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아니더라도
노병철
어릴 때 짜장면 한 그릇이면 다 통했다. 졸업식, 입학식, 그리고 생일 때 짜장면 이상은 사치였다. 탕수육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다. 우동 아니면 짜장면이었고 아버지는 가끔 짬뽕을 잡수시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짬뽕은 어른들이 자시는 음식으로 안다. 짜장면이 1970년에는 한 그릇에 100원 정도였으나 최근엔 7,000원 선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동네 중국집에선 5,000원 정도 받는 곳도 있긴 하더라만, 50년 동안 50배나 가격이 뛰었다.
요즘 식당 밥값이 장난이 아니다. 10,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중국집이나 분식집 말고 없을 정도이다. 학창 시절 데이트할 땐 돈 10,000원만 있으면 둘이 극장가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셔도 집에 갈 버스비는 남았다. 지금 애들은 도대체 얼마를 들고 나가야 데이트를 할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 남자애들이 부담이 상당할 것 같은데, 데이트할 때도 ‘더치페이’, 우리말로 ‘지 팔 지 흔들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둘이 짜장면만 먹을 수는 없을 테고 분위기 한번 잡을라치면 두당 3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차 한 잔 마시면 거의 10만 원 돈이다. 요즘은 그래도 ‘카드’라는 것이 있어 돈 떨어져 집에까지 뛰는 사태는 없어 다행이다.
제주신라호텔 짬뽕 한 그릇이 6만 2천 원이다. 두 사람이 먹으면 12만 4천 원.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먹으면 20~30만 원이 짬뽕값으로 나간다. 메뉴 제목이 ‘전복 한우 차돌박이 짬뽕’이라는데 우리 동네 중국집에선 문어까지 넣은 고급 짬뽕이라도 2만 원을 넘지 않는다. 비싼 호텔 짬뽕이 대중적인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짬뽕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단다. 인생 짬뽕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짬뽕 가격에 질려버린다면 파인다이닝 식당엔 근처에도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몇몇 생소한 단어가 옆을 스친다. ‘파인다이닝’ ‘오마카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 그냥 서민으로 한세상 그렇고 그렇게 산다고 보면 된다.
재혼을 준비하는 4050 돌싱(돌아온 싱글)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재혼 목적 교제 중, 어떤 말을 자주 들으면 재혼 의지가 꺾이느냐”라는 질문에 남성 대부분이 ‘파인다이닝’을 골랐고, 이어 ‘명품 선물 사 달라 등을 꼽았다고 한다. 데이트비를 거의 지불하지 않는 여성이 천날만날 고급 식당을 요구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나를 호구로 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여자는 정이 뚝 떨어진단다. 내가 생각해도 이혼 이유가 그려진다.
‘파인다이닝’이란 '좋은', '질이 높은'이라는 뜻의 'fine'과 '식사'를 뜻하는 'dining'의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비싼 식사, 고급 식사를 뜻하는 일반적인 어휘라고 보면 된다. 최현석, 쵸이닷 헤드셰프인 최현석, 밍글스 오너셰프인 강민구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식사 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금액 이상이다. 직원 40명에 손님은 30명 정도만 받고 셰프의 얼굴과도 같은 시그니처 메뉴를 제공하는데, 식사 금액은 일 인당 수십만 원이라고 한다. 수억대의 자금을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테이블과 의자 또한 최고급이다. 화장실에는 고급 향수를, 그릇과 커트러리 또한 에르메스, 베르사체, 크리스토플 같은 고급 브랜드들의 식기가 제공된다. 보험 신청하고 받은 그런 허접한 그릇에 밥 먹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난 결심했다. 집사람과 함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못가더라도, 6만 2천 원짜리 제주신라호텔 짬뽕 한 그릇은 대접하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가격은 절대 이야기 못 한다. 말했다간 쓸데없는 곳에 돈 쓴다고 석 달 열흘 잔소리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