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 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쪽빛 문장>(2004) -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감각적
◆ 특성
① 자연의 섭리(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사랑의 의미(인내, 헌신)를 발견함.
②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방식
③ 음성상징어의 구사,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
④ 직유법, 의인법, 역설법, 설의법 등.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꽃 → '눈꽃'으로, 눈과 나뭇가지의 사랑을 '꽃'으로 표현함.
* 싸그락 싸그락 → 청각적 이미지
* 난분분 난분분 → 어지럽게 눈이 내리는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함.
*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 칠전팔기
* 2연 → 나무에 눈이 내려앉기까지의 모습
*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 → 순간적인 아름다움
* 황홀 → '눈꽃'을 의미함.
* 3연 → 눈꽃이 드디어 피는 상황을 표현함.(고진감래)
* 한번 덴 자리 → 눈꽃이 내리던 자리, 새싹이 터지기 위한 시련
* 아름다운 상처
→ 새싹, 새로운 생명의 탄생, 인내와 헌신 뒤에 오는 고귀한 사랑의 아름다움
눈이 앉았던 자리에 돋아나는 새싹은 새로운 생명이 많은 시련이나 도전 후에
얻어진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
◆ 화자 : 눈꽃이 핀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
◆ 주제 : 첫사랑을 위한 헌신과 그 상처의 아름다움(눈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눈꽃을 만들기 위한 눈의 도전
◆ 2연 : 눈의 구체적인 도전 모습(1연의 구체화)
◆ 3연 : 도전 끝에 이룩한 눈꽃의 아름다움
◆ 4연 : 눈꽃이 있던 자리에 새싹이 터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첫사랑의 아름다운 상처를 겨울철 나뭇가지에 눈꽃이 맺히고 봄이 되면 그 자리에 봄꽃이 환하게 피어나는 과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뭇가지에 맺힌 눈꽃과 그 눈꽃이 사라진 자리에 맺히는 봄꽃이 인과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첫사랑의 고통은 시간이 흐른 뒤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뜻을 함축한다.
이 시는 한겨울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는 풍경을 눈과 나뭇가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다. 눈은 꽅을 피우기 위해 두드려도 보고 춤도 추어 보고 수백 번을 미끄러지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황홀한 꽃을 피운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눈은 날아가 버린다. 황홀하지만 짧은 사랑이다. 그런 사연을 간직한 곳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가 피어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꽃이다.
이 시의 4연에서는 겨울에서 봄으로의 계절 변화가 나타난다. 여기에서의 겨울은 봄꽃이 피어나기 위한 인내, 헌신의 의미를 지닌다. 사랑의 아름다운 결실을 위해서는 인내, 헌신 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작가소개]
고재종 (1959년 5월 30일 ~ )은 대한민국 시인이다.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나 담양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실천문학사의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 밖 집 열 두 식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3년 제11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고, 1995년 시집 《날랜 사랑》을 출간했다.
1999년까지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백련사 동백숲길〉로 2002년 제16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사랑, 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2003년 농림부에서 선정한 ‘농(農)사랑 시(詩)사랑’작품에 뽑혔다.
2009년부터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실천문학의시집 43)》(실천문학사, 1987년)
《새벽 들(창비시선 79)》 (창작과비평사, 1989년)
《쌀밥의 힘(거꾸로읽는책 10)》 (푸른나무, 1991년)
《사람의 등불(실천문학의시집 87)》 (실천문학사, 1992년)
《날랜 사랑(창비시선 134)》 (창작과비평사, 1995년)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 (문학동네, 1996년)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문학동네시집 25)》 (문학동네, 1997년)[1]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시와시학사, 2001년)
《쪽빛 문장》 (문학사상사, 2004년)
《고요를 시청하다》 (문학들,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