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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사 무디(Dwight Lyman Moody)의 성장배경
“드와이트 레이만 무디(Dwight Lyman Moody)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노드필드(Northfield)에서 가난한 석공인 아버지 에드윈(Edwin)과 어머니 벧시(Betsy)사이의 아홉 자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무디가 겨우 네 살 때 부친이 급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청교도 신앙을 지닌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났다.” .... - 김기홍, 이야기 교회사 (하),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4) p. 258....<중간 생략>....
그러나 어머니혼자서 꾸려나가야 하는 살림이라 무디는 13세 되던 해에 공적인 교육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겨울에만 공부하고 여름에는 남의 집에서 목동의 일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 그는 주일이 되면 거의 오리나 되는 교회의 주일학교에 출석하였다. 그러다가 1853년 16살 때 보스턴 그의 아저씨(Samuel Moody )가 경영하는 홀톤(Holton's Shoestore)양화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저씨는 그가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중간 생략>....
무디가 보스턴으로 가서 나가게 된 교회에는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이란 교사가 있었다. 킴볼 교사와의 만남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변화되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킴볼은 무디를
만난 후 그가 영적으로 완전히 무지한 상태인데다 성경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디를 바른 신앙인으로 이끌기를
다짐하고 그가 일하는 구둣가게를 찾아가 성경 개인지도를 하였다. 부흥사 무디의 하나님 만남 킴볼은 꾸준히 무디를 찾아가 근 1년 동안 그리스도의 사랑과 보혈에 대한 말씀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던 중 무디는 “하나님은 자네를 사랑하신다네.”라는 킴볼 교사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양화점 뒷방에서 중생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때가 1855년, 무디의 나이 18세 되던 해였다. 무디는 후에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문밖으로 나가서 지구에 비치는 밝은 태양 빛과 함께 주님의 사랑 속에 빠졌다. 이때에 보스턴 공원에서 노래 부르는 아름다운 새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새들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모든 창조물이 다 사랑스럽게 보였다.” - A.P. Fitt, The Life of D. L. Moody(Chicago: Moody
Press, 1990), 그가 하나님을 만나자 그의 시야가 달라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디는 그 날 저녁, 잠이 들기 전 노드필드(Northfield)에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알려드렸다.
“어머니,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로부터 처음 태어난 생일이지요? 십팔년이 지난 오늘(1855.4.21)은 제가 성령으로 거듭난 생일입니다.” - 박종구, 무디 선생의 생애 (서울: 신망에 출판사, 1976), p.92.
1856년 무디가 19살이 되었을 때 보스톤에서 시카고로 떠났다. 거기서 구두 파는 사람으로 일하며 그는 최초에 13명의 부랑아들을 교회로 데려왔다. 그 교회학교는 점점 커져서 1500명이 넘었다.
그러자 1860년 6월에 이르러 전도 사업에만 전념하고 그리스도의 일에 모든 시간을 바치기 위해 그는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이런 결단을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자기 주일학교 교사가 당시 불치병이었던 폐병으로 고향에 내려가기 전 “그가 가르치는 학생가정을 찾아가 전도하여 그 가정 전체를 구원하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장사에는 아주 흥미를 잃고 전도에 헌신하게 되었다.” - 석호인, 신앙의 위인상 그리하여 그는 연봉 7500불을 받고 있던 직장을 버린 후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연봉
300불 받는 직장으로 기쁘게 옮기고 주님의 일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다....<중간생략>..... 1871년 10월 8일 ‘시카고 대 화재’가 일어나 그가 설립한 교회당과 교회학교가 잿더미가 되었고 다만 그의 처자와 그의 성경만이 무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부인 신자들이 그를 위해 더욱 헌신하기로 하였고 무디는 더욱 힘써 기도 드리는 시간을 통하여 두 번째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성령체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다시 나게 하신 후, 16년만의 일인데 곧 성령께서 나에게 충만하게 하신 일이다. 그 후로는 성령께서는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 - 박석출, 무디의 부흥운동이 세계에 끼친 영향(서울: 장로회신학대학 석사학위논문) p.35.
영국과 세계를 변화시킨 소명을 향한 생애
무디는 일차 영국 방문을 마친 1870년 인디아나 폴리스 (Indianapolis)에서 열린 YMCA 국제집회(International Convention) 때에 성악가 생키(Ira David Sankey:1640-1908)를 만나 전도사역에 합류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생키의 찬양지도에 거부감을 느끼며 심하게 반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생키는 개신교 예배에 찬양의
은혜가 충만한 새 역사를 만들어 냈다. 무디의 두번째 영국 방문은 1872년 6월에 이루어졌다. 설교 전에 생키에게 찬송을 부르게
하였는데 이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무디는 설교 후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통성 기도를 하게 하였다.
매 집회 때마다 예상을 뒤엎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단하고 주님께 돌아옴으로 영국 전체에 초대
교회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무디의 세 번째 영국 방문은 1873년부터 1875년까지의 사이에 있었다. 1873년 6월 17일부터 요크 지방 부흥집회를 시작으로 5주간을 계속되었는데 요한 웨슬레 이후 가장 큰 부흥운동의 불길이 요크에서부터 붙기 시작하였다.
이 집회 기간부터 무디의 집회는 "전 신도가 한 시간 동안 자신의 죄를 자복하게 하고, 한
시간 동안 찬송 부르게 하고, 누구든지 자신이 받은 신앙체험을 공중 앞에서 간증하게 하고, 새로 믿기로 결단한 성도들의 결단을 선언하게 하고,
설교 후에는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에딘버러(Edinburgh)의 뉴캣슬 집회가 3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부흥의 불길은
에딘버러 전역에 미쳤으며 글라스고우 부흥집회에서 마지막 주일 저녁에는 5만여 명이 회집하였는데 생키가 7천명의 즉석 성가대를 조직하여 총 지휘를
하여 더욱 감동적인 집회가 되었다. 그 후 런던에서의 집회는 1876년 3월 9일에서 7월 12일 까지 4개월 이상 계속 되었고 집회는 285차에 달했으며, 동원된 연인원은 259만 명이었다. 부흥은 런던 자체만 감동시킨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놀라움이 되었다. - A. P. Fitt, op.cit., p.92. 무디의 부흥회를 통하여 영국에서 복음주의의 부흥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 또한 생키를 통하여 찬송에 은혜 받은 기독교인들은 예배시간에서의 찬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정하게 되었다.
1875년 11월 무디의 미국에서의 부흥회는 자기 고향에서부터 시작하여 친척들과 친지부터 큰 은혜를 받게 하였다. 그 후 뉴욕 집회는 1876년 2월 7일에 개회하여 4월 19일까지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까지 진행되었다.
매일 7-8천명의 군중들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2달 동안이나 진행되었다. 그리고 1876년
10월 시카고, 보스턴과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에 걸쳐 1881년까지 진행되었다. 평양신학교를 세운 마포삼열 박사는 무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1886년 여름에 25일 동안 251명의 학생들은 헤르몬 산 (Mount Hermon)에서 모임을 갖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와 함께 이야기하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모임에서 그들 중에 21명이 해외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수립하는 데까지 발전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26일째에는 약 100여명의 학생이 반드시 해외 선교사라는 명칭이 아니더라도
해외의 선교적 봉사에 협력 내지는 헌신한다는 데 뜻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무디는 대학생들을 위한 자원봉사대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무디는 198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 기간에 부흥집회를 갖기 위하여 영국을 비롯하여 각
국으로부터 100명 이상의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했으며 1895년에는 시카고에 기독교서회를 설립하여
성서와 찬송가, 기독교 서적을 보급하였다. 무디는 평신도였지만 설교를 잘하였다. 음성도 좋지 못하고, 콧소리를 하며, 문법에도 맞지 않고, 또한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성령의 힘이 있었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또한 사람을 끄는 영력으로 세계의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교회 역사가들은 하나님께서 무디를 계속해서 사용하신 것은 그가 겸손하여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디의 설교는 야외 대중집회로 청중들을 회개케 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제공된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는 단순하고 감정적인 것이었다. 무디의 설교를 통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감동을 받게 되었고 해외 선교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 이형기, 세계교회사II , op.cit., p.479. 교육받지 못한 무디는 교육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적으로 교육 연구소등에게 근본적인 협력을
하였다.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최후까지 충성하던 무디는 1899년 11월 8일 미조리 주 캔사스 시에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이끌고 있는 동안 건강의 악화로 남은 시간은 토레이(R.A Torrey)에게 맡기고 고향 노드필드로 갔다. 그리고 그 해
12월 22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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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망성이 없었지만 은혜가 예비되어
있었다. 현재의 모습보다 내일의 변화된 모습을 예감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무디가 능력의 도구로 쓰임받은 첫 번째 요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회심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영적 비전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미래의 희망이 없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3. 물질을 포기했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물질보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4. 성경 연구와 경건에 실질적인 투자를
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과 기도로 경건의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가능성이 많다. 무디는 아침에 제일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5.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높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깊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넓고
하나님의 사람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디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6. 하나님의 은총으로 좋은 인물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사람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이다. 7. 협력 가운데 충분한 신용과 능력을
쌓았다. 독불장군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반드시 협력자를 얻으라.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라. 그 위에 신용과 덕을 쌓으라. 무디는 인간 관계에서 상당한 신뢰를 쌓은 인물이었다.
무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그분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순수 복음에 입각한 연합을 위하여 진정 헌신하는
일꾼들을 찾으신다. 무디가 사역 가운데 절감한 부분은 평신도 사역자가 매우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8. 겸손한 자세로 항상 배우려고
힘썼다. 겸손은 인간이 지녀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라.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할 줄도 알라. 무디는 자신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작은 은사, 작은 재능, 작은 지혜, 작은 수고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작은 재능을 가졌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배우며 개발하라.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겸손한 자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무디는 가족
앞에서든 동료 앞에서든 자신이 잘못을 했을 때는 즉시 용서를 구하였다. 비록 아버지지만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자녀들의 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잠들기 전에 사과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매일 성찰하며(자기대면)자신의 모습을 자주 성경앞에 비추어 점검해
나갔다. 9. 은사와 재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무디는 은사와 재능을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숨겨두지 아니하고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다해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가진 은사와 지식과 재능이 얼마나 되느냐 보다 그것을 얼마나 선하게 적극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10. 그리스도의 심장, 즉 사랑을
소유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인물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11. 복음 전도에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무디는 설교 중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강권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짓도록 하고 있다. 무디의 열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열정이었으며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열정이었다. 복음을 위해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무디의 열정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용하신 것이다. 충동 가운데 가장 희망이 있는 충동은 복음의 충동일 것이다. 복음에 충동을 받은 사람은
결국 복음을 위해 살게 된다. 12.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의 사람은 또 다른 기도의 사람을 낳는다. 기도의 사람은 맡겨진 사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기도의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 있는 도구로 쓰임받는다. 그의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4:19) 13. 환난과 장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디는 어떤 분야든 진정한 영적 가치를 느끼고 열심, 열정,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 나갔다. 그는 환난을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14. 전폭적인 헌신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라 한 가지 일에 전폭적으로 뛰어들라 전폭적인 헌신만이 자신의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는 마치 고전 음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또한 강력하게 이끌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15. 성령의 권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무디가 전도 사역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바로 성령의 임재 이다. 그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전해야한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더 큰 일, 더 큰 능력을 구하는 자, 더 큰 능력을 지닌 자를 통해서 더
큰 일, 더 큰 뜻을 이루신다. 성령의 능력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열어 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점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임했다. 16. 집회와 각 선교 활동을 철저히
준비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준비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준비 위에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는 자에게 더 놀라운 은혜를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준비된 도구를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도구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17. 청중을 움직이는 설교를
했다. 누가 회중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는가 메시지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일 것이다. 누가 회중을 가장 잘 변화시킬 수 있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은 갑작스런 준비에 익숙한 설교자보다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묵상하며 준비해 둔 사람을 사용하신다. 사람들은 흔히 유창한 말이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능력은 말씀 자체에서 온다. 무디는 다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할지라도 말씀 자체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설교자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디는 설교할 때 흥미로운 세상 이야기가 아닌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18. 최선을 다하는 달음박질이
있었다. 마라톤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인내하며 전심 전력으로 달린 사람이다. 인생의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람이다.
(딤후4:7,8) 19.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인간성을
지녔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무디의 장점 들 ① 영적인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②육체적인 건강을 받았다. ③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했다. ④탁월한 지도력과 특출한 지혜를 소유했다. ⑤참신하고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였다. ⑥선교에 대한 열정이 강한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⑦그의 효심을 빼놓을 수 없다. 20. 신실한 믿음으로 복음 전도의 결심을
맺었다. 결실은 수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속한다. 무디의 비석에는 이런 성경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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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