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습니다. 오래된 친구 놈입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연락합니다. 별일이 없어도 그냥 통화는 합니다. 전화기에 대고 서로 아무 말 안 하다가 '어 끊어졌네?' 하고 전화를 끊기도 합니다.
친구 놈이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장례식 있다. 참석해라." 처음에는 부인이 죽었구나 했습니다. 얼마 전에 후배 부인이 죽기도 했고요. 허나 친구 놈은 싱글입니다. 이제까지 뿌린 돈이 아까워서라도 소리 소문 없이 결혼할 놈이 아닙니다. 이 녀석의 소원 중 하나가 어느 날 뜬금없이 "아빠" 하고 부르는 인간들이 한 트럭쯤 나타나는 겁니다. 이제 늙음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는 나이고,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자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답니다. 그럼 뭐합니까? 내가 알기론 뿌린 씨앗도 없는 녀석인데...
그럼 누구의 장례식이지? 친구의 부모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는 꽤 됐습니다. 형제라고 해봤자 일본에 사는 누님이 한 분 있을 뿐입니다. 누님이 죽어 한국으로 왔구나 싶더군요.
"누님이 돌아가신 거야?" "내 누님이 왜? 죽었다고 너한테 연락 왔더냐?" "헛소리... 대체 누가 죽은 건데?" "사실은...자식 놈이 죽었다." "너한테 무슨 자식이 있어? 뻥 치지 마, 인마." "있어, 인마. 이 자식 친구 말을 못 믿네." "너야말로 할 짓이 없어 친구 놈한테 뻥이냐?" "그게 아니라...돌돌이가 어제 죽었다. 병원에서..." 돌돌이가 누구지, 하는데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가 있더군요. "아, 니가 키우던 개!" 시츄라고 했던가? "기억해주니 고맙다. 다른 연놈은 기억조차 못하던데."
녀석이 개를 키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애견 카페에 가입하기 위한 음흉한 목적으로 개를 키웠습니다. 애견보다는 늘 편한 복장의 여주인에게 침을 흘리던 놈이죠.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게 참 묘한 모양입니다. 가짜로 시작했는데 진짜로 좋아지고 만 겁니다. 십 년 넘게 백수로 산 놈이 그나마 막일이라도 하는 이유는 순전히 개를 부양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거죠. 자기 딴엔 돌돌이가 자식이나 같았나 봅니다.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곤 장례식에 참석하랍니다. 사람도 아닌 개 장례식이라니. 아무리 반려동물이라고 해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안 갈란다. 사람 장례식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빠진 적이 있는데...아무래도 힘들겠다."
친구 놈은 내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필기도구 옆에 있냐?" 마침 메모지와 샤프가 옆에 있습니다. "응. 왜?" "적어라." 친구 놈의 입에서는 계좌번호가 술술 흘러나옵니다. 기본이 5만원이랍니다. 치사하게 3만원으로 때우려고 하지 말랍니다. 사람도 아닌 개인데, 3만원으로 합의보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합니다. "나도 웬만하면 이러지 않아. 화장하고 유분 처리 비용이 무려 칠십이야." 너, 3만원 보내면 친구고 뭐고 없다. 알아서 해, 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오늘 녀석이 불러준 계좌번호로 입금했습니다. 녀석의 통장에는 "근조 돌돌이"로 찍혔습니다. 살다가 이런 경우도 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친구 놈한테 보이스피싱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인간차별 같은디... 이번에 돌아가신 정태원 선배보다 더 많이 한 거 아냐? 그런 말이 있긴해도... 정승 집 개가 죽었을 때가... 뭐 그런 속담... 농담이고, 저는 어려서부터 키우던 소 생각이 나네요. 개는 먹어도 한우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추억이 꽤 많은... 언제 한 번 글로 써 봐야지...
첫댓글 나랑 "신종 보이스피싱 사업"할 사람 어디 없습니까? 사업 잘되면 그 돈으로 영화나 드라마 한편 찍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인간차별 같은디... 이번에 돌아가신 정태원 선배보다 더 많이 한 거 아냐?
그런 말이 있긴해도... 정승 집 개가 죽었을 때가... 뭐 그런 속담...
농담이고, 저는 어려서부터 키우던 소 생각이 나네요. 개는 먹어도 한우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추억이 꽤 많은... 언제 한 번 글로 써 봐야지...
생각해보니...액수과 같네...사람과 개의 차이도 없고...이제 사람이나 개나 거기서 거긴 세상이 된 건가 싶기도 하고.....한우를 먹기 좀 그러면 젖소를 먹던지...그놈은 한우 아니잖어?? 언제 젖소에 소주 한잔 하자...
어제 <놀러와>에서도 애견인 특집을 하던데... 한쪽에선 버려지고 학대당하는 놈들과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워지는 견공들의 견생을 보면서, 애고, 인생이나 견생이나 차별은 마찬가지구나....하는 생각이...문득...
개팔자나 사람팔자나...정말로 다른 게 없어...개든 사람이든 그야말로 팔자 문제여...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