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심리적 차원의 나
원본능ㆍ자아ㆍ초자아
프로이드는 때때로 무의식이 의식에 반하여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셔터스톡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나는 이런 말, 이런 행동을 하고 싶은데 실제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했던 경험이 종종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심리학자는 무의식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의식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면서, 때때로 무의식이 의식에 반하여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보이지 않는 무의식이 인간을 마치 종처럼 끌고 다닌다고 말하기도 한다. 무의식 속에는 무엇이 있기에 인간을 종처럼 끌고 다닐까?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성격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하는데, 프로이드는 성격이 단순히 좋다 나쁘다 하고 말하는 대신에 성격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하면서 그 요소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성격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격의 세 가지 요소는 원본능(id)과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라고 프로이드는 말한다.
원본능은 성격의 이기적인 요소로서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즉시 실행하기를 원한다.
초자아는 윤리적인 요소로서 이타적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환경을 고려하려고 한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양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아는 원본능과 초자아를 극단적으로 가지 않도록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자아는 교통순경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성격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는 것이다.
원본능이 강하게 표현되면 성격이 나쁜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초자아가 강하게 표현되면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며, 자아가 강한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실존적인 차원, 정체성의 차원과 함께 심리적인 차원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유전적 요소와 후천적 경험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서 이루어져 있다.
과거,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
명상하는 사람은 마음의 고요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의 어떤 경험이 나의 오늘의 존재양태를 만들었으며, 나의 무의식 속에 들어와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라.
돈, 권력, 명예, 섹스, 관심 추구욕 등, 내가 보통 이상으로 집착하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거의 반드시 과거의 어떤 경험이 그 근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기억해 보라. 내가 받았던 상처, 폭력, 갈등, 혹은 고마움이나 감동 등을 기억해 보라.나는 어떤 책들을 읽었으며,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어떤 사람들을 존경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을 미워했는가?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나의 무의식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살펴보라. 과거의 이런 경험들이 하나의 심리체계를 만들어 나의 느낌, 감정, 그리고 행동을 지배한다.
외부의 어떤 자극이나 도전에 대하여 우리가 반응하는 행동양태는 우리의 무의식에 형성되어 있는 이런 심리체계가 마치 자동항법 장치처럼 자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으로 떠올려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명상의 깊은 고요 속에서 바라보면, 무의식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경험의 파편들이 조금씩 의식으로 떠올라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명상 속에서 의식 위로 떠오른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살펴보라. 그리고 보다 높은 자아(higher-self)로 그것들을 통합하여 성장하고, 치유를 경험하라.
만약 여건이 허락된다면, 칼 융, 아들러, 칼 로저스, 아브라함 매슬로우, 켄 윌버, 그리고 로베르토 아싸지올리 등의 핵심적 이론을 공부하여 자신의 심리적 정체성을 살펴보면 좋겠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들이 외치는 정의나 평화, 사랑은 때로는 공허하다. 그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도 자신을 성찰하여 성장하고 치유되어야 한다. 먼저 치유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자비명상이 되지 않는다.
글 | 윤종모 주교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