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드물게
보름 전 어느 날 주말이었지 싶다. 묵언 수행한 산행을 하고 하산했다. 집사람이 뷔페에라도 가 눈으로 즐기는 식사를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나는 지나가는 얘기로 뷔페는 겉은 화려해도 실속이 없더라고 건너짚었다. 예식장 하객이나 어쩔 수 없는 엮임으로 가야할 자리라면 피할 수 없지만 뷔페 음식은 내 체질에는 아니었다. 그래서 바깥 식사를 할 바엔 그냥 소박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집사람은 절에 착실히 다녀서인지 육류는 잘 먹지 않으려 했다. 특히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더 안 먹으려 했다. 나는 닭은 싫어한다만 오리고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밖의 육류는 아예 생각이 없다. 술안주도 생선구이 정도는 먹어도 족발도 본 체 만 체다. 집사람이 모처럼 외식을 원해 나는 어디로 모실까(?) 난감했다. 나는 평소 집 바깥에서 술자리는 가졌어도 밥자리는 잘 모르고 살았다.
우리 집 식탁은 언제나 푸른 풀밭이다. 근래 계란 프라이나 찜도 한 번 오른 적 없다. 집에서 가까운 도청 근처로 나가니 한정식 집은 더러 보였다. 집에서도 지겹도록 먹는 야채 밥상인데 그런 곳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한정식 곁에 있는 도가니탕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사람은 밥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눈치였다. 그 도가니탕 집은 언젠가 친구가 우리 내외를 불러내어 한자리 했다.
두어 해 전 친구가 우리 내외에게 사 준 도가니탕은 잊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인데도 이전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 집사람과 그 도가니탕 집에 다시 들렸다. 나는 전에 친구가 산 도가니탕보다 한 금 더하는 전복꼬리곰탕을 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집사람은 그냥 도가니탕을 먹으려고 했다. 사골을 진하게 우려낸 도가니탕 덕에 맑은 술도 한 잔 곁들였다.
쇠무릎 연골을 우려낸 도가니탕은 물상의 유사성과 최면효과로 우리에겐 골다공증과 무릎관절에 좋다고 하지 않는가. 내외가 겸상을 받아 놓고 이른 저녁을 먹는 곁에는 창원공단 어느 연구소 직원들이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그들의 업무 관련 얘기에는 신경 쓰지 않고 느긋하게 일어났다. 다음 들리면 전복을 넣어 끓여낸 꼬리곰탕을 먹어 볼 것이라 벼렸다.
칠월 둘째 토요일이었다. 집사람은 다니는 절에서 법회가 있고 봉사회 활동으로 아침나절부터 바빴다. 나는 나대로 학생 백일장 진행과 심사 차 발이 묶였다. 작품을 읽고 입선작을 골라 놓고는 남은 뒷마무리는 젊은 분들에게 맡기고 서둘러 귀가했다. 일요일은 북상하는 태풍이 밀어 올리는 장마전선으로 많은 비가 올 것이라 했다. 그래서 자투리 시간 어디 산행을 다녀올 데가 있었다.
여름 이맘때면 정년보다 몇 해 이르게 교단을 떠난 한 지인과 영지버섯을 찾아나서는 걸음을 한다. 둘은 창원터널을 지나 불모산 기슭으로 들었다. 숲에 드니 서늘하고 계곡엔 맑은 물이 철철 흘렀다. 산 들머리에서 아기손바닥 크기 영지를 몇 개 찾고는 영지가 잘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다음에 더 먼 곳으로 한두 차례 다녀오기로 하고 한 시간 반 만에 산을 빠져나와 창원으로 복귀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밭쳐 쓰고 집사람과 모처럼 바깥나들이를 나섰다. 옛 도지사 관사 앞 어딘가를 지나다가 기억에 남은 선식 식당을 찾아가니 자리를 옮겼는지 찾을 수 없었다. 거기서 가까운 연잎으로 밥을 지어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주말 저녁을 바깥에서 때우려는 사람들로 제법 차 있었다. 우리는 방으로 올라 자수를 놓은 병풍이 둘러친 통나무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연잎밥은 시켰더니 종업원은 밥을 찌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면서 부추전을 먼저 가져왔다. 덕분에 나는 집사람 눈치 속에 동동주도 한 사발 들이켰다. 깔끔한 밑반찬이 나오고 된장찌개와 함께 밥이 올랐다. 겹으로 감싼 연잎을 펼치니 흑미와 대추로 지은 찰밥이었다. 동동주를 한 되나 시켰으니 내 몫으로는 넉넉했다. 이제는 이래저래 절간 스님보다 더 절간 체질에 익숙해져 가는 듯했다. 1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