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토해내라! 지혜의 나무에서 따먹은 과일을 토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명상’의 의미이다. 자신의 시스템으로부터 그것을 밖으로 내던져라. 그것은 독에 불과하다. 아무런 지식 없이 살아가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걸 알라. 이러한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대는 ‘아름다움’이 뭔지 알게 되리라.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이 뭔지 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지식’이 있고, 아는 ‘무지’가 있다. 소크라테스처럼 무지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그대의 존재에 완전히 다른 특질이 생겨난다. 그대는 다시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된다. 그대의 눈망울은 다시 궁금증으로 가득 차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날아가는 새를 보며 그대는 전율을 느낀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마치 자기 자신이 날아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연잎에서 아침이슬이 떨어지는 것, 아침 햇살이 그 위에 영롱하게 빛나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순간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감동을 준다. 연잎에서 아침이슬이 호수로 떨어지며 드넓은 바다와 만나려는 찰나, 그대는 자신이 마치 그 이슬방울처럼 이파리에서 떨어져 신성의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함의 순간, 관찰자와 그 관찰의 대상 사이의 거리는 사라지고 만다. 그대는 더 이상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대는 더 이상 자신이 듣고 있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 오쇼의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
첫댓글 오쇼가 말하는 '몰아일체"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말하는 것으로 "일체 대상과 그것을 마주한 주체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없는 것"이 사전적 의미입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과 듣는 것과 일체 분리되지 않고 또한 차별도 되지 않는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명상의 목적은 구별을 두지 않는 있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인 것이라고 볼때 매일 매일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는 생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러니 일상생활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는 타의적인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지 자의적으로 하기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국 생활전선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나이로 자의적으로 물아일체가 가능한 여유시간이 있지 않으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