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아시모프는 '에드워드 기본'의 <로마제국흥망사>를 읽고 자극받아
공상과학소설 <파운데이션>을 출간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 '해리셀던'은 수학자로서
이른바 '역사심리학'이라는 수학개념을 이용하여 인류의 미래 역사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의 행동은 일정한 패턴이 있고, 그러한 패턴이 조금씩 다르지만
긴 시간동안 반복되며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구조가 각 인간마다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행동을 수학적으로 표본화하여 전개해 나가면
정확하게 인간의 미래역사까지도 정확하게 산출해 나갈 수 있다는 것, 미래역사를 내다볼 수
있다는 논리수학을 눈여겨본 '은하제국' 황제는 해리셀던을 불러들여 마래역사에서 황제가
계속 권력을 유지하도록 역사심리학이라는 논리수학을 이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셀던은 역사심리학은 아직 정확한 수학개념이 아니며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공상수준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어 황제의 요구를 거절하게 된다.
황제는 이에 격분하여 해리 셀던을 위험인물로 지정하고 그를 암살하려 시도한다.
셀던은 황제의 암살위협을 피하며 은하제국 여기저기를 숨어 다니면서 실질적으로 은하제국의
파멸의 징후를 접하게 된다. 그러한 모험을 겪으면서 드디어 셀던은 역사심리학을 완성하고
파멸이후 닥쳐올 은하제국의 무질서를 되도록이면 짧은 기간에 끝마치고 새로운 은하제국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파운데이션을 창설하기로 한다. 이에 세력이 약화되고 점차로 제국의
변방으로부터의 위협에 몸서리를 앓고있던 황제는 결국 '파운데이션'의 설립을 허락한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파운데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기반, 근본이다.
즉 그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근본 기반을 의미한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가
파운데이션이었으며,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노'가 파운데이션이었고, 근대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바로 파운데이션이었다.
이는 마치 '물길'과 같은 개념이다. 태양과 물과 흙으로 살아온 시절에는 농업이
가장 근간이었기에 농업용수의 물길을 어디로 댈 것인가는 매우 중요했다.
그러한 농업용수를 가지고 서로 자신들의 농토에 물길을 대려고 숱한 갈등과 전쟁을
치룬 것이 과거 인류의 역사였다. 과거의 인류는 집단적인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이런 집단개념은 지구상의 동물중 가장 나약한 신체 구조를 가진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고, 그렇게 집단생활을 통해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것이 노예제 사회를 낳고, 신분제라는 체제를 만들게 된다. 신분제 사회는 '힘'에 의한
지배개념이 우세했고, 지배자 신분에 속한 사람들이 피지배자 신분에 속한 사람들을 세습적으로
착취하여 살아가며 끝없이 지배계급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숱한 민족과 국가들이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면 이러한 신분제라는 사회는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고 지금도
곳곳에서 보여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노예제에 기반한 나라중 가장 위대한 제국이라는
로마제국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설명한다.
"체력에서는 켈트인보다도 못하고,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며,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도 떨어지는 이들 로마인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번영을
누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로마에 병합된 그리스 한 귀족의 발언이다.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리스 귀족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관용, 관용의 정신'
비록 지배당하기 전에는 적이었지만 지배이후 로마인과 동등한 생활기반을 보장하고,
어느 지배계급에 지배 당하더라도 이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번영을 제공해 준다면
지배 당하는 백성은 굳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관용, 관용의 정신'이
로마가 제국을 이룬 핵심적 비결이었던 것이다. 즉 지배 당하는 백성이 숱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가 많은 비용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면 '지배이윤'보다 '지배비용'이
월등히 크므로 지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배 당하는 백성의 입장에서는 누가 지배하든
나의 생활에 손해가 되지않고 오히려 보탬이 된다면 굳이 이전의 왕이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려가며 로마에 저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제국은 백성에게 파운데이션을
제공하고 그러한 파운데이션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롭다고 여겨져야 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오늘의 시대를 글로벌 만의 시대도 아니고,
로컬도 아닌 글로벌과 로컬의 조화라는 '클로컬(Glocal)'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른바 미국적 표준의 획일화된 글로벌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와 문화가 발현되는
로컬이 일어나면서 결국 '글로벌한 로컬시대'가 펼쳐 진다는 것이다.
최근 몇년 전부터 동남아를 중심으로 일고있는 한류열풍은 결국 한국적 아이덴티티가 지닌 사회,
문화적 가치가 동남아 각 국의 백성들이 희원하고 있던 가치와 맞물려 발생한 사회적, 문화적인
파운데이션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한류열풍'을 제대로 해석 것이 아닐까?
이에 따라서 모든 생활기반인 파운데이션도 대량에서 다품종소량으로 이동하고
이것이 바로 '집단'에서 '개인'으로의 변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파운데이션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개인이 가진 가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진 가치를 '공공의 선과 이익'에 유익한 측면으로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 이것이 바로 '가치주의 시대'일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파운데이션이 아닐까?
부유세와 사치세 징수의 포기를 선언하죠), 노조의 천국 프랑스도 기업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기업의 창업과 해외기업의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신질서의 모색의 현 상황은 부분적으로는 공황상태로도 볼수도 있지만 저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의 탈근대를 위한 처절했던 몸부림과 비교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낙후되어 있는 분야인 농업분야에 대한 WTO협약은 농업도 기업의 경쟁처럼 세계화의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것에 각
나라의 고유한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들의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 개개인들이 최소한 실천하여야 하는 행동강령은 무었일까요? 이제는 그것을 고민해야 하는 때 -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