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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해설
계절 | 절기 | 내 용 |
봄 | 입춘 | 24절기 중의 첫 번째 절기.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인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며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아직 추위가 강하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 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춘첩자]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입춘굿]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아홉 차리] 지방에 따라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베푸는 `아홉 차리'라는 민속이 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게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이날은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을 줄 알았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면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 꾸리를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더라도 아홉 번을 맞았다. 굳이 아홉 번이라 함은 많이 했다는 의미이며 우리 조상들의 숫자 개념상 최고의 陽數(양수)이기 때문이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또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 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입춘방] 입춘날 입춘시가 들 때 대문, 중문, 곳간문, 방문이나 대들보에 써붙이는 글귀로 대구(對句)와 단구(短句)가 있다.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立春榜)'이란 속담이 있다. 잠결에 기지개를 켤 양이면 발은 마당 밖으로 나가고 두 주먹은 벽 밖으로 나가며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동네사람들이 걸리적거린다고 궁둥이 불러 들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아 대성통곡하는 그런 집이다. 그러한 집 기둥에 입춘(立春)을 맞아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격에 맞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입춘수]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이 입춘수(立春水)다.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알았다. 아울러 가을 풀섶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이 추로수(秋露水)다.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병을 예방한다고 알았다. [선농제] 서울 동대문 밖에 제기동(祭基洞)-전농동(典農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구내)에서 베풀어졌던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비롯된 이름들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어왔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 도합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던 것이다. [오신채(五辛菜)] 입춘(立春)날 먹는 시식(時食)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었다. 다섯 가지 매캐한 모듬나물이다.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오신채의 나물 종류는 달라지고 있으나 다음 여덟 가지 나물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쳤다.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 부추,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이 그것이다. 노란 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 나는 나물을 배치해 내는데 여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부여돼 있었던 것이다. 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받아 중신에게 나누어 먹인 뜻이 이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그로써 가족의 화목을 상징적으로 보장하고 인, 예, 신, 의, 지를 그로써 증진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그 아니 철학적인가. 이 세상 어느 나라 어떤 식품에 이만한 철학을 깐 식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른다 한다. 다섯 가지 맵고 쓰고 쏘는 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그 인생 오고(人生五苦)를 참으라는 처세의 신채 교훈도 담겨져 있다. 옛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고통에 저항력을 길러주는 역시 정신적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오신채는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인 데 예외가 없다.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절간의 수도승은 오훈을 금한다 했는데 바로 오훈이 정욕을 자극하는 오신채이기 때문이다. 옛 한시(漢詩)에 여인이 젊고 예쁘고 신선하다는 것을 표현할 때 신채기(辛菜氣)란 말을 쓰고 있음이며, 여인의 정욕을 마늘 기운 - 곧 산기(蒜氣)라 표현했음도 이 신채가 정력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입춘날에 톡 쏘는 매캐한 신채만을 골라 먹었던 오신채 시식은 한 해를 새 출발하는 청량제요, 자극제로서 십상이 아닐 수 없다. 오색을 갖추었으니 미학적이요, 정신이 담겼으니 철학적인데다가 과학적이기도 한 입춘날의 오신채다. |
우수 | 24절기의 두 번째 절기. 입춘 후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이 된다. 태양이 황경 330°에 올 때, 우수입기일(雨水入氣日)이 되는데, 음력 정월의 중기이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다. 흔히 양력 3월에 꽃샘추위라 하여 매서운 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이맘때면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튼다. 예로부터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라는 말이 있다. 태양의 황경이 330°에 올 때 우수 입기일(入氣日)이 되는데, 음력으로는 정월 중기이다. 옛날 중국사람들은 우수입기일 이후 15일 동안의 기간을 삼후(三候)로 5일간씩 세분하여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첫 5일간은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다. 한편, 우수 무렵이 되면 수달은 그동안 얼었던 강이 풀림과 동시에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마지막 5일간 즉 말후(末候)에는 풀과 나무가 싹이 튼다. | |
경칩 | 24절기의 세 번째 절기.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도에 해당될 때이며 우수(雨水)와 춘분 사이에 있다.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음력으로는 2월중에,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이 된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 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속이 전해 오고 있다.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건져먹기도 한다. 토역(土役,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이날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는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연인의 날]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는 노래가 있다. 봄이 오는 시점은 가히 청춘 연인들의 계절이다. 이는 동서고금이 다 그러하다. 고대 로마에는 2월 보름께 `루페르카리아'라는 축제날이 있었는데, 젊은 아가씨의 이름을 적은 종이 쪽지를 상자에 넣고 동수(同數)의 젊은 총각으로 하여금 뽑게 하여 짝지어 주는 신나는 사랑의 날이었다. 지금의 발렌타인 데이(2월 14일)도 봄이 오는 길목에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은밀히나마 연인의 날이 있었다. 벌레들이 겨울 잠에서 놀라 깨어난다는 바로 경칩(驚蟄) 날이었다. 신토불이 발렌타인 데이인 셈이다. [은행씨앗 선물] 이날 우리 선조의 남녀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었다한다. 은행나무는 수 나무와 암 나무가 따로 있는데 서로 맞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이 오고가서 열매를 맺기에 순결한 사랑을 유감(類感)한 것이며, 또한 비록 맛이 쓰고 껍질이 단단하여도 심어 그 싹을 틔우면 천년을 살아가는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 까닭일 것이다. [사랑의 나무] 우리 옛 문헌 `사시찬요'에 보면 은행 껍데기에 세모난 것이 수 은행이요, 두모난 것이 암 은행이라 했는데, 대보름날 은행을 구해 두었다가 경칩날 지아비가 세모 은행을, 지어미가 두모 은행을 맞바라보고서 생긋 웃으며 먹는 품은 낭만적이 아닐 수 없었겠다. 처녀 총각들은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그저 동구 밖에 있는 수 나무 암 나무를 도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고 또 정을 다지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에만 자라는 동방(東方)의 나무다. 두 갈래진 은행 나뭇잎을 처음 본 독일의 문호(文豪) 괴테는 `잎은 하나이면서 둘인가 / 둘이면서 하나인가 / 아! 사랑은 저러해야 하는 것을...'하고 읊었음도 사랑나무로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사랑을 동물성에서 식물성으로, 구상(具象)에서 추상(抽象)을 승화시켰던 우리 선조들 정말 멋있었다. | |
춘분 | 24절기의 네번째 절기.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이 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경칩과 청명의 보름 중간이 바로 춘분이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한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며칠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쁘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음력 2월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옛날 중국에서는 춘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우뢰소리가 들려오며, 말후(末候)에는 그 해에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고 하였다. [피안(彼岸)의 시기]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본다. | |
청명 |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 음력 3월 절기이며, 양력 4월 5, 6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다. 이날에 식목일 겹치는 것이 보통인데,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일년 중 식목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에 식목일을 청명과 같은 날로 잡은 듯하다. 옛 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작업이 된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 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 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寒食(한식)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동심일체를 다지고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던 것이다. <열양세시기>에서는 이와같이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에 기록하고 있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불은 한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한식조에 기록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최남선(崔南善)은 한식의 풍속을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여,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으나,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이므로 농사관계사항을 기록하는 것이 옳다.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한다. 이날 보통 성묘(省墓)를 간다. 우리 조상들만큼 성묘를 자주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일년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청명(淸明), 여름에는 중원(中元, 음7월 15일), 가을에는 추석(秋夕), 겨울에는 동지(冬至)날, 눈길을 밟으며 찾아 뵙고 산소위의 눈을 쓸어 내렸다. | |
곡우 | 24절기의 여섯 번째 절기. 봄의 마지막 절기로, 음력으로는 삼월중(三月中)이며, 양력으로 4월 20, 21일, 태양의 황경(黃經)이 30도일 때이다. 청명과 입하(立夏) 사이에 들며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하여 붙여진 말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담갔는데, 이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는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속신이 있다. [곡우물]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곡우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다. 곡우물을 먹기 위해서는 곡우 전에 미리 상처낸 나무에 통을 달아두고 여러날 동안 수액을 받는다. 강진이나 해남 등지에서는 곡우물을 먹으러 대흥사(大興寺)로 가고, 고흥 등지에서는 금산으로, 성주 등지에서는 가야산으로 가서 먹는다. 경칩 무렵에 나오는 고로쇠물은 여자물이라 하여 남자들에게 더 좋고, 거자수는 남자물이라 하여 여자들에게 더 애용되고 있다.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며 그곳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 특히, 신병이 있는 사람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그 물을 마시는데, 그것은 외지 사람들에게 더 약이 된다고 한다. [곡우살이] 황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곡우 때면 북상해서 충청도 격렬비열도 쯤에 올라와 있고 이때 잡는 조기를 곡우살이라 부른다. 곡우살이는 아직 크지는 않았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남해의 어선까지 출어해 잡아 올린다. [우전차(雨前茶)] 곡우전후에 따는 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차 또는 세작(細雀)이라 부르는데 최상품으로 친다. 우전차는 찻물의 온도를 5, 60도쯤으로 하여 우린다. 참고로 곡우를 지나 입하 경에 따는 차를 중작(中雀)이라 하며 물의 온도를 6, 70도 사이에 맞추면 좋다. | |
여름 | 입하 | 24절기의 일곱 번째 절기. 음력으로는 4월절(四月節), 양력 5월 5~6일경으로,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45도 때. '여름에 든다.'는 뜻으로 초여름의 날씨를 보인다. 여름은 立夏(입하)에서부터 시작하여 立秋(입추)전까지이다. 옛사람들은 입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중후(中候)에는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말후(末候)에는 왕과(王瓜: 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이맘때면 곡우에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삿일이 좀더 분망해진다.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리는 입하는 신록을 재촉하는 절기이다.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아울러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들을 없애는 작업도 많다. 송파지역에서는 세시행사의 하나로 입하 무렵 쑥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마련하기도 한다. 곡우전후에 채다한 세작을 茶(차)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나, 한국의 茶聖(다성),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
소만 | 24절기의 여덟 번째 절기.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며, 음력 4월, 양력 5월 21일께가 된다. 태양이 황경 60도의 위치에 올 때이다.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 소만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이른 모내기, 가을보리 먼저 베기 작업들에, 여러가지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잇게 된다. 모판을 만들면 모내기까지 모의 성장기간이 옛날에는 45∼50일이 걸렸으나, 지금의 비닐모판에서는 40일 이내에 충분히 자라기 때문에 소만에 모내기가 시작되어 1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들게 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소만 입기일(入氣日)로부터 망종까지의 시기를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등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씀바귀가 뻗어오르고, 중후(中候)에는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말후(末候)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했다. 씀바귀는 꽃상추과에 속하는 다년초로서 뿌리나 줄기, 잎은 이무렵 식용으로 널리 쓰인다. 초후를 전후하여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초후를 전후하여 죽순(竹筍)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다. 시절식으로 참 좋은 별미이다. 또한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보리는 말후를 중심으로 익어 밀과 더불어 여름철 주식을 대표한다. 모든 산야가 이토록 푸른데 대나무만큼은 푸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모습을 본 듯하다. 그래서 봄의 누래진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대나무 가을'라 한다. | |
망종 | 24절기의 아홉 번째 절기. 소만과 하지 사이에 들며, 음력 4, 5월, 양력 6월 6, 7일께가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75도에 달한 때이다. 옛 사람들은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망종이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이 시기는 옛날에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였다. 그래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듯이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닐 모판에서 모의 성장기간이 10일 정도 단축되었기 때문에, 한 절기 더 앞선 소만 무렵에 모내기가 시작된다. 특히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의 바쁜 농촌의 상황은 보리농사가 많았던 남쪽일수록 더 심했고, 보리농사가 거의 없던 북쪽은 상황이 또 달랐다. 남쪽에서는 이 때를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 만큼 1년 중 제일 바쁜 때였다. 전라남도와 충청남도,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안 좋고 빠르게 들어도 안 좋으며 중간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한다. 특히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하며, 또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고, 늦게 들면 나쁘다는 말도 있다.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망종이 일찍 들면 그해 보리가 좋고 늦게 들면 보리가 좋지 않다고 하며 또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한다. [보리 그스름]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망종날 '보리 그스름'이라 하여 아직 남아 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스름을 해 먹으면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날 보리를 밤 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다.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 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망종보기]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들음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내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두어 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망종이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내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 |
하지 | 24절기의 열 번째 절기. 망종과 소서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5월, 양력으로 6월 21일께가 된다. 해가 황도의 하지점을 통과하는 날.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구에 있어서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옛 사람들은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초후(初候)에는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중후(中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남부지방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옛날 농촌에서는 흔히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의 예를 들면, 하지까지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이장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를 지낸다. 제물로는 개나 돼지 또는 소를 잡아 그 머리만 물 속에 넣는다. 그러면 용신(龍神)이 그 부정함을 노하여 비를 내려 씻어내린다고 믿는다.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삶아서 기우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충청북도 중원군 엄정면 목계리의 경우, 이장이 제관이 되어 한강지류의 소(沼) 속에 있는 용바위에서 소를 잡아 용바위에 피를 칠하고 소머리만 소 속에 넣는다. 이때 흔히 키로 물을 까불어서 비가 내리는듯한 유사주술적인 동작도 한다. | |
소서 | 24절기의 하나로 열 한 번째 절기.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들며, 음력 6월, 양력 7월 7일이나 8일께가 된다. 태양이 황경 105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옛 사람들은 소서 15일간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초후(初候)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中候)에는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다니며, 말후(末候)에는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는 장마전선이 우리나라에 오래 자리잡아 습도가 높아지고, 장마철을 이루는 수가 많다. 예전에는 한 절기 앞선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를 낸 20일 뒤 소서 때는 논매기를 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팥, 콩, 조들도 가을보리를 한 하지 무렵에 심고, 소서 무렵에 김을 매준다. 또, 이때 퇴비 장만과 논두렁의 잡초깎기도 한다. 소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므로 온갖 과일과 소채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된다.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식으로 즐기는 밀가루음식은 이맘 때 가장 맛이 나며, 소채류로는 호박, 생선류는 민어가 제철이다. 민어는 조림, 구이, 찜이 다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애호박을 넣어 끓인다. 특히, 민어고추장국과 회의 맛이 두드러진다. 애호박에서 절로 단물이 나고 민어는 한창 기름이 오를 때여서 그 국은 고추장 특유의 매운 맛이면서도 단물이 흥건히 괴어 맵고 달콤한 맛이 첫 여름의 입맛을 상큼하게 돋우어준다. | |
대서 | 24절기의 열두 번째 절기. 소서와 입추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는 6월중, 양력으로는 7월 23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20도에 이르는 계절. 일년 중 제일 더운 때(大暑)라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 때이며 더위가 심한 시기이다. 옛날에는 논의 김을 매어주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그러나 밭김은 매어주고 논밭두렁의 잡초베기와 퇴비장만 등이 이 무렵에 계속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서 입기일(入氣日)로부터 입추까지의 기간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되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末候)에는 큰비가 때때로 내린다고 하였다. 이 무렵에는 몹시 더우며, 소서 때로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큰 장마를 이루는 때가 자주 있다. 또한,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가 가장 맛이 난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과실의 단물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 과실맛이 난다고 한다. 특히 수박은 가뭄 뒤에 가장 제맛을 낸다. | |
가을 | 입추 | 24절기의 열 세 번째 절기. 음력으로는 7월 절기, 양력으로는 8월 8, 9일 께이며, 대서(大暑)의 15일 후인데 태양의 황경이 135도인 날이 입추 입기일(入氣日)이다.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으며, 가을(秋)에 들어서는(入) 절기라는 이름이다. 동양의 역에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을 가을로 한다. 옛날 사람들은 입추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中候)에는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화성은 서쪽으로 흘러 있고 미성(尾星)은 중천에 떠 있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채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 배추를 심고 9, 10월 서리가 내리고 얼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김장에 대비한다.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처서 | 24절기의 열 네 번째 절기.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들며, 음력 7월, 양력 8월 23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50도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옛 사람들은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도 이무렵에 하며,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이 된다. 또한 백중의 호미씻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때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영남, 호남,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전하여지고 있다. 중복에 참외, 말복에 수박, 처서에 복숭아, 백로에 포도가 제 철 과실로 최고의 맛이다. | |
백로 | 24절기의 열 다섯 번째 절기. 처서와 추분 사이에 들며, 음력 8월, 양력 9월 9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65도에 올 때이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 입기일(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그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때 우리나라에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의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가 음력 7월 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가까운 친척을 방문하기도 한다. [백로와 포도] 참외는 중복(中伏)까지 맛있고 수박은 말복(末伏)까지 맛있다. 처서(處署) 복숭아, 백로(白露) 포도 하듯이 철따라 과실의 시식(時食)이 정해져 있어 과실 맛으로 절기를 느끼곤 했던 것이다. 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포도의 계절이다. [포도지정]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했는데,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물림으로 먹여주던 그 정이 일컫는다. [허수아비] 만곡이 익어가니 백로(白鷺)아닌 새들이 한창이고 이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수고로움도 향수(鄕愁)처럼 그립기만 하다 | |
추분 | 24절기의 열 여섯 번째 절기, 음력으로는 8월 중이며 양력으로는 9월 23일 께이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북에서 남으로 천구의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곳(秋分點)을 지나는 9월 23일경을 말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는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이 시기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며,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백로와 한로사이에 든다. 추분점이란 천구상(天球上) 황도(黃道)와 적도(赤道)의 교점 가운데에서 태양이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 적경(赤經), 황경(黃經) 모두 180도, 적위(赤緯), 황위(黃緯) 모두 0도이며, 현재는 사자자리와 처녀자리의 중간에 위치한다. 옛 사람들은 추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우레 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중후(中候)에는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으며, 말후(末候)에는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이 시기가 추수기이므로, 백곡이 풍성한 때이다. 추분도 다른 24절기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춘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이날을 중심으로 계절의 분기점 같은 것을 의식하게 된다. 즉,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무렵의 시절음식으로는 버섯요리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또한, 추분 즈음이면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호박순, 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두어들여야 하지만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 |
한로 | 24절기의 열 일곱 번째 절기.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9월, 양력으로 10월 8일경이다. 태양은 황경 195도의 위치에 온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 세시명절인 중양절(음력 9월 9일)과 같은 시기에 해당한다. 중양절에는 특별한 민속이 있으나 한로는 다만 절기로 칠 따름이다.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 국화는 그 둥근 모양과 밝은 색이 태양을 상징하며 양(陽)의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9가 겹치는 중양(重陽, 9월 9일)이 바로 이즈음이기 때문이다. 이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벽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 즈음에는 찬 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기온이 더욱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며 여름철의 꽃보다도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한로와 상강철의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을(秋)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는가 보다. | |
상강 | 24절기의 열 여덟 번째 절기.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들며, 음력 9월, 양력 10월 23, 24일께가 된다. 태양의 황경이 210도 되는 때이다. 이때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지므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상강으로부터 입동 사이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승냥이가 산 짐승을 잡고, 중후(中候)에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말후에 가서 벌레가 이미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계절적으로 추울 때이다. 이는 농경 시필기(始畢期)와도 관련된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가꾸어서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나는 것이 농본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인 것처럼, 9월 들어 시작된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마무리가 된다.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로 율동감있게 바쁜 농촌생활을 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기술의 개량으로 이러한 행사들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 |
겨울 | 입동 | 4절기의 열 아홉 번째 절기. 음력으로 10월 절기, 양력 11월 7일, 8일 께이며,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이 225도일 때.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을 5일씩 3후(候)를 정하여, 초후(初候)에는 물이 비로소 얼고, 중후(中候)에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에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채비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김장] 무수히 쌓인 낙엽 위에 서리가 내려 쉬고 찬바람이 옷깃을 올려준다. 입동엔 벌써 겨울채비가 한창이다. 입동 전후해서 김장을 담근다.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옛날에는 우물가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배추 씻는 풍결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덤을 친다. [고사] 이 시기에 고사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터줏간지, 씨나락섬이나 외양간에도 고사 지낸후,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한해의 노고와 집안의 무사하였음을 감사드리며 이웃과의 일체감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치계미(雉鷄米)] 또한 옛날 향약(鄕約을 보면 춘추(春秋)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다. 비단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응분의 출연(出捐)을 했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 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 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 날씨점을 본다. |
소설 | 24절기의 스무 번째 절기.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22일이나 23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40도에 오는 때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이라고도 불린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은 소설로부터 대설까지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구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천기가 올라가고 지기가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갑다. 이날은 손돌이 죽던 날이라 하고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조심한다. [손돌(孫乭)의 전설] 고려 때 전란이 일어나 왕이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가게 되었는데, 배가 통진(通津)·강화 사이(후에 손돌목이라 하였다)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뱃사공 손돌이 왕에게 일단 안전한 곳에 쉬었다가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파천하는 처지라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터에 그런 말을 고하므로 그를 반역죄로 몰아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싣고 가던 왕의 말을 목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 제사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하였다 한다. 그 뒤 매년 이 날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인다고 하는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 바람(손돌풍,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한다. 강화에서는 이날 뱃길을 금한다. | |
대설 | 24절기의 스물 한 번째. 음력으로는 10월 중,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이다. 태양이 대략 황경(黃經) 255도에 도달하며, 소설과 동지 가운데에 있는 절기이다. 눈이 많이(大) 내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상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도 이 시기에 반드시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옛 사람들은 대설 기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눴는데,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③ 여지(枝)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 ·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고 한다. | |
동지 | 24절후의 스물 두 번째 절기. 음력으로는 11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冬至線 : 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도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대설의 다음이며 소한의 앞이다.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태양이 남회귀선,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선에 도달한 시절로 밤이 제일 길다. 반대로 남반부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다.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군신의 연예를 받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옹시래미(새알심)'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동짓날에 궁 안에 있는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 정향(丁香), 계심(桂心), 청밀(淸蜜)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동지받이] 동짓달 보름쯤에 함경도 앞 바다에 몰려드는 명태의 떼, 볼이 묽고 등이 넓고 알배기가 많다. [하선동력(夏扇冬曆)] 옛날 왕실에서는 동짓날에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다.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 청장력, 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전약(煎藥)]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생강· 정향(丁香)·후추·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황감제(黃柑製) - 귤] 또한 제주목사는 동지 무렵이 되면 특산물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상감은 멀리 섬사람에게 그 공로를 위로하는 선물을 하사하였으며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동지부적]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고 여겼으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동지헌말]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시할머니나 시어머니 시누이 시고모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함이다.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했는데 그것은 미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동지사(冬至使)] 동짓날 파견한 외교 사절 | |
소한 | 24절기의 스물 세 번째 절기. 음력으로는 12월절(十二月節), 양력으로는 1월 5일, 6일 경이다. 태양이 황경 285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소한으로부터 대한까지의 15일간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中候)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 |
대한 | 24절기의 마지막 절후(節候). 양력 1월 20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00°되는 날이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께이므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었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절분(節分)]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해넘이]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 [집안 손질]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간에 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간(1월 25일∼2월 1일)의 보통 1주일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