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던 하루를 보낸다는 것 더러는 즐길만한 일이요
가끔씩 궤도 이탈하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원래 일정은 서울로 가야했으나 감기 기운이 재발하는 고로
얌전하게 하루를 쉴 요량으로 서울행을 포기하였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해결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자기 최면을 걸면서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쉬려는 찰나
문경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는 신선이 굼뜬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여
"함께 가줄까?" 라고 슬쩍 물어 보았더니 웬걸 덥썩 "그래주면 좋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컨디션 난조로 집에만 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 어부인 자리에 앉아
편히 봄 풍경이나 하자 싶어 동행을 하다 보니 어허라 봄은 아직 찾아들지 아니하고
썰렁한 풍광들만이 몸과 눈을 실망시킨다.
게다가 문경 즈음에 다다르니 전날 내렸던 눈이 녹지를 않아 산 봉우리마다 눈을 가득 이고 있고
괴산과 문경 사이골의 위세를 새삼 느끼면서 시장이 몸을 짓누르는지라 나름 시내, 문경 읍네를 찾아들어
먹거리 식당을 찾자니 들깨 칼국수가 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예전에도 들깨 운운 하며 이름을 달고 등장을 하였던 음식에 대해 썩 좋았다 라는 기억이 별로 없어
일단은 장담되지 못할 음식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들어섰다.
헌데 예상외로 음식이 썩 괜찮다.
우선 미리 나오는 꽁보리밥과 콩나물, 무생채가 입맛을 돋우고 그 다음에 등장하는 돼지고기 수육을
직접 담근 김치에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들깨 칼국수의 진한 맛이 완전 일품이다.
오호라, 괜히 걱정을 했다 싶게 진한 국물맛이 몸살 기운을 잡아주고 국수 면발 역시 쫄깃하니 아주 그럴 듯하다.
그리하여 잘 선택했다 흡족해 하며 강추하는 채가네 들깨국수 054 571 8881, 010 5394, 3470.
본래 식당 음식 좋아하지는 않지만 더러 만나지는 좋은 음식과 쥔장의 진정성이 보이는 음식점에서의 한 끼 식사는
기대치 않은 소박한 행복을 가져다 주니 절로 마음이 흐뭇하고 내친 김에 문경 출장의 목적지 탱화 장인의 불교 문화 연구소로 찾아 들었다.
비록 칼국수를 먹었으나 불화 장인이 직접 내려주는 원두 커피 한 잔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상큼한 사과와
불 같은 성정의 쥔장과 대화를 하다 보니 저 성격으로 세심한 탱화를 그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붓을 잡는 순간에는 고요의 삼매경이랍시니 그것 또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그저 그러려니로 이해할 수밖에.
그리고 하늘재에 자리한 관음정사를 찾아들었다.
오랜 인연이기도 하지만 본 주지 스님은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지 오래요 새로 주인이 되신 스님은
한참 전에 맺은 서울에서의 후발 인연이라 내어주신 대만 청차와 오룡차를 마시면 다담을 나누는데
차의 향기는 물론이요 그 맛은 어디에서나 맛볼까 싶었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스스럼 없이 스님과 세상 인연을 노하며 마구잡이로 웃을 수 있었음인데
인연이란 더러 함부로 지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아요 실감하였다는...
그 다음으로 찾아든 곳은 문경에서도 오지요 해발 600미터 고지를 넘겨 자리한 일월암.
문경요를 지나 외통수 길을 가다 보면 상수원 보호구역이 나오고 그곳에서도 비포장 길로 한 없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미 초입부터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미리 연락을 드린 터라 일월암 주지 스님께서 자신의 차로 마중을 나오셨다.
미안한 마음으로 스님의 차에 동승을 하여 한참을 올라가니 세상에나 그렇게 높은 골짜기에 세상을 내려다 보는
신선스님은 무슨 복덕을 지었을까 싶고 전화도 불통이요 전기도 없는 깊은 산중에서의 적막강산은 무설재와
비교도 되지 못할 19세기 삶이요 천상의 행복이라는 걸작 해우소는 그야말로 그곳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울 듯하고
특히 스님이 만드시는 발효차의 오묘한 맛에 빠져 한없이 음미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지는 해,
노을을 친구삼아 걸어 내려오게 되었는데 마치 무릉 계곡을 지나오는 듯 하다.
하지만 문경까지 가서 선산엘 그냥 지나쳐 올 수는 없는 법이니 조상님들께 눈도장을 찌고
아직 49제 중인 시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자니 그사이에 새로 마련된 넓은 상석이 눈에 들어온다.
늘 뒷 켠에서 묵묵히 자질구레한 많은 일들을 감당하는 무설재 신선의 노력이기도 해서 뿌듯하기도 하고
시어른들께 절을 하면서는 울컥하기도 했다 는.
그렇게 하루 일정을 갑작스레 감당하고 돌아오니 늦은 밤이라 몸은 지치고 고되었으나
예정에 없던 차의 호사에 입이 즐겁고 황홀하다.
더러 미리 계획된 일정을 벗어나 일탈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해볼만한 일이겠다.
첫댓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모양이군요. 언제나 오려나~? 궁금~!
게다가 그 차맛이라는게 또 궁금~!
눈이 내려잇더라구요 오히려...봄맞이 하여다가 썰렁하기만.
그 차라는 것이 발효차이고 구기자와 한약재를 활용한 듯 하여 일반적인 차와는 거리가 좀 있지만
맛과 향이 좋았답니다.
그러나 들깨 칼국수, 정말 맛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