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타 호문조 / 오산하
등장인물 호문조는 1000:1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라이징 스타! 호문조, 뮤지컬계의 아이돌(이 될 예정) ※ 사람 머리를 잡아먹는 장면이 나오므로 주의
1막 호문조는 날개에 가둬둔 호랑을 애지중지 쓰다듬으며 산다 나처럼 멋진 괴물은 또 없을 거야 날개 끝으로 힘을 쥘 필요 없이 나무를 뿌리째 뽑았다 집, 집을 지어야지 (대사를 절면 어떡해? 다시!) 집을 지어야지, 높고 넓은 나의 집
호문조는 변장에 능하므로 뱀에게 똬리 트는 법을 배웠지 집채만 한 머리를 몸 안쪽으로 구겨 넣어 둥글게 무대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날개는 함부로 펼치면 안 돼 호랑이 달아나고 말 테니, 호문조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마
호문조는 산속에서 사람 가죽을 입고 말을 건다 감쪽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네 사람 가죽과 하나 되어 마치 사람인 것처럼 군다 알감자로 끓인 수프와 양파 볶음과 홍차 조금 호문조의 입맛은 이국적이구나 (여기서 좀 더 황홀한 표정을 지어) 마카오 하와이 괌, 앙상블도 함께 춤추며, 마카오 하와이 괌
아랫마을 사람들에게도 호문조의 목소리 울려 퍼지네 두려움은 숭배와 멸시로 이어진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에서 날개를 꺼내고 펄럭이자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물줄기 괴물이네 괴물이야 괴물이네 괴물이야
인터미션 의자에 앉아 꿈쩍하지 않는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곧 사라질 것처럼 1, 2열은 호문조 석 호문조에게 머리를 물어뜯길 수 있는 자리죠 만 원 정도 더 비싸요 몇 번 못할 귀한 경험이니까 곧 사라질 머리 머리 머리
2막 막이 걷히고 천장에서 호문조가 내려온다 무대보다 커진 호문조의 날개 괴물은 괴담을 먹고 자라 무럭무럭 자라
비밀 하나만 말해줘 비밀인데 어떻게 말해줘 호문조는 남몰래 날개 속 호랑을 풀어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행인1 두리번거리다가 사람 변장을 한 호문조를 마주한다 거구의 호문조 호랑이가 달려드는 듯 오금이 저리는 행인1 괴물, 괴물이다 외치면서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빠르게 점점 빠르게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팔이 떨어질 것만 같다)
호문조는 생각한다 저 사람은 왜 괴물새를 앞에 두고 나무 위로 도망가는 걸까?
산에 왜 올랐어 알고 있었잖아 이 호문조가 떡하니 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 왜 도망치는 거야 기인이거나 죽고 싶거나 대부분 후지여서 나 호문조는 기분이 좋지 않다 호문조 까랑까랑하게 하이노트 (감정 잡고) 전율
호문조는 사람이고 싶다 뮤지컬 스타 등용문 〈호문조의 날개〉 마지막 장면 호문조 석으로 날아오르는 호문조 관객석의 그 누구도 괴물이네 괴물이야 외치지 않고 조용히 머리가 사라지길 기다린다
*무대장치 오류* 호문조의 머리가 무대 아래로 떨어진다 굉음과 함께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날개에서 빠져나온 호랑
호문조 석에서 호문조를 연기하던 호문조가 땀에 흠뻑 젖은 모양새로 쩍쩍 갈라지는 발바닥을 이끌고 머리를 줍기 위해 간다
(텅 빈 객석)
호문조 드디어 비밀을 이야기한다 호문조는 마카오, 하와이, 괌, 멀고 가까운 이름들 사람 변장에 능한 괴물새 호문조 안의 호문조는 사람일까 이 질문이 나의 비밀이야 호문조 구슬프게 마지막 넘버 부른다
—월간 《현대시》 2022년 11월호 ---------------------- 오산하 / 1998년 경기도 성남 출생.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2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