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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기자님께 : “스스로 완벽한 인간이라 자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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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교를 허구헌날 방문하시는 모 대학교수님이 툭 던져 주시는 하버드대학 여성학 논문집. [타임]지 더듬거리며 읽는 실력으로 읽는데 문장이 문학적 표현으로 일관되어서, 해석하자니 ‘입’이 한번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자, 그 대학교수님은 한국 번역의 실태를 비판하고 자신처럼 이렇게 하버드대학 여성학논문집도 자유자재로 읽고 외국을 방문해야 ‘대단한(완벽한) 인간’인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누구나 한 가지 씩은 잘하는 법을 달리 태어난 법. 돈을 많이 써서 배웠을 미국 학문 독해술에는 못 따라갈 지언정, 한글로 번역되는 ‘우리 말로 생각’하는 학문의 체득력에는 도저히 따라올 능력이 없는지라. 그 교수님은 바다를 건너다가 말할때마다 ‘각주’다는 습관에 대해서, ‘유식한체’ 한다고 “무식하게” “무식하게” 이러한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나중에야, 경우 그 뜻을 이해했다. ‘정직’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대학공간에서 ‘진실’이 소외되며 오히려 밟기까지 하는 점에서는 당시에는 ‘노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토플점수’도 보통 많이 받지 못하면 거의 읽지 못하는 하버드대학 여성학 논문집을 자유자재로 읽는 것을 완벽한 인간이라 부르는 대학교수가, 그저 한글로 씌어진 대형서점에서 뜨는 시중의 책들을 ‘소’처럼 터벅터벅 걷듯이 보는 것에서 마음이 평상심을 잃는 것을 보았다.
조갑제기자의 ‘완벽한 인간론’도 동일하다. 조갑제기자가 말하는 외국 사람들을 전부 보았을 사람은 없다. 그러한 사람들을 모두 보았을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는 ‘기자’직분 밖에 없다. 광활하게 넓게 돌아다니는 기자가 아니라면 전부 거짓이란 생각이다. 하버드대학의 여성학 논문집의 아주 어렵게 쓴 영어 논문을 읽어야 세상의 모든 ‘완전’을 독점한 듯 한 대학교수가, 시중에 번역된 책을 성실히 읽는 젊은이에 ‘시샘(?)’하는 듯 평상심을 잃는 경우를 보이듯이, 조갑제기자가 광활한 견문을 자랑하는 바탕에서 실제는 삶의 작은 공간에서 알 수 있는 바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실책이 아주 많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갑제기자는 ‘성령’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신약성경에서 ‘(공산주의적) 공동체 관념’을 발견하는 자들도, 호남지역 좌익과 부산지역 反 한나라당 세력들은 기독교인 아니냐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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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기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예기』 「예운편」의 ‘대동사회’ 원문이 [전통윤리]교과서에 거의 그대로 실려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조갑제기자의 독자층은 노년층이 다수. 모르면서 아는 척 적당히 ‘뻥’치면 어떠냐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과서 [전통윤리]로 이 땅에 고등학생들이 정확하게 ‘대동사회’를 배우고 있다.
‘대동사회’가 뭔지를 모르는 조갑제기자를 위해서 대략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기] 예운편에 실린 대동사회 원문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중국 사회의 모든 아시아 사상을 종합하여 만든 서구 고전 사상인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대응되는, 아시아 사상의 유토피아의 집합체이다. 오늘의 논리로 권력의 억압도 없이 복지사회가 완전히 구현되는 바탕을 말한다. ‘대동사회’의 반대말은 ‘소강사회’이다. 통치자가 겨우 질서를 잡고 겨우 만족을 시키나, 결국은 통치자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바탕을 말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발전 사상도 유교에 기반되어 있다. 극기복례 사상과 서구 개인주의 사상 토대의 ‘성령중심사상’은 국민윤리 사상 속에서 만나고 있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현재의 중국 공산당의 통치 철학도 ‘유교’이다. 세밀하게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부정적인지 따져 보지를 않고서, 북한공산당의 유교 배척론 가닥으로 덮어놓고 부정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대동단결론’을 주장한 바 없다. 조갑제기자가 인용한 ‘대동단결’은 고등학생들이 배우며 아시아사상 원전에 수록된 ‘대동단결론’이 아니라, 좌경 학생운동권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동단결론’이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성령’을 증거하기 위해서 산 사람이다. 예수님 말씀이 우위에 있고 나머지가 철저하게 후면화되는 것이 사도 바울이다. 사도바울 서신 연구 목록은 엄청나게 많다. 3류 평신도가 말할 수 있는 바는, 사도 바울은 결코 좌경 운동권이 말하는 ‘대동단결론’을 말한 바 없다는 것이다. 유대교로 개종하여 압박을 피하고 예수님을 더 믿지 않으려는 자들에 대하여, 히브리 교회 고린도 교회 등등에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들에 힘을 북돋우려 했던 바는, 철저하게 ‘예수님 말씀’이 우위에 선 가닥이 좌경운동권이 말하는 ‘대동단결’이 잊지 않다.
특히, 모르면서 아는 척 하면서 북한공산당이 ‘주자학’을 비판하는 스타일을 연상시키며(장기간 조기자의 일관된 모습) 덮어 놓고 하는 ‘주자학비판’은 문제가 크다. 오늘날 한문학에서 주자 해석을 따라서 읽는 이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주자학이 문제가 되는 이유 지적이 주자학이 좌경용공색(?)이라는 지적이 생뚱맞음의 극치이다. 조갑제기자는 성령을 믿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보는 좌경정치학이 우위에 있다. 조갑제기자는 진실하지 않다. 특히, ‘자신의 대전제’에 온갖 거짓말로 사탕발림하여 끼워 넣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김정일이 ‘주체사상의 틀’을 유지하고자 수없이 많은 거짓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거꾸로 닮아 버렸다.
해석해 내려는 ‘현상’에 적절한 사회에 회자되는 적절한 분석틀을 찾지 못하면, 말이 궁색해지고 옹색해진다. 수필체로 늘려 쓸 수만 없는 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박사모 사이트 ‘필부’의 글처럼 현상해석에 들어맞을 수 없는 생뚱맞은 ‘현학어구’가 남발되는 글을 보면, 이러한 가닥을 유지하면서 도대체 엘리트로 행세하는 이유는 뭔지 ‘데안토 논객’ shrans의 부당한 논객 점거를 연상하게 한다.
조갑제기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하여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에 기록되며, 영국도 인정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구분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올해 7월 부터는 ‘건축’에서 ‘평’개념이 사라진다. 반올림 평수로 말했다가, 입주 뒤에는 반올림이 슬쩍 사라지는 경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조갑제기자에 요청한다. ‘기자’도 사회에 엘리트이다. 건축에서 매매가의 기준이 되는 단위로, 건축업자끼리 얼마든지 고객을 우롱하는 것이 통용되어 왔는데, 그것이 금지 되는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면, 인문적 엘리트 사회에서 ‘평’개념은 무엇인가? 기본 가닥에서의 ‘개념의 정확성’이다. 그러한 개념 규정을 정확하게 써줌으로써, 배웠다는 사람들간의 생산적 소통이 가능하다.
조갑제기자의 글 대부분은 예를 들어 말하면 <‘가로 50센티 세로 40센티’를 뿅이라 부르노라>하는 자의적 명명법의 투성이다. 지지자들 모아서 끌어 모아서 힘으로 억지 쓰면 먹히지 안 먹히겠느냐 하는 ‘레닌주의’식 의지주의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칼 포퍼 조차도 일정한 수준의 규격에서는 ‘닫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외면한다는 승계호교수의 비판이 합당하다. 일정 수준의 닫힘이 없이는 ‘열림’은 의미 자체를 없애 버리는 무한 후퇴로 이어진다. 아펠과 하버마스의 니체식 열림에 대한 비판이 주목된다. 인터넷에서 화병 날 때는 ‘개똥철학’이라고 여러 차례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인텔리란 자부심과 많은 지지자에 쌓였다는 착각이 그것을 계속 외면하게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재론의 여지가 없이 틀린 것은 너무 많다.
성령은 성령이다. 성령은 원칙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갑제기자를 방어해주기 위한 일부 기독교 지지자들이 제발 정치에 종교 구문 인용하지 말라고 성질 내는 쪽글이 주르륵 달릴지도 모른다. 본인은 기독교 지식이 모자르다. 그러나, 그 한계 안에서도 주장을 이어가 보자.
조기자는 정신적 믿음이 세계관을 만들고 생활습관을 만들고 사회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기독교인의 믿음이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성경의 비유처럼 큐티로 얻은 성경 경구가 한달의 삶을 바르게 이끄는 경우의 체험적 기쁨도 없고, 말씀으로 씨를 뿌린다는 말처럼 좋은 교육적 계몽적 내용으로 밝은 미래가 다가올 수 있다는 ‘영적 승리’에 대한 신뢰성이 매우 부족하다.
사고의 다원성이라고 아무리 변명할지라도, 조기자의 사상적 원점은 레닌주의에 입각한 ‘힘’의 가치관이다. 레닌의 ‘적군’ 논리 기반에 ‘사무라이’를 끼워 넣고, ‘사무라이’ 끼워 넣고서 한국 사회에 맞지 않으면 ‘유교’를 비판하는 전통 단절론을 보인 것이다.
교회 청년부의 모태신앙의 성경을 달달 외우는 ‘사실상 무신론자’에 상처 받고서, 다시 청년부를 지나선 사람들의 집단에 등록을 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사도신경’이 좌경운동권의 <대동단결론>과 연결된다면 결코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기반의 서구적 개인주의 토대로서의 기독교 문명을 공부해 보면, <조갑제기자식의 레닌주의>만 콱 죽여 놓으면 유교를 부정하고 배척해야 될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 이후의 풍속도로써의 유교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면, 헌법 9조의 민족문화의 창달차원으로 유교문명의 긍정적인 것의 발견과 씨 뿌리듯 확장하는 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려면 자기가 모자르고 부족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레닌 스탈린주의는 철학독점권이 깨지면 큰일 나기에 영원히 잘나야 하고, 일본 사무라이의 장군에게도 ‘위세’가 깨지면 안되기에 영원히 잘나야 한다. 그러기에, 한국사회의 ‘우익’은 <반일반공>이 저절로 연결된다. 그 반일이 일본과 자유무역과 반대하는 게 아니다. 한국인이 일본인과 다른 분명한 가닥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사까에서 태어난 분이 반드시 경선에서 지되 한나라당 대선 승리에 도움을 주는 선이었으면 한다. 이는 조기자에 대한 감정도 포함된다. 한국인이 일본인과 다른 분명한 정체성이 뭔지를 전혀 모르는 것에선 울분의 반항이 포함되나, 우익진영에서 배척하자는 생각은 아니다. [불량보수 조갑제]라는 어느 논객의 지적은 적확했다. 그의 애국이념은 양질이 아니라 불량이다.
살아온 곳을 벗어나지 않고 벗어날 가망도 없는---여행할 돈이 있으면 책을 사겠다는 가치관이 깨지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다를 불량으로 보고 싶겠지만, 성령을 믿는 다수는 정반대로 그저 남다른 여행견문을 도취하는 바탕을 비판하게 된다.
첫댓글 초,중고생이 한 번만 읽어서도 무슨 뜻인지 알수 있는 글이 잘 쓴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글은 조갑제기자가 교회 용어를 일부로 썼되 전혀 말같지도 않게 쓴 글에 대한 비판글입니다. 귀하께서는 '용어'측면에서 압박감을 조금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귀하에 용어에서 압박감을 느껴도 안 느끼는 무수한 다른 사람 존재합니다. 박사모에 압박감만 느끼는 자밖에 안 온다면, 근혜님 지지층이 저학력 노년층으로 굳어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글 잘 썼다고 자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 앞에 자신 수준에 조금 넘는 용어가 있다고, 자기 기준으로 세상 만사는 새로운 용어에 짜증내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면, 박근혜 팬을 경로당으로 고정하는 일입니다. 결코, 정치인 팬클럽이 정치부기자들의 정치글쓰기를 닮아야 하는 법이
바다님은 글을 간결하게 쓰시는 법부터 훈련을 하시는게 좋을듯 싶다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애써 쓰신글을 될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보다 더 어떻게 간결합니까? 많이 안 봐도 됩니다. 조회수에 신경쓰는 귀하의 가치관을 제게 주입하지 마십시오. 정치부 기자의 정치적 글쓰기 패턴이 글쓰기의 전범도 모범도 아닙니다. 오히려, 팬클럽의 팬 자격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일이죠.
시종일관 횡설수설하는 내용으로 일관하는 것에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바다를건너다의 글쓰기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해 보면 이 자리에 있을 분이 아니라는 생각 드네요.
뭘, 횡설수설 했나요? 님의 논리정연한 능력을 보여주세요.
무궁화사랑님 글과 비교됩니다...
왜 남과 비교하시죠? 무궁화사랑님은 무궁화사랑님이고, 그 양반은 그양반 나름대로 노처녀인데 부동산법을 옛날 부동산법으로 아는 단점이 있기는 하죠. 그 놈의 '논객'이란 시선이 역겹군요. 무궁화사랑의 부동산 문제에 엽기적 무식 드러내기 이후로 솔직히 무궁화사랑의 글을 거의 본 적 없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이유도 모르겠구요. 모범과 전범과 평균화 압박이란 자체가 황당하다 못해서 화가 납니다. 무궁화 사랑의 글을 읽어보면서 그 분의 한계성 찾아 볼까요? 수두룩할껄요? 좌우간, 박근혜 지지자 중에서 노총각 노처녀 논객이 만날 수 있을까(?) 그러한 농반진반 표현은 다시 남기겠습니다.
초록비 님께. 무궁화사랑님 한테 가서 '국가공인공인중개사'만큼의 정확한 부동산 지식 못 갖추겠냐고 따지는 쪽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반응이 어떨찌? 그럼, 공인중개사 논객과 왜 비교하느냐 하는 신경질 안 나올까요? 참, 인터넷은 쌍방향 수평성인데, 참 뭐 같은 옛날 가닥 전근대 가닥 나오는 게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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