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달리니'라는 말이 나와서 몇글 적습니다. 이미 깨어있는푸른역사 삼태극의 '한겨레참역사'방의 공지글 중 169번글, ' 인디아 또 하나의 한국' 편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지난번 10월 23일 하오 16시경에 삼태극단군제의 처음 시작 과목이 바로 요가에서 추구하는' 쿤달리니 깨우기'였습니다. 중간에 백산소도의 '천제'가 시작되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가고, 마지막단계를 다 마치지 못하고 말았는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끝까지 남은 처음 오신분들이 뭔가 강력한 느낌을 얻어 갔습니다. 복받은 것이지요. 쿤달리니를 뱀이 또아리 틀고 잠자고 있는 형상으로 나타내는데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더이상 이전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죠. http://cafe.daum.net/mookto
요가에서 말하는 7단계의 7챠크라
불교에서의 니르바나(열반)상태=부처, 기독교의 '천국=그리스도' 등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저는 소위 깨달음의 세계(차원)은 말이 필요없다고 봅니다. 말은 깨달음=천국=극락=열반=부처=그리스도=알라=하나님 에 방해만 됩니다. 직접 참여해서 좁쌀만한 맛이라도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 수백권의 경전보다 낫습니다. 경전은 또 하나의 상상과 관념을 주지만 직접참여를 통하여 얻는 강력한 경험은 삶을 변형시킵니다. 한마디로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삼태극공식모임에서 우리식구들에게 이것을 덤으로 맛보게 하려고 '공식역사강의' 외에 이 과목을 집어 넣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루해 하거나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대인의 병리상태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마음이 그 만큼 불안정하고 시끄럽다는 것을 말합니다. 들어오는 정보가 폭주하고 따라서 머리 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이 많아 가만히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http://cafe.daum.net/mookto
결론적으로 이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그 사람은 진화를 하는 것이죠. 의식이 진화하여 윤리도덕을 넘는 차원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한답니다. 하이돌님이 걸죽한 욕이나 자칫 음담패설이라고 여겨질 말들을 요즘 자주 사용하는데 이 쿤달이니가 깨어난 사람은 이런 말을 해도 내면에서 어떤 갈등이나 분열이 일어나지 않은 깨끗한 맑은 하늘과 같다고 합니다. 그냥 각성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죠. 사람으로 태어나 신으로 꽃피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치판단의 차원, 너는 나쁘고 너는 좋다, 싫고 좋다는 판단과 선택을 끝임없이 강요받는 차원을 넘어 깨어난 기운(에너지)에 맡겨 '그'가 이끄는 데로 간다고 합니다. 저는 기독교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예수Jesus' 에게서 이런 기운을 느낍니다. 쿤달리니가 각성되어 자신의 온 몸을 지배하는 현상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신인합일=해혹복본' 일 것입니다. http://cafe.daum.net/mookto
깨어있는푸른역사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첫댓글 삼태극님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하구요. 10월23일 비로자나 불이 있던 법당에서 하시던 그 춤이 그런거였군요. 저도 마지막 엎드려있다가 나왔는데 정말 좋은 기회를 놓쳐서 아쉽네요. 다시한번 기회가 있었음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백산소도에서의 호선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좋은 수련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몸을수련하는것을 원래 쿵후(공부)라고 하지요. 그리고 그 수련법은 수도없이많구요. 태권도나 유도 합기도 등도 모두 끝에 도道라고 붙이쟎아요.
그뿐아니라 바둑도 기도라고 도를 붙이고, 서예나 사군자도 모두 도를통하는길이므로 서도라고부르고 화도라고불렀지요.
운동이나 요가 뿐 아니라, 이 세상에는 도가 아닌 것이 없지요. 차마시는 것도 다도茶道라고 하고,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도 도이고,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도 도이고, 하다못해 마당을 쓰는 것이나 백정이 소를 잡는 것이나, 빨래를 하는 것도 모두가 도이지요. 인간이 하는 일중에서 도가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인간만 그렇겠습니까? 풀벌레와대화를하는것도 소똥르바라보고 냄새를맡는것도 도이고 세상에도가 아닌 것이 없고 스승이나닌 것이없고 내몸이아니닌것이없고 내정신이아닌것이없으니 소통에도 불성이 있고 구르는 돌에도 도가 있다고 한 것 아닐까요?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이세상사람들의숫자만큼만코 각자자시니처한입장
과 능력과 재주에 따라서 방법도 다르고 선택한 길도 다르고 속도도 다를 것이며 그것이 어느 길이든 감히 누가 그것은 길이 아니다라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길은 목적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지리산천왕봉을 올라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헬기를 타고 가는 것이고 다음은 승요차로 산장까지 올라가서 가는 것이고 다음은 등산로를 따라가는것이고 매우 어려운 것은 아무도 간적이 없는 험한길을 개척하면서 가는 것이겠지요. 목적이 정상에서는 것이라면 헬기를타고가는 방법이 가장 옳겠지만 그래도 굳이 새롭고 험한 절벽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지요. 세상에는 법이아닌것이없고 길이아닌것도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