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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씨, 여기요!"
"아, 김기자님."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다가간 지하는 이제야 자신의 모자를 은달의 차에 놓고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젠장··· 그 새끼, 내 모자 먹은거야? 지하의 미간이 금새 찌푸려졌다.
김기자는 지하를 배려해 일부러 구석진 곳에 앉은 듯 했다. 김기자의 맞은 편에 앉은
지하가 목도리를 푸르며 말했다.
"확실해졌어요?"
"지하씨, 그게···"
"··말해요.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
"···맞아요."
"하, 개새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목소리도 적지 않게 컸다. 벽을 보고
앉은 터라, 사람들은 그녀의 뒷 모습밖에 보지 못했지만 지하를 보며 몇 사람이 수근거렸다.
뒷 모습도 튀는 여자, 반지하였다. 김기자가 앉으라는 눈빛을 보내자, 지하는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요 근래 몇 번밖에 안 만났지만, 그래도 지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였다.
김기자는 지하를 만나면 항상 진땀을 쏙 빼고 집으로 향하기 일쑤였다.
"사진··찍었어요?"
"네. 근데 저기······"
"걱정마요. 이 기사는 김기자한테만 줄거니까. 특종으로 내요."
김기자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김기자의 가방에서 사진이 담긴 봉투가 꺼내어졌다.
척 보기에도 두툼했고, 여러장이 있는 듯 했다. 김기자에게서 사진이 담긴 봉투를 건내받은
지하는 조심스레 사진을 꺼냈다. 천천히 시선을 내린 지하의 눈에 보인 것은 ···그의 남편인
은석과 여자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호텔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였다. 사진을 넘기면 넘길
수록 지하의 눈은 점점 커져갔다. 여자의 집 앞에서 포옹하고 있는 장면, 차 안에서 키스하고
있는 장면까지······ 많은 사진들 모두 지하의 남편과 여자가 함께 있는 사진이였다. Shit-!!
지하의 표정이 굳는걸 보자, 김기자의 표정도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저 여자가 또 어떻게
변할까? 무섭다···.
"이게 다에요?"
"더 있는데··· 드릴까요?"
"아뇨, 됐어요. 호텔엔 언제 가나요?"
"매주 월요일, 금요일 8시에요."
"데이트는요?"
"주말마다 하는거 같았어요. 낚시터, 바다, 스키장 등등."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월요일이요!"
지하의 말에 대답한 것이 뿌듯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은 김기자의 눈이 지하와 마주쳤다.
순식간에 웃음을 거둔 김기자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요?"
"호텔이 어디있는거라구요?"
"논현동에 있는···"
"아, 그 호텔···! ···개새끼. 내가 번 돈으로 맨날 비싼 호텔 간거야?"
"네?"
"아, 아니에요."
지하가 혼자 중얼거린 말에 놀란 김기자가 지하를 쳐다봤다. 세삼스레 느낀거지만,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예쁘다···. 김기자의 얼굴이 점점 울상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도중, 지하가 묻자 김기자는 주인을 잘 따르는 충견처럼 바로바로 대답을 했다.
"매일 같은 방에서 묵어요?"
"네! 맨날 같이 자··던데요?"
"후·· 김기자님, 그건 나도 알아요."
"아! 그 같은 방?"
"네. 그 같은 방이요."
어리버리한 김기자를 보고, 지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김기자는 그 동안 조사한
내용을 적은 수첩을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찾았는지, 환하게 웃었다. 저 어리버리한
솜씨로 어떻게 조사했대? ··참 나.
"맞아요. 프론트에 있는 직원이 그 둘을 보면 아무말도 없이 키를 내줘요."
"몇 호인지도·· 알고 있나요?"
"402호요."
"고마워요."
목도리를 팔에 걸치고 일어난 지하때문에 김기자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기사 써도 된다고 허락해줘야 하는데···. 빨리 말해라, 말해라!! 그 순간 나가려던
지하의 몸이 다시 김기자 쪽으로 틀어졌다.
"아! 기사는 내일 모레쯤 나가게 해도 좋아요."
"저, 정말요?"
"물론이죠. 원한다면·· 인터뷰도 해드릴게요."
"유일하게··· 저한테만요?"
"네."
"세상에서 저 한 명한테만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묻는 김기자가 귀찮았는지, 목에 목도리를 둘둘
감으며 지하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기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인터뷰는 언제하실 수 있으세요?"
"내일 집으로 오세요."
"와!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내일 뵙죠.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지하의 눈이 반짝였다. 오은석·· 니가 바람을 피워? 감히 날 놔두고?
···어림도 없지. 제대로 한 번 당해봐라! 내가 번 돈 펑펑 썼지? 그 두 배로 갚게 해줄거야.
* *
"그 D-day가 오늘이야?"
"응. 같이 갈거지?"
"그렇게 재미있는 구경을 꽁짜로 시켜준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이민정. 나 심각해."
"나도 심각해. 친구가 이혼하게 생겼는데 안 심각하겠어?"
"휴··· 말을 말아야지."
장난스레 웃어대는 민정을 보고 지하는 속이 터질 지경이였다. 저 기지배 친구 맞아?
그냥 싸움구경온거 아니야? ··리은이 스케줄만 없었어도 너 대신 리은이 불렀을거다.
속으로 민정을 열심히 욕하면서 옷을 다 벗은 그녀에게 불쑥 민정이 물어왔다.
"쿡. 근데 이혼하면 다시 연예계로 복귀할거야?"
"봐서. 먹고 살기 힘들면 다시 연기해야지."
"젊었을 때 패기는 어디가고?"
"아직 스물 셋이거든?"
"너 열아홉에 막 데뷔했을 땐 뽀송뽀송한 얼굴로··!"
"············"
"평생 연기자로 살겠습니다! 이랬었는데··· 이젠 생계수단일 뿐이라니."
"시끄러워."
옷을 다 입었는지 거울앞에 서서 매무새를 다듬는 지하를 보면서 여전히 웃어대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리는 민정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지하였다.
저 기지배를 그냥, 확! 열이 받아있는 상황인지라, 원래 모든 일에 술렁술렁 넘어가면서
눈치 없이 즐겁게 사는 민정이라도 오늘 만큼은 참을 수가 업었다. 일부러 더 화가 나게
하려는 듯 얄미운 말만 쏙쏙 골라서 하는 민정이 너무너무 얄미웠다.
"그만해라?
"준비 다 했지? 가자! 근데 어디 호텔이라구?"
"A호텔."
"아~ 거기? 꼴에 좋은데로 다니네?"
"응···. 아, 니 차 타고 갈거야?"
"아니, 택시. 오늘 왠지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웬 술?"
"바람피는 현장 눈으로 목격할 내 친구 반지하를 위로해줘야지. 안 그래?"
저 웬수! ···어떻게 남의 속을 저렇게도 잘 알고 있는지, 정말. 얄미워 죽겠어, 정말!!
오늘 은석과 그 여자와의 만남 현장을 눈으로 확인한 후에 맨 정신으로 있긴 힘들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민정을 데리고 술이나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하의 머리를 파헤쳐
보기라도 한 듯 민정은 당연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민정과 함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선 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민정이 차 갖고
가서 밤에 대리나 부를 걸···. 후회막심한 지하와 달리, 민정은 열심히 택시를 잡고 있었다.
오늘따라 더 띄운 머리에 짧은 스커트·· 단연 튈 수 밖에 없는 외모를 가진 민정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택시!"
"어? 이민정이다!"
"에이~ 아닌거 같은데?"
"맞아, 이민정! 꺄아!! ··근데 저 사람은 누구야?"
택시를 잡는 민정을 보고 수근대던 사람들의 시선이 지하에게로 옮겨졌다. 은석과 바람
피는 여자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화장도 하고 예쁘게 하고 나오느라 모자는 차마 쓸
수가 없었던 지하는 선그라스를 끼긴 했지만, 이 어두운 저녁에 선그라스를 낀 사람은 단연
튈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 몇 명이 머뭇머뭇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하와 민정에게
다가왔다. 민정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모자와 선그라스 등은 커녕, 더 섹시
하게 보이는 튀는 옷과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만약에··· 저 사람들이 날 알아보면·· 다 이민정 너
때문이야!! 지하는 마음속으로 원망하며 민정에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민정언니! 싸인 좀 해주세요!"
"누나!!! 사진찍어요! ···어? 바, 반지하?"
"꺄아! 반지하다!!"
드.디.어. 사람들이 지하를 발견했다. 지하는 한 남자의 말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지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피할 자신도 없었지만, 이 자리에
이렇게 서서 다 뜯기는 것도 싫었다. 아씨, 어쩌지? 뛸까? 반지하 아니라고 우길까? 우기면
믿어줄까? 안 믿을텐데··· 어쩌지? 짧은 시간에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사람들과
맞닫기 일초전······. 지하의 몸이 누군가에게 휙-하고 끌려 갔다.
"미안! 우리가 너무 바빠서. 싸인은 나중에 해줄게!"
"꺄아아!"
택시를 잡은 민정이 지하를 끌고 빠르게 택시에 올라탔다. 겨우 안심을 한 지하가 선그라스를
거칠게 벗었다. 택시기사에게 A호텔이라고 말한 민정이 지하를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밤에 선그라스를 끼니까 더 튀지, 바보야!"
"사람들이 너부터 알아봤거든?"
"그리고·· 사람들이 달려들면 피해야지, 그렇게 서있으면 어떡해?"
"다리가 안 움직이는걸 어떡하라고! ··Shit."
조용히 욕을 하는 지하를 보며 민정은 깔깔대며 웃었다. 어느새 택시는 호텔앞에 도착했고,
민정은 돈과 함께 기사아저씨가 요구한 싸인 한 장을 주고 내렸다.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들에게로 모아졌다. 둘 다 커다란 키에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포스.
그리고 카리스마와 부티·····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운 지하는 얼굴에 반을 가린 듯한 선그라스
속에서 인상을 가득 쓰고 있었고, 민정은 그런 시선이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엘레베이터에 발을 내딛었다.
카운터에 있는 직원들은 호텔 맨 윗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들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싸인을 받지 못한 것을 후회를 하며, 그저 멍하니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였다. 엘레베이터에 올라 탄 민정은 4층과 꼭대기 층을 두 개
눌렀다.
"왜 두 개 눌러?"
"스카이라운지 가는 척."
"아아···"
"지금이 몇 시지?"
"··아홉시."
"오케이, 이 시간쯤이면 한창 즐기고 있을 때야."
불륜의 남편을 많이 쫒아 다녀 본 사람처럼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지하는 그런 민정이
신기한지 그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4층에서 엘레베이터가 멈추고 둘은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또각거리는 두 개의 구두소리가 402호로 향했다. 그 앞에 멈춘 지하가 오른손을 들어올려
왼쪽 가슴에 댔다. 쿵쿵쿵. 긴장했는지 심장 뛰는 것이 빨라졌다. 괜히 긴장하고 그래, 반지하···
떨지마. 이것도 일종의 연기일 뿐이야. 선그라스를 머리위에다 머리띠 처럼 올려 쓴 그녀가 심호흡을
하는 순간, 민정이 상의도 없이 방 문을 두드려버렸다.
"야, 말도 안하고 두드리면 어떡해!"
"쉿. 나온다."
당황한 지하가 조용조용히 말하자, 민정은 태연하게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려 입술에 붙이며
조용히하라고 명했다. 지하는 여전히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싶고, 풀린 다리때문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하나도 떨지 않는 그런 모습이였다. 연기자다운
표정관리였다. 그 순간 누군가가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점점 떨고 있는 그녀에게
가까워져 갔고, 목소리도 가까워졌다.
"젠장. 대체 누구야?"
"자기, 룸서비스 시켰어?"
"아니! 자기, 잠깐만 기다려봐······"
지하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탓일까··· 그는 누군지 물어 볼 생가고 하지 않은채 샤워
가운을 걸치고 나와 문을 열었다. 나오자 마자 민정의 씨익 웃는 얼굴과 마주친 그는 '뭐야?'
하면서 문을 닫으려 했지만, 민정의 손은 문을 잡고 있었다.
"뭐야?"
턱을 들어올려 지하를 가리킨 민정때문에 은석의 시선이 지하쪽으로 향했다. 지하는 굳은
표정으로 은석과 민정이 마주보고 있는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은석의 표정도 굳어져버렸다.
당황한 모습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무언가 변명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 표정이였다. 은석은
그제야 민정이 누군지 떠올랐다. 아내의 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는 것을 왜 기억해내지 못했는지,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였다. 표정 변화없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지하의 모습을 보고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도무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그저
그녀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지,지하야···"
하고 불러볼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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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이 있어서 그런지.. 울 님들의 꼬릿말을 보자마자,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바로 올립니다^^;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알라뷰~
음.... 오우, .... 지하가 맞았네; 난 첫편에서 지하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여튼 지하 남편.... -_- 넌 좀 맞아야 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