취하며 쓴 편지입니다
◆ 프랑스에서 진격 중인 제7기갑사단.
이때부터 롬멜은 시간과의 싸움, 적과의 싸움에서 놀라운 승리를 보여주면서 프랑스 방어선을 향해 달려 나갑니다.
◆ 1940년 프랑스 마스강에 도착한 롬멜
◆ 1940년 프랑스 마스강에 도착한 롬멜
그는 사진광이기도 했다
◆ 목숨 걸고 보트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선봉 부대.
롬멜 본인도 이때 보트를 타고 용감하게 선두에서 건너 갑니다.
◆ 강을 통해 공격을 감행한 선봉 부대
이렇게 독일군이 건너가서 강 건너편에 교두보를 만들고 임시 교량을 설치해서 독일군 탱크들이 강을 건너게 됩니다.
그리고 강 건너편 프랑스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독일군은 1차세계대전 때 4년반 동안 해내지 못했던 일을 2차세계대전에서 단 4일만에 해냅니다.
제일 선두에서 지휘를 하던 롬멜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성과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지만 이런 놀라운 성과는 최선봉에서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던 롬멜이 해낸 것임에는 틀림없다.
「 사랑하는 루에게
두 시간 정도 잤기 때문에 당신에게 소식을 전하기로 했소. 만사형통이오. 우리 사단은 혁혁한 전공을 세웠소... (중략) ...하룻밤 동안 60km나 전진했다오. 물론 우리가 항상 최선봉에서 달렸소. 이제부터는 포위된 영국군과 프랑스군 그리고 벨기에군의 60개 사단을 격멸하는 것뿐이오. 나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 말아요. 내 생각으로는 프랑스와의 전쟁이 앞으로 2주일이면 끝날 것이오.
1940.5.23 」
롬멜 본인도 편지에서 2주일이면 끝날 것이라고 얘기를 할 정도로 독일이 거둔 성과는 엄청난 것이였습니다.
독일군이 프랑스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북쪽에 있던 연합군 200만명을 포위하면서 전쟁은 사실상 2주만에 승부가 나버리고 맙니다.
◆ 프랑스에 진입한 제7기갑사단과 롬멜
북쪽의 연합군을 포위해서 대승리를 앞에 둔 롬멜은, 2주간 쉬지 않고 달려온 몸을 쉴 휴식시간을 얻습니다. 다음의 편지들은 그 휴식기간동안 보낸 편지들입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베튄까지 육박했소. 나는 매우 건강하오. 물론 전진 또 전진이지. 그리고 내 판단으로 전쟁은 2주일 내에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오. 날씨는 매우 좋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좀 그렇소.
1940. 5. 24 」
「 사랑하는 루에게
이틀 동안 전투가 없어서 참 다행이었소. 우리 사단은 오늘까지 장교 전사자 27명, 부상자 33명 그리고 사병 전사자와 부상자 1500명의 고귀한 희생자를 냈소. 이것은 12% 정도의 손실이라오. 우리가 거둔 전과에 비하면 극히 적은 희생이오. 최악의 사태는 이제 다 지나갔소.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이상 치열한 전투는 거의 없을 것 같소. 침식도 종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왔소. 슈뢰플러도 이미 복귀했다오. 그의 후임자가 내 옆 1m 떨어진 바로 곁에서 전사하고 말았소.
1940. 5. 26 」
그 뒤, 롬멜은 다시 전투를 위해 이동합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나는 무사하오. 지금 한창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릴에서 포위하느라 굉장히 바쁘다오. 나는 서남쪽에서 이 작전에 참가하고 있소. 당번병 귄터가 이것저것 잘 보살펴 주기 때문에 세탁이나 잡일은 걱정 안 해도 되오. 이번에는 사진을 많이 찍어 두었소.
1940 . 5. 27 」
다음의 편지는 롬멜 휘하의 장교가 눈부신 전과로 훈장을 받게된 롬멜을 축하하면서 루시에에게 보내진 편지이다.
「 존경하는 롬멜 장군 영부인께
총통께서는 자신을 대리해 한케 중위에게 롬멜 장군님께 기사십자훈장을 수여하라는 본부를 내렸음을 알려드립니다.
장군님을 곁에서 모시는 특전을 누리고 있는 소관을 포함해 사단 전 장병들은 이 훈장이야말로 오직 장군님만이 받아 마땅한 줄로 믿고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사단을 이끌어 다른 부대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전차를 타고 최전선에 나가 계십니다. 만일 소관이 영부인께 편지 올리는 것을 아신다면 잘 계시다는 안부를 전하게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소관이 팔에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아직도 펜을 들 수 없어 타자로 글을 올리오니 결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사단 전 참모들이 영부인께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경외를 받아 주시기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7기갑사단 부관참모 슈뢰플러 올림
1940. 5 .27 」
이후 북부의 연합군을 포위하여 연합군 대부분이 항복하거나, 덩케르크 항구를 통해 달아나면서 프랑스는 사실상 독일앞에 무방비하게 놓입니다.
아래의 편지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며 보내는 롬멜의 편지입니다. 당시 롬멜의 부대는 연합군을 포위망에 넣은 뒤 새로운 작전을 위해 프랑스의 미점령 지역으로 이동 중이였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중략) 한 시간 반 가량 눈을 붙이고 나서 새로 도착한 부대를 이끌고, 탄약과 연료를 보급받아 일선으로 향했다오. 불행히도 아군 포병의 과실로 대대장 1명을 잃었소.
이번에는 아마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게 될 것 같소. 프랑스도 이제 희망 없는 전쟁을 포기할 것이오. 만일 프랑스가 항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서 승리할 것이오. 모든 일이 뜻대로 잘 진행되고 있소.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 (생략)
1940. 5 .29 」
◆ 1944년 히틀러를 만나러 간 롬멜
「 사랑하는 루에게
오늘 총통(히틀러)의 부름을 받고 떠나오. 모든 장병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오. 내일 다시 쓰겠소.
1940. 6. 2 」
다음은 자신을 칭찬하려 부른 히틀러와의 만남을 아내에게 자랑하는 롬멜의 편지입니다.
당시 히틀러와 롬멜의 사이는 최고로 좋았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총통과의 만남은 참으로 감격적이었소. 총통께서는 "롬멜 장군! 우리는 공격 기간 동안 자네 걱정을 무척이나 많이 했다네" 하시며 나를 격려해 주셨소. 그의 표정은 무척 밝았소. 후에 나는 그를 수행해야만 했다오. 그를 수행한 많은 장성들 가운데 사단장은 나 한 사람뿐이었소.
1940. 6. 3 」
그러나 아직 프랑스는 항복하지 않았고 롬멜은 다시금 전장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오늘 다시 출발이오. 6일간의 휴식은 참으로 좋았소. 그 동안 우리의 장비도 다소나마 보충되어 전투력을 갖추게 되었다오.
새로 맞이할 전투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요. 출발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소. 우리가 있는 이 주변은 전화를 입지 않은 곳이라오. 하루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소. 나에 관한 신문기사는 모두 잘 보관해주구려. 지금은 그런 것들을 읽을 틈이 없지만 후일 다시 본다면 여러 가지로 재미있지 않겠소.
1940. 6. 4 」
버티고 있는 프랑스를 굴복 시키기 위한 추가 공격이 시작됩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오늘부터 2단계 공세가 개시되오. 한시간 후면 도하작전이 실시될 것이오... (중략)... 2주일 후면 내륙에서의 전쟁도 종료될 것이오. 매일 산더미 같은 우편물이 쏟아지고 있다오. 전 세계에서 축하 인사장을 보내오고 있소. 나는 아직 편지 한 통 뜯어보지 못했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으니 말이오. 지금은 새벽 3시 30분이라오.
1940. 6. 5 」
◆ 프랑스에서의 대승리 직후, 영국군 포로들을 뒤로하고 기념 사진을 찍은 롬멜(사진 맨 앞)
이때부터 롬멜에게는 쾌속진격의 연속이였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당신의 생일은 나에게는 더할 수 없는 성공의 날이었소. 우리는 모두 용감하게 싸웠소. 적에게서는 점점 붕괴되어 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소. 사단 장병들은 모두 건제하다오. 이것저것 잊어버리고 한숨 푹 잘까 하오.
1940. 6. 7 」
「 사랑하는 루에게
이틀 동안 추격의 연속이었소. 처음에는 남쪽으로, 그 다음에는 서남쪽으로, 기갑부대의 전진은 성공이었소. 어제는 70km나 전진했다오.
1940. 6. 9 」
「 사랑하는 루에게
지금 시간은 오전 다섯 시 ... (중략)... 우리가 거둔 전과는 대단하오. 적이 붕괴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오.
서부 전선이 이와 같이 사상누각처럼 무너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거요. 며칠째 당신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구려.
1940. 6. 10 」
◆ 1940년 6월 12일 롬멜이 직접 촬영한 영국군과 프랑스군 포로들의 모습
롬멜은 대승리를 거두면서 무수히 많은 연합군 포로들을 잡으며 프랑스를 가로지릅니다.
일주일간의 전투로 롬멜의 부대는 차량으로 수송한 포로만해도 12000명일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거둡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어제 100km 이상이나 적을 추격해 디에프의 서쪽 해안에 도착해서 프랑스군과 영국군 몇 개 사단의 퇴로를 차단했다오. 두 개의 항구와 몇 개 포대를 점령하고 적의 군함을 포격했소. 몇 척은 대파된 것 같소. 나는 새벽 3시까지 전투를 지휘하느라 사령부에 돌아가지 못했소. 오늘은 목욕도 하고 잠도 자야겠소.
1940. 6. 11 」
◆ 프랑스 생 발레리에서 항복한 영국군들(촬영자 롬멜)
맨 오른쪽이 영국군 제51사단장 포춘 장군이고 모자를 쓰지 않은 장교는 롬멜이 석방시킨 독일군 조종사이다.
「 사랑하는 루에게
전투는 끝났소. 오늘은 우리 사단의 공격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게 된 군단장 1명과 사단장 4명이 발레리의 장터에 있는 내 앞에 나타났소.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소!
1940. 6. 12 」
생 발레리에서만 롬멜은 4만 6천명의 연합군 포로를 잡습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 (중략) 이제부터 앞으로 며칠 동안 휴식에 들어가오. 프랑스에서는 더 이상 치열한 전투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오. 전진하는 도로 곁에 꽃이 피어 있는 곳도 많소.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것을 기뻐하고 있다오.
1940. 6. 14 」
「 사랑하는 루에게
오늘 아침 05시 30분 남쪽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당신의 애정 어린 10일자 편지를 받았소. 참으로 고맙구려. 오늘 우리는 예비대가 되어 센 강을 건너가오... (중략) 이 전쟁도 조만간 프랑스 전 영토의 평화적 점령으로 끝날 것이오. 주민의 처리도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소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인 곳도 있다오.
1940 .6 .16 」
그리고 롬멜은 혁혁한 전과를 이루면서 프랑스를 휩씁니다. 프랑스는 결국 휴전 협정을 맺자고 독일에게 제안을 합니다.
1940년 이렇게 서부전선에서의 전쟁은 독일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 사랑하는 루에게
...(중략) 며칠 내로 전투는 완전히 끝날 것 같소. 프랑스 국민도 이제 평온해진 것에 대해 안도하는 것 같소.
1940. 6. 21 」
「 사랑하는 루에게
결국 휴전협정이 발효되었소. 우리는 스페인 국경에서 불과 320km 떨어진 곳까지 들어와 있다오... (중략) 어제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복통을 일으켰지만 오늘은 괜찮구려. 머물고 있는 숙소는 그저 그만하오.
1940. 6. 25 」
위 편지에서 이야기하는 복통은 젊은 시절부터 롬멜을 괴롭히는데 나중에 아프리카에서 싸울 때도 복통으로 계속해서 고생합니다.
그 어려운 전장 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도 아내에게 매일 같이 편지를 쓰던 롬멜은 로맨티스트였음은 분명하다.
※ 위 글에 나오는 롬멜이 보낸 편지들은 「 한글개정판 롬멜전사록 The Rommel Papers. B.H리델 하트/ 황규만 옮김」에서 인용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