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페북에 썼던 글인데, 아래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글이 떠올라 카페에도 올려봅니다.
김진명씨가 대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 같아서, 이 지적은 꼭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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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3475 - 김진명씨 "한자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https://www.facebook.com/changwoo.lee.1612/posts/893104717475712 - 내 글
나는 자유주의자다. 이렇듯 확고한 자기규정은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갖은 일들을 겪고 배워오면서 들게 된 확신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비난하고 배격하는 태도를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자유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진명 씨의 저 글도, 자기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 썼을 것이니 무조건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독자들은 김진명 씨가 역사가는 아니라는 점만큼은 유념하고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글쓴이가 역사가이든 아니든 그런 것을 떠나서, 모든 글들은 다 자기 자신의 판단 아래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오랫동안 동아시아 고대사를 공부하면서 갖고 있는 생각의 하나는, 갑골문으로 유명한 상(은)나라가 우리와‘도’(‘만’이 아니다-나의 의도적 강조)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구려 전공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지금 건들 생각은 없지만, 중국사에서 상주혁명이라는 사건은 고대사의 가장 큰 획을 그은 유명한 사건인데다 이것이 실질적인 민족적 교체라는 점은 고고학이나 언어학 등의 여타 인접학문들을 통해서도 인정될 만큼 학문적 근거가 있다. 그래서 나도 김진명 씨의 글이 무조건 국수주의적인 (속칭 ‘환빠’의) 글이라고 매도하면서 상극의 주장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이런 것‘도’ 학문적인 자세가 아니리라).
하지만 학자라면 주장을 대단히 치밀하게 해야 하는 법이다. 당장 저 글만 보아도 눈에 띄는 오류가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가 근거로 제시한 공자와 자공, 맹자 등 유가학파에 대한 이야기부터가 맥락의 핀트가 상당히 곡해된 케이스이다. 다른 이야기는 다 건너뛰더라도, 그가 명백한 근거로 제시한 “자공은 ‘은나라 주왕이 그리 폭군은 아니었던 듯하다’는 표현으로 스승을 거역했으며 심지어 맹자는 ‘<서경>을 믿느니 차라리 없음만 못하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공자의 왜곡을 비판하며 반대하고 있다.”는 부분을 보자.
첫째로 자공에 대한 이야기는 <논어> 전체를 생각해봤을 때 관련된 구절이 딱 하나가 있는데, 19편 자장의 20장 子貢曰 “紂之不善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말은 주왕의 불선함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천하의 갖은 악평들이 흡수되면서 극단화하였다는 정도의 발언일 뿐으로, 이것이 어떻게 스승인 공자를 거역했다는 근거가 되는지 의문이다. 공자라고 자공과 같은 생각을 무조건 배척했을까? <논어>를 전반적으로 보면 알 수 있지만, 공자는 때로 실수도 하고 제자가 예전에 했던 자신의 말을 상기시켜줌으로써 자기 말이 농담이었다고 인정도 하는 인간적인 현인이었다(17편 4장).
둘째로 맹자에 대한 이야기는 <맹자>를 지금 한창 배워 외우고 있는 내 기억으로는 7편 진심 하의 3장 孟子曰 “盡信書則不如無書 吾於武成取二三策而已矣 仁人無敵於天下 以至仁伐至不仁而何其血之流杵也”을 염두에 둔 말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구절은 맹자가 인정(仁政-王道정치)을 펼치는 자라면 어찌 <서경>에 나오는 상주혁명의 대목처럼 “피의 강물이 절구공이를 떠내려가게 할 정도였겠는가”라며 자신의 사상으로써 고사(古事)를 비판하는 대목 정도로 보는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김진명 씨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서경>이라는 책은 공자가 쓴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경>은 전해지는 바로는 요순3대의 포고문 등의 기록들을 공자가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한다. 전해지는 바를 통해 공자가 술이부작(述而不作, <논어> 7편 1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것도 일종의 전설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경서의 하나인 <서경>이 정말 공자가 묶어낸 책이 맞는지도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다만 <논어>를 보았을 때 공자가 <서(경)>를 자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저 전설은 취신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당장 <맹자>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맹자는 전국시대의 길어진 대화답게 공자보다도 <서경>을 훨씬 더 많이 다양하게 인용하며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는데, 어떻게 저 한 구절만 갖고 맹자가 <서경>을 믿느니 차라리 없음만 못하다고 주장했다고 할 수 있나? 이런 경우 저 한 구절을 예외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정확한 근거를 갖고 치밀하게 주장해야한다. 고대사의 경우 기록의 부족으로 정확한 기록 근거까지 이야기하긴 조금 어렵더라도 최소한 있는 기록에 대해 오독과 곡해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래서 나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주장하고 싶은 것은 참 많았고 지금도 그렇지만, 더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에 말을 아낀다. 김진명 씨의 글은 그 자체로도 오류가 있지만, 다른 하나의 문제는 저 글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자세이다. 넘쳐나는 자유(?)와 정보의 홍수라 불리는 시대,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모든 글들은 다 자기 자신의 판단 아래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첫댓글 좋은 말씀이군요
내공이 보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사람은 평등하다' 내지 '사람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능력을 갖는다(유교식으로 표현한다면 양지양능良知良能)'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저 내용은 작년에 서당을 통해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관심만 갖는다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거부터도 그렇고 지금도 느끼는 바는, 사실 주장이라는 것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어렸을 때의 흡수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재야 일각에서 주장하는 『환단고기』나 대륙삼국설까지도 몇 가지 단편적 근거에 혹하여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글의 말미에도 썼지만, 이성적으로 시시비비를 판단
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수정, 교정하거나 더욱 정교히 해나가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수정, 교정을 전혀 하지 않고 외골수적으로 믿고자 한다면 그것은 공부가 아니라 종교이겠죠. 저도 나름 재야로부터 출발한 입장으로서(그 덕분에 지금도 고대사학계 연구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기 수정을 할 줄 모르는 재야 일각의 행태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토론할 때 자기 주장이 맞다고 주장하는 거야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시간을 두고 수정의 여지를 갖느냐 안갖느냐가 근본적인 차이의 지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명시가 쓴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특정 문자(한자)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제목 자체에서 이미 웃게 되네요.
문자에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알파벳의 주인은 누구죠? 현대 알파벳의 기원이 된 로마 인들? 그 원형을 만든 페니키아 인들? 아니면 그 글자 형태의 최초 기원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이집트 인들?
나아가 문자를 누가 언제 만들었다는 걸 무슨 수로 확인하지요? 은허 유적에서 갑골문이 나온다는 건, 은나라 사람이 한자의 발명자라는 의미가 되진 않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이 당대에 한자를 많이 쓴 집단이라는 것만 말해줄 뿐이죠.
(예컨대 프랑스의 고대 유적에서 알파벳이 쓰여진 고대 유물이 마구 쏟아지면 프랑스인이 알파벳의 발명자가 되는 것일까요? 먼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현재의 몽골 지역에서 키릴 문자(러시아 문자, 몽골도 러시아 문자를 자국어 표기용으로 사용함)로 쓰인 엄청난 유물들을 발굴한 뒤 '오오, 몽골인이 키릴문자를 발명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요? ㅋ...)
나아가.... 문자를 발명하면 그 집단이 그 문자의 주인이 되는 겁니까? 그럼 뭐.... 저작권료라도 받는 거에요?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아주 예외적으로 제작연대와 주체를 알 수 있는 문자지요. 그럼 한국인은 한글의 '주인' 인 건가요? 아, 우리 허락이 없으면 다른 어떤 외국도
한글을 사용해선 안 되는 것일까요? 대체 '문자의 주인' 임을 밝혀낼 기준과 실익은 무엇일까요? ^^ 하다못해 '한자의 주인은 한국인' 이라고 외치면 자긍심이라도 강해집니까?
이런 분들은 과연 우리 조상들의 유물/유적 중 작고, 소박하고, 거칠며, 솜씨가 떨어지는 것들을 '우리 문화유산'으로 품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멋지고, 크고, 대륙의 기질(?)이 보이는 화려한 것들만 우리 것으로 해야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라고 보는 건 아닌지.....
@미주가효 당연하신 주장입니다. 공감합니다.
미주가효님 말씀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김진명씨 같은 생각은 저도 과거에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저를 잘 알죠. 저는 단순히 '한국, 한민족이 위대했다'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소위 중국문화라고 알려진(이 경우에도 문화에 주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니까요) 문화적 요소들(한자, 도교 등을 포함하여)이 과연 오직 중국만의 것인가(중국 기원의 것인가)라는 생각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듭니다. // 지난번 우리의 주요 터전인 한반도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하였듯이, 미주가효님의 마지막 말씀에는 특히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