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키메라는 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인이다. 본명은 누구 이름과 같은 김
홍희(1954년생)다. 예명 Kimera는 자신의 성(Kim)에 Opera의 끝부분 세 글자(era)를 붙여서 스스
로 지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에게는 화려한
얼굴 화장으로 더 유명했다. 키메라는 팝페라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는 프랑
스 유학 중 세계 최초로 오페라 아리아와 댄스 테크노를 접목시킨 독특한 장르의 노래를 불러 단번
에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는데, 1985년 프랑스 일간지 <Le Monde>가 ‘한국에서 온 팝페라의 여
왕’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그녀를 소개하면서 팝페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프랑스인들은 키메
라가 발산하는 동양인 특유의 고음 소프라노에 열광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괴물 이름에도 키메라가 있다. 아리따운 여가수가
예명으로 사용하기에는 쪼매 머슥한 이름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키메라는 사자 머리
와 염소 몸통에 뱀 꼬리가 달린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다. 로마신화로 오면 독수리 날개까지 장
착된다. 키메라는 높은 하늘에서 불을 뿜어 농작물과 숲을 태우고 인간과 짐승들을 죽이는 불사의
괴물이었지만, 영웅 벨레로폰이 페가수스를 타고 키메라보다 더 높이 올라가서 키메라의 입 안에 창
을 던져 죽였다. 벨레로폰은 테베를 건설한 카드모스,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와 함께 「일
리아스」에 나오는 그리스신화의 3대 영웅이다.
생물학에서는 하나의 생명체 안에 서로 다른 유전형질을 지닌 동종의 조직이 공존하는 현상을 키메
라라고 일컫는다. 가령 일부 유럽인 가운데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1~4% 가지
고 있는 사람을 키메라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세포마다 2개 내지 2000개의 미토콘드리
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키메라인 셈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수억 년 전 인간의 먼 조상인 단
세포동물에 침투하여 공생하기 시작한 세균의 일종이다. 대상포진이나 독감 바이러스도 숙주의 단
백질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 그렇게 주인이 바뀐 단백질은 면역계에 보관되어 있다가 다음에
동종 단백질이 또 침투하면 T세포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 경우도 생물학에서 일컫는 키메라에 해
당한다.
※ 네안데르탈인은 50만 년 전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세계로 이동해간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20만 년 전 마지막 간빙기가 오자 일부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
고, 일부는 북유럽 등 추운 곳에 그대로 눌러 살면서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했다. 그 사이 북아프리
카 및 남유럽의 지중해 연안에서 추위를 피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인류는 다시 북상을 시작
했다. 북상 도중 호모 사피엔스는 곳곳에서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을 만났고, 그때마다 싸워서 그들을
물리쳤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체구도 크고 힘도 더 셌지만 지능은 낮았는데, 대부분
단독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단생활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합동작전을 펼치며 공격해올 때마다 수
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던 것이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되고 말았다. 10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 진
행된 이 사건을 호모 사피엔스의 원죄로 보는 학자도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는 혼혈이 없었다고 알려져 왔는데, DNA 분석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 유럽인
가운데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1~4% 가진 사람이 종종 발견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시아와 북아
프리카에서도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어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들도 DNA를 정밀 분석
해보면 언제 또 새로운 학설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남녀가 눈이 맞아 전희(前戱) 단계로 키스를 할 때도 부지런히 설왕설래(舌往舌來) 하는 사이에 침
을 통해 유전자가 교환된다. 정액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때 체액이 그의 DNA 조각을 상대방의 염색
체에 삽입시킨다. 간단한 키스 한 번으로 자칫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나 중증 질환이 전염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상대방의 면역계 일부를 간직하는 이러한 새로운 자아도 키메라의 일종이다.
이성편력이 심한 남자나 여자는 유전자 조각의 상호 교환에 의해 일부는 남성이고 일부는 여성인 키
메라일 수도 있다.
쌍둥이도 대표적인 키메라다. 엄마 뱃속에서 많은 유전자를 서로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출산을 한
모든 엄마들도 키메라다. 태아와 유전자를 교환했기 때문이다. 골수 이식이나 수혈을 받은 사람도
여러 사람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비아그라가 발명되기 전인 1920년대에, 프랑스의 한 의사는 정
력을 증강하기 위해 찾아오는 남성들의 음낭에 잘게 썬 원숭이 고환을 이식해주었다. 같은 목적으로
원숭이의 난소 조각을 여성에게 이식해주기도 했다. 순도 높은 키메라를 양산했던 것이다. 그 의사
는 그런 시술을 500건 이상 실시하여 거금을 벌었지만, 당연히 별 효과가 없어 욕만 실컷 얻어먹었
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발까지 한 환자는 없었던 걸로 보면 성기능 장애까지는 이르지 않았
던 모양이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