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마감재와 모던한 디자인 안에 넉넉한 수납공간과 실용적인 구조를 담아낸 아파트.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온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실장의 최근 작업이다.
에디터 곽소영 | 포토그래퍼 이종근
1 내추럴한 오크 소재 헤링본 마루로 마감한 거실 모습. 바퀴와 조명이 달린 독특한 암체어는 무어만 제품으로 가구숍 인엔(02-3446-5103)에서 구입했다. 낮은 벽 선반 위로 놓인 사진 작품은 사진가 박찬우의 작품.
2 티크로 가벽을 세워 주방과 거실의 직접적인 경계를 만든 다이닝 공간. 티크 소재로 마감한 아일랜드에는 원목 스툴을 매치했다. 식탁은 김동원 작가의 테이블 작품으로 큐빅미터(02-545-7776)에서 구입. 등받이가 긴 독특한 패턴 의자(aA 디자인뮤지엄 02-3143-7311)와 브론즈 소재 펜던트(두오모 02-516-7083)는 모두 톰 딕슨 디자인.
‘수납’을 최우선으로 염두했다는 198㎡(약 60평) 아파트.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진 이 집을 찬찬히 돌아보면 놀랄 만큼 넉넉한 수납공간이 고급스러운 마감재 안으로, 넓은 주방과 다이닝 공간 뒤로, 벽으로 느껴졌던 현관 벽 너머로 숨겨져 있다. 잠깐의 휴식기를 갖고 작업을 가진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실장의 새로운 스타일과 여전한 실용주의적 방식이 적용된 이 아파트는 7살, 10살, 11살 난 세 아이를 둔 클라이언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미 3년 전에 이길연 실장에게 집을 의뢰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인연이 아니었는지, 같이하지 못했죠. 결국 다른 업체와 인테리어를 했는데 그리 만족스럽진 못했고요. 이번에 새로 이사를 오면서 꼭 이길연 실장에게 다시 의뢰를 해야겠다 싶었죠. 제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이해하고 또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했어요.” 3년 만에 다시 그녀를 찾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심플하게도 ‘쓰기 편한 집’이었다. 세 명의 아이 덕분에 넘쳐나는 짐을 수납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첫 번째였고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란 시점인지라 이전에 고수했던 편안한 가구보다는 오래 갈수록 멋을 더하는 아름다운 가구를 원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보기 좋고 퀄리티 좋은 가구와 공간이 필요했던 것.
1 낮고 넓은 패브릭 소파와 미라 나카시마 디자인의 원목 테이블(가구숍 인엔), 아메리칸 스툴과 조각이 매치된 거실. 안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걸린 작품은 작가 채은미의 작품.
2,4 더러워지기 쉬운 현관 바닥은 돌 타일로 마감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신발, 자전거, 운동도구 등 많은 물건의 수납을 해결해주는 장소. 넓은 현관 공간을 활용해 신발장의 문은 모두 티크와 브론즈경을 사용해 슬라이딩으로 제작했다. 나무 벤치 위로 보이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창문은 아이들의 공부방. 외부 공간과 같은 느낌의 마감재 덕분에 현관이 마치 작은 골목길 같은 느낌이다.
3 거실에서 이어지는 왼쪽 복도 쪽으로 현관과 아이들의 공부방, 침실이 연결된다. 정면으로 보이는 화장실은 기존 화장실의 비내력벽을 털어내고 공간을 확보해 두 개의 세면대와 샤워기를 설치했다.
5 넓은 공간감을 만들기 위해 노출 후 흰색 도장 마감을 선택한 주방 천장. 싱크대와 수납장 모두 광택이 나는 밝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그레이 컬러 도장을 적용해 모던하게 마감했다. 수납장과 테이블 뒤, 돌 세면대(식사 시 편리하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마련한) 옆쪽으로 제법 넓은 수납공간이 숨겨져 있다. 주방의 바 테이블 앞으로 놓인 컬러풀한 패브릭 시트 의자는 At 디자인 (02-517-3011)에서 구입.
1 넉넉한 수납장과 카페를 연상하게 하는 다양한 마감재 등을 적용한 공부방. 특히 2중 슬라이딩 도어는 바깥문은 유리로, 안쪽 문은 금붕어가 새겨진 벽지(다브 02-512-8590)로 마감해 소음 차단 효과에 시각적인 재미까지 더했다. 이중문 사이에는 LED 조명을 설치했는데, 문을 어항처럼 연출하는 효과를 만든 동시에 아이들이 밤에 화장실을 오갈 때 유용하도록 한 디자인이라고.
2 초등학생 딸아이 둘이 사용하는 침실. 레이스 패브릭과 반짝이는 마감재, 디테일이 돋보이는 베네치안 거울 등이 화려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만든다. 기존의 2층 침대를 분리해 두 개의 침대로 제안했다.
3 한국적인 분위기를 기본으로 편안하고 아늑하게 꾸민 부부 침실을 드레싱룸에서 바라본 모습. 붙박이장 도어는 삼베 소재로 커버링했고 침대 헤드보드는 사이잘 느낌의 포인트 벽지를 시공했다. 거기에 조지 넬슨 디자인의 버블 램프와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베딩(품 제작 02-3444-3778)을 매치했다.
4 거실의 내추럴한 느낌을 그대로 이어간 아들 방. 빈티지 레터 스탬프 벽지(다브)와 모자이크 타일, 헤링본 패턴의 바닥 마감재 등으로 편안함을 완성했고 자작나무로 제작한 넉넉한 수납공간에는 자동차나 장난감 컬렉션을 빼곡히 전시했다. 슬라이딩 도어의 붙박이장 역시 페인트 글라스 보드를 적용해 실용성을 더했다.
이 공사 역시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몇 달씩 클라이언트와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고 재료를 찾아다니는 이길연 실장 특유의 적극적인 작업 방식에 따라 진행됐고 덕분에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 못지않은 선택권을 갖고 인테리어에 의견을 반영하고 참여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시간을 절약하겠다는 마음으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식의 답을 주는 건 디자이너의 독단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에게도 여러 가지 대안을 알려주고 선택하게 하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요. 함께 다니는 과정에서 서로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클라이언트 역시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니즈를 표현하는 데 한결 수월해지죠. 까다로운 고객을 만날수록 제가 발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집 역시 미술을 전공한 감각 있는 클라이언트 덕분에 저 역시 많이 배운 작업이었어요.”
그 어떤 디자이너보다 클라이언트와 깊은 유대를 갖고 있는 이길연 실장은 매 프로젝트마다 자신의 유난스러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한결같이 고수한다. 덕분에 생활의 흔적과 실용적인 요소를 보기 좋은 디자인 안에 유연하게 녹여낸 또 하나의 취향 있는 집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