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깊고 물 맑은 강원도 영월의 겨울은 겨울 같다. 자연과 시간이 빚은 작품 속에서 올해의 첫 장면을 남겼다.
영월 요선암은 주천강에 흰색 화강암이 너울너울 물결치듯 쏟아진 풍경이 이색적이다. 쥐라기의 화강암에 형성된 지형이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요선암
무릉도원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산이 첩첩이 늘어서고 그 산이 땅에 발 딛는 구불구불한 선을 따라 강이 흐른다. 무엇 하나 제자리 아닌 것이 없다. 무릉리와 도원리가 맞붙은 이곳의 행정구역명은 무릉도원면이다. 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자동차 타고 가는 중에 “아!” 소리를 몇 번이나 냈다.
강으로 내리닫는 절벽과 산세가 시시각각 절경이라서 장소 이름이 수시로 궁금해졌다. 무슨 유원지 같은 흔한 말일지언정 붙여 놨겠지,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냥 주천강이고 강변이라 한다. 다만 무릉도원면일 뿐. 산과 맑은 물만으로도 충분하구나, 풍경에 취한 사이 영월 요선암에 도착했다.
주천강에 흰색 화강암이 와르르 쏟아져 있다. 거대한 바위가 저마다 둥글게 깎여 산봉우리처럼,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요선암은 신비롭다. 첫인상이 신비롭다 해도 사람 마음은 얄팍하여 이내 신비가 걷히게 마련이건만, 멀리서 일별하고 다가가 가까이 바라보고 더욱 밀착해 오래 감상하는 동안에도 감탄사가 떠나질 않는다. 이런 비범한 풍경 앞에서 자연히 옛사람은 신선을 떠올렸겠다.
바위에는 돌개구멍이라 부르는 온갖 형태의 구멍이 움푹하다. 쥐라기, 그러니까 2억 1000만 년 전부터 1억 4000만 년 전 공룡이 살던 시절의 화강암 위로 물이 흐르며 떠밀려 온 돌멩이가 부딪고 또 부딪쳐 항아리 모양 구멍을 냈다고 한다. 아득한 세월이다. 구멍에는 지금도 자갈이 들어가 제 임무를 수행하니 먼 훗날 이 바위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갈 것이다.
요선암 위쪽의 요선정은 숙종, 영조, 정조, 세 임금의 글을 모신 정자다. 곁에는 고려시대의 마애불이 넉넉한 얼굴로 맞아 주고, 강으로 내리닫는 벼랑 끝에는 소나무가 자란다.
넓은 바위를 겅중겅중 다니다 바위 물결의 한 데 자리 잡고 앉는다. 구멍 속 물에 하늘이 비친다. 구름도 떠간다. 고개를 젖혀 수면의 구름과 저 하늘 위 구름을 짝 맞춘다. 신선이 따로 없다. 강물만큼 맑은 시간이 흐른다. 이 풍경을 올해 나의 첫 장면으로 삼는다.
요선암에서 몇 분 걸어 올라가면 요선정이 나온다. 조선의 숙종, 영조, 정조 세 임금이 보낸 글을 모신 정자다. 숙종이 주천 일대 경치를 읊었고, 아들인 영조가 아버지를 애달프게 기억하면서 다시 썼으며, 이를 정조가 기념해 지은 문장까지 모았다. 옆의 커다란 바위에서 튀어나올 듯한 마애불도 인상적이다.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하는 마애불은 생김이 넉넉해, 보는 이의 마음마저 포근해진다.
벼랑 끝 바위에 아슬아슬 매달려 자라는 소나무는 존재만으로도 가르침을 전한다. 살아 있는 한 살아 있으라. 일생이 벼랑 위일 터이나 그럼에도 옆의 마애불이, 임금이 하사한 문장이, 귀 떨어진 석탑이 이웃이 되고 사방은 절경인 데다 주천강 물소리는 음악 같다. 무릉도원의 시간이 지나간다.
판운 섶다리는 평창강을 두고 마주한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 사람이 모여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 설치하고 이듬해 봄에 거둬들인다. 이 계절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람의 온기를 딛고, 판운리 섶다리
설구산, 쌍수산, 복화산, 쉰바우산, 대덕산, 다래산, 배거리산이 연달아 곱게 감싸고 강이 굽이굽이 안내하는 길을 지나 주천면 판운리에 이른다. 영월의 또 다른 강 평창강 물길을 정성스러운 다리가 가로지르니, 바로 섶다리다. 물 많은 땅이라 과거엔 흔했을 다리가 지금은 현대식 다리에 밀려 드물어지고 그만큼 특별해졌다. 자연에서 재료를 가져와 사람 손으로 만든 다리는 이 계절만의 풍경이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강물이 줄어들 무렵, 평창강을 두고 마주한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 사람이 모여 다리를 놓았다. 끝이 Y 자로 갈래 난 튼튼한 나무를 기둥으로 박고는 통나무를 얹어 뼈대를 삼고 나뭇가지, 곧 섶을 촘촘히 쌓는다. 마지막으로 섶 위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완성. 땔나무를 일컫는 순우리말 섶이 그대로 다리 이름이 되었다.
한겨울에 강물이 얼어도 다리가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었다. 다음 해 봄이 와서 날이 풀리고 비가 내려 다시 나룻배를 탈 수 있을 때쯤 다리를 거두어들였는데, 시기를 놓치면 장맛비에 떠내려가기도 했다 한다. 웬만한 일은 기계로 처리하는 세상에 이 소박한 다리는 어느 화려하고 긴 다리보다 오래가는 감동을 준다.
판운 섶다리는 나무와 흙을 이용해 놓는 다리로, ‘섶’은 땔나무를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보보스캇펜션캠핑장에서는 섶다리와 평창강 일대 자연을 즐기며 숙박할 수 있다.
마침내 다리에 올라선다. 폭신한 흙 느낌이 반긴다. 한 발 한 발 정성을 디디며 걷는다. 옆으로는 섶이 비죽비죽 튀어나왔고, 여행자의 입가에는 웃음이 비죽비죽 새어 나온다. 주변은 온통 산과 물과 나무. 강물은 영월의 정경을 수면에 띄운 채 잔잔히 흐른다. 중간에 멈추어 호흡을 고른다.
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강은 자기 밑바닥까지 정직하게 다 내보이고 물은 제 길을 간다. 소중한 다리를 몇 번이나 왕복하고, 느릅나무 늠름하게 자란 강가에서는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물수제비도 떠 본다. 마음이 평화롭고 씩씩해진다. 나와 또 다른 나, 언제나 강 건너편에 서서 서성이는 나와 이편의 내가 만나는 기분이다.
보보스캇펜션캠핑장에서는 이 풍경을 껴안고 숙박할 수 있다. 수목원을 꿈꾼 아버지가 심은 메타세쿼이아를 아들이 이어받아 돌보고 한쪽에 널찍한 온실도 꾸몄다. 자연에 폭 파묻혀 교감하고 싶어 캠핑을 떠나는 이가 꼭 기억해야 할 장소다. 메타세쿼이아 늘어선 숲길이, 사위가 그림 같고 여행자는 그 안에 녹아든다. 낮에도 좋지만 밤에는 더욱 아름다워질 그림이다.
평창강이 휘돌아가며 형성된 한반도지형은 위쪽에서 달음질해 뻗은 산세가 백두대간을, 동쪽의 벼랑이 동해안을, 서쪽의 모래사장이 서해안을 꼭 닮았다.
함께 살아간다, 한반도지형
다시 산을 끼고 달려 한반도지형으로 향한다. 평창강 푸른 물줄기가 크게 휘감아 돌면서 영락없는 한반도 형상을 만든 곳이다. 산과 물에 시간과 자유가 주어질 때 어디까지 해내는지 영월의 자연은 웅변한다. 사람은 잠시 그 경이를 맛보고, 이후 삶에서 필요한 위안을 얻고 겸허함을 배울 뿐이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을 한반도지형이 세상에 드러난 때는 1999년이다. 한 주민이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발견해 영월 출신 사진가와 함께 놀라운 모습을 알렸다. 위쪽에서 달음질하듯 뻗어 내린 산세가 백두대간을, 동쪽의 바위벼랑은 동해안을, 서쪽의 너른 모래사장은 갯벌이 펼쳐진 서해안을 꼭 닮았다. 잘못 손대서는 영원히 훼손될 자연의 소중함을 기억하라는 것 같아, 영월은 도로 건설 계획 등을 되돌리고 한반도를 한반도로 두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전국에 명성이 자자해지자 2009년 이곳 행정구역명을 한반도면으로 고쳤다. 독특하고 빼어난 풍경 덕분에 2011년에는 국가 명승에 지정되고, 2015년에는 일대가 생태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도 인증받았다. 잘 정비한 덱 길을 걸어 전망대에서 한반도를 한눈에 담는다. 저기쯤이 오늘 아침 일찍 떠나온 서울, 어디는 내 고향, 저만치가 지금 선 영월이겠다. 한반도를, 한반도지형을 수많은 생명이 터전 삼고 그 안에서 나도 살아간다. 우리가 공존한다.
한반도 산하를 지나온 바람이 몸을 스친다. 차가운가. 강원도 영월, 산 깊고 물 맑은 고장의 겨울은 겨울 같다. 차갑기만 한가. 아니, 아니다. 신비로운 요선암, 마애불과 임금님 시와 절벽의 소나무가 이웃한 요선정, 사람이 손길이 느껴지는 섶다리, 자연의 작품에 생명이 몸을 의탁한 한반도지형은 한없이 추운 날에도 그만큼 따스하다. 무릉도원의 겨울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