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1. 주일 큐티
이사야 30:15 ~ 18
기다림은 하나님의 소통 방식
관찰 :
1) 하나님의 방식을 거절하는 이들의 최후
- 15절.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것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일을 멈추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지으셨고, 통치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만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신다. 하나님의 때가 가장 적합하고, 언제나 옳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하나님께서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으면, 조용히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맞다. 잠잠하고 신뢰해야 힘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셨다면 잠잠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고자 했다.
- 16절.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 이후의 회복의 은혜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를 하지 못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것이 능사라 생각하고 뛰어서 도망하는 것을 넘어서 말을 타고 도망하고자 했다. 더 빠른 수단이 있다면 그 수단을 사용하고자 했다. 주변 나라들에 도움을 청하고, 애굽에도 손을 벌렸다. 그러나 이러나 시도는 그 누구에게도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
- 17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 대항하고 버텨보려 하지만 도저히 되지 않는 저항에 불과한 일이 되었다. 한 사람이 소리지르자 천 사람이 도망했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우 다섯이 소리지르자 모든 이스라엘이 도망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한다. 이것은 비유지만 실제로 추풍낙엽과 같이 이스라엘은 흩어지고 도망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항하고 반항하여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남은 자들은 그저 듬성듬성 존재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것이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한 결과다.
2)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하나님
- 18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부족한 이스라엘의 모습과 대조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회개의 열매를 맺는 이들을 기다리신다. 그 이유는 은혜를 베풀고자 하심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위해서 친히 일어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맞아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불의를 그냥 넘어가주시겠다는 것이 아니시다. 그렇기에 회개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나아간 자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기다리는 자들은 참된 복을 누리게 된다. 고민하고 해결하지 못했던 모든 문제들이 궁극적으로 모두 다 해결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다.
가르침 :
1) 패역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그 이유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창 1:27-28 “~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맨 먼저 주신 것이 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2) 일어나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시는 하나님. 이 본문을 묵상하며 마치 탕자를 고갯마루에 서서 날마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나님은 복을 받을 놈은 오고, 안오면 말고” 식으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돌아오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3) 정의의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을 무턱대고 인심 좋은 시골 양반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동원하는 순전하지 못한 사랑의 소통에 대해 거부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진실한 교제, 진정한 사랑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며, 희생할 때, 하나님께 나아간 자의 발이 복이 된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발적인 순종과 사랑을 기대하신다. 자발적으로 선악과를 먹지 않고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종을 지금도 기다리신다.
4)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셨고, 이제는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으로써 모든 시간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 가장 좋은 시간이 무엇이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함을 아시는 분이시다. 카이로스의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그 분의 응답을 기다리고, 신뢰함이 지혜이고 복이다. 달라는 대로 다 응답해 주시는 것은 그렇기에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의 룰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이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
5) 기다림은 하나님의 소통의 방식이다. 성경을 보면 중요한 사안일수록 오히려 오래 기다리신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다. 모세는 40년의 궁정생활, 40년의 광야생활, 40년의 출애굽 여정 끝에 가나안을 소망했지만, 보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의 기다림은 열매를 맺었다. 다윗은 성전을 자신이 짓지 못하고 그 아들 솔로몬이 짓게 되고, 그것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솔로몬 보다 다윗의 공이 더 들었고, 다윗의 소망이 더 컸던 성전이었다. 그리고 그 성전은 1000년의 세월이 더 지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응답이 된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언급된 창 3:15의 여자의 후손을 인간은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예언은 성경을 통해 메시야 사상으로 이어져 결국 B.C. 와 A.D.를 가르는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다. 그때까지 하나님도 사람도 얼마나 그것을 기다렸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셨고, 사람들의 모든 문제와 필요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해결하셨다.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게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다림의 요소가 된다. 이 땅에서 우리가 구하는 어떤 요소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비할 수는 없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아마도 거기까지를 바라보고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일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기다림이고, 가장 중요한 기다림이다.
적용 :
1) 응답을 믿고 기다리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임을 믿는다.
2) 기다림의 요소들을 정리해 보자.
3) 주님께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주님을 앙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