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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경 유럽 기사들의 방패에 그려진 문양이 ‘문장’의 시작
인류 최초의 시각적 상징, 기원전 1만5000여 년 전 ‘프랑스 라스코 벽화’
말을 탄 기사가 용 죽이는 ‘모스크바 시장’ 등 수많은 상징 전쟁서 유래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벽화. 필자 제공 |
알브레히트의 작품 ‘밀라노의 항복’.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항복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사람을 물고 있는 뱀’을 비롯해 많은 제후국의 상징들을 그렸다. 필자 제공 |
잉글랜드 국기. 필자 제공 |
오늘날 사회는 수많은 기호와 상징들로 가득하다. 세계 어느 곳이나 발을 딛는 순간 우리는
유래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상징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사실 비행기나 배에 그려진 것에서부터 제작 시기조차 알기
어려운 고성의 문이나 탑은 물론 수도원·교회·성당 등의 건물에서도 상징은 나타난다.
상징은 학교나 기업체 또는
단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유니폼 위에 팀의 상징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그뿐만 아니라
옷·가구· 맥주·와인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에, 그리고 화폐나 각종 문서에서도 상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대를 이어
특산품을 판매하는 고풍스러운 가게나 허름한 선술집, 심지어 개인의 사택에서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상처럼
아니 어쩌면 삶의 일부처럼 인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도처에 널린 상징에 대해 특별함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굳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대는 ‘수많은 기호와 상징을 교환하는 사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한 것일까? 역사를 거슬러 인류가 처음 남긴 기록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만5000년에서 1만2000년 사이, 즉 글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라스코(Lascaux)와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의 벽에 남긴 그림이 그것이다. 이 흔적들은 인류의 조상들이 생존과 번영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은 인류 최초의
그림인 동시에 인류가 남긴 최초의 (시각적) 상징으로 간주된다.
모스크바 시장(市章) 필자 제공 |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필자 제공 |
전쟁에서 유래한 상징의
진화
상징(象徵·symbol)이란 한마디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영역으로 연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상징은 상대방에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전달하거나 오래 기억에 남기는 역할을 한다. 상징은 남에게 잘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또 오랜 세월을
거쳐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공식 징표로서 자긍심의 표상이며 현재의 존재감은 물론 미래의 영속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개인이나 조직의 전부이자,
그것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엠블럼·브랜드·마크·로고 등은 시각적 상징의
후예들이다. 각각의 정의와 분야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연재에서는 우선 상징으로 통칭하고 이후 주제에 따라 구분 적용하기로 하겠다. 학계에서는
상징의 뿌리를 ‘12세기경 유럽 기사들의 방패에 그려진 문양’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특별히 ‘Coat of arms’로 부르고
우리말로는 ‘문장(紋章)’이라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합스부르크가를 상징하는 ‘독수리’나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의 잉글랜드
국기와 ‘삼사자 국장’, 말 탄 기사가 용을 죽이는 모습을 그린 모스크바 시의 시장(市章), 교황청과 교황의 문장, 스페인 알폰소 국왕이 하사한
왕관을 얹은 레알 마드리드 축구클럽의 엠블럼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상징이 전쟁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류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인 그림도 시각적 상징을 활용하고 있다. 유럽에는 뜻 모를 암호가 복잡하게 얽힌 것처럼 보이는 그림들이 꽤 많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 상세한 의미를 설명한 자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찾기도 힘들지만 있다 해도 대부분 원어로 돼 있고
일본을 제외한 동양에는 거의 없는 문화다 보니 여간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암호문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통해 세상을 보는 계기를 제공
처음 전쟁에서 유래한 상징들에 대해 알게 된
필자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전쟁은 다른 영역에 비해 다양한 상징들을 선구적으로 고안해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하면서 동시에 생소했던 상징들, 특히 전쟁에서 유래한 상징의
진면목을 살펴보고자 한다.
상징은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결국 상징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곧 상징하는 대상의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상징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류 문화의 새로운 측면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전쟁을 통해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가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연재는 5부로 진행한다. 먼저 전쟁에서 유래한
상징들의 뿌리와 다양한 상징의 진화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징과 관련된 이슈들을 전하려 한다.
필자에게 이
연재는 지난 2012년 ‘전쟁과 스포츠’, 2016년 ‘전쟁과 음악’에 이은 세 번째 기회다. 이는 전쟁과의 포괄적 관련성을 규명하기 가장
어려운 반전쟁(Anti-War) 영역인 예술 분야를 두루 섭렵한다는 측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큰 영광임과 동시에 무한의 책임감을 느낀다.
모쪼록 연재를 통해 전쟁 문화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미술·패션·디자인 등 관련 영역이 전쟁과 공존(共存)을 넘어
공영(共營)과 공진화(共進化)를 지향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된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윤동일 육사 북극성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