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미카엘 샤라 박사 연구진이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한국의 천문학자들이 1437년 3월 11일 관측한 밝은 별이 전갈자리에서 일어난 신성(新星) 현상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신성은 어둡던 별이 주변별의 수소를 흡수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갑자기 엄청난 빛을 내는 현상이다. 당시 세종실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객성이 처음에 미수(尾宿·전갈자리)의 둘째별과 셋째별 사이에 나타났는데, 셋째별에 가깝기가 반 자 간격쯤 되었다. 무릇 14일 동안이나 나타났다."(1437년 3월 11일)
그런데 샤라 박사팀 연구 결과, 당시 조선 과학자들이 기록한 객성이 바로 1930년대 하버드대 연구진이 발견했던 왜소(矮小) 신성 현상과 동일한 별로 드러났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신성의 주기(週期)와 진화 과정을 밝혀내는 데 성공을 거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하늘의 모습을 관측하는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경남 함안군, 충북 청원군, 경북 포항시 등에서 발견된 고인돌에는 별자리처럼 보이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백제·신라시대에는 하늘의 별자리 등 천문 현상을 관측하기 위한 천문대가 세워졌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시대에 관찰된 천문 현상이 240여 가지나 기록돼 있다.
고려 사람들도 도읍지인 개성에 첨성당(瞻星堂)이라는 천문대를 세워 천문 현상을 관측했다. '고려사'를 보면 무려 5000여 개의 천문 현상이 기록돼 있다. 고려시대 474년간 일어난 일식과 월식, 태양의 흑점 변화, 달과 수성·화성·금성·목성·토성의 움직임, 행성과 혜성·유성의 변화를 기록한 것을 모아 '천문지'라는 책을 엮어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세종 때 천문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칠정산 내외편, 대간의, 소간의, 혼천의 등 수많은 천문 자료와 기기가 이때 만들어졌다. 우리 조상들의 독자적인 천문 지식에 바탕을 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467개 별을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그려놨고, 칠정산 내외편은 밤과 낮, 사계절의 변화, 달의 위치와 모습, 별의 움직임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날짜와 시간의 기준을 만들었다. 대간의와 소간의,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는 기구다. 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역사적 기록에도 천문 현상에 대한 기록이 약 2만개나 기록돼 있다.
우리 선조들은 하늘과 우주를 전문적으로 관찰하는 관청 또는 관리를 따로 뒀다. 오늘날 기상청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백제의 일관부, 신라의 천문박사, 고려의 서운관(書雲觀)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도 고려 서운관 제도를 계승해 1392년 서운관을 설치했고 세조 때인 1466년에는 서운관을 관상감(觀象監)이란 이름으로 고쳤다. 서운관에서 일하는 관원들은 무려 60여 명으로 모두 영의정 책임 아래 일했다. 천문 현상에 대한 관측이나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관원에게는 임금이 벌을 내릴 정도로 천체 관측을 중요하게 여겼다.
관상감의 관상(觀象)은 하늘과 우주의 여러 현상을 관측한다는 뜻이다. 날짜,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를 순서에 따라 적은 '책력'을 만드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왕실을 위해 좋은 터나 날짜를 정하는 것도 관상감이 하는 일이었다. 조선 초기 관상감인 북부 광화방 관상감은 지금의 서울 창덕궁 옆 종로구 현대건설 사옥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