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느껴보라. 세상의 이치가 여여함을 느껴보라. 이런 식 밖에 없다. 다른 길이 없는데 왜 그렇게 저항하는 것인가? 여여함이란 저항하지 않음을 뜻한다.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풀은 초록으로 빛나고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대양의 파도는 잔잔하게 밀려오고 새들은 흥겹게 노래 부른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대는 저항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면 돌연 변형이 일어난다.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모두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대는 그 어떤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대는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해한다.
따라서 그대가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존재계의 바다에서 억지로 헤엄치기보다는 그저 유유히 떠다니는 것이었다. 강물은 자연스럽게 떠내려갈 준비가 된 사람만 바다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삶은 초월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두 번째, 그대는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보다 죽음으로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것은 죽는 일이며 일어날 일은 우리의 노력이 없이도 일어날 것이다. 죽을 준비가 된 사람은 자신의 문을 열고 신성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서 문을 닫게 되면 초월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명상이란 바로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체험했어야 할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여여함’이다. 꽃과 가시를 모두 받아들여야만 그대는 평화를 얻게 된다. 평화는 ‘완전한 수용’에서 얻어지는 열매이다. 평화는 평화의 부재마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첫댓글 "여여(如如)"의 사전적 의미는 '있는 그대로"의 뜻이니 '여여하다'는 의미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니 다른 말로는 그냥 자기를 버리고 내려놓으라는 말이라고 활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각자들께서 "무소유!, 내려 놓아라!"를 주창하신 것이지요. 내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를 인정하고 거기에 자기를 들이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래야 명상의 본래 취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