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5) - 장미

2016년 5월 6일(금), 비, 고양시 호수공원, 2016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장미꽃 전시장이다. 어제는 사람들이 몰려 발을 옮기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덕분에 오늘은 한산하다. 고객은 주로 가슴에 명찰을 단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다. 단체로 구경 오셨다.
장미에 이름이나 안내를 달아놓지 않아 그 이름을 모르겠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을 곁들이고자 한다.




예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여겼던 것도 언제부터인가 의심하게 되었다.
지극히 타당한 사실일지라도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을 품는 수가 잦아졌다.
바둑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와 세기적인 대국에서 참패를 겪고 나서 한 말이 와
닿는다. “전에는 흔히 이 수밖에 없다는 감각에 의존했는데, 이제는 그 감각을
믿을 수가 없어졌다. 정말로 이 수밖에는 없는가 하고 더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논어』의 「태백(泰伯)」편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라는
구절의 해석을 보면 지금껏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어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헷갈린다.
모르는 한자가 하나도 없지만 해석이 어렵다.
예전에는 이렇게 배웠다.
“백성들을 따르게 할 수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느니라.”
우민정책을 표방하는 말인지, 그렇지 않은지 애매하다.




심경호의 『한학입문』중 ‘정약용의 경전주석학’ 절에 이르면,
후한의 정현(鄭玄, 127~200)은 民이란 冥(어둡다)이란 뜻이고 由는 따른다는
뜻이라 보고, 바른 도리로 시키면 반드시 따를 것이되, 만일 그 본래를 안다면
어리석은 자는 혹 가볍게 여겨서 실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民者冥也. 由, 從也, 以正道敎之. 必從. 如知其本來, 則愚者或輕而不行)
그런데 위(魏)의 하안(何晏, 193~249)은 『논어집해(論語集解)』에서 “由는 씀
(用)이다. 쓰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은 백성이 나날이 쓰되
알 수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비해 양(梁)의 황간(皇侃, 488~545)은 『논어의소(論語義疏)』에서 하안
의 설을 다르되 “천도(天道)를 알 수 있도록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송(宋)의 주희(朱熹, 1130~1200)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백성은 리
(理)의 당연(當然)에서 말미암아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그러한
바의 소이(所以)를 알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주석에 따르면, 위의 구절은
“인민들로 하여금 정해진 도리에 따르도록 시킬 수는 있어도, 그 의의를 일일이
알게 할 수는 없다”로 해석된다. 황간의 설을 더욱 관념화하였다.
청초의 모기령(毛奇齡, 1623~1716)은 민이란 학관의 준수(俊秀)와 사(士), 관
사(官師) 이외의 사람이니, 『주관(周官)』구직(九職)의 ‘임민(任民)’이라는 민
(民)자와 같은 뜻이며, 그 일(事)이란 ‘구직(九職)’의 ‘임사(任事)’라는 事자와
같은 뜻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지(使之)’란 단지 그들에게 봄이면 파종하고 경작하게 할 뿐이지 천지
의 도를 따르는 실상을 이야기해줄 수는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일’의 개념
을 현실적으로 규정하여 주희의 관념론을 배격한 것이다.




일본 에도시대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는 『논어고의(論語古義)』
에서 “백성를 다스리는 도리는 마땅히 그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가르침을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나의 도야(陶冶)에서부터 발미암게 해야지, 만약 그들로
하여금 은혜가 나에게 나옴을 알게 한다면 불가하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했다.
교화의 방법을 설명한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일본의 에도시대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도 “사람의 앎에는 경지에
이른 것도 있고 이르지 못한 것도 있으니, 성인이라도 억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백성으로 하여금 그 가르침을 따라 나가게 할 수는 있어도 백성들로
하여금 가르침의 근본(이유)을 알게 할 수는 없다”고 풀이했다.
이토 진사이 설을 이었다.




조선의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공자는 그의 입으로 스스로 말하기를 ‘교육에는 차별이 없다(有敎無類)’고 하였
거늘, 또다시 반대로 ‘알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
고, ‘백성을 어리석게 하여 스스로 그 왕위를 견고히 한다면 머지않아 그 나라는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해서,
이 구절은 우민정책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공자가 말하는 바는 어쩔 수 없는 사세(事勢)이지 고의적으로 그렇게 모의(謀
意)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기령의 설에 가깝다.
한편 근래의 환무용(宦懋庸, 1842~1892)은 『논어계(論語稽)』에서 원문을
‘民可, 使由之. 不可, 使知之’로 끊어 읽고, “백성들에 대하여 백성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은 스스로 그것에 따르도록 하고,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을
이해시킨다”나 혹은 “세론(世論)이 좋다고 여기는 것은 함께 그것을 따르도록
하고, 세론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을 이해시킨다”로 풀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여러 학자들의 설을 나열하다 보니 그게 그것 같고, 오히려 처음보다
더 알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다만 한 가지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작금의 우리
나라 위정자들의 언변과 언론의 행태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
이다. 감히 백성들이 천도나 의의를 알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