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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진흙속의 연꽃] 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사회생활님께서 부디 길을 선택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과 늘 함께 하시어 평안과 안락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불교 포교론 강좌] 포교사와 포교법
I. 포교사
1. 포교사의 자격
포교는 종교의 생명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조와 교리와 교학이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종교는 죽은 종교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교의를 남에게 전한다는 건은 종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종교의 생명 연장은 인간다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법은 꼭 건해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을 전하는 자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의미로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법화경」에 "법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앉아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말을 하여야 한다" 한 것이다. 이것이 포교사의 기본적 자세이다.
여래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스스로 청정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여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태도의 순수함을 의미하며 여래의 말을 한다는 것은 진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포교사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불법을 전하는 사람이며 그만큼 부처님의 사상과 교의에 투철한 사람이라야 한다.「십주비바사론」 '제7분별 법사품'에 설법자의 4가지 덕을 말하였는데 첫째, "널리 보고 많이 배워 일체의 언어, 장구(章句)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니 이는 박학다식한 것을 말한다.
둘째,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이 생하고 멸하는 모습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으니 이는 세간에 있는 출세간에 있든(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든) 세간의 일에 정통하여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선정과 지혜를 얻어 모든 경법에 따라 의심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니 이는 정 .혜를 닦아 교리와 교학에 밝아 모든 사물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분쟁하지 않고 화합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오직 말과 같이 행하는 것이다."고 했으니 이는 지와 행의 일치를 강조하여 오직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이다.
또한 [양고승전]13에는 전법자의 4대 조건으로 1) 대중을 감동시킬 만한 음성을 가지고(聲), 2) 때와 장소에 알맞은 말이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辯), 3) 재주가 뛰어나야 하며(才), 4) 박학다식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博)고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우선 무엇보다 도덕적. 인격적 기본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인물이 아무리 잘나고 위대하다 하더라도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는 냉혹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포교사로서는 가장 부적합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2. 포교사의 사명
포교사는 불법의 맥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화엄경] '명법품'에는 포교사가 "항상 중생을 위해서 정법을 개설하기 때문에 불법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법화경] '법사품'에서는 여래가 입멸한 후에, 정법을 스스로 수지하고 타인에게 교설하는 사람은, 여래가 옷으로 이 사람을 덮어준다....또 타방에 있는 현재의 보살이 보살핀다.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여래와 함께 기거하며, 여래가 이 사람의 머리를 어루만져 줌이 되나니라"하였다.
경전의 이와 같은 찬탄과 마찬가지로 포교사는 불타의 정신에 입각하여 인생과 세계를 관조하고, 불타의 묘법을 널리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감사하며, 큰 긍지와 보람을 갖는 것이다. 그의 긍지와 보람은 여래의 가호와 여래의 자비 속에서 안주하기 때문에 어떠한 위난과 어떠한 액난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이 샘솟게 마련이다.
특히 현대 사회는 특수한 종교의 신념체계가 사회의 지배적 신념이 되지 못하며 모든 것이 과학적 사고의 바탕 위에서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여야만 하는 이른바 과학만능의 시대가 되었다. 합리주의적 사고가 인간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이고 초월적인 모습은 모두 배척하기 쉬운 것이 시대적 조류다.
인류의 문명은 전세계가 하나의 문명권으로 통일되어 가는 추세에 있으며 정신구조마저 문명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물질적 사고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른바 도처에서 문화의 세속화가 진행되어가고 있다. 세속화의 과정 속에서 인생의 의미나 구조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제기하는 종교는 많은 대중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인간의 내면세계를 지배하는 한 인간은 불안과 고독에 시달리게 된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남보다 잘 살려는 경쟁 속에서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하여 피폐해지고 초라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대의 문화구조속에서 인간에게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고 세계의 구조를 올바르게 해명해줌으로써 삶의 등불이 되고 구원의 섭리를 실현시키는 포교사의 사명은 참으로 막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포교사는 이런 현대인들에게 안정과 정신적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정법의 횃불을 밝혀야 한다. 또한 포교사는 현대인들에게 생활의 신념과 가치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종교적으로 인도해야 하며, 인간애의 성숙과 화목한 사회상의 건립을 위해서 실천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정법의 사자, 포교사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신성한 사명이다.
3. 포교사의 자세
포교사는 불타의 정법을 수호하고 홍보하고 증명하여 보이는 자일 뿐만 아니라, 중생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실로 중요한 '진리의 임무'를 짊어진 사람이다.
[법화경] '법사품'에서는 "선남자. 선녀인 이 내가 멸도한 후에, 정중히 한 사람을 위해서 법화경 중에 한 구절이라도 설한다면,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이며, 여래가 보낸 사람으로서 여래의 일을 실행함이겠는가"라고 하였고, "능히 후세에 이 경을 배워서 실천하고 신앙하는 자는 내가(여래) 사람들 속에 보내어서 여래의 일을 수행케 하는 것이다."하였다.
이와 같이 포교사는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의 일을 대행하는 사람이다. 불법의 실현, 존속 여부는 오직 포교사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금강경 오가해] '야부중'에 "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설하면 삿된 법도 정법처럼 되고, 삿된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정법은 다 삿된법이 된다 "고 하였듯이 포교사에겐 제일 먼저 인격적 완성이 요구된다. 인격이 원만하지 않고는 누가 그를 신뢰하겠는가.
종교는 신심과 체험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이론체계의 강설로는 청중의 가슴에 감화를 주기 어렵다. 자신이 먼저 불타의 교법속에 침잠하여 정신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포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임무가 아니라 신앙의 기쁨을 전달하는 것이 그 임무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믿고 그 믿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것이 포교사의 기본 임무다. 이것을 '自信敎人信'이라고 한다. 넘쳐흐르는 신앙의 기쁨이 타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것이 신앙전파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이 신앙 속에서 안심하고 환희해야 한다.
따라서 포교사의 태도는 신앙의 기쁨에 넘쳐흐르는 속에 정중함과 품위와 도덕성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화엄경] '명법품'에 포교사는 "저 코끼리 왕처럼 안정해야 하며 용맹하고, 두려움 없기를 사자처럼 해야 하며,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바다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했듯이 포교사의 자세는 장중하고 경망스럽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우바새계경」 에는 "자신의 악을 제거하지 못한 주제에, 남을 가르쳐 악을 제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먼저 자신이 보시하며, 자신이 세계를 지키며, 자신이 만족 할 줄 알며, 자신이 근행정진해야 하며, 그리고 나서 남을 교화해야 하는 것이다 "고 했다.
4. 포교사의 언어
포교사는 언어의 구사를 잘해야 한다.
법을 전하는데는 역시 언어 이외의 큰 수단이 없기 때문에 언어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크다. 비속어, 사투리, 또는 은어를 써서 포교사의 품위를 떨어트린다든지 하는 것은 청중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킨다.
청중들에게 신뢰를 획득하고 신심을 고양시키며 희열과 감명을 주기 위해선 명석하고 우아하고 장중하고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함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따라서 포교사는 변론.수사학.논리학.문법학등을 자기 분수에 알맞게 익혀야 하며 음성을 수련해야한다. 부처님은 4가지 걸림 없는 말로써 법을 설했다.
첫째는 법무애변 (法無碍辯)이니, 온갖 교법에 통달하여 걸림없이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무애변(義無碍辯)이니, 온갖 교법의 바른 뜻을 알아 걸림없이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사무애변(辭無碍辯)이니, 여러 가지 말을 잘 알아 통달하고 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넷째는 요설무애변 (樂說無碍辯)이니, 온갖 교법을 알아 중생의 근기에 따라 중생이 좋아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서도 말은 언제나 논리가 정연해야 한다. 때와 장소와 강연이냐, 법문이냐, 연설이냐, 강의냐의 성격에 따라 그 음성과 언어의 선택이 특수해야 한다. 말은 항상 간결하면서도 명석하고 이해가 충분하며, 또 언어가 유창하여야 한다.
「법화경」 '안락행품' 에는 "법을 설하고자 하면 응당 안락행에 머물러서 입으로 선설하며, 만약 경을 읽을 때에는 사람 및 경전의 허물을 말하기를 즐기지 말며, 또한 나머지 여러 법사를 업신여기지 말며,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쁜 것과 길고 짧은 것을 말하지 말며, 또한 성문 사람의 이름을 일컬어서 그의 나쁜 허물을 말하지 말며, 또한 이름을 일컬어서 그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지도 말며, 또한 원망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도 말며, 이와 같이 착하게 안락한 마음을 닦는 연고로 듣고 있는 모든 자는 그 뜻을 거스리지 말며 어렵게 묻는 바가 있어도 소승법으로써 해설하며 일체종지를 얻게 할지니라" 고 했다.
이와 같이 포교사는 항상 안온하게 법을 설하길 즐기되 청정함과 신성함과 자비함을 갖고 중생을 대하라고 경전 가운데 설하여 있다.
5.포교사의 복덕
무엇보다 포교사는 최승제일의 복덕을 구비한 보살이어야 한다.
「발보리심경」 에 "남을 위하여 경전을 설하고 가르치면 이런 사람은 응당 부처님을 가까이 하여 존중하고, 공경한 것이 될 것이다"고 했듯이 불법을 설하는 자는 부처님의 가호와 위신력에 초지되어 항상 복덕이 구족하게 된다.
또한 「현자5복덕경」에 의하면 "현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면 5가지 복덕이 있으니,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장수이요, 둘째는 크게 부유함이요, 셋째는 아리따움이요, 넷째는 명예가 멀리까지 들림이요, 다섯째는 큰 지혜를 얻음이다" 고 했다.
포교사의 공덕을 찬탄한 경전은 이외에도 무척 많다. "어떤 사람이 62억 갠지스상의 모래알과 같이 보살심들을 받아 지니고 몸이 다할 때까지 음식, 의복, 와구, 의약으로 공양하는 복이 관세음보살 이름 하나를 지니고 관세음보살께 한번 예배드리는 복만 같지 못하고, 또 관세음보살 이름을 백겁 동안 받아 지니고 예배. 공양하는 복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한번 부르고 예배. 공양하는 복만 못하며, 아미타불, 석가모니, 약사유리왕 부처님의 명호를 8백억 나유타 동안 받아 지니고 외우며 예배. 공양한다 할지라도 3보의 위덕을 부처님을 대신해서 펴고 있는 흘릉한 포교사 한분 공양하는 복만 못하다 "고 했다. 이것은 3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현성이 오직 이 포교사의 한입을 통하여 빛을 발하고 힘을 일으켜 모든 중생들에게 환희공경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법화경」 '법사품' 에는 "만일 악한 사람들이 칼이나 몽둥이나 돌로 법사를 해치고자 하면 내가(여래) 곧 변화인을 보내어 호위케하고, 하늘의 모든 동자들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여 칼이나 몽두이로 가해하지 못할 것이며, 독도 해하지 못하며, 악한 사람이 꾸짖고 욕하면, 그 입을 곧 막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법사로 하여금 자유롭고 두려움이 없음이 마치 광야의 사자왕과 같게 할 것이고 지혜광명이 태양과 같이 빛나게 할 것이다" 고 하였다.
위와 같이 포교사의 위대한 공덕들은 위로 부처님의 외호를 받으며 아래로는 중생들의 존중를 받아서 불법이 영원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포교사의 위대한 말 한마디에 백만억 아승지겁에 받을 생사의 중죄가 소멸되게 하고 법사의 설법 한마디에 80만억 나유타겁 동안 6바라밀을 닦은 공덕보다 백배, 천배, 만배, 산수의 비유로는 헤아릴수 없는 뛰어난 공덕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포교사의 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포교사의 설법을 듣고 그에 대하여 잠깐 동안 믿는 마음만 내어도 "이 사람의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불퇴전의 지위에 앉고 능히 무상지혜를 일으켜서 빨리 일체종지에 이르게 되고 겨우 한 생각에 따라 기쁜 마음만 내어도 백만억 아승지 세계의 6도 중생들을 천상 인간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의식주를 베풀어 주고 다시 이들을 교화하며 아라한이 되게 한 복덕보다 뛰어난 복덕을 얻게 되고 겨우 한 사람을 권하여 그 위대한 대승의 설법을 듣게 하여도 다라니 보살이 되고, 앉아 듣도록 자리만 권하여도 대범천왕이나 제석천왕, 전륜성왕이 된다. 하였으니 포교사도 일체중생을 바로 부처가 되게 할뿐만 아니라 아울러 보살과 천주(天主), 인왕(人王)을 잉태하여 풍요한 수확을 얻게 하는 까닭이다"고 하였다.
그러니 포교사는 마땅히 이와 같은 부처님의 위신력있는 말씀을 믿고 나아가서는 그러한 부처님의 위신력에 힘입어 두려움을 내지 말고 법을 설해야 한다. 그것은 장소와 때와 그리고 청중의 다소와 고귀하고 천함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나는 이렇게 공덕이 있으니 마땅히 나를 따르고 공경해야 한다 '는 것 같은 자만심을 내면 이것은 경전에서 말하는 바의 아상(我相)이기 때문에 결코 부처님의 가피를 입을 수 없는 것이다.
포교사는 무상(無相)이며 무주(無住)며 무법(無法)이다. 상이 없으므로 일체에 포교사로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주(住)가 없으므로 일체에 머물지 않는 곳이 없고, 법이 없으므로 그 자신이 곧 법의 주재자, 법당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가장 훌릉한 복전(福田)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중생의 의지처가 되어 있으므로 그 이름을 포교사라고 하는 것이다.
6. 포교사의 의무
1>중생의 재난과 고통을 없애 주어야 한다.
포교사는 부처님을 대신한 법사다. 부처님처럼 위대한 위신력과 신통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항상 부처님의 가피력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중생의 재난과 고통을 제거하고 중생의 무명. 번뇌를 소멸해 주며, 중생의 온갖 소원을 성취시켜 주어야 한다.
중생의 고통은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뿐만 아니라 이별하고, 미워하고, 구하려고 하여도 구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핍박받고, 수탈당하고, 소외당하는 등 여러 가지이다. 중생들의 이러한 현실적인 고통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포교사의 첫 번째의 의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포교사는 외우와 내란이 일어났을 때 그것의 정치적. 사상적. 역사적 배경을 여실히 관찰하고, 서산대사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처럼 정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칼을 들고 일어나야 한다. 또한 중생이 이별의 고통 속에 고독을 헤매인다든가, 병들어 있을 때 동병상린의 애정으로써 그들을 달래고 같이 그 고통을 나누며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이 있으면 가난과 곤궁을 극복할 용기를 주며, 불의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불의를 척결할 용기를 주며, 억압되고 착취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억압자와 착취자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가호력을 주며, 죄업을 없애 주어야 한다.
고통 속에서 희망을 주는 일, 재앙 속에서 역경을 벗어나게 하는 일, 특히 죽음에 임한 자에게 그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참회와 발원을 통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포교사의 의무다.
2)중생의 무명, 번뇌를 제거시켜 주어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중생심 가운데 가장 깨닫기 어렵고 버리기 어렵고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음욕심이고 진에심이며 어리석은 마음이고, 나와 내것만 주장하는 소유욕이며 의심하는 마음이다. 음욕심은 인간의 역사를 구성하고 인류의 재생산을 도모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욕심이 공동체적 관심과 도덕 속에서 유지,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쾌락과 부도덕성에서 발휘될때 인간의 죄는 시작되는 것이다.
불교는 성을 개방하고 억제하는 것을 문제시하는 종교가 아니라 성을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 바른길을 가르치는 종교다. 성은 반드시 공동체 윤리를 기본으로 하여 발산되어야 하며 개인적. 쾌락적으로 발산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와 국가가 명랑하고 아름다와지려면 제일 먼저 성도덕이 확립되어야 한다. 청정은 불국토의 제일 요건이기 때문이다.
음욕은 번뇌의 제일 원인이므로 음욕의 절제가 번뇌의 발생을 막는 제일 요건이 된다. 이런 탐욕과 성냄은 긍극적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에 그 원인이 있다. 어리석은 마음만 없다면 야심과 의심도 있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병 가운데 무명(無明)이 가장 무서운 병이 된다. 무명이란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란 인생의 의미와 구조를 바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 세상의 실상에 대한 바른 견해를 말한다. 그것은 연기의 도리이며 인생과 우주의 무상함과 무아함을 투철하게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포교사는 증생의 무명을 제거하여 인생과 우주의 실상을 바로 인식하게 하고 진리롭게 살게 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임무다.
3) 중생의 온갖 서원을 성취시켜 주어야 한다.
중생은 중생의 근기대로 각자의 서원이 있다. 장수(長壽)의 소원, 부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 명예를 얻고자 하는 소원, 원력을 지니고자 하는 소원, 재주를 갖고자 하는 소원, 신통을 얻고자 하는 소원 등 중생이 갖고 있는 소원은 한이 없다. 또한 부처가 되고자 하는 원, 보살행을 하고자 하는 원,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원등 종교적 소원도 갖고 있다.
이러한 소원들을 부처님 앞에서 맹서하는 것을 서원이라 하며 이런 서원을 이루고자 원을 발하는 것을 발원이라 한다.
중생은 발원을 함으로써 각자의 소원이 성취되는 길목에 들어서게 된다. 인간이 원한다는 것은 아직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발원과 함께 실천적으로 노력을 하여야 한다. 포교사는 이런 중생의 서원을 하나하나 밝게 알고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위신력과 세상의 이치를 바르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서원을 해결해 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건강을 원하는 자에게는 무욕(無慾)을 가르쳐 부처님의 신통력이 그의 내면에 있게 하며,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지족(知足)을 가르쳐 부처님의 위신력이 그 안에 살게 하며, 지혜롭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선정(禪定)을 일깨우고 극락에 왕생 가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염불을 하게 하여 부처님의 중생 구제력에 섭수 되게 한다. 포교사는 중생의 은갖 서원을 일일이 다 듣고 나서 포교사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포교사가 항상 발원하여 왔던 부처님의 자비심에 호소하여 모든 것이 부처님의 자비심에 호소하여 모든 것이 부처님 안에 섭수 되고 불의한 것은 절복(折伏)될 것이다. 이것은 포교사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처님의 능력이 것이다.
II. 현대의 포교 형태
1.개인 포교와 상담 불교
개인적으로 각각 지니고 있는 고뇌를 상담하여 그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하고 바르게 나갈 길을 모색해서 자각시키고 행동에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 개인 포교의 방법이다. 이것은 불교 교화에 있어서 석존재세시대부터 행해져 온것으로 재래의 신앙상담, 즉 카운셀링이 이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이 카운셀링이 직업지도, 적성지도, 심리분석에서부터 시작하여 상담심리학, 인생상담 등이 각종 형태와 명칭으로 행해져 왔다. 불교에서 옛부터 용수(龍樹)의 4구백비(四句百非)의 형식([중론]에 있음)을 빌어 부정계발법(否定啓發法)을 기초로 해서 상담불교를 형성해 왔었고 요사이는 일본을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이런 방식을 과학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즉 이것은 일종의 문답법으로서 자꾸 질문해 들어감으로써 상대방의 무지를 드러내게 하여 불교의 진리를 알게 하는 방법이다. 부정에 부정을 거듭
하여 진리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부정계발법으로 이것은 개인포교에 있어서 상당히 효과적이다. 불교는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성을 개현(開顯)하는 것이므로 부정계발은 카운셀링을 하는데 있어서 기본이라 하겠다.
어떤 문제 또는 인생 문제에 대해서 고뇌하고 고민하는 개인을 불교 신앙적으로 이끌고 이런 신앙에 의해서 그 개인이 위안을 얻으며 구원을 받게 되며 그는 개인으로서의 해탈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이 전체적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기 때문에 개인상담은 불교 포교의 급선무다.
현대인은 생활수준이 향상하여 모든 것이 편리해졌으나 이러한 편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서로간의 경쟁을 유발시키고 경쟁은 드디어 투쟁 단계로 고양된다. 이리하여 개개인은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삶을 살게되며 그 어느 곳에서도 편하고 안정된 마음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개인의 불안과 고뇌를 이용해서 신흥종교가 그들에게 삶의 의미와 구조를 설명해주고 구원의 섭리를 이룩해준다고 하면서 그들의 정신력은 마비시키고 있다. 이렇게 해서 기업종교가 발생하며 집단적인 광란이 행해진다.
전통종교로서의 불교는 오늘날의 사회현상과 개인심리를 충분히 파악하여 개인에게 삶의 이상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필요성을 갖고 있다. 이런 개인들을 대할 때 포교 사는 그들의 고뇌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포교사는 카운셀링의 기본을 배워야 하며 아울러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교습해야 한다.
2. 집단 포교
대집난에 의한 포교는 일종의 시위운동이다. 이는 유산종교에서 자주 행하는 것으로서 경기장, 야구장, 여의도 광장 등에서 기도회, 부흥회, 등을 열어 수천 수만명을 집단적으로 도취시키고 최면 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관중심리를 이용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주어 흥분시키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이런 방법을 잘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교는 진리의 자각을 주제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자기 최면을 부정하며 개인의 바른 인식에서 바른 생활과 행동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을 흥분시키는 것 따위는 진리에 대한 정견을 어둡게 하기 때문에 거듭되어야 할 성질인 것이다.
그렇다고 불교에서는 대규모 집회에 의한 집단포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군중심리에 의한 최면만을 부정한다. 어디까지나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입각하여 대중을 교도하고 깨닫게 하여 구원시키는 것이 불교의 집단포교 방식이다.
3. 좌담포교
좌담포교의 방식은 세미나와 신앙고백, 포살회 등이 있다.
세미나는 사회자가 있어서 특별히 제시된 화제를 중심으로 연구. 발표하는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교리공부를 행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초기불교 이래 포살회가 승가에서 있어 왔는데 이 포살회는 한사람 한사람이 대중 가운데에서 나와 지난 일을 참회하고 새로운 일을 각오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 신앙고백 즉 신앙체험담, 또는 인생의 고민과 고뇌를 대중 속에서 이야기하여 이를 대중적 체험으로 바꾸어 신앙을 좀더 높게 고양시키는 방법인데 오늘날 우리 불교에서는 이것을 잘 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신앙체험담을 주고받으며 대중 속에는 일종의 정신적 해방감이 깃들이게 되며 소위 법열(法悅)이 흐르게 된다.
4. 문서포교
이는 문서에 의한 포교방법을 말하는데 포교사는 자기가 주관하는 법회에 매주 또는 매월 일정한 양식에 의하여 교리해설과 신앙 해설을 써서 법회보에 싣는 것이 그 주된 포교방식이다.
인쇄물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문서로써 그것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또한 말로서는 논리적 귀결을 못 갖고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설법한 내용을 요약해서 포교사가 그 주에 강조하고자 했던 내용을 기술해주는 것이 인쇄물의 효과인 것이다.
이외에 시청각교육에 의한 방식으로 영화, 비디오, 슬라이드 등을 이용하여 불자로 하여금 쉽고 명확하게 불교신앙에 입문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이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5. 사업포교
사업에 의한 포교방식인데 종교적 사업으로는 복지사업이 주된 것이다. 복지사업은 주로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으로 나뉘는데 교육 사업은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소년부, 중등부, 청년부, 등으로 나뉘어 교육해 가는 것을 말한다. 불교는 이와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은 없고 재래의 불공의 시기에 의해서만 신도를 접해 왔기 때문에 신도의 교학적 수준이 열악하다. 이것은 또 신도의 조직동원이 안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사업은 양로원, 고아원, 병원 등을 경영하여 간접적으로 이들 불우한 사람들을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회사업 역시 불교는 거의 손을 못 대고 있고 또한 열의를 가지고 있는 포교사도 드문 형편이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사회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교화방법이 가장 요구되는 사회가 오늘의 사회다. 봉건적 의식과 봉건적 사고방식과 신앙형태를 가지고는 올바로 대중을 이끌 수가 없다. 현대사회는 현대사회에 맞는 생활방식과 포교방식으로 불교도 재빨리 변환해야 하며 자기 변혁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일선에서 뛰는 포교사들의 자각과 실천이 우선 이다. 이런 포교사의 자각과 실천의 정도에 따라 불교의 앞날은 명암을 달리 한다.
III. 법문
1. 포살법문
초기불교 이래 포살은 대개 반달에 두번 1일, 8일, 15일, 23일등에 행해졌다. 즉 일주일에 한번 꼴이다.
포살일에는 반드시 계본을 외웠다. 계본이란 계의 근본이 되는 것이며 계란 올바른 삶의 기준이 되는 규칙을 제정한 것이다. 5계, 보살계, 비구계, 비구니계 등이 그것이다. 이것을 포살일에 낭송해서 각자의 반성과 참회의 기회로 삼았다. 정해진 시간에 비구들이 모이면 장로가 일어나 계본의 서문부터 읽어간다. 그리고는 이제 계본을 읽겠으니 죄있는 사람은 발로 참회하라고 한 다음 계본을 낭송한다. 한 항목마다 3번 되풀이 낭송한 다음 비구들에게 청정한가 아닌가의 유무를 묻는다. 허물이 있으면 그에 대하여 대중 앞에 참회를 행한다.
참회가 개인적이고 수시로 행해지는 것에 반해서 포살은 대중생활속에서 이루어지고 집단적이고 정기적인 것이다. 공동체 생활속에서 서로가 지켜야 할 올바른 행위에 대한 규범을 정하고, 모든 대중이 그것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을 때, 포살일에 그 정해진 규범에 따라 자신의 잘못을 대중에게 고백하고 용서받는 행위가 포살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아비판 행위다.
대증과 함께 모여서 공동체의 순수성 유지와 단결과 화합에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포교사가 법회를 개설하여 운용할 때는 반드시 얼마에 한번씩 포살회를 실시하여 공동체 계율 준수의 확인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의식상으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불교를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이 계율은 4분율, 5분율을 중심으로 하되 연대 사회에 맞는 윤리를 새로이 정하여 행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2. 재일법문(齋日法門)
불교에서는 각 제불보살마다 재일이 있다. 또한 수륙재, 영산재, 예수재, 49재, 백일재, 산신재, 용왕재, 조왕재, 신중재등 특별한 재일이 불교에는 많다. 이밖에도 3장 6재일이 있고 10재일이 있다.
3장 6재일 법문은 「인과경. 업보차별경」 등에 나오는데 이는 선악의 업행이 뒷세상에 있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중점이 있다. 여기서 삼장은 정월, 5월, 9월이고 6재일은 이 석달중 초하루 보름을 뜻한다. 이 석달 동안에는 제석천왕이 큰 보배거울을 가지고 남섬부주 중생들이 하고 있는 일.체의 선악업을 관찰하는 날이라 하고 또 어떤 경에서는 지옥의 사졸들이 업경대(業鏡臺)를 지고 중생의 업과를 비추어 보는 달이라고 한다. 중국의 수. 당. 송 시대에 이 달에는 도살을 금지하고 관위의 승진을 피했으며 백성은 채소음식을 먹고 경전을 외우고 염불하는 풍습을 길렀다 하며 신라 . 고려에서도 이런 풍습이 행해졌다고 한다.
10재일 법문은 각기 거기에 해당하고 부처님의 소의 경전, 말하자면 관음재일이면 관음경 ,능엄경 ,법화경, 지장재일이면 지장경, 미타재일이면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을 들어 법문 한다. 초하루는 정광여래(定光如來)재일이고, 8일은 약사부처님 재일이고 14일은 현겁천불불재일이고 18일은 지장보살재일이며, 23일은 대세지보살, 28일은 노사나불, 29일은 약왕보살, 30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재일이다.
재일이 되면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고 단정히 앉아 그날에 해당되는 명호를 천번씩 외우고 전생의 죄를 참회하고 현상의 잘못을 뉘우치고 미래의 원행을 실천하면 반드시 재액이 소멸하고 소망은 성취된다.
포교사는 각 재일마다 그 재일의 연기와 공덕을 설명하고 불자로 하여금 신심과 원력을 가지고 살도록 일깨워야 한다. 재일 법문의 목적은 부모의 은혜, 형제의 우애 등을 강조하여 지은보온(知恩報恩)의 길을 한 부모 한 형제에게만 그치지 않고 사해부모, 사해동포에게까지 실현되는 대아적(大我的) 입장의 삶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의 기복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복을 누리는 작복(作福)적인 입장을 불교는 강조하기 위해서 재일을 만든 것이다.
3. 요일법문(曜日法門)
현대의 생활은 요일을 근거로 해서 모든 일과가 시작된다. 요즈음은 대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은 쉰다. 그래서 거의 모든 종교는 일요일날 그 종교의 의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불교는 음력을 대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음력에 맞추어서 초하루 불공을 드리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은 부녀자이며 남자들은 절을 가까이 할 시간이 없다. 이러한 모순을 하루빨리 개선하고 남녀 공히 불교의식과 신앙에 젖어들게 하기 위해선 일요법회 의식을 반드시 거행할 필요가 있다.
일요일도 오전 오후 등으로 나누어 일반법회 청년법회 어린이법회 등 각각 특성있는 법회를 주관할 필요가 있으며 법회의 의식을 좀더 엄숙하면서도 친교를 갖도록 꾸밀 필요가 있다. 불교의식에 있어서 정기법회는 꼭 일요일에 한다는 것을 신도들에게 고정시킬 필요가 있으며 법회의식도 지금처럼 설법위주가 아니라 그야말로 의식위주로 의식의 장중함과 다양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종단적으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포교사 개인적으로라도 의식을 새롭게 만들어서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독경회, 염불회, 수선회, 지율회 등을 주도하여서 각 회의 특성을 살려 염불, 참선, 독경 등을 행해 그 공덕과 성취를 경전적으로 설명해 주면 신앙교양에 효과적이다.
법회란 재미있고 명랑하면서도 장중하고 경건해야 신심이 나는 것이며 의식을 주관하는 포교사는 조금도 착오 없도록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현대의 포교는 이 법회주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포교사는 법회를 잘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쌓아야 하며 아울러 수사학, 변론학, 논리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수학하여 법문의 묘미와 깊이를 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법문은 이외에도 수계법문, 추도법문, 기념법문, 독경법문, 참회법문, 염송법문, 수련법문, 결제 , 해제법문 등이 있는데 각각 법문의 특성에 따라서 그 내용에도 달리 작성하는 것이 포교사들의 임무라 하겠다.
이상으로 포교사와 포교방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서술하였으나, 오늘날 이 시대의 불교는 포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대다. 불교의 중흥은 그야말로 포교사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포교사는 좀더 체계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고 나아가서는 인접학문에 대해서도 결코 소흘히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대중은 포교사에게 만능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학문적인 유능함에 앞서 먼저 포교사가 갖추어야 할 것은 인격적 요소다. 개인의 인격이 훌륭해야만 신도가 그를 신뢰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교사는 무엇보다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동시에 폭넓은 관용을 지닌 덕스러운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포교사는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불교를 이룩하는 기본적 지표다. 전국의 포교사는 이 점을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첫댓글 포교사의 입장을 잘 말씀해 주시네요.
포교사가 아니여도 유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바른 길로 저희들을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해요 ^^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동그란땡글이님 정성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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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글을 읽어 주시고 정성껏 발자취를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견고수님의 예쁜 마음에 합장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포교사에 대한 성세한 설명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