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의 독 화살
욥기 6: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찬송가 380장(나의 생명 되신 주)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이 욥기 6:4 말씀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극심한 시련을 허락한 뒤에 그가 탄식하며 내뱉은 많은 말 중 일부입니다. 욥은 여기서 하나님을 사냥꾼으로 비유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겨냥하여 강하게 쏜 독화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한 마리 들짐승으로 자기를 비유합니다.
사실, 욥이 큰 시련을 겪는 이 일은 극히 예외적일 정도로 극심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자기 백성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훈육하시며 성장을 도모하시는 그의 훈육 방식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나 짐승의 세계에서 어린 새끼를 기르는 부모의 훈육 방식도 그러한데 아주 어릴 때에는 온통 조심스럽게 돌보고 불면 날아갈새라 쥐면 부서질새라 끔찍이 돌보아줍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크면 교육도 필요하기에 예절 교육을 실시합니다. 공중 예절, 인사법 예절, 식사 예절을 가리칩니다. 공부도 조금씩 가르칩니다. 한글 교육도 시작하고 구구단도 외게 하고 덧셈 뺄셈을 시작합니다. 아이들 좋아하는 것들을 허용하지만 육신의 건강,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것들은 자제시키는 교육이 잔소리처럼 더해집니다. 그러다가 부모는 군대도 보내는 일도 눈물을 참고 허락하는데, 이는 그 자녀가 앞으로 감당할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생사의 모든 굴곡진 실상을 다 아시는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그냥 철부지 어린아이로만 둘 수 없기에 적절한 시기마다 단계별로 필요한 훈련을 가하십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만 계속 두지 않고 때로는 비파를 버드나무에 걸어두며 비탄의 눈물을 흘리는 바벨론 강변에 있는 유다 백성들처럼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동방의 욥 역시 우리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지혜롭고 선하고 성결한 신앙으로 살아온 성숙한 신앙 인격자였지만 하늘 아버지께서는 욥으로 하여금 더 성숙하고 온전하고 흠없는 신앙인으로 발전하여서 하나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며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가혹한 시련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되 그의 모든 소유물과 그의 자녀까지 하룻만에 다 잃고 그의 건강까지 송두리째 다 잃고 그의 영적인 자부심 속에 섞여 있는 어떤 교만이나 자기 중심의 찌꺼끼까지도 다 찾아내어 다 내려놓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의 불의와 자기의 미련함과 자기의 교만을 철저히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함으로써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되어 전에는 하나님을 귀로만 들어 아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직접 하나님의 크고 광대한 영광을 눈으로 뵙게 되고 더 큰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두 배나 받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자녀들이 더 성숙해지고 더 온전해지고 더 복을 주시고 더 깊은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때로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독화살을 쏘아 맞춰서 그 영혼이 고통스럽고 그 마음과 몸이 쓰라려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게 만드는 시련을 허락하시곤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17살부터 그러한 혹독한 시련을 오랫동안 당했으며, 다윗 역시 소년기를 갓 넘기자마자 그러한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어 나이 30살이 되어서야 일단락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사십 년도 하나님과 첫 사랑의 교제의 시간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자기에게 맞추기 위하여 허락하신 훈련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신명기 32:10~12 말씀에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고 하였습니다. 애굽의 고센 땅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지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냥 좋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영원히 그곳에서 이방인이요 노예 신분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에 젖어 살다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를 충동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게 하시어 애굽을 떠날 마음을 갖게 하시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인도하여 광야로 인도하여내십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면서 훈련하시되, 마치 독수리가 그 새끼를 키워서 때가 되니 스스로 창공을 날게 하려고 그 보금자리에서 일부러 떨어뜨려 비행하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독수리 새끼가 처음 날다가 날개가 힘이 없어 떨어지면 그 어미와 아비 새가 달려와 그 날개로 받아 올려 다시 비행 훈련을 하게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엄격한 훈련 과정을 통과하게 하여 성장하게 하사 선민 이스라엘로 빚어가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우리를 항상 따뜻하게 지키시고 돌보시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필요한 때가 되면 우리에게 가혹한 시련과 역경도 허락하시어서 우리로 하여금 더 성숙해지고 온전해지도록 훈련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취지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예레미야 애가 3:27,2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2~4 말씀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10,1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그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을 만날 때에 낙심하지 맙시다. 가혹한 시련을 만날 때에 더욱 온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잠잠합시다. 고난과 역경 중에 불평이나 원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 계심을 믿고 욥과 함께하시고 복된 결말을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면서 인내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계속 바라봅시다. 그러할 때 어느 틈엔가 우리 속 사람 속에 깃들어 있던 찌끼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세상 것들이 떨어져나가고 정결하고 순결해지고 단단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더 온전히 알아가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허락한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더 성숙해지고 더 풍성한 복을 받는 그릇을 갖추고 더 긴요하게 쓰임받는 주의 일꾼으로 굳게 세워져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