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04)
강 교수는 일부러 부인 앞에서 영어나 독일어로 된 원서를 읽었다. 성경도 한글 성경은 시시하다고 보지 않고, 독일어로 된 성경이나 라틴어로 된 성경원본을 놓고 앉아서 독일어로 기도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꼭 방언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 교수 독일어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독일 사람을 만나도 인사말만 독일어로 몇 마디 하고, 나머지는 영어로 하거나 한국말로 했다. 사실 독일어로 기도하는 것도 부인이 옆에 있을 때만 몇 마디 하다가, 부인이 부엌으로 과일을 가지러 가면 곧 멈추고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강 교수는 부인 앞에서는 음악도 클래식을 들었다. 아니면 오래 된 옛날 팝송을 들었다. 그 나이에 다른 사람들이 즐겨듣는 배호 노래나, 남진 노래는 수준이 낮아서 못듣는다면서 그런 트롯트 음악이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고, 곧 배가 기울어 물에 빠져 죽을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그런데 강 교수 부인은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하고서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까지는 강철민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강 교수 18번은, ‘쨍하고 해뜰 날’이었는데, 그 노래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2절까지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반주가 없어도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강 교수는 언젠가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18번에 대해 설명하기를,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늘 음지에서만 살았는데, 그 노래를 18번으로 정하고 꾸준히 불렀더니, 108번째 그 노래를 부른 그 다음 날, 부잣집 외동딸을 만나서 팔자를 고쳤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도 좋아했는데, 강철민은 ‘처갓집 재산은 우리 것’이라는 식으로 가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늘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사람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좋은 노래, 밝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리고 젊었을 때 일찍 죽은 가수의 노래는 절대로 불러서는 안 된다. 어두운 노래, 부정적인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운명이 비뚤어진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철민은 절대로 일찍 세상을 떠난 배호나 남정희 같은 가수들의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대신 80세 넘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원로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따라했다.
한번은 강 교수 친구가 영국의 그룹, 런던 보이스의 음반을 선물로 주었는데, 강 교수는 런던 보이스 그룹 멤버 두 사람이 교통사고로 같은 날 요절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그 음반을 아예 소각해버렸다. 강 교수는 그리고 사랑이 파탄나는 노래도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주로 행복한 사랑, 복을 가져오는 찬송가만을 좋아했다. 때문에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윤덕심이 부른 ‘사의 찬미’와 같이 죽을 사자가 들어간 노래는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