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보아도 김 삿갓은 이 나라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남기시고 가셨다.
남기신 글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에게 감탄을 주신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분이시다.' 그 오랜 세월 전국을 다니시면서 '하룻밤 보내시기에, 끼니 한 끼 얻기에'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그런데 그것들을 해결하시며 남기신 일화 하나하나가 너무 많다.
술이 벗이었기에 술을 청하려면 기녀(妓女)가 함께 하셨기에 그로 인한 이야기가
항상 있었다. 당시 기녀들은 시, 문, 가무에도 능하였기에 시선이신 삿갓의 글벗이
되었고, 그 뒤에는 '기막힌 이루지 못한 사랑' 이 주는 아픔이 따랐다.
오늘은 그중 하나를 옮겨 드린다.
<쇠뭉치>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천하 일색 양귀비도 한 줌 흙을 남겼을 뿐인데 무엇을 망설이느냐"는
유혹의 시를 받아 읽고 충격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는지,
주모(酒母)는 오래도록 망설인 끝에 술 상을 다시 보아 들고 김 삿갓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한 바가 있었던 지 의외의 제안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삿갓 어른을 모시되 이부자리를 펴놓는 것 만으로 대신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부자리만 펴놓고 살을 섞는 짓 만은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김 삿갓은 여인의 고고한 뜻을 알아채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좋도록 하세 그려. 자고로 지불가만(志不可滿)이요 낙불가극(樂不可極)이라 했으니
이부자리만 폈으면 됐지, 구태여 그 속에 들어가 금수(禽獸)와 같은 짓을 할 것까지 없지 않겠나."
옛날의 고사(高士)와 명기(名妓)들은 서로 뜻이 맞으면 이부자리만 펴놓고 실제로 살을 섞지는 않는
일이 더러는 있었기에, 김 삿갓도 흔쾌히 응낙 하였던 것이다.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일어나서 원앙 금침을 정성스럽게 펴놓았다.
이 날 밤 두 남녀는 이부자리 옆에 앉아 술만 나누었을 뿐, 이불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애정도 없이 살을 섞으면 그것은 단순한 야합(野合)이지 않는가.
김 삿갓은 주모의 망부(亡夫)에 대한 의리를 높이 평가하고 주모는 김 삿갓의 인품을 소중히 여겨 주고 있었다.
"내가 권주 시(勸酒詩)를 한 수 읊어 줄 테니 자네도 한 잔 마시게."
김 삿갓은 여인에게 술잔을 내밀며 옛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권군일배주(勸君一盃酒) : 그대에게 한잔 술 권하노니
만작불수사(滿酌不須辭) :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 꽃이 피면 비바람이 많고
인생족별리(人生足別離) : 사람살이에는 이별도 많다네
여인은 술잔을 들고 눈물을 삼키며 "저도 옛 시로써 화답을 올리겠습니다." 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군구별첩루(君垂別妾淚) : 임도 나와 헤어지며 눈물 지우고
첩역루함리(妾亦淚含離) : 저 역시 울면서 헤어지려오.
원작양대우(願作陽臺雨) : 그리운 눈물이 비가 되어서
갱쇄랑군의(更灑郎君衣) : 정든 님 옷 자락에 뿌려 지이다.
실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심야의 이별 곡이었다.
<검색 창에서 옮김>