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is Mission(선교는 사명)
‘Mission’은 ‘선교 또는 사명’이란 뜻입니다. ‘Mission is mission’이란 ‘선교는 사명입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이고,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이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보내진 존재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고후 5:20절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사’(We are ambassador for Chrit)라고 했습니다. 지난 달 한국에 갔을 때 호주 대사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부탁을 하자, 자기는 개인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라 호주 정부의 대신하여 왔기 먼저 때문에 먼저 정부의 뜻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를 바로에게 보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신 예수님은 그를 땅끝으로 보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을 나누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구분하면 1-12장은 베드로, 13-28장은바울입니다. 지역을 따라 구분하면 1-7장, 예루살렘, 8-12장은 온 유다와 사마리아, 13장-28장은 땅끝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1-3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니게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검은색'을 의미합니다. 구레네(Cyrene):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고대 도시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다 민족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역사적으로 선교를 해안선교, 내륙선교, 도시선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해안선교 (Coastal Missions)
해안선교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의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그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이 시기는 기독교 선교 활동이 전 세계로 확산 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사들이 새로운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 가톨릭에서는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되었습니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개신교 선교 운동에서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인도의 서뱅골 지역 해안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인도에서의 교육과 사회 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2. 내륙선교 (Inland Missions)
내륙선교는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선교사들이 해안 지역을 넘어 내륙 깊숙한 곳까지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노력이 강화된 시기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865년에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설립하고, 중국 내륙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중국 문화를 존중하고 중국인처럼 생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중국 내지에 많은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CIM은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철수하여 지금은 OMF International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3. 도시선교 (Urban Missions)
도시선교는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도시 내에서의 선교 활동이 필요해졌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1865년 구세군을 설립하여 도시 빈민층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복음 전파와 사회 복지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동부런던의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동하며 영혼구원을 넘어서 전인구원, 개인구원을 넘어서 사회구원을 실천하였습니다. 사회구원이란 개인의 죄사함과 영생을 넘어, 사회적 불의와 억압, 빈곤과 차별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넓은 의미의 구원을 포함합니다. 해안선교와 내륙선교가 ‘가는 선교’라면 도시선교는 ‘오는 선교’입니다. 지금 땅끝이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도시는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도시는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지역 사회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봉사와 사역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지난 목요일 이호잣 선교사님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선교사님은 이란 사람입니다. 1993년에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왔다가, 예수를 믿게 되고,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고, 지금은 터키에서 나섬 페르시안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여 최초로 종교난민으로 허락을 받았고, 5년 후 한국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한국은 난민법이 아주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난민과 이민의 차이는 난민 심사는 난민 중심으로 심사를 하고, 이민심사는 자국민 중심으로 심사를 합니다.
UNHCR의 난민 자격 기준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박해의 위험이 있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기준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박해, 특정 사회 집단에 속하여 박해를 경험했거나 이를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를 포함합니다. 이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종교난민으로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31년이 지났지만 이란을 갈 수가 없습니다. 현재 그는 이란과 노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 터키에서 이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역파송 선교’(Reverse Mission)가 되었습니다.
선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최대의 사명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선교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이고, 모든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선교적이지 못하면, 선교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