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우리 대구이야기
23. 【육신사】 신의 한 수, 묘골의 풍수 이야기
글·송은석
(전 성균관청년유도회 대구광역시본부 사무국장·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절묘하고 진기한 묘골의 안대
빈 터가 바로 참봉댁 집터이다. 멀리 수구막이 숲과 귀인봉이 보인다.
수직선상에 놓여 있는 귀인봉, 일자문성, 수구막이 비보숲
태고정 누바루에서 바라보면 일자문성과 비보숲은 보이나 귀인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위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천양지차임을 알 수 있다.
절묘한 모습의 귀인봉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봉댁 집터 뒤편에 올라야 한다.
묘골과 파회마을 스카이뷰
프롤로그
바로 앞 시간 우리는 묘골박씨 선영을 한 번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묏자리를 논할 때 으레 풍수지리를 들먹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풍수지리는 동양사상의 주요개념 중의 하나인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사상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주장에 따르면 천과 관련된 분야가 ‘사주명리학’이요, 지와 관련된 분야는 ‘풍수지리학’이요, 인과 관련된 분야는 ‘한의학’이라고 한다. 동양학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오늘은 이처럼 동양사상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풍수지리라는 도구를 들고, 묘골을 한 번 둘러보기로 하자. 사실 우리네 전통마을의 인문지리적 모습을 살펴보는 데는 이 풍수지리만한 것도 없다.
회룡고조·회룡고미·파자형 명당 묘골
앞서 ‘묘골 선영 이야기’를 하면서 풍수에 대한 내용도 제법 언급이 되었다. 풍수(風水)라는 말은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나온 말이다. 장풍득수는 ‘바람을 막고 가두고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풍수지리학은 ‘장풍득수를 통해 땅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풍수는 관찰 대상에 따라 ‘양택풍수(陽宅風水)’, ‘음택풍수(陰宅風水)’로 분류가 되며, 접근방법론에 따라서는 ‘형기론(形氣論)’, ‘이기론(理氣論)’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기에서 ‘양택풍수’는 생자(生子)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음택풍수’는 사자(死者)들의 공간 즉 묏자리풍수를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형기론’은 대상 자연물의 외적인 모양을, ‘이기론’은 방위와 시간을 고려해 땅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대중적인 맥락에서 풍수 이야기를 하려면 ‘형기론’적 접근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기론’적 접근은 방위와 시간이라는 개념이 동원되어야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설명에는 적합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살펴볼 묘골의 풍수 역시 어려운 ‘이기론’보다는 쉬운 ‘형기론’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묘골의 풍수설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바로 앞 시간에 소개한 내용과 많은 부분 중복이 된다. 그래서 개요에 해당하는 내용은 앞글의 내용 중에서 해당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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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묘골 픙수설은 크게 두 가지설이 있다. 하나는 ‘회룡고조(回龍顧祖)’ 혹은 ‘회룡고미(回龍顧尾)’라 불리는 설이고, 또 하나는 ‘파자설(巴字說)’이다. 먼저 ‘회룡고조’ 혹은 ‘회룡고미’라 불리는 설은 마을 주변의 산세를 용(龍)에 비유한 것이다. ‘회룡고조’는 용이 자신의 조산(祖山·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되는 산, 즉 산맥의 근원을 지칭)을 바라보기 위해 용머리를 뒤로 180도 돌아보는 형국을 말한다. ‘회룡고미’ 역시 용머리를 180도 뒤로 돌리되, ‘조산’이 아닌 자신의 용꼬리를 바라보는 형국을 말하는 것이다. 전자가 명당의 지세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후자는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 둘은 같은 의미라고 봐도 무방하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형국의 명당을 특히 ‘음택(陰宅·묘자리)’ 명당으로 아주 선호한다. 왜냐하면 용이 고개를 돌려 자신이 달려온 방향의 산을 바라본다는 것을 ‘손자가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격’이라고 풀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룡고조’ 명당은 산세의 높고 낮음, 험함과 순함 등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못난 손자라도 다 품고 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할아버지 용(龍)의 사랑을 듬뿍 받는 ‘회룡고조혈·회룡고미혈’은 발복(發福)이 크고 오래가는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파자설(巴字說)’에 대해 알아보자. 이 풍수설은 언덕 하나를 두고 서로 접해 있는 ‘묘골’과 ‘파회(波回·坡回·巴回)’ 마을의 형국을 한자 ‘파(巴)’자에 대입한 설이다. 한자 ‘파’자의 머리 부분에는 두 개의 네모가 있는데, 이 네모 안이 곧 명당이라는 설이다. 이 설을 묘골에 직접 대입해보면 좌측 네모 안에 파회마을이, 우측 네모 안에 묘골이 들어 있는 것으로 풀이를 한다. 동시에 이 파자형 명당은 그 출입구가 글자에서 보다시피 동남쪽 한 방향 밖에는 없다. 따라서 묘골은 외부와는 철저하게 격리된 일종의 은거지형 명당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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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에서 예를 든 ‘회룡고조’·‘회룡고미’·‘파자설’ 등은 묘골의 지리적인 특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묘골 일대의 스카이뷰를 참고하든지, 아니면 수차례 묘골을 방문하여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면 위 설들에 대해 자연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위 두 가지 묘골의 대표적 풍수설 외에 또 하나의 설을 더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설은 필자가 육신사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면서 나름 정립한 설이기도 하다. 참고로 필자는 2007년 대구한의대 평생교육원에서 풍수지리사 1급 자격을 취득한 풍수학인이다. 그러하니 필자의 설을 호사가의 허무맹랑한 설로 매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자문성(一字文星)·귀인봉(貴人峯) 안대(案帶)·수구막이 숲’
말이 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니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먼저 ‘안대(案帶)’라는 것은 특정 명당에 서서 그 앞쪽을 바라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산을 비롯한 각종 자연물들을 말한다. ‘안산(案山)’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냥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흔히 일반인들이 명당터라고 알려진 장소에서 그 터가 과연 명당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거의가 이 안대를 보고 직관하는 것이다. 이는 풍수에 있어 안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직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풍수에서는 발복의 크기는 용맥(龍脈·산맥과 비슷한 개념)에 달렸고, 발복의 내용은 안대에 달렸다고 본다. 따라서 명당의 안대를 살펴봄으로써 그 터에서 어떠한 내용의 발복이 일어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일자문성’이라는 말은 안산의 모양이 ‘한일자(一)’형으로 평평한 산을 이르는 것으로, 문관(文官)을 상징하는 좋은 안산으로 본다. 또한 ‘귀인봉’이라는 말도 역시 귀인을 상징하는 좋은 안산인데, 대체로 산정상부가 둥그스름한 것이 귀한 느낌을 주는 산을 말한다.
묘골의 풍수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태고정 누마루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묘골 전체가 한 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용의 배 위치에 자리한 태고정에 올라야, 똬리를 틀고 있는 용의 머리와 꼬리까지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묘골을 찾는 대부분의 풍수인들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고정에서 좌측(동쪽)으로 담장 너머를 바라보면 아주 넓은 빈 터가 하나 나온다. 지금은 빈 터만 남았지만, 본래 이 터에는 묘골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참봉댁’의 대저택이 있던 자리다. 지금도 빈 터에 간간히 남아 있는 모과나무 고목이나 연당(蓮塘·연못)의 흔적 등을 보면 당시의 규모를 대충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네 전통마을을 보면 제일 큰집에 해당하는 집이 마을의 가장 ‘안쪽·뒤쪽·높은 곳’에 입지하는 공통점이 있다. 참봉댁은 묘골의 랜드마크인 태고정과 거의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집이었다. 이러한 사실만을 봐도 참봉댁이 묘골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집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하튼 묘골 풍수의 또 하나의 진면목을 체험하려면 이 참봉댁 집터로 가야한다. 담장으로 둘러진 집터 안에서 가장 뒤쪽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한 번 조망해보라. 불과 태고정과는 20-30m정도 떨어진 위치지만 태고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야말로 진경(珍景)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편안함을 주는 일자형 안산도 안산이지만, 그 중심부 너머로 살짝 머리만 보여 지는 귀인봉이 또 하나의 진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를 두고 필자가 ‘일자문성’+‘귀인봉’의 명당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묘골의 풍수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으니, ‘일자문성+귀인봉’ 바로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대나무숲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정확하게 수직선상에 놓여 있다. 이 대나무숲은 일종의 ‘수구막이’ 숲이라고 볼 수 있다. 풍수에서 ‘수구(水口)’라는 것은 물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곳을 말하는데, 마을로 보자면 마을의 출입구에 해당한다. 풍수에서는 이 수구를 통해 외부의 나쁜 기운이 들어오거나 혹은 내부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본다. 그래서 수구는 좁으면 좁을수록 막히면 막힐수록 좋다고 본다.
이 대나무 숲은 사실 대나무 숲 바로 뒤로 나 있는 수구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묘골과 파회를 잇는 고개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자형 안산을 자세히 보면 귀인봉이 있는 지점에서 ‘V’형으로 산이 움푹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으로 고개 길이 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수구가 되어버린 이 고개 길의 흠을 비보(裨補)한 것이 바로 이 대나무숲인 것이다.
이 고개 길은 ‘파자설(巴字說)’로 보면 명당에 해당하는 두 네모를 연결하는 고리이며, ‘용설(龍說)’로 보면 용의 꼬리부분에 난 상처에 해당한다. 바로 그 지점에 ‘비보숲’이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확한 진단에 그야말로 절묘한 처방이다. 어쩌면 풍수인의 작품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
풍수와 사주는 스토리텔링에 있어 정말 흥미로운 소재이다. 하지만 조심해야할 점도 있다. 너무 지나치면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3류 소설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과유불급’을 항상 의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묘골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래도 묘골박씨 문중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소중한 전통과 문화들이 계승·발전되는 측면이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근래에 이 마을로 들어왔거나 앞으로 들어올 예정인 타성인들에 의해 묘골의 자연경관이 많이 훼손되고 있어 걱정이다. 최근 수구막이 대나무 숲 서편의 산언저리가 다 잘려 나갔다. 타성인이 이곳에 집을 짓기 위해 터 닦기를 하는 중인데, 너무 많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필자는 일주일에 1-2회 해설사 업무로 묘골로 출근할 때마다 잘려나간 저 산자락을 보면 속이 상한다. 그런데 일 년 365일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마음 어떨까? 눈만 뜨면 보기 싫어도 봐야하는 앞산.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졌던 그곳이 지금은 누렇게 속살을 다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구막이 숲만이라도 살려두었다는 사실이다. 여하튼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묘골의 용이 지금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6.4.7
砧山下 풍경산방에서
訥齋 송은석拜
☎018-525-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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