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부(趙孟頫 1254-1322)
절강성 오흥 사람으로, 송 왕실의 종실이다.
원이 남방을 정복하고, 정권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영향력이 있는, 학식이 높은 사대부를 등용하였다. 조맹부는 북경으로 가서 관리가 되었다. 이 때문으로 유민 거사들로부터는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북경에 간 조맹부는 원대의 다섯 황제를 거치면서 관직이 한림학사승지에 이른다. 영향력은 있었으나 단지 한림원의 문신으로서, 뜻을 펼칠 수는 없었다. 송 왕실의 후예로서 원의 관리가 된 것에 심적으로는 번민과 고통을 받았다.
조맹부는 문학, 음악 등 다 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나, 특히 회화에 뛰어났다. 인물, 안마, 산수, 화조, 죽석을 모두 잘 그렸다. 기법으로는 수묵 청록, 공필, 사의(문인화라는 뜻) 모두 잘 그렸다.
그는 문인화풍으로, 당, 송의 회화를 계승할 것을 주장하였다. 古意가 없으면 工巧하더라도 이로울 것이 없다. 라고 했다. 작품에는 기품과 운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아하고 소박한 화풍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화원 화가의 그림처럼 섬세하고, 정교함에는 반대했다.
용필법에서도 서화와 서예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서로 적용하는 것아 좋다고 하였다.
그의 작품은 많이 전해온다. 청록으로 그린 추교음마도는 자기 스스로도 잘 그렸다고 했다.
작화추색도는 아주 유명하다.(미술사 책에 이 작품이 많이 실린다.) 그는 원대 초기 회화의 중심인물이며, 부인인 관도승, 아들인 조옹, 조린도 화가이다.
그는 원대의 ‘문인화’가 송, 금대를 계승하여 원대에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 냈다고 말한다..그리고 후세의 회화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사유여구학도는 조맹부가 제일 처음 그린 산수화라고 한다.
첫댓글 조맹부가 서예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그림도 잘 하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