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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수련동문회 말고도 일요일이라 남산 답사객들은 많았다. 모두들 가이드 분들이 해설하시는 내용을 오감으로 느끼려고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선생님을 따라 선각육존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널따란 바위가 병풍처럼 앞뒤로 있는데 그 면 위에 그냥 붓으로 쓱쓱 그리면 선 부분이 자연스럽게 파여져 나간 듯하다. 다듬지 않은 바위 자체가 가진 여러 선들은 엷은 커튼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라고 했다. 앞면 바위는 극락으로 왕생하는 중생을 마중 나오시는 來迎내영아미타여래와 두 협시 보살이 좌우에 무릎 꿇고 앉아 여래를 받들고 있다. 뒷면 바위는 사바세계에서 설법하시는 본존불좌상이 있고 마찬가지로 두 협시보살이 앉아 있다. 선각이면서 세월의 마모가 있어서 쉬이 알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생님이 직접 모델처럼 포즈를 취해주셨다. 특히 내영아미타부처님의 증거를 찾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추정한다고 했다. 정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 아직도 많이 연구 중이라고 했다.
선각육존불에서 또 정신없이 선생님을 따라 올라갔다. 정말 걸음이 빠르시기 때문이다. 선각여래좌상이 보인다. 높은 곳에 있어서 고개를 들어 보아야 한다. 가운데 금이 가있는 커다란 바위에 얼굴은 부조로 조각되었고 몸체는 선각이다. 얼굴은 넓적하고 코도 두툼하고 입술도 두툼하고 볼도 두툼한 투박한 부처님이신데 위엄은 느끼지 못하겠고 그냥 내사랑 못난이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다음에는 석조여래좌상이라면서 조금 쉴거니까 빨리 따라오라고 하신다.
지나는 길목을 차지하고 좁은 장소에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먼저 뒷모습부터 보인다. 편히 앉으려고 부처님 뒤쪽에 앉았다. 이 부처님은 일제시대 때 목이 없는 부처님을 50m 근방에서 머리부분을 찾아내어 붙였는데 목이 자라목처럼 짧다. 광배는 지금 대좌 뒤편에 두 조각나 있다. 여러 미술사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동하기 위해 앞으로 돌아서 정면의 얼굴을 뵈었더니 얼굴 아랫부분 깨진 곳을 시멘트로 보수한 곳이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의 얼굴처럼 살이 두껍고 칙칙하여 표정이 슬퍼보인다. 아직도 이 부처님 얼굴이 생각날 정도이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들은 이런 부분에서는 실력발휘를 못할까? 성형수술을 꼭 해주고 싶은 부처님이다. 누가 부처님 앞에 야쿠르트 한 병과 작은 사과 하나를 공양해 올려놓았다.
슬픈 부처님을 뒤로 하고 조금만 가면 일부러 가이드해주지 않으면 모를 30m높은 절벽위에 선각마애불이 있다. 처음에 선생님이 가리켰을 때 저곳이 똑바로 본 게 맞나 할 정도로 멀리서 보면 희미하다. 가느다란 선각으로 여래의 얼굴과 어깨까지만 조각되어 있다. 이 부처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간은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조금만 올라가면 상선암이 나온다고 하셨다.
상선암 오르는 길은 약간 오르막이다. 힘들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시는 심광거사님이 보였다. 연로하신 분들이 신심은 젊은이보다 대단해서 앞서가고 계신 것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곡차주면 힘내서 금방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웃어드렸다. 귀에 익숙한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예전에 신라에서는 念佛師염불사들이 따로 있었을 만큼 백성들도 염불을 많이 해서 서라벌에서는 낭랑한 염불소리를 끊이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작은 암자 상선암에서 작은 법당에 들어가 일일이 참배하는 분도 있고 잠시 쉬면서 도시락 까먹는(?) 분도 있었다. 상선암에서 마애대불 가는 바로 그 길가에 흔한 돌처럼 버려져 있는 관음보살하대석이 중간에 넘어져있다. 제대로 된 상을 어림짐작하면 6m가 넘는 거대한 입상일 것이라고 했다.
드디어 정상 근처의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신 상선암 마애대불이다. 앞에는 기도할 수 있는 너른 바위공간이 있었다. 높이 5.2m의 마애불은 머리부분은 환조이고 어깨이하 부분은 선각이다. 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심이 있는 분들은 어디서나 꼭 삼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는데 그냥 덜러덩 앉은 내가 잠시 부끄러웠다. 머리부분을 환조로 새긴 것은 기도하는 중생을 자비로 굽어보는 부처님이시기에 그렇다고 한다. 금오산 정상 쪽으로 가다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는 곳이 있다고 해서 확인하니 정말 그렇게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이고 기도하는 사람을 어여삐 내려다보고 계시었다. 환조라서 좋은 이유 또 한 가지는 머리 뒤쪽에 진달래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봄이 되면 여지없이 아리따운 머리 꽃장식이 된다고 했다. 부조였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배가 살살 고팠는데 배꼽시계가 다들 정상이었다. 우리는 금오산정상으로 바로 가지 않고 왼쪽에 바둑 바위 정상에 앉아 가을이 가득한 경주 시가지를 굽어보며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여럿이 먹는 중에 내 김밥이 조금 짭조름해서 같이 먹던 사람들 것 이것저것 맛보았다. 누구 말대로 김치 생각이 간절하던 점심시간이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상사바위를 설명했는데 늦게 가서 정확히 못 들어서 모르겠다. 부처님의 성산에도 남녀의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모양이다. 오솔길을 걸어가니 트래킹 하는 기분이었다. 정상을 목표로 하는 등산은 아니지만 금오산 468M 정상에 도착했다. 시월 초순 아래쪽 지방에도 벌써 산은 가을빛으로 완연했다. 정상에서 이제 용장골 쪽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앞에는 조림한다고 심어놓은 키 작은 소나무와 가을 억새(?)가 어우러진 능선이 신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낮의 가을 땡볕도 대단했다. 넓게 닦인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용장골 간판이 나온다. ‘용’자가 ‘사슴 용’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슴뿔처럼 골이 길어서 그렇다고 했다.
용장골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중요한 유적도 있어 할 이야기가 길다고 우리는 삼층석탑 못 내려가서 탑기단이 있는 너른 중턱에서 모두 앉아 쉬었다. 거기 앉으면 삼화령 고개에 있는 연화대좌가 보인다. 높은 바위에 올려져 있어 올라가야 연화대좌모양은 볼 수 있는데 사진으로 보여주셨다. 신라시대 때 경덕왕과 충담스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그 대좌위의 부처님은 미륵세존이 아니었을까 하고 설명하셨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향가 가운데 하나인 ‘안민가’에 대한 배경을 이야기 해주시고 시를 읊조려 주셨다. 경덕왕 때는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날 만큼 어수선한 시기여서 경덕왕이 삼월삼짇날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공양을 올리고 내려오시는 충담스님께 백성을 편안히 다스리고자하는 임금을 위해 노래 한 수를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안민가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머니
백성은 어린 아이라 한다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배가 큰 중생들 이들을 먹여 다스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까’ 할 때 나라가 유지됨을 알 것입니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장사에 대한 설명과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이 8년간 용장사에서 지낸 이야기도 하셨는데 점심도 먹고 따뜻한 햇살 아래 어제 철야도 했지 하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졸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 불교 공인 후의 서라벌 시가지 모습을 묘사한 부분을 일연스님이 쓰신 삼국유사에 나오는 시를 인용하여 말씀하셨다. 과히 당시는 신라인들 모두가 불국토를 꿈꾸었고 이 땅에 실현하였나보다.
寺寺星張 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
塔塔雁行 탑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섰다.
우리가 앉은 곳도 구체적인 유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탑의 기단부가 있었고 석등이 있을 법한 흔적이 있었다. 드디어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용장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삼층석탑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석탑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탑의 하층 기단부을 생략하는 대신 과감하게 200m가 넘는 바위산 봉우리를 하층기단으로 삼는 대담함으로 탑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탑은 주변과도 나무랄데 없이 잘 어울린다. 법당 앞에 있던 탑만 생각한 우리들에게 이 석탑은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해준다. 탑으로서는 천하제일 명당에 자리한 것 같다. 탑 위의 푸른 하늘이 부처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바위가 많아서 내려가기 조금 어려운 하산을 조심해서 해 내려가면 용장사지석조삼륜대좌불이 보인다. 삼륜대좌불을 보기 전에 옆에 바위에 마애여래좌상이 선명하게 있다. 이제까지 보았던 불상들에 비하면 이목구비도 뚜렷하시고 옷주름도 물결무늬처럼 선명하게 흘러내린다. 그 모양을 뭐라고 하셨는데 잘 생각이 안 난다.
용장사 삼륜대좌불은 동글동글 바퀴모양이 삼층처럼 되어있는데 층과 층 사이는 북모양으로 연결되어있다. 선생님은 연꽃방석에 앉으신 부처님을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보살로 추정하신다고 했다. 옷모양이나 가사나 늘어져 내린 부분이 화려한 듯한데 원통할손 머리부분이 없다. 이 바퀴모양의 대좌가 빙빙 돌 것처럼 보이듯이 삼국유사에 유가종의 대덕이신 대현스님이 염불하면서 부처님 주위를 돌면 이 부처님도 따라 고개를 돌리셨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삼릉에서 용장까지 대략적인 답사이다. 내려오면서 두어번 삼층석탑을 뒤돌아보았다. 따스한 산허리에 삼층석탑은 단아하게 푸른 하늘을 받쳐 들고 있었다.
신라인들은 서기어린 골짜기 바위 마다, 햇빛이 아름답게 부서져 내리는 산허리마다 능선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부처를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높은 봉으로 여겨지면 탑을 세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불국토를 조성해 놓았다. 신라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남산에 와서 부처님을 찾고 자기들을 닮은 부처님을 찾아내어 새기었을까? 신라인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불교 탄압의 역사로 목이 잘려지고 형상을 제대로 갖추진 못한 유적들을 보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인가?
물음표를 해결하러 나선 길에 물음표가 더 늘어났다. 부처와 자신, 불법과 생활이 하나가 되는 삶을 구현하려고 했으나 그렇지 못해서였을까?
맑은 계곡물을 벗하며 내려오니 이제 마을이 보이고 주차장도 보인다. 답사가 참 좋았다는 생각은 마구마구 드는데 이루지 못한 꿈을 물려받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회향식할 마땅한 장소가 물색되지 않아 회장님이 차에 오셔서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구경북지부는 저녁 시간이 어중간해서 그냥 파하기로 했다가 자다가 일어난 무량심보살님이 끝까지 밥달라고 조르시는 바람에 깔끔하고 맛있는 보리밥뷔페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후기라고 정리는 했는데 정확하지 않을 부분도 있고 자료를 보충한다고 해도 가이드선생님이 하신 것은 따라 갈 수도 없고 안 들은 내용을 자세하다고 더 넣을 수는 없었다. 나의 무지한 차원에서는 불교미술사적인 부분은 다 기억할 수도 없고 찾아서 알았다고 하더라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인 이해수준이다. 또 경흥국사이야기와 비파암 진신석가이야기 등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길게 쓰는 것 좋아하는 이 사람도 과감하게 생략했다. 두 일화가 모두 불교의 교리보다는 실천행을 중시하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일깨워주는 것임은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경주남산을 자주 갈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든다. --제가 읽어도 두서가 없는 글 읽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남산으로 가는 시 한 편을 드립니다.
길
시. 정일근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이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 길 지도 위에 새겨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은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첫댓글 '寺寺星張 , 塔塔雁行 .' 마음에 와 닿아 여러 번 음미하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나날 되시길 빕니다. _()_
글자 크기가 큼직하니..읽기가 수월...암튼 잘 읽고 갑니다...아차..보리밥 부페라~~궁금한데요
역시 글이라면 둥근네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