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일상 한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일, 상식에 어긋나는 일,
그야말로 황당한 일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의 태도는 어떠한지. . .
당혹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내 마음 한가운데서 나는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신앙인으로써 어떻게 그 상황을 대하고 있는지 . . .
성모님께서는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1)는 천사의 말을 듣고
모든 위험과 두려움조차 받아들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순명을 통해서
세상을 향한 엄청난 당신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순명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당신의 일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
외면하고 싶은 일에 접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알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고,
차라리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내가 하느님의 사람인가를
확인 받는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이
성모님처럼 나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내 주변에, 공동체 안에, 이 세상에
예수님을 낳아드리는 것이 아닌가 묵상을 해 봅니다.
나 자신을 위한 이기심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의 겸손하고 순결한 마음을
닮을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해봅니다.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녀가 가장 소중합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설령 잘생기지 못했어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담겨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 안에 꽃이 자라나야 한다.”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꽃을 보면
‘저건 얼마짜리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아름다운 마음이 없다면
꽃을 보아도 무덤덤합니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사람 마음에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을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고약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모님을 묘사한 예술 작품은
모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모님께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사심(私心)을 조금도 품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의 관심은 오직 하느님의 뜻이었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모든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며 사신 성모님에게서 발견한
최고의 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향기처럼 그 삶의 향기가 퍼져 나갑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이 세상이 선해서 내가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내가 모여 세상을 선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아름다운 마음을 키울 때,
그것이 이웃에게 전해지고, 결국 세상에 이릅니다.
첫댓글 왜 성모님을 묘사한 예술 작품은
모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을까요?
모든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뜻 만을 추구하며 사셨기에
'최고의 미' 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공감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사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워요. 보는 사람도 행복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