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나의 마음이 한 쪽으로 치우치고 주님을 벗어나려 애쓰는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주의 십자가에 성령의 줄로 단단히 묶어 주소서.
주를 떠나 자유케 되려 하나 그 자유는 죽음에 이르는 방종이오니 속지 않도록 영의 눈으로 보게 하시고 영의 귀로 듣게 하소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정결케 하사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새 영과 새 마음을 두사 주의 영으로 채우소서.
주의 십자가에 능력이 있사오니 내 육신의 소욕을 못 박으소서.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13:1-17
제목 : 땅이 황폐하여 질 때 비로소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1. 그날,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와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2.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가 앉으셨고, 사람들은 바닷가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
4.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 씨를 모두 먹어 버렸고
5. 어떤 씨는 흙이 별로 없고 돌이 많은 곳에 떨어져서 싹이 나긴 했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6.해가 뜨자 곧 시들어 버렸고 뿌리가 없어서 금방 말라 버렸다.
7.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씨를 자라지 못하게 하였다.
8.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을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또 어떤 것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말하기를 “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11.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지만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가진 사람은 더 많이 받아 풍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할 것이다.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는데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다.
16. 하지만 너희의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하였고 듣고 싶어 했지만 듣지 못하였다.”
* 나의 묵상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비유는 네 가지 밭에 관한 것이다.
주님은 왜 저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느냐고 제자들이 묻는다.
그때 주님이 대답하신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그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천국의 비밀이 허락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비밀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본문에서는 그 비밀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고,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너희’는 1차적으로는 제자들을 말하지만, 제자들 외에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믿음으로 받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외인’, 즉 이방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외인이요 이방인들이 지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목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구원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6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14-15)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이 말씀을 인용한 이사야 6:9-10절을 한 번 보자.
이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사 6:9-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마 13:14-15절에서는 두려워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이 말씀을 이사야에게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이 말씀을 최종적으로 듣는 백성들인지 말이다.
그러나 이사야 6:9-10절에서는 그 주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서는 고침받을까 두려워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의문이 제기된다.
백성들이 듣고 깨달아 주께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고 환영해야 하는데 왜 두려워하시느냐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보고 깨달아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왜 막으시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끊임없이 촉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자기들의 뜻대로 자기들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 15절에서도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완악하다의 헬라어 pacuvnw(파퀴노)는 ‘살찌다, 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음에 살이 쪄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도 않고 말씀이 들어갈 자리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살찐 사람은 듣는 것에 둔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보는 자의식이 발달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으시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귀로 들어 마음이 가난해 진 그런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이 살찐 상태에서 자의식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듣고 자기 마음대로 깨달은 상태로 오는 것을 막으신다는 것이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가 “그럼 도대체 언제까지 그들을 막으시냐?”고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성읍들은 황폐하겨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될 때까지”라고 하신다.
(사 6:11-12)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완전히 황폐하여져서 멸망, 즉 심판 때까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더 이상 소망도 없고, 무엇 하나 붙잡을 것이 없을 때 그제서야 그들은 마음이 가난해지고 결국 붙잡을 소망이 주님 밖에 없음을 알고 주님께 온전히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다.
사람은 이렇게 악한 존재이다.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져서 아무 것도 의지하고 기댈 것이 없을 때 마음이 가난해진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그 순간이 바로 주님을 만나는 때이다.
그 시간이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그 때까지 천국의 비밀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하여져서 자의식의 눈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천국의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 환하게 열리게 된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나는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차지한다는 말의 의미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였다.
할 수 있으면 땅의 것,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아등바등 하는 자였다.
목사이면서도 돈에 대해 자유하지 못하고 매여 있었다.
쓸 곳은 많은데 돈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정말이지 선교사도 마음껏 돕고 가난한 이들도 돕고 우리 교회 재정에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방법이 없었다.
목사의 사례로 삶이 곤하고 지치니까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면서 찾았다.
마침 동료 목사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얼마를 투자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한참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탐색을 하다가 괜찮아 보여서 얼마를 투자하였다.
생각보다 수익이 많았다.
나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하였다.
매 달 투자에 대한 수익이 늘어나면서 나는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4-5개월 후에 그 회사가 유사수신 행위로 검찰에 적발되어 하루아침에 패가망신 당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나 역시 투자한 금액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하여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
목사인 내가 하나님이 아닌 돈에 눈이 멀어 나의 눈으로 돈을 쫓아갈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가를 말이다.
그것은 목사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유사신앙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듯, 유사수신 역시 나라도 싫어하고 하나님도 싫어하신다.
진짜 같으면서도 진짜가 아닌 가짜를 유사하다라고 하는데 이 ‘유사’가 바로 사람을 잡는 것이다.
돈이 들어올 때 내 마음에 살이 찌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만 돈을 벌면 걱정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목회를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돈을 믿고 돈을 의지하는 자였다.
이것이 나의 실체요 실존(失存)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다 날리고 나니까 그 살찐 마음이 어느 순간 쫙 빠지고 가난한 심령이 되고 말았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님 앞에 나와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내가 수 개월간 주님을 잊어버리고 떠나 돈을 좇았던 정신나간 자였음을 고백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돌아왔다.
지금은 돈에 관한한 무지한 자로 살아간다.
그것이 부나비가 불을 향해 뛰어드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체험했기에 더욱 실감한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심령이 가난하여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은 이렇게 조그만 건덕지가 있어도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지 주님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세상을 붙잡고 살아가는 마음이 살찐 자가 아니라 주님만 붙잡고 살아가는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산다.
그것은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어 영생을 살기 때문이다.
그것이 행복임을 다시 한 번 새삼 깨닫는다.
그 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사고가 나지 않고 계속 돈을 벌었다면 나는 지금 아마도 괴물로 변해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의 심판은 옳다.
그 심판을 받아들이고 오직 말씀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만 소망이 있으며, 그 소망은 곧 생명이요 영생이다.
오늘도 그 영생을 누리며 사는 나는 주님의 기쁨과 영광을 본다.
아~ 행복하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땅이 황폐하여질 때, 비로소 마음도 가난하여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의를 세우고 의의 결과 화평을 이루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치심했던 자였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살찌고 완악하여진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나를 살리고 온전히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주님...
이렇게 살려 이제는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받으소서.
내가 바로 외인이었으나 심판을 통하여 주의 백성 삼으셨사오니 나를 받으소서.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날마다 영생을 누리오니 주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찬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