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참(클리앙)
2023-12-11 20:31:52 수정일 : 2023-12-11 23:24:51
갑자기 굥이 ASML을 방문한다고 해서 글을 한번 써봅니다. 저는 Global Tech 롱숏펀드 운용을 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a) ASML이 삼성전자의 슈퍼을이고, (b) 지금 EUV 혹은 그보다 더욱 차세대인 High-NA EUV를 충분히 구하지 않으면 삼성전자가 경쟁에서 뒤쳐지는 상황이다" 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ASML을 방문하는게 정답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 반대의 상황입니다. 올해 7월을 기점으로요.
굥이 네덜란드에 방문해서 EUV관련 어떤 일을 할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마는 뭐랄까.. 삽질 같은 것을 하고 올 것만 같아 이 글을 씁니다.
2015년 제가 Scottsdale(AZ)에서 매년 12월에 열리는 Credit Suisse US TMT Conference에 갔을때 ASML의 Peter Wennink 회장님을 1:1 미팅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small group meeting이었는데 다른 운용사들이 불참해서 저 혼자 뵐 수 있었죠. 2015년이면 EUV 사이클이 시작되기 약 2년 전입니다. 그때 제 질문은 "ASML의 기업가치는 언제 정점을 찍을까요?" 였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저의 공통된 답은,
"(10년을 놓고 보면) EUV도입으로 인한 증분 cost가 그로 인한 증분 효용을 상회하기 시작할 때가 ASML 기업가치의 정점이 될 것이다" 였습니다.
자, EUV 도입으로 인한 증분 cost vs. 증분 효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적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 삼성전자 사람들도 다 알고 있을것 같긴 합니다.
1. HPC (High-Performance Computing)에 들어가는 Compute silicon은 (GPU, CPU와 같은..) 대면적 die 입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는 소면적 die 입니다. 대면적 die 는 웨이퍼 장당 fabricate 되는 die 수가 적기때문에 수율이 제조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소면적 die 보다 훨씬 큽니다.
2. 2018년부터 AMD가 도입하기 시작한 Chiplet이 이제는 CPU뿐 아니라 GPU, 그리고 지금 미국/중국의 webscaler들이 설계하고 있는 own-silicon에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Chiplet을 사용하면 대면적 die를 몽창 2nm 혹은 3nm와 같은 선행공정을 사용하지 않고, 일부 블럭은 5nm, 또 다른 블럭은 7nm로 fabricate 한 후 바느질/오려붙이기 (hybrid bonding) 하면 됩니다. 사실 chiplet의 최초 도입은 AMD가 Intel을 이기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ASML의 EUV 가격이 너무나 높기에 더욱 광범위 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3. Tech 수요 증가의 중심은 더이상 스마트폰이 아니라 HPC입니다. 즉 EUV 수요의 원천이 되는 application의 수요증가는 크게 둔화되고 EUV가 상대적으로 필요없는 application의 수요가 크게 느는 국면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반도체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에요 - 새로운 수요성장을 보이는 application이 선행공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때문에 삼성전자와 TSMC 모두 EUV 주문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아, 표현이 잘못 되었네요. 이미 취소는 올해 3분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ASML의 2024년 EUV shipment에 대한 consensus가 작년 11월 대비 지금 대폭 낮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술한 이유때문에 ASML의 주가는 Hybrid bonding에 쓰이는 장비를 만드는 BESI나, 하물며 전공정 장비를 제조하는 ASMI 보다도 언더퍼폼하고 있고요.
요는, 지금 굥이 왜 네덜란드를 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왠만하면 지금까지 commit한 EUV 주문도 취소하고 싶을텐데 말이에요. 지금 굥이 가야 할 곳은 Amazon과 MSFT가 있는 Seattle이나 Google과 META가 있는 Valley area입니다. 거기 가셔서 삼성전자 HBM도 좀 잘 봐주세요 하고 오면 재용이가 좋아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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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라고 그런 생각 안하겠습니까? '굥이 뭐 ASML이 뭐하는 회산지 알고 가겠어? 밑에 어떤 놈이 ASML이라고 들어봤으니까 가는거겠지'
근데.. 사실은 안사도 될 EUV를 삼성전자가 억지로 사게 될까봐 그게 좀 걱정이 되네요. DRAM은 모르겠지만 Foundry는 이미 TSMC에 3nm까지 고객들이 다 넘어간 상태라서 충분히 정교한 ROIC 계산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그게 나중에 주주가치에 해가 되거든요. 이게 한대에 EUR 250mn 하는 장비라서 말이죠.. 아래 글을 보니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은 아닌 것 같네요.
윤석열이 네델란드 간 이유 추측 (매불쇼) : 클리앙 (clien.net)
저는 지금 여러분이 납입하고 계시는 국민연금 (혹은 선생님이시라면 사학연금/교직원공제회, 공뭔이라면 행정공제회)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보유하고 있을 삼성전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댓글 중---
서울작은눈
그걸 알고 가지는 않고 네덜란드 안가봤으니까 그냥 가는거 아닐까요.
제니스9
좀 다른 이야기인데 주말에 대학 사람들 송년회 했는데, 그 중 칼짜이즈 다니던 후배가 이야기해주더군요.
ASML에 줄서서 장비 사야 하는 이유는 칼짜이즈에서 공급하는 렌즈가 한정적이라네요.
치킨수프
세상이 또 이렇게 바뀌는군요. tsmc 쪽 수요가 확 줄은건 긍정적인 소식인거같은데요. 삼성은 로직 비중이 얼마 안되기도 하고 애초에 tsmc랑 딱히 로직에선 경쟁이 되는 수준도 아니라서 그쪽 수요만 보면 줄 수도 있을거같은데 메모리 쪽에선 격차를 유지하려고 오히려 euv 투자를 공격적으로 한다는 기사를 예전에 봤는데 그쪽을 중시한다면 나름 asml에 공을 들이는 것도 예전만큼 절박하진 않아도 필요한거 아닌가요?
그놈참
@치킨수프님 좋은 질문입니다. 본문에 쓴 것 처럼 "10년을 놓고 보면" ASML 기업 가치의 정점을 지났다 이지, 이제 영원히 asml을 꼭치 쳤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DRAM만 봐도 1bnm 이하 공정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고요. 이 국면이 지속되면 ASML의 pricing power도 내려갈테니 삼성전자에게 나쁘진 않지요. 하지만.. 삼성전자에게는 구조적으로 더욱 커다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걸 여기에 적으려면 너무나 품이 많이 들어서.. ㅠㅜ
퐁팡핑요
이미 업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거죠 ㅠㅠ
그놈참
@퐁팡핑요님 맞습니다. 제가 봤을때 메모리쪽에 계신 분들은 이제 다 아실거 같아요. 하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ASML이 수퍼을이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또 지난 4년동안 놓고 보면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죠. 그래서 지금 산업의 배경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 정도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