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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스님 시봉일기 3권 구국구세의 횃불 중- 미타촌 이야기| 광덕스님 시봉일기
미타촌 이야기 과거 인도인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 매우 효과적이고 알뜰하고 규모 있게 살았던 것 같다. 대강 나누어 보면 스승을 찾아서 인생과 우주의 원리를 가르침 받고, 다시 집에 돌아가서 가업을 계승하고,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 끝나면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명상과 사유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인생을 반조 정리한다. 이와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하루의 일이든 일생의 삶이든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며 또한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일이든 인생이든 정리되고 간추려졌을 때 거기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하고 보다 나은 세계가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인들은 매우 차원 높은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인도인들은 영생(永生)을 산다는 긴 생각에서 금생을 바라보았고, 보다 나은 다음 생의 행복을 위해 금생의 삶을 정리하고 추스릴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들의 처한 현실의 모든 고난을 잘 이길 수 있었을 것이고, 높은 정신문화를 개발하여 자기들의 삶을 더욱 의미 깊게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이러한 인도인들의 인생철학에 비해 오늘날의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가.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끝 모르는 집착과 탐욕의 무한 연장, 그 행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착으로 시작하여 집착으로 끝나는 오늘날의 우리 인생들로서는 도저히 인도적인 사고나 생활방식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기르고 가꾸고 젖어왔던 자신의 몸에 대한 애착과 너무나 편리한 생활습관에 푹 젖어 살아온 안락에 대한 집착, 그리고 가족과 물질의 소유와 집착, 아무리 까치발을 하고 목을 늘여 멀리 바라보고 앞을 내다보아도 애착과 집착의 행렬은 정말 끝이 없다.
어쩌면 사람의 가슴과 몸, 아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득 들어 잇는 내용물은 이 두 가지, 애착과 집착이 아닐까. 말하자면 사람의 간, 쓸개, 위, 장, 허파, 혈관,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피 등, 몸 안에 있는 모든 기관과 물질에 이 두 가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함께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탐욕의 인간에게 천재일우의 호기와 행운이 다가와서 잠깐이나마 일으킨 좋은 생각의 힘은 실로 미약하기 그지없어서 도저히 그 막강한 두 가지 힘을 당하지 못하다가 결국 그 세력과 영향력 안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슬픈 운명. 이것이 인간의 피치 못할 숙명이라고 말하면 누구나 이의 없이 받아들일까? 이와 같이 우리 범부의 삶은 전적으로 집착에 의해 좌지우지될 뿐이다. 그러니 이대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중생의 자기한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단정하여 말한다고 누가 나에게 거칠고 사납게 항의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다, 결코 집착이나 애착이 인간의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대들면서 나를 몰아세울 수 있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나이든 불자들을 위하여 수행공동체를 결성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이름까지 미타촌(彌陀村)이라고 지어놓았다. 재가 불자들뿐만 아니라 스님 자신도 형편 따라 힘을 따라 함께 공부하면서 인생의 대미를 멋있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한 당신의 계획과 포부를 여러 차례 나에게 자세히 말씀했다. 한때 부산에 사는 어느 신도의 발원에 힘입어 스님은 아주 구체적인 계획까지 머릿속에 그리며 현실적인 구상을 가지고 나에게 몇 가지 의견을 묻기도 하고 좀 더 분명하게 알아보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옛날 인도인들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 임주기(林住期, 이때는 숲속에 살면서 명상에 든다.)를 가졌듯이, 우리 불자들도 가정이나 사회의 의무를 마무리한 뒤 절에 들어와서 자신의 인생점검과 보충을 통해 앞길을 닦고, 더욱 원만한 삶을 이룩(回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스님은 생각했을 것이다. 스님이 현실적으로 미타촌 건립을 착수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희망과 청사진을 나에게 보여준 것만으로 미타촌 건립 불사는 나에게 자동 인계되었다. 스님의 그 불사를 계승하고자 발원한 내가 막상 미타촌 설립 계획에 구체적으로 착수했을 때,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수행공동체가 실현 가능하더라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이곳 도피안사에 수광원(壽光院, 미타촌과 같음)을 짓고 수행공동체 결성을 제창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여러 가지 장애가 속속 등장했다. 나는 그때 무척 당황하고 암담하기까지 했지만 다시 용기를 일으켜 이런 말로 신도들을 일깨우고 각성을 촉구하며 동참을 호소하고, 인간 삶에 있어서 수행이 매우 중요함을 역설했다. “부모가 자식의 일을 언제까지나 끝도 없이 마냥 도와준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고 그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찬성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더 우선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자신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고 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인생문제를 생각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매우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벌써 나이가 예순이 가까워오거나 넘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아 정리하고 가다듬어야 할 단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그것은 수행(인생정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될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솔직하고 겸허하게 자기 입장(늙음)을 직시하여 현실의 한계를 빨리 깨닫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자식들을 불러 앞에 앉혀 놓고 결연한 자세로, 다음과 같이 이연(離緣)을 선언하라. 그리고 수광원으로 와서 염불하고 살자.“ 『나는 이제 인생 살길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기간이 얼마가 될지 나도 모르고 너희들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그 누구도 나의 미래를 모른다. 그러기에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이 느껴질 뿐이다. 그런 까닭에 더 이상 미적미적 너희들 곁에서 일신의 안락을 추구하느라 세월을 허송하거나 기회를 자꾸만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세상의 만 가지 인연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겸허하게 길 떠날 준비를 해야 하고 또 서둘러야 한다. 이 일은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일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당사자인 나 이외에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의 아이를 보아주고 집안 청소를 해준다 하여도 그것이 너희들에게 천만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조금 더 편리하고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그 작은 것에 비해 남은 내 인생은 너무나 짧고 앞날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참으로 무겁고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서두르지 않겠는가? 인간의 몸과 정신은 오온이며 오온은 원래 없는 허깨비이고 그것은 끝내 나를 배신하고 등져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허깨비 같은 오온에 매달려서 언제까지나 그 힘을 얻어 쓸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오히려 한순간의 코미디도 되지 못할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집을 떠나 절로 들어가서 도 닦으며 여생을 마치려 한다. 다만 내가 부모로서 너희들이 진정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의 주인공으로, 참된 인생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 이 일이야말로 진정 큰 것이고 참으로 너희를 위하는 보배로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정녕 너희들을 위한 참다운 사람의 길이 되고 그 실천이 될 것이다. 세간의 모든 것은 나타났다 사라져 가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어찌 거기서 불생불멸의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이 내가 너희들 곁을 떠나는 이연의 참뜻이며 너희들 곁을 떠나면서 남기는 진정한 고별사다.』 이렇게 말하도록 예시를 해가며 아무리 내가 좋은 말로 신도들을 설득해도 개개인이 무시겁 이래로 길러왔던 집착의 동아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절에 오래 다닌 신도들일수록 집착의 힘이 크고 강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만 한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중략~ 당초 스님의 미타촌 건립 원력대로 노년기에 접어든 인생들이 함께 모여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더디면 더딘 대로 염불당에서 염불하고 선방에서 좌선하고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께 머리 조아리고 예배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어가고 또 여생의 신성한 삶을 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온갖 이유와 핑계, 기상천외한 구실을 만들어 수행을 비켜가고자 하는 무수한 대보살(?)들을 볼 때마다 과연 미타촌이 이뤄질까하는 의심과 실망도 일었다. 그러나 순수하게 자기의 앞날을 준비하고 예비하기 위해 사는 대보살 아닌 지혜보살들이 분명 어딘가에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불러모아 부처님 품안에서 도 닦고 살아가는 훈련을 쌓으면 스님의 원력을 성취할 미타촌은 출현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스님의 고준(孤峻)한 교화(敎化)의 선방편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게 하자. 마침내 그로부터 스님의 자비는 강물처럼 풍성하게 도도히 세상으로 넘쳐흐를 것이다. 후략~ 광덕스님 시봉일기 3 구국구세의 횃불. 글 송암지원. 도서출판 도피안사 |
첫댓글 해운정사에는 안거철이면 수행하는 노보살님들을 뵐 수 있습니다. 때론 이 분들이 수행을 해서 좋겠다 싶으면서도 오셔서 자리를 두고 집착하시는 모습에 차라리 댁에서 수행하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통도사에도 화엄산림 철이면 한달씩 수행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번잡한 도시가 아닌 조용한 산사에 모여 매일 부처님을 그리며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참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닐까요?
날씨가 덥다보니 연일 조문 갈 일이 생깁니다. 요즘의 풍경이 대부분이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이 씁쓸합니다.
열심히 정진하여 자기 갈 길을 밝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노년기에 수행공동체에서
생을 보낼수 있음은 큰복이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요양병원에서 느끼는 점 몇가지.
1. 큰 병이 들어 병원에 들어오셨음에도 세간에서 살던 습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육체와 욕망에 집착하여 웃고 우는 건 마찬가지지요.
보문님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일에도 양보하지 못하고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불 꺼라, 켜라, TV 볼륨 낮춰라, 키워라, 침대 땡겨라 밀어라, 밥이 맛있다 맛없다, 에어컨 켜라 꺼라, 냄새나니 목욕해라 말아라... 심할때는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심지어는 머리채 잡고 싸우기도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끼리.
2. 육체적 고통이 너무나도 심합니다.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는 말기 암 환자뿐 아니라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사지마비로 눈만 뜨고 계신 분들, 피부에 욕창이 나서 바로 눕지도 못하고 고통스런 소독과정을 하루에도 여러번 반복해야 하는 분들, 그 때마다 끙끙 앓는 분들, 호흡 곤란으로 헐떡이는 분...그리고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들.
3. 심적인 고통도 심합니다.
내 인생이 이제 끝인가, 여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인가, 자식들은 찾아오지도 않는구나 버림받았다는 느낌, 외로움, 막막함.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왜 여기 누워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나, 대/소변 기저귀를 갈때마다 느끼는 수치심, 절망감...
큰 스님 바람처럼 말년에 병들기 전에 수행원에서 여생을 정리하고 사는 것은 정말 복 많은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6인 병실에서 다른 환자들과 사소한 언쟁을 벌이면서, 대/소변 냄새 맡아가며,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채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참아낼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의식이 없는 채라면 몰라도요.
수행 열심히 하여 갈 날 알고, 준비하여 장엄하게 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못되더라도 최소한 주변 사람 힘들지 않게 하고 갈수만 있더라도 참 다행이겠습니다.
중생의 삶은 이렇게 무상하다는 생각을 날마다 합니다. 육체는 이렇게 허망하고, 오욕칠정은 죽는 날까지 우리를 속입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판판이 속아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아니 숨이 끊어져서라도 미혹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병실에 누워계시는 저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설법하고 계시네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법혜 너무나 서글픈데
정신바짝 차려 들숨날숨
쉴수있을때 공부 더욱 챙겨하고 죽기전까지
나머지 가족에게 짐은 되지말길 부처님께 간절히
발원드립니다.
슬퍼네요~~~
법혜님의 댓글을 읽으면 찡~~ 눈물을 글썽입니다.
8년 전에 이 글을 공부할때와 오늘 공부할때 느낌이 많이 다르고 이제는 나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네 ~~
정말 수행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참 했습니다. 복 많은 사람은 본인이 만들 수 있겠지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